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지금까지 국내에 출간된 더글라스 케네디의 모든 소설을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지극히 통속적인 내용에 지적 허영마저 살짝 얹어 채워주기 때문이다. 단순히 내용뿐만 아니라 내용 안에 포함되는 각종 문화와 관련되어 있는 소재를 읽는 재미도 솔솔하다. 영화, 문학작품, 음악 등 작품 속 인물들이 다양한 문화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며 상대방을 예측하거나 자신을 알려주는 하나의 매개체로 활용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모든 작품을 다 재미있게 읽은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작품도 있었다. 이번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은 아쉽게도 재미가 살짝 떨어진다. 생각해보니 남자가 주인공인 작품에 비해 여자가 주인공인 작품이 재미가 덜했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소설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은 대중문화 영역에 있던 인물이 한참 잘 나갈 시점에 뒤통수를 맞고 추락한 후 다시 우연한 기회에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너무 통속적이지만 그 맛으로 봤다. 대중문화 속 인물들이 등장하여 소재를 선보이고 서로 이야기할 때 나도 그 작품을 읽어 봤다는 동질감과 나도 그 음악을 알고 작품 속에서 언급하는 다양한 문화이야기에 동참할 수 있다는 괜한 지적허영을 채우며 읽었다. 이런 통속적이며 지적 허영을 채워주는 작가는 기욤 뮈소도 있다. 기욤 뮈소는 최근에는 살짝 지겹다. 반복되는 내용에 너무 뻔한데 그나마 아직까지 더글라스 케네디는 여전히 내 허용을 채워준다.


이번에 읽은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은 여자 주인공 입장에서 서술되었고 좀 답답한 면이 많았다. 비록 뜻하지 않게 나락으로 떨어졌어도 갖고 있던 재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회가 되었을 때 다시 올라설 수 있는 운을 거머지는 모습을 읽으며 쾌감을 느끼며 읽었는데 이번 책은 그런 면이 없었다. 물론 이번에도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모든 것을 잃었지만 자신의 무죄가 전부 밝혀지며 갖게되지만 통속적인 쾌감은 아니다.

소설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눠진다. 개방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한나는 원칙적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한다. 진보적이며 전쟁을 반대하는 교수 아빠와 자신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내뱉는 미술화가 엄마사이에서 자라 우연히 만나 의사 남편과 임신을 하게 되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작은 마을로 간다. 남편이 집을 비웠을 때 아빠의 주선으로 온 매력적인 남자와 며칠 보내며 감정에 충실하지만 곧 제 자리를 찾고 생활한다.


몇 십년이 지나 모든 것이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딸이 실종한다. 딸은 유부남 의사를 잊지 못해 사라졌는데 이를 계기로 언론에서 관심을 갖게 되고 때마침 옛날에 만났던 그 남자가 책까지 펴내며 하루아침에 나쁜 여자로 방송에 나가게 된 한나는 도망칠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이 때 보수적인 아들도 믿었던 남편도 등을 돌린다. 한나는 보편타당한 정서에 입각한 사고를 가졌다고 믿었지만 온갖 사람들에게 매도당한다.


진실 공방이 이어지며 진실은 당사자 이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진실을 밝힌 사람이 나타나며 모든 사람들은 한나에게 미안하다며 자신의 자리를 다시 되찾는다. 아들은 자신이 지나쳤다며 연락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미안한지 연락하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자신이 가고 싶었던 파리로 반 년동안 가려고 할 때 죽었는지 알았떤 딸이 연락이 온다. 파리로 갈 것인가 망설인다. 각자의 인생이 있으니 떠나는 것이 맞다며 이야기는 끝난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라는 생각을 난 한다. 많은 것을 자식을 위해 해 줄 수 있지만 무엇이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난 그저 자식은 자식의 삶이 있는 것이고 부모는 일정 시기까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만 도와주면 된다. 그 후에 자식 발목만 잡지 않으면 된다는 입장이다. 자식은 자식 삶이 있는데 그걸 부모가 일일히 방향을 제시하고 간섭할 필요도 이유도 권리도 책임도 없다.


굳이 작품 속 내용에 의미를 두자면 의미가 있겠지만 내가 더글라스 케네디에게 원하는 것은 아니기에 <더 잡>과 같은 작품에 비해서는 재미는 덜 했다. 그래도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필력은 참 대단하다싶다. 늘 작가들이 이야기 전체를 풀어내는 능력은 감탄스럽다. 아귀가 딱딱 맞게 앞에서 한 내용이 뒤에 가서 기가 막히게 이어질 때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내린다.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은 자심 쉬어가는 작품으로.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조금은 덜 익사이팅하다.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그래도 더글라스 케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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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의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 천재 동양 철학자들의 생각의 향연을 듣다
이중텐 지음, 이지연 옮김 / 보아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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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일본에서 공자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 중에서도 사실 유독 한국이 더욱 공자가 중요하다. 다양한 사상체계가 난립하고 유입되며 여러 사상이 혼재(??)되어 있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서 한국은 공자의 가르침을 거의 중심사상으로 오랫동안 다양한 체계가 권장되었다. 오죽하면 종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교라는 표현까지 쓸 정도다. 중국에서 뒤늦게 자신들보다 더 유교적 가치를 지키는 한국을 본받아야 한다는 소리도 있을 정도다.


중국 사람이니 중국인이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중톈은 솔직히 처음 서점에서 그 이름을 접했을 때 우리나라 교수인줄 알았다. 중국인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고 상당히 많은 책마저 나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중국인이 저술한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편견이라고 하면 편견인데 책을 읽어보면 음모론을 이야기하건 중화사상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엄청난 문화와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답지 않게 수준이 좀 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주변에 책을 좀 읽는다는 분들도 비슷한 의견이라 중국책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중텐같은 경우에 이번에 처음 접하는데 중국에서 갑부 47위에 위치한다고 하는데 기업인이 아닌 교수가 책을 출판하고 강연만으로 버는 금액이 상상초월이라 본다. 이중텐이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을 제외하면 책 내용은 딱히 더 대단할 것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공자는 이미 수많은 책에서 다루고 언급되며 어느 정도 모르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공자의 논어 등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은 없어도 다양한 책으로 공자의 사상을 접했고 공자일대기도 읽어 봤기에 새삼스럽지는 않은 인물이다. 공자는 굳이 이야기하자면 가진자를 위한 사상체계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데 당시 시대상을 볼 때 지극히 자연스럽다. 계속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지만 너무 이상적이라 당대에는 큰 환영을 받지 못했지만 덕분에 두고 두고 사상이 후대에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제자들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본다. 대부분 종교위치에 있는 사상가들이 그렇다.


<이중톈의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는 공자를 중심으로 중국 여러 사상가를 비교하며 알려주는 책이다. 처음에 공자에 대해 알려준 후 백가쟁명에 따라 한 명씩 사상가를 불러낸다. 같은 문화권에 어릴 때부터 알게모르게 주워들은 풍월이 있어 새롭거나 생소하지 않다. 본문 해석이 다소 애매한 부분을 이중톈이 나름 해석하는데 그 부분은 큰 흐름에서 딱히 벗어나지 않기에 읽는데 어렵거나 불편함은 없다.

배우는데 일정한 스승이 없어야 비로소 대사라고 할 수 있다.

일정한 스승이 없어야 다양한 것을 흡수하고 받아들이며 스스로 일가를 이루어 '대사(대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용의 의천도룡기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장무기가 위기 순간에 장삼풍에게 태극권을 배운다. 한 차례 시전한 후 장무기에게 얼마나 기억하느냐고 묻는다. 거의 전부 기억한다고 답변을 하자 다시 시전을 한 후 얼마나 기억하느냐가 묻는다. 몇 번을 그렇게 장무기에게 물어본 후 전부 다 잊었다고 한 후에 비로소 겨루기를 수락한다. 급작스럽게 배운 기술로 무공을 펼치다 자신도 모르게 기존에 몸에 익은 기술이 나오면 오히려 위험하기때문에 한 행동이다.


모든 것을 잊었다는 것은 새롭게 배운 내용이 자신이 이미 익혀놓은 기술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는 뜻이다. 특정 정파에 소속되어 있는 무술가들은 자신의 류파에 자유로울 수 없어 한계에 갇히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특정 정파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인물이 주인공이 되어 큰 위인이 되는 것이 무협지에서 많이 나온다. 누군가의 파냐에 따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포지션마저 정해져 운신의 폭이 적어지기도 한다. 


경제공부를 하고 다양한 공부를 하다보면 여러 파로 나눠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정 파가 된 사람은 죽었다 깨워나도 스승에게 사사받은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파에서 거두가 되어 일가견을 이루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에게는 실전적인 면이 좀 더 강하다보니 다양한 사상을 접하고 다방면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중심을 잡고 그때마다 써 먹은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무슨 무슨 파로 규정당하는 것 자체가 나는 싫다. 



세 사람이 길을 갈 때 그중에 반드시 나에게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


공자가 한 수많은 어록(?)중에 가장 내 기억에 오래 남는 둘 중에 하나다. 또 하나는 아마도 '오늘 새로운 것을 배웠으니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이야기다. 누구에게도 배울 것은 있다는 뜻인 세 사람이 길을 가면 한 명은 반드시 스승은 있다는 이야기는 갈수록 참 힘들어진다. 나이를 먹으며 책을 읽고 지식이 쌓일수록 교만한 마음이 싹을 핀다. 그저 내가 그보다 특정 분야에서 좀 더 많이 알고 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우월한 감정을 갖게 된다.


실제로 그가 하는 분야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뇌충이 되어버리면서 내가 알고 있는 분야에서 그가 모른다고 낮게 보는 것은 아주 꼴보기 싫은 모습이다. 늘 이런 교만을 조심해야 하며 반드시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배울 것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한다. 갈수록 책을 많이 읽고 지식이 아주 약간 있다는 것이 노출되어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올 때 그들이 갖고 있는 마음은 받아들여도 결코 내가 잘난 것은 아니라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해야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


인문학이 뜨면서 다양한 인문학과 관련되어 있는 책이 우후죽순처럼 나온다. 이 책도 그런 책중에 하나로 봐도 무방하다. 그래도 차라리 다이제스트식으로 이것 저것 짜집기하며 써 놓은 책보다는 이 책 <이중톈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처럼 공자에 대해 집중 탐구한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공자는 이미 참 많이 알려졌다.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공자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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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토지 제1부 4 - 박경리 원작
박경리 원작, 오세영 그림 / 마로니에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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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좀 지지부진하다고 느꼈던 토지가 4편에 가서 갑자기 급하게 돌아간다. 3편까지 욕망이 표출되지 않고 조금씩 모락모락 나오던 인물들 중에 더이상 숨기지 않고 이성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토지에 나오는 대부분 인물들에게는 욕망이 있다. 토지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물들은 욕망을 갖고 있다. 욕망을 내 놓고 이야기하는가, 혼자 삭이면서 지내는가, 그저 욕망일뿐, 이라면 사는 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을 살던 사람에게 욕망이 없었을리 없다. 신분 계급에 대한 아무런 의심이나 발전 가능성 자체를 생각지도 못한 시대가 아니라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다는 씨앗이 마음 속에 다 심어져 있던 시대였다. 이 중 욕망을 갖고 실행하고자 했던 귀녀, 김평산, 김이평은 서로 공모를 하고 자신들의 현재 처지를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를 결행한다.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도 있고 측은하게 바라 볼 수 도 있다.


그들의 욕망은 나쁜 것이 아니었지만 방법이 잘 못되었을 뿐이다. 상당히 영악하게 실행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진정한 악인이라면 좀 더 치밀하고 오랜 시간을 뜸들여 했을텐데 이들은 다소 순박(??)하다면 순박했다. 그렇다 하여도 최치수가 다소 쉽게 퇴장한 것이 뜻밖이었다. 무엇인가 비밀을 간직하고 터질 듯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기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여겼지만 그저 분위기만 깔아줬다. 워낙 긴 책에서 이런 씨앗을 퍼뜨려야만 나중에 큰 꽃을 필 것이라 예상되지만.


과거가 지금보다 정이 넘치는 시대라고 하지만 다른 곳으로 갈 곳이 없던 처지에 서로 의지할 수 밖에 없던 점도 있다. 매일같이 서로 숨길 것 없이 모든 것이 낱낱히 밝혀지는 동네에서 지지고 볶고 하며 살아간다. 나 자신의 개인 사생활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힘든 시절이다. 내 속마음마저도 조심하지 않으면 밝혀질 정도이니 서로가 서로를 적당한 선에서 살아간다. 그런 면이 읽으면서 답답하다.


인간이 배워도 현실이 비루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내가 하고자 해도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는 시대에 살아간다면 나는 어떠했을까라는 의문을 던진다. 최치수는 그런 인물로 보인다. 아는 것이 없고 지식이 없으니 그들은 그저 현실에 급급한 삶을 살아갈 뿐이다. 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지혜는 가졌지만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는 지식과 지혜는 없던 시대라 그들은 그저 그렇게 받아들이고 살고 있었다. 그나마 귀녀는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과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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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트 라인 - 보이지 않는 균열이 어떻게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가
라구람 G. 라잔 지음, 김민주.송희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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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로 최근에 읽는 책이 나도 모르게 지난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하고 알려주는 책인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촉이 나를 그쪽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개뿔!! 그럴리가. 그저, 나도 모르게 그런 책을 읽고 있다. 그저 아쉬운 것은 미국에서 이야기하는 미국에 대한 분석이라 아쉽다. 하지만, 대단한 것이 이게 단순히 미국만의 사건이고 금융위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먼저 터진 금융위기였지만 읽다보면 다 연결되어있고 엮여있다.


미국이 그렇게 소비를 하게 된 것이나 전 세계적으로 수출하는 국가등이 어떻게 달러를 서로 주고 받으며 리시크를 헷지했다고 생각하며 과감히 파티를 벌였는지 알게 된다. 단순히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주택때문에 발생한 사건으로 보지만 좀 더 사고를 확장하고 시야를 전 지구적으로 넓히면 - 그렇다고 오지까지 확장하지는 말자 - 이 모든 것이 동시대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전지구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걸 알아야 하는 이유는 아무리 우리가 탄탄하거나 힘들더라도 생각지도 못한 놈이 찾아올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폴트라인>은 통합된 경제와 세계에서 추구하는 최상의 이익과 특정 개인이나 기관이 추구하는 이익이 늘 부합되지 않기에 일어나는 불일치다. 개별 이익이 단순히 볼 때는 총합의 이익에 부합하는 듯 보이지만 각자 추구하는 이익이 다르다보니 균열이 생겨 서로간 잘못된 지점에서 어긋난 것을 폴트라인이라 할 수 있다. 정치경제라 불러야 한다. 경제는 정치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정치인들이 경제를 주무를 수 있다. 선한의도이든 악한의도이든. 그렇게 폴트라인은 다양한 면에서 발생한다.


미국의 격화되는 소득 불평등 원인은 교육 불평등에 있다. 소득 불평등으로 인해 유권자의 불만이 커지자 정치권이 선택한 방법은 주택 금융확대였다. 이러한 정치적 압력은 금융 산업의 대출 분야가 크게 왜곡되는 현상을 가져왔고, (중략) 가계 대출 확대를 통한 주택 보유율 증대는 소득 불평등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는 인식을 가장 쉽고 빠르게 심어줄 수 있는 포퓰리즘 정책이다. 


가계 대출 확대를 도입한 의도는 클린턴 행정부는 저소득층을 위한 서민용 주택을 개발해 공급할 생각이었고, 부시 행정부는 주택 보유율을 폭 넓게 늘리겠다는 좋은 의도였다. 물론 이들 행정부에게는 경제 발전에서 소외된 계층을 위한 직접적인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주택 금융 확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문제는 의도와 결과 사이의 격차가 너무 심했다는 데 있다.

이미 대학 졸업여부에 따라 소득이 달라진다는 많은 결과가 있다. 혹자는 대학을 나오지 않은 수 많은 성공자들이 있는데 무슨 말이냐라고 의문을 표시하겠지만 꼭 자신 주변 상황만으로 전부라 믿고 다른 의견이나 결과물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 또는 미국만의 사례가 아니겠느냐며 폄하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다. 물론 한국 경우에 의지만 갖고 있다면 얼마든지 대학은 들어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대학이냐여부다. 어떤 대학을 나오느냐에 따라 갈 수 있는 기업이 결정되고 그에 따라 초봉이 달라진다.


전적으로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지 개별적으로 들어가면 분명히 다를 수 있다. 미국은 이런 교육의 훨씬 더 심하다. 대표적으로 인종에 따라 교육 정도의 차기 극심하다. 하지만, 인종과 상관없이 대학 졸업여부 - 대학원은 더할나위없고 - 에 따라 소득의 불균형이 심하다. 소득이 적은 사람들도 미국은 여전히 상위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아메리카 드림이 유지되었기에 부자들을 위한 정책에 관대했다. 사람들이 부자가 되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출을 늘리는 것이다.


문제는 소득은 뻔하다. 특히나 소득 하위계층에게는 자신의 현실에서 지출을 늘리기는 커녕 소득도 늘어나지 않았다. 이럴 때 지출을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출이다. 대출로 쓸 수 있는 돈이 늘어나면 소득은 똑같아도 자신이 좀 더 부유해졌다는 착각을 한다. 신용 대출에는 한계가 있지만 주택 담보 대출은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최대 돈을 끌어 올 수 있다. 또한, 당시 미국 정부는 서민들에게 주택을 갖게 할 선한의도로 대출을 확대 공급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자신의 주택(토지)를 갖는다는 의미는 불변의 자산을 가졌다는 환상과 함께 '나도 태어나 드디어 인간 구실을 했다'는 성취감마저 안겨주며 세상 주인공이 된 착각을 준다.


정부는 확실하게 돈을 빌려주겠다는 신호를 전달한다. 정부의 순진(??)한 생각과 달리 이를 이용하는 모든 주체들은 최대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한다. 이때부터 모든 주체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서 즐긴다. 위험을 경고하는 외마디 외침은 무시한다. 충분히 감당할 수준이라 자기 최면을 걸며 전진한다. 첨단 기법의 도입과 함께 리스크를 얼마든지 헷지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표출한다. 리스크를 헷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쓰다보니 어딘지 모르게 최근 많이 듣고 보던 이야기다.  이어 지는 이야기는 다음에.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읽는다고 깨닫진 않는다.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그래도 읽어봐라



함께 읽을 책

http://blog.naver.com/ljb1202/220445959169

http://blog.naver.com/ljb1202/153318422

http://blog.naver.com/ljb1202/112600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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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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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들고 어렵지만 언제나 막(?) 대할 수 있는 존재가 가족이다. 가족을 구분하자만 나를 기준으로 위로 부모님이 있고 아래로는 자녀들이 있고 옆으로는 배우자가 있다. 자녀들은 내가 아닌데도 나로 착각하는 존재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너무 깊게 해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며 화를 내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정작 나 자신도 못하는 걸 자녀들에게 강요하며 내 마음같지않게 행동한다며 혼내기도 한다. 분명히 내가 아닌데도 나도 모르고 자아일체가 되어 자녀와 나를 일체화시킨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과거만큼 많이 갖지 않으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나는 내 삶이 있고 자녀는 자녀의 삶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자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것이 맞지만 일정 기간동안은 자녀에게 올바른 길을 인도해줘야 한다는 점 때문에 과도하게 참견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점때문에 나도 모르게 꿈틀거리지만 내가 그 나이 때 나도 그랬다는 점을 자각한다면 한 발 물러서서 기다려줄 수도 있어야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다 잘 자라 지금 다시 또 부모가 되었다. 


옆으로 배우자는 <가족이라는 병>에서는 반려라고 표현한다. 책 저자는 자녀가 없는 관계뢰 자녀에 대한 부분보다는 배우자와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배우자는 어디까지나 함께 하는 파트너일 뿐이다. 서로 상대방을 참견하고 관여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길을 가는데 있어 응원해주고 격려하며 함께 걸어가는 존재다. 심지어 특정 파티에 갈 때 꼭 배우자와 갈 필요없이 파티 성격에 맞는 다른 이성과 함께 동참해도 상관없다.


부모님 경우에는 나를 낳아주셨지만 시간이 지나면 독릭하고 각자 삶을 살아간다. 안부나 전하고 내가 살아가며 만난 사람들중에 더욱 친근하고 동질성을 느끼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정을 나눈다. 부모님이라고 자녀를 강압하고 자신의 품 안에서 품으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독립한 자녀는 어서 독립시켜 자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야지 집에서 빈둥 놀게 하며 자기 앞가림을 못하게 만드는 것도 부모의 잘못이다.


책 저자인 시모주 아키코는 부모들과 감정적으로 좋지 않아 아버지 같은 경우에는 성인이 되어 독립한 후에는 별로 만나지도 않았고 마지막에 병 문안도 거의 하지 않아 임종도 지켜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군인으로 타국을 침략한 점과 그 후에 자신의 신념을 지키지 못한 점 들에 실망한다. 어머니같은 경우에도 저자가 생각할 때 자신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며 반려에게까지 간섭하려 들어 아예 멀리 떨어져 살며 잘 안만나려고 노력한다.

저자 개인의 이런 경험때문인지 가족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과 보다 객관적인 부분을 강조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예의 없음에 대해 말한다.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맞지만 서로 각자 자신의 생활영역과 삶이 구분되어야 하는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침범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가족일 뿐 우리는 가족 구성원에 대해 잘 모른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가족이라고 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의 부모님, 형제자매, 배우자, 자녀들을 우리는 가깝게 지낼 뿐 잘 알지 못한다. 당장 부모님이 어떤 사생활이 있는지도 모르고 어떤 젊은 시절을 보냈는지도 모르고, 집에서 그저 보이는 면만 알고 있는 부모님과 집을 벗어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부모님은 다르지만 우리는 모른다. 배우자도 역시나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관심을 갖고 있는지 세세하게 아는 것은 아니다. 자녀들도 자라며 안다고 착각할 뿐이지 자녀들의 친구들에게 보이는 것을 나는 모른다.


책에서 묘사되는 가족은 어떻게보면 상당히 건조하다. 우리가 흔히 가족하면 떠올리는 오손도손과 같은 이미지가 상상되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을 뿐이지 각자 자신이 할 일을 하며 상대방에게 참견하지 않고 말 없이 지켜보는 것이 전부가 아닐까 할 정도다. 물론, 가족이 아프면 돌봐주고 응원하고 지켜주지만. 책을 읽으며 신기한 것은 내가 읽고 있는 책이 분명히 일본저자가 썼는데 나도 모르게 한국인이 쓴 책이라는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일본과 한국에서 가족의 의미와 가족이라는 병폐(??)가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


읽다보니 문득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떠올랐다. 영화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말한다. 낳은 정과 기른 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모의 자녀에 대한 집착도 보여준다. <가족이라는 병>책도 그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걸 가족의 해체라고 볼 수는 없을 듯 하다. 우리나 일본이나 지연과 혈연에 따른 극성스러운 문제점에 대해 정면으로 알려주는 내용이다. 어떻게 하든 같은 카테고리에 포함되어야만 인정하고 그 외는 배척하는 사회가 올바른 것은 아니다. 인간의 본능이 그런 면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유독 서양인에 비해 일본과 한국이 그런 이유는 지리적 이유도 포함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있었을 것이다. 


지금 일본은 누가 봐도 그렇지만 한국같은 경우에는 고립된 섬과 같다. 삼면이 바다지만 대륙으로 갈 수 있는 육로는 막혀있다. 일본이 섬나라는 특성때문에 생긴 여러 진화적인 발전처럼 한국도 어느덧 몇 십년이 되고 일제와 한국전쟁때문에 생긴 트라우마로 내편이 아니면 적이였다. 이마저도 수시로 득세하는 세력이 변하니 단순히 한 쪽편에 있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눈치껏 적당히 있어야 했다. 불확실한 상황이면. 이런 현상이 지속되며 한국이 더욱 혈연과 지연이 공고해졌다고 하면 과한 이야기일까.


고백하자면 나는 그리 좋은 아들이자 형제자매는 못된다. 좀 투박스럽고 전화도 하지 않는다. 책에서 저자는 대단하게도 딱히 큰 후휘를 하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에 부모님들과 좀 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한다. 기회가 있었는데. 인간은 자신의 경험(직접,간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저자는 부모님과 오빠가 전부 일찍 세상을 떠나며 다소 독특한 인지범위를 갖게 되었기에 이런 책을 썼는데 책에 나오는 내용에 많은 부분 공감을 했다. 그렇다고 가족 해체는 아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과도한 애정에 대해서 조심하자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저자처럼 아이도 낳지 않고 반려라며 배우자를 보는 것이 쉽지는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가족은 가족일 뿐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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