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ㅣ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이 책을 왜 읽게 되었는가에 대해 리뷰를 쓰려고 앉으면서 든 생각이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였다. 쉽지 않은 내용임에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었다. 한 달만에 무려 8쇄나 인쇄가 된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선택을 한 책이다. 예전에 '정의란 무엇인가'도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그만큼 당시 시대 상황과 맞아 떨어진 측면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결코, 읽기 쉬운 책이 아님였음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촉발된 정의라는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정의란 무엇인가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은 아니지만 저자인 셀리 케이건의 우리나라에 직접 찾아와 강연을 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정의란 무엇인가도 그렇고 죽음이란 무엇인가도 그렇지만 과연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얼마나 변화를 갖게 되었고 사회를 보는 시선이 변했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한 것인지에 대해 괜한 궁금증이 생긴다.
무엇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쉽게 책을 집어 들어 읽을만한 책이 아니다. 도대체, 내가 어떤 점에서 이 책이 끌렸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현학적인 측면이 있었을 것 같고 상당 기간동안 베스트셀러 자리에 있는 것을 눈여겨 보면서 친근해 진 측면도 없지 않아 있을테고 예일대에서 무려 17년 동안이나 최고의 명강의라는 타이틀에도 끌렸을 것이고, 마지막으로 책의 저자인 셀리 케이건의 모습을 볼 때 탁자 위에 앉아 강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그럴 가능성도 있다.
도대체,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통해서 내가 얻고 자 한 것은 무엇이였을까에 대한 생각이 지금 가장 많이 든다. 아니면,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은 후에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함께 머리속에서 머물고 있다. 고백하자면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그저 읽고 싶었다는 점 이외에는 특별하게 얻고자 한 점은 없다. 막연하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는 생각만 하고 읽었다. 죽음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리는지 죽음이라는 관점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기대도 예측도 하지 않고 읽었다.
책을 읽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 생각할 때 그런대로 죽음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알려주는 선입견이 있겠지만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는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구구절절한다. 죽음이란 사람이 죽는다는 의미를 넘어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다시 두 가지 관점으로 들어간다. 육체의 죽음과 영혼의 죽음이라는 관점으로 말이다. 저자인 셀리 케이건은 육체의 죽음이 완전한 죽음이라고 믿지만 - 한 마디로 사후 세계란 없고 믿지 않는다 - 어떤 사람들은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이원론점인 관점을 제시한다. 자신의 믿음과 판다과 달리 사람들에게 아주 아주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제시하는 방법이 너무 치밀하고 집요하고 세밀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질리게 만들지 않을까 싶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궁금할 정도이다. 단순히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게 죽음이 가져다 주는 의미와 죽음이라는 사건의 문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도 서로 대립되는 관점을 알려주고 그 관점들에 대해 또 다시 세부적으로 들어가 하나씩 하나씩 알려주면서 또 다시 다른 관점을 알려주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니 대단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긴,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무려 17년동안 강연을 했다면 온갖 관점에 대해서는 전부 알아보고 생각해보고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왜 이렇게 길고 길게 설명을 끊임없이 하고 있나하는 생각도 들게 만들어 준다.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중언부언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신이 한 이야기에 대해 계속해서 되돌이표를 보는 것과 같이 다시 이야기하고 반복해서 또 이야기하면서 약간 약간씩 말을 변경해 가며 죽음에 대한 여러 관점을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이 책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라는 느낌을 읽기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책은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철학책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그 느낌이 맞는 이유는 저자가 무엇보다 철학교수이고 죽음에 대해 알아보고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넘어가서 철학이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붙잡고 매달린 주제라는 판단이 들었다.
예전에는 죽음에 대해 단순히 생각이라는 관점으로만 고려하고 판단하고 상상하고 철학적인 질문과 대답을 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철학은 과학과 결부가 되어 보다 고차원적인 물음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물리가 그렇다. 진화론적인 관점은 인간의 변화를 생각하는 철학적인 관점을 제시한다면 죽음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본연적인 질문으로 들어가게 되어 인간이 인간인 이유와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하게 만들어줬다.
지구에서 유일하게 이성과 감정이 공존하는 인간에게 죽음이란 모든 것이 끝인지 다른 시작인지의 여부는 단순하게 철학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종교까지 결부되는 아주 골치 아픈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육체적인 관점에서 죽음은 육체의 소멸이고 육체의 생체기능의 정지이지만 영혼적인 관점으로 들어가면 단순히 육체의 죽음일 뿐 영혼은 여전히 존재하고 사후세계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증명하기 힘든 부분으로 넘어가게 된다.
영혼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여부를 떠나 사실 이 부분은 종교를 떠나서도 결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육체적 죽음을 믿는다면 인간은 죽음으로 끝이다. 코마 상태의 인간은 육체적으로 살아있지만 영혼이 떠난 있는 상태라고 해야 할까? 육체의 죽음은 심장이 멈출 때를 의미하는 것인지의 여부까지 들어간다. 움직일 수 없고 눈동자로 자신의 의지를 선보이고 머리로는 생각하는 존재로써의 인간은 육체적으로 볼 때면 죽은 존재로 볼 수도 있다. 단지, 머리가 살아있다는 이유로 그는 죽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머리가 터져도 몸은 인식하지 못하고 한동안 자신의 행동을 유지한다고 하는데 - 과학적으로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 이 상황에서 인간은 죽은 것인가 살아 있는 것인가, 살아 있다면 어떤 의미인가? 최근 유행하는 좀비로 들어갈 때 육체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지만 살아 움직이니 도대체 이 현상은 죽음이라는 관점에서 무엇이라 판단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한 편으론 좀비상태에서 영혼은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책을 읽었어도 답이 없다.
이런, 저런 철학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괜히 어려울 것 같다는 선입견도 있지만 단순한 이야기를 배배 꼬고 말장난처럼 워낙 다양한 관점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워 계속 생각만 하고 있었지 본격적으로 읽어 볼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아주 제대로 된 철학책을 읽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교묘하게 철학책이라는 점을 숨겨 책을 읽게 만든 장점이 있어도 보인다. 단순히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책이라는 점을 전면으로 부각시켰다면 많은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니 말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삶과 죽음에 대해 끝까지 갈때 까지 가 보자는 심정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으로 보인다. 책도 얼핏보면 얇아보이지만 무려 500페이지나 되는 책이다. 더구나, 책의 내용을 읽는 것도 쉽지 않은데 빼곡하게 글자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 글자의 향연을 함께 경험하게 만들어준다. 이 책을 상, 하 2권으로 분철했으면 상권을 읽고 하권은 읽지 않았을 사람이 수두룩했을 것이다. 그만큼 결코 우습게 집어 읽을 책이 결코 아니다. 편안하게 선택할 수 있게 책을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읽으면서 '와~~ 이런 것까지 생각해야 되는 거야?" "진짜로 이런 점까지 고려해야 한다 말이야?"라면서 읽게 된다. 죽음에 대해 알기 위한 여정이 무엇이 그리도 길고 긴지 책의 중반까지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육체적인 죽음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후에야 겨우 겨우 죽음이 우리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이나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 다시 또 길고 길게 설명한다. 어찌보면 가볍게 이야기할 수도 있는 점을 심각하게 무게잡고 매일같이 만나 이야기하는 교수님을 만난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 영혼이 없고 죽음은 육체적 사망으로 끝이 난다는 철학적인 논리와 이성적인 전개는 참으로 수긍이 가지만 진정으로 재미없는 도출이다.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기에 재미있고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존재를 믿기에 지금처럼 인류의 문화는 풍부하고 풍성한 유산을 후대에게 남겼다고 본다. 육체로써 모든 것이 끝난다고 믿는다면 극단적으로 볼 때 '죽으면 끝이지, 뭐..'라는 것인데, 너무 재미없고 낭만적이지 못하다.
지금의 제도와 도덕과 같은 인류에게 도움이 되고 발전시킨 많은 것들은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었기에 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육체로 죽는다면 한편으로는 인간들이 그렇게까지 아등바등하고 도덕적으로 살고 뒷날을 생각하며 살아야 의미와 이유가 있을까하는 판단이 든다. 이런 생각은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판단이라는 점이 더 맞겠지만.
평소에 죽음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도 인식하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살아간다. 우리는 늘 죽음과 함께 살아간다. 언제 죽을지는 나이와 상관없지만 대체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죽음이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을 하지만 여전히 생각하지 않는다. 영생을 할 것이라고 믿지도 않지만 언젠가는 죽는다는 점 때문에 우리 인생은 더 풍성하고 살만하다. 다양한 조합이 나오는 것도 역시 이에서 비롯된 것들로 보인다.
책의 마지막에서는 자살에 대해서도 철학적으로 아주 아주 길게 설명을 하는데 조금은 쓰잘데기 없는 설명으로 보였다. 뭐, 그리 거창하게 철학적으로 자살에 대해 설명을 하는지 말이다. 무엇보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전혀 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자살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고 미래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고 본다. 이걸 철학적으로 살아가는데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정말로 철학자다운 논리 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집어 들어 읽다보니 도저히 쉽게 며칠만에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 거꾸로 이틀동안 남는 시간을 전부 투자해서 읽었다. 오래 잡고 있어 봤자 괜히 시간만 보내고 페이지는 넘어가지 않을 듯 하여 아예 작정하고 이틀동안 계속 책을 붙잡고 있었더니 어제는 눈알이 약간 아플정도였다. 도대체, 죽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침을 뱉어가며 이야기하고 사람들이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약간은 현학적인 측면에서 선택해서 읽었는데 무엇이 나에게 남았는지의 여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저, 죽음에 대해 살면서 분명히 내 인생에 100% 발생할 사건이지만 제대로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굳이 생각하려고 한 적도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논리를 읽게 되었다는 점에서 만족해야 할 듯 한데, 이 책의 저자인 셀리 케이건도 그 정도로 만족한다고 에필로그에서 쓴 것을 보면 아주 잘 읽었나 보다.
함께 읽을 만 한 책(사진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