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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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위에 있는 동물 중에 유일하게 인간만이 고민을 한다. 인간만이 갖고 있는 유일한 재능이니 축복받은 일이라 봐야 할텐데 어느 누구도 고민하는 걸 축복이라 생각하지 않고 저주라고 믿는다. 고민때문에 힘들어하고 어려워하고 자살까지 감행을 한다. 고민을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해결 될 수 있겠지만 고민이라는 것은 인간의 정신에서 작동하는 것이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으려도 해도 생각나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엄청, 바쁘게 일을 하거나 몸을 혹사시켜 생각이 떠오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을 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한 노력은 결국 실패한다. 아주 작은 틈이라도 놓치지 않고 갑자기 빼꼼히 파고 들어 잊고 있던 고민이 떠오르고 시작된다. 피하려고 한다고 피할 수 없는 고민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을 실행하면 고민이 즐거울 수 있을까? 고민이 즐거우면 그때부터 고민이 아니라 생산적인 창작이 될 수 있겠지만 고민은 고민일 뿐이다. 인간은 늘 어느정도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실제 고민중에 95%는 할 필요가 없는 고민이라고 한다. 아직 오지도 않는 것에 대한 고민, 고민한다고 달라 질 것이 없는 것에 대한 고민등등. 고민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쓸데없이 고민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만이 고민을 한다면 인간은 동물과 무엇이 다르기에 동물은 하지 않는 고민을 하는 것일까? 동물은 본능에 충실하다. 어떤 현상이 이뤄진다는 것을 학습하고 후대에 남기지 않고 향후 벌어질 일에 대해 미리 고민을 하지 않는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나를 비롯한 주변상황에 충실할 뿐이다. 그때 그때에 당면한 문제만 해결하면 모든 것이 끝이다.

 

이에 반해 인간은 현재가 아닌 과거와 미래를 끊임없이 되새김질하고 예측하면서 고민한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고민이 바로 이렇게 자신과 관계된 일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오로지 나에게 초점을 맞춘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으로 고민이라는 것은 보다 고차원적인 정신 작용이다. 철학적인 고민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인간의 희노애락은 무엇인가?와 같이 인간이 살면서 꼭 해야 할 필요가 없는 고민도 있다. 이런 고민은 당장 아무런 효용을 인간에게 선사하지 않더라도 남과는 다른 차별성을 갖게 해주는 근본적인 고민이다.

 

평생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도 사람은 잘 산다. 더구나, 과거에는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 그저, 하루 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일용할 양식만 해결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였던 시절도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 인간에게는 자유가 주어졌고 나는 남과는 다른 유일한 존재라는 자각이 이러한 근본적인 고민을 각 개인에게 던져주었다. 이미,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고민이였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복잡한 현대에 수 많은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더더욱 과거와는 달리 고민이 깊어졌다.

 

김상중의 고민하는 힘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읽고 저자에게 관심이 많아졌다. 두껍지도 않은 책에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고민하고 생각할꺼리를 한가득 던져주는 저자의 힘에 매료되어 냉큼 집어들어 읽게 되었다. 애둘러 이야기하지도 않고 직구 스타일로 곧장 할 이야기를 펼쳐놓고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하는 것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어려운 이야기를 괜히 더 어렵게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고 담백하게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청춘은 아름다운가?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늙어서 '최강'이 되라

 

총 9가지에 대한 고민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한 가지에 대해서는 어렴풋이라도 고민해 봤음직하다. 심각하게 제대로 가부좌를 틀고 한 가지를 붙잡고 고민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문득 문득 고민했을 질문들이다. 과거와 달리 현대에 들어와서 고민을 하게 된 질문들도 있다.

 

과거에는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할 필요가 없었다. 명확하게 나에게 알려주는 종교가 있었다. 의심없이 믿고 살아가면 된다. 보고 들은 것이 부족한 시대에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외에 다른 삶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해 보지 못했기에 차라리 행복하다고 하면 행복할 수 있는 삶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믿는 종교가 아니라 단체가 믿는 종교로써 아무 의심없이 믿어왔지만 현대인들으 신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한 자유의자가 바로 인간이라는 화두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하게된 출발이 되었다.

 

현대에 들어와 수많은 지식이 범람하여 어떤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본질에 대한 지식, 기술을 위한 지식, 과학에 대한 지식등등 알기 싫어도 저절로 습득하는 지식도 있을 정도로 지식은 고민을 더욱 깊게 해주는 역할까지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식이 비슷하던 시대에 비해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지식은 오히려 인간을 더욱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자본주의로 넘어오면서 돈은 모든 것이 되었다. 신으로부터 자아를 되찾은 인간은 이제 돈에게 자아를 맡겼다. 어떻게 보면 신에서 돈으로 변경되었을 뿐이다. 모든 것은 돈으로 대변된다. 인격정도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훌륭해질 수 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돈때문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이다. 돈만 있으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는 시대이다. 부정할 수 있는가? 그런데, 정말로 돈이 모든 것이다라는 외침에 공허한 메아리가 되돌아온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고 할 수 없고 사랑이 변하는지 여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한다. 청춘과 늙음은 같으면서 다른 말이 된다. 청춘은 청춘을 모르고 노인은 늙는 것을 싫어한다. 각자, 서로를 부러워 할 수 있다. 내가 부족한 것을 갖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부러움은 인간의 속성이다. 내가 가진 것보다는 남이 가진 것이 더 커 보이는 법이니.

 

죽음이란 우리 삶의 뗄래야 뗄 수 없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은 꼭 한 번뿐이 경험(??)할 수 없다. 타인의 죽음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두려움에서 익숙함을 넘어 당연함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단지, 살아간다는 것이 의미가 없을 때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이제 자유가 넘쳐나는 시대에 하나의 선택일 수 있어도 인간에게는 여전히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다면 더더욱 죽음보다는 생존을 택해야 하고 신을 믿는다면 그건 천벌받을 짓이라 살아가야 한다.

 

무척이나 많은 고민이 펼쳐져 있는데 각 주제마다 여러 저자들이 책 한 권의 분량으로 소개할 정도로 넘쳐나는 이야기가 있다. 담백하게 꼭 핵심만 이야기한다. 특히, 나스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는 김상중이라는 사람을 알기위한 알파와 오메가라 할 수 있다. 그가 하는 모든 이야기와 사상이 바로 두 사람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모든 관점이 두 사람에게서 출발한다. 저자가 고민하고 방황하던 시기에 힘이 되어주고 빛이 되어준 영웅이기 때문이다.

 

이번 책에서는 나스메 소세키의 여러 작품중에 '그 후'와 '마음'이라는 작품이 계속 소개되고 각 고민에 대한 대답으로 언급된다. 막스 베버는 당연히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고. '고민하는 힘' 책 한 권읽었다고 9가지 주제에 대해 얼마나 많은 해답과 고민에 대한 해결을 얻을 수 있을까? 극히 드물것이다.

 

고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축복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써 행복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쓸데없다고 하면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금처럼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게 된 것이 바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면 고민은 결코 필요없는 정신작용이 아니다. 고민은 나라는 인물을 더욱 크게 만들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문제는 당장 먹고 살 고민만 한 가득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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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인문학독서법 - 삶의 기적을 일으키는 인문학 독서법의 비결
김병완 지음 / 북씽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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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워낙 최근 몇 년동안 다작을 한 작가라 도서관에 가면 어김없이 꼭 최소한 한 권정도는 김병완이라는 사람의 책을 발견할 수 있다. 분야도 꽤 다양해서 이렇게 저렇게 다른 섹션에서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도서관에서 3년동안 9,000권을 읽고 인생이 변했다는 것이 저자 자신의 핵심이라 많은 책에서 그 내용이 꼭 언급된다.

 

대부분의 책들이 자신이 읽은 책들을 근거로 주장을 펼치거나 내용을 알려주는 경우가 많아 상당히 많은 분야의 책이 있지만 공허한 분야의 책도 있다. 하지만, 책과 관련되어 있는 내용으로 넘어가면 확실히 저자 자신의 전공분야(??)라 그런지 책의 내용이 괜찮다. 흔히 말하는 내공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워낙 많은 책과 책의 내용과 책중에서 일부를 발췌한 글을 읽어보면 책을 많이 읽었다는 티가 저절로 난다. 간혹, 이렇게 많은 책에서 발췌를 한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고 그토록 많은 책을 펴 내면서 - 아마도 한 달에 최소한 한 권은 펴 낸듯 하다 - 일일히 전부 책의 내용에서 발췌를 하려면 그것도 장난이 아니겠다라는 느낌이 든다.

 

워낙 여러 책들이 있지만 이번에 읽은 '기적의 인문학 독서법'처럼 독서와 관련되어 있는 책과 관련되어서는 상당히 읽을만하다. 그 책이 그 책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솔직히 사실이지만 - 비슷한 분야의 비슷한 느낌의 책이 한 달에 한 권 나올정도이니 - 어느 책을 집어 들고 읽어도 평균은 한다는 점은 수 많은 독서의 결과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이번 '기적의 인문학 독서법'은 그런 점에서 좀 더 김병완이라는 저자의 내공을 볼 수 있는 책이라 할 것 같다. 인문학에 대해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 저자와 인문책을 통해 그들의 주장과 생각과 사상을 통해 자신의 사고를 결부시켜 알려주는데 있어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은 정도로 안내서 역할을 하는 듯 보인다.

 

인문학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문사철'을 하나씩 설명한다. 인문학을 알아야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한 후에 문학, 역사, 철학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알려준 후 자신의 독서법인 3년 1,000권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 후 저자가 분야별로 추천하는 책을 소개하는데 분야가 상당히 세분화되어 있어 책을 고르는데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인문학에 대해 소개하거나 공부하라고 하는 책이나 글을 접하게 되면 이상하게 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반대급부에 대해 떠올리고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가 이야기한 점 말고 이렇게도 볼 수 있는데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과 반박을 하고 싶다는 청개구리같은 반발심이 생긴다. 그렇다고 저자의 의견이나 주장에 동의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적으로 지지하고 맞다는 입장이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인문학을 공부한 모든 사람들이 성공(??)했다는 것에 동의를 표하기는 힘들고 책에 소개되고 언급된 인물들은 전부 뽑아도 20명이 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하나같이 역사에 남는 인물들이다. 그런 인물들이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꼭 인문학책을 읽었다고 볼수만은 없다. 당시 시대를 볼 때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인문학책만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인문학을 읽지 않으면 대단한 사람이 못된다는 것에도 동의를 하기 힘든것이 꼭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하느냐는 전제부터 고민하고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싶다. 재미삼아 책을 읽으면 아무 도움도 안된다고 하는데 인생을 꼭 그렇게 심각하고 살아야하느냐는 점도 그렇다. 인문학이 아닌 책은 - 대표적으로 실용서적들 - 기술을 알려주는 책이고 인문학은 깊은 성찰을 통해 인간에게 깨달음을 주는 책이라는 이분법적인 생각 자체가 우습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을 볼 때 굳이 인문학을 읽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문학, 역사, 철학중에 하나에는 보다 가깝게 다가가게 된다. 자연스럽게 접근하면 될 것을 억지로 한다고 될 것은 아니라고 본다. 과거에는 책이 유일한 것이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얼마든지 TV 드라마, 다큐, 영화등을 통해서도 인문학에서 이야기하는 바로 그 인간에 대한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보다는 생각을 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핵심이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변화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느데 그 부분도 결국에는 생각을 하느냐가 귀결된다. 개인적으로 계속 읽다보니 저절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되었기 때문에 강요할 부분은 아닌듯하다. 1년 동안 신문을 읽어도 변화가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아도 대단한 성찰을 보이는 사람들도 보면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개인이 혼자서는 생각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을 책을 통해 생각할 꺼리를 던져준다는 것에 있을 듯 하다. 혼자서는 미처 생각해보지도 못한 것이나, 알지도 못하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된다. 또는 혼자서 고민하는 것들을 이미 다른 누군가 그 과정을 거친 사람의 글을 통해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인데 이런 점이 꼭 인문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지 않고 책을 통해서만 가능하지도 않다고 본다.

 

책을 읽는 편에 속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내 입자에서 당연히 책이 가장 도움이 많이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장 적극적으로 알려주는 매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인문학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그만큼 시간을 이겨낸 작품들과 사상이 많아 지금 누군가 만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도 맞다. 물론, 지금의 나는 무엇인가를 아는게 기쁘고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읽는 측면도 뺄 수 없지만 그보다는 독서라는 것 자체를 즐기는 차원이라 할 수 있다.

 

추가로 독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리뷰라는 것을 통해 생각을 하면서 보다 발전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스스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낯간지럼지만.

 

'기적의 인문학 독서법'은 최근의 인문학 열풍에 사람들이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안내서역할을 하는 책이다. 문사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읽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역할 말이다. 사실 그보다는 직접 헤매고 혼란스러워하고 진도가 나가지 않아도 인문학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직접 '문사철'책을 읽는것이 훨씬 도움이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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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함께 읽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에릭 카펠리스 엮음, 이형식 옮김 / 까치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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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두 가지 목적을 근거로 읽기 시작했다. 먼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는데 책 자체가 의식의 흐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 읽지 않았으니 확인할 방법은 없고 -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고 하여 주저하고 있는데 겹쳐서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가 별로라고 하여 어떤 책으로 읽을까에 대한 부담도 갖고 있었다.

 

계속해서 읽어야지..라는 생각만이 머리속에 맴돌고 도서관에 갈 때마다 음...이 책..이러면서 생각하고 알랭 드 보통이 쓴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를 읽어볼까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로 정작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를 읽고 있지도 않으면서 주변에서 배회하고 있는 와중에 이 책을 발견하고 괜히 괜찮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두번째로는 나름 문화생활을 하고 있는 와중에 지금까지 내가 직접이나 간접이라도 해보지 못한 것이 바로 미술이다. 일부로 배우지는 않았어도 판소리도 배웠고 발레도 배웠고 재즈댄스도 배웠고 탈춤도 배웠고 탭댄스도 배웠고 - 심지어 탭댄스는 프로무대에도 서 봤고 - 여하튼 어지간한 것은 비록 어디가서 배웠다고 말을 하지 못해도 배워는 봤다.

 

음악은 다른 일을 하면서 듣기라도 하면 되고 책은 읽으면 되고 영화도 그렇고 한동안 소원했던 공연도 최근에 들어와서는 조금씩 관람하고 있고 한때는 엄청 많이 봤던 뮤지컬은 아직 보지 못하고 있지만 그런대로 큰 지장없이 보고 느낄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볼 정도는 되는데 유일하게 미술은 나에게 여전히 높은 벽이다.

 

그나마, 한때 KBS에서 미술에 대해 알려주는 프로가 있어 가끔 시청을 했는데 - 밤 12시가 넘어 했다 - 그때 미술을 보여주면서 작가에 대해 설명해주고 그림에 대해 알려줘서 꽤 재미가 있었다. 그처럼 미술은 여전히 나에게는 넘사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나는 누군가 나에게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읽고 느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그림에 대해 이러한 의미가 있다는 설명을 듣고 그 의미에 따라 그림을 보는 것이 싫었다.

 

그저,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문제는 내가 그림을 봐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보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제대로 그림을 감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보다 확실한 표현이겠지만. 그리하여, 미술 역사에 대한 책과 주요 인물에 대한 책을 읽어볼까..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중이였는데 단순히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가 아니라 그림과 함께 읽는..이라는 단어에 의미를 두었다.

 

아마도, 그림을 소개하면서 이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책일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이것은 내 오판이였다. 그림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고 봐도 된다. 엄청나게 많은 그림이 소개되고 있지만 정작 그림에 대한 설명을 기대한 내 의도와는 완전히 달리 그저 그림과 제목과 작가만 소개될 뿐이다.

 

그림 옆에 글도 많이 있지만 그 글은 그림과는 상관이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한 내용이였다. 책의 제목을 다시 한 번 언급하자면 '그.림.과.함.께.읽.는.잃.어.버.린.시.절.을.찾.아.서이다. 그림옆에 있는 글들은 바로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의 대목들이고 소설속에서 언급한 그림이나 화가의 작품이 바로 옆에 그림으로 프린트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실질적으로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에 보다 방점이 찍혀있는 책으로 소설속에서 누군가를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림으로 언급하거나 그림에 나와 있는 내용이나 인물에 결부시켜서 비유하는 내용이였다. 그러다보니, 반 정도까지는 정독으로 열심히 읽었는데 읽다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가 되어버렸다.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를 읽어보지 않았으니 책에 나오는 내용이 뚝..뚝..끊어지듯이 연결되지 않고 그저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에서 언급된 그림을 위해 발췌된 것들이라 실제로 소설과는 연결이 안된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아예 나중에는 그림만 보면서 잠시 감상하고 글에서 언급되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찾는 식으로 읽었다.

 

한편으로는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이 이처럼 많은 작품이 언급되었다는 것이 놀랐고 단순히 언급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그 그림을 바탕으로 무엇인가를 연결시킬 정도로 그림을 제대로 소화하고 자신의 작품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낸다는 것을 볼 때 확실하게 프루스트라의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가 사람들이 많이 언급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듯 했다.

 

물론, 열심히 보다보니 많은 작품이 소개되지만 많은 작가가 소개되는 것은 아니였다. 일부 작가들의 그림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아마도, 프루스트가 좀 더 사랑하고 좋아했던 화가들이 아니였을까 한다. 나로써는 처음 듣는 화가들도 있어 그 화가들에 알게되었다는 -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억을 못할테지만 - 기쁨을 간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프루스트에 대해 일단 가벼운 접근을 했고 그림에 대해 보다 본격적인 진입을 하게 되었는데 정작 '그림과 함께 읽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는 그다지 크게 남는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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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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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왜 읽게 되었는가에 대해 리뷰를 쓰려고 앉으면서 든 생각이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였다. 쉽지 않은 내용임에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었다. 한 달만에 무려 8쇄나 인쇄가 된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선택을 한 책이다. 예전에 '정의란 무엇인가'도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그만큼 당시 시대 상황과 맞아 떨어진 측면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결코, 읽기 쉬운 책이 아님였음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촉발된 정의라는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정의란 무엇인가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은 아니지만 저자인 셀리 케이건의 우리나라에 직접 찾아와 강연을 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정의란 무엇인가도 그렇고 죽음이란 무엇인가도 그렇지만 과연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얼마나 변화를 갖게 되었고 사회를 보는 시선이 변했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한 것인지에 대해 괜한 궁금증이 생긴다.

 

무엇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쉽게 책을 집어 들어 읽을만한 책이 아니다. 도대체, 내가 어떤 점에서 이 책이 끌렸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현학적인 측면이 있었을 것 같고 상당 기간동안 베스트셀러 자리에 있는 것을 눈여겨 보면서 친근해 진 측면도 없지 않아 있을테고 예일대에서 무려 17년 동안이나 최고의 명강의라는 타이틀에도 끌렸을 것이고, 마지막으로 책의 저자인 셀리 케이건의 모습을 볼 때 탁자 위에 앉아 강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그럴 가능성도 있다.

 

도대체,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통해서 내가 얻고 자 한 것은 무엇이였을까에 대한 생각이 지금 가장 많이 든다. 아니면,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은 후에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함께 머리속에서 머물고 있다. 고백하자면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그저 읽고 싶었다는 점 이외에는 특별하게 얻고자 한 점은 없다. 막연하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는 생각만 하고 읽었다. 죽음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리는지 죽음이라는 관점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기대도 예측도 하지 않고 읽었다.

 

책을 읽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 생각할 때 그런대로 죽음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알려주는 선입견이 있겠지만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는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구구절절한다. 죽음이란 사람이 죽는다는 의미를 넘어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다시 두 가지 관점으로 들어간다. 육체의 죽음과 영혼의 죽음이라는 관점으로 말이다. 저자인 셀리 케이건은 육체의 죽음이 완전한 죽음이라고 믿지만 - 한 마디로 사후 세계란 없고 믿지 않는다 - 어떤 사람들은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이원론점인 관점을 제시한다. 자신의 믿음과 판다과 달리 사람들에게 아주 아주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제시하는 방법이 너무 치밀하고 집요하고 세밀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질리게 만들지 않을까 싶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궁금할 정도이다. 단순히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게 죽음이 가져다 주는 의미와 죽음이라는 사건의 문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도 서로 대립되는 관점을 알려주고 그 관점들에 대해 또 다시 세부적으로 들어가 하나씩 하나씩 알려주면서 또 다시 다른 관점을 알려주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니 대단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긴,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무려 17년동안 강연을 했다면 온갖 관점에 대해서는 전부 알아보고 생각해보고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왜 이렇게 길고 길게 설명을 끊임없이 하고 있나하는 생각도 들게 만들어 준다.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중언부언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신이 한 이야기에 대해 계속해서 되돌이표를 보는 것과 같이 다시 이야기하고 반복해서 또 이야기하면서 약간 약간씩 말을 변경해 가며 죽음에 대한 여러 관점을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이 책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라는 느낌을 읽기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책은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철학책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그 느낌이 맞는 이유는 저자가 무엇보다 철학교수이고 죽음에 대해 알아보고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넘어가서 철학이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붙잡고 매달린 주제라는 판단이 들었다.

 

예전에는 죽음에 대해 단순히 생각이라는 관점으로만 고려하고 판단하고 상상하고 철학적인 질문과 대답을 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철학은 과학과 결부가 되어 보다 고차원적인 물음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물리가 그렇다. 진화론적인 관점은 인간의 변화를 생각하는 철학적인 관점을 제시한다면 죽음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본연적인 질문으로 들어가게 되어 인간이 인간인 이유와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하게 만들어줬다. 

 

지구에서 유일하게 이성과 감정이 공존하는 인간에게 죽음이란 모든 것이 끝인지 다른 시작인지의 여부는 단순하게 철학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종교까지 결부되는 아주 골치 아픈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육체적인 관점에서 죽음은 육체의 소멸이고 육체의 생체기능의 정지이지만 영혼적인 관점으로 들어가면 단순히 육체의 죽음일 뿐 영혼은 여전히 존재하고 사후세계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증명하기 힘든 부분으로 넘어가게 된다.

 

영혼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여부를 떠나 사실 이 부분은 종교를 떠나서도 결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육체적 죽음을 믿는다면 인간은 죽음으로 끝이다. 코마 상태의 인간은 육체적으로 살아있지만 영혼이 떠난 있는 상태라고 해야 할까? 육체의 죽음은 심장이 멈출 때를 의미하는 것인지의 여부까지 들어간다. 움직일 수 없고 눈동자로 자신의 의지를 선보이고 머리로는 생각하는 존재로써의 인간은 육체적으로 볼 때면 죽은 존재로 볼 수도 있다. 단지, 머리가 살아있다는 이유로 그는 죽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머리가 터져도 몸은 인식하지 못하고 한동안 자신의 행동을 유지한다고 하는데 - 과학적으로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 이 상황에서 인간은 죽은 것인가 살아 있는 것인가, 살아 있다면 어떤 의미인가? 최근 유행하는 좀비로 들어갈 때 육체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지만 살아 움직이니 도대체 이 현상은 죽음이라는 관점에서 무엇이라 판단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한 편으론 좀비상태에서 영혼은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책을 읽었어도 답이 없다.

 

이런, 저런 철학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괜히 어려울 것 같다는 선입견도 있지만 단순한 이야기를 배배 꼬고 말장난처럼 워낙 다양한 관점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워 계속 생각만 하고 있었지 본격적으로 읽어 볼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아주 제대로 된 철학책을 읽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교묘하게 철학책이라는 점을 숨겨 책을 읽게 만든 장점이 있어도 보인다. 단순히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책이라는 점을 전면으로 부각시켰다면 많은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니 말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삶과 죽음에 대해 끝까지 갈때 까지 가 보자는 심정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으로 보인다. 책도 얼핏보면 얇아보이지만 무려 500페이지나 되는 책이다. 더구나, 책의 내용을 읽는 것도 쉽지 않은데 빼곡하게 글자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 글자의 향연을 함께 경험하게 만들어준다. 이 책을 상, 하 2권으로 분철했으면 상권을 읽고 하권은 읽지 않았을 사람이 수두룩했을 것이다. 그만큼 결코 우습게 집어 읽을 책이 결코 아니다. 편안하게 선택할 수 있게 책을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읽으면서 '와~~ 이런 것까지 생각해야 되는 거야?" "진짜로 이런 점까지 고려해야 한다 말이야?"라면서 읽게 된다. 죽음에 대해 알기 위한 여정이 무엇이 그리도 길고 긴지 책의 중반까지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육체적인 죽음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후에야 겨우 겨우 죽음이 우리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이나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 다시 또 길고 길게 설명한다. 어찌보면 가볍게 이야기할 수도 있는 점을 심각하게 무게잡고 매일같이 만나 이야기하는 교수님을 만난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 영혼이 없고 죽음은 육체적 사망으로 끝이 난다는 철학적인 논리와 이성적인 전개는 참으로 수긍이 가지만 진정으로 재미없는 도출이다.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기에 재미있고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존재를 믿기에 지금처럼 인류의 문화는 풍부하고 풍성한 유산을 후대에게 남겼다고 본다. 육체로써 모든 것이 끝난다고 믿는다면 극단적으로 볼 때 '죽으면 끝이지, 뭐..'라는 것인데, 너무 재미없고 낭만적이지 못하다.

 

지금의 제도와 도덕과 같은 인류에게 도움이 되고 발전시킨 많은 것들은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었기에 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육체로 죽는다면 한편으로는 인간들이 그렇게까지 아등바등하고 도덕적으로 살고 뒷날을 생각하며 살아야 의미와 이유가 있을까하는 판단이 든다. 이런 생각은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판단이라는 점이 더 맞겠지만.

 

평소에 죽음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도 인식하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살아간다. 우리는 늘 죽음과 함께 살아간다. 언제 죽을지는 나이와 상관없지만 대체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죽음이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을 하지만 여전히 생각하지 않는다. 영생을 할 것이라고 믿지도 않지만 언젠가는 죽는다는 점 때문에 우리 인생은 더 풍성하고 살만하다. 다양한 조합이 나오는 것도 역시 이에서 비롯된 것들로 보인다. 

 

책의 마지막에서는 자살에 대해서도 철학적으로 아주 아주 길게 설명을 하는데 조금은 쓰잘데기 없는 설명으로 보였다. 뭐, 그리 거창하게 철학적으로 자살에 대해 설명을 하는지 말이다. 무엇보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전혀 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자살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고 미래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고 본다. 이걸 철학적으로 살아가는데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정말로 철학자다운 논리 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집어 들어 읽다보니 도저히 쉽게 며칠만에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 거꾸로 이틀동안 남는 시간을 전부 투자해서 읽었다. 오래 잡고 있어 봤자 괜히 시간만 보내고 페이지는 넘어가지 않을 듯 하여 아예 작정하고 이틀동안 계속 책을 붙잡고 있었더니 어제는 눈알이 약간 아플정도였다. 도대체, 죽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침을 뱉어가며 이야기하고 사람들이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약간은 현학적인 측면에서 선택해서 읽었는데 무엇이 나에게 남았는지의 여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저, 죽음에 대해 살면서 분명히 내 인생에 100% 발생할 사건이지만 제대로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굳이 생각하려고 한 적도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논리를 읽게 되었다는 점에서 만족해야 할 듯 한데, 이 책의 저자인 셀리 케이건도 그 정도로 만족한다고 에필로그에서 쓴 것을 보면 아주 잘 읽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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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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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무척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이야기는 못하겠지만 불행하지도 않게 살고 있다고 이야기할 것 같다.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즐기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만족이라는 의미는 관념적이고 감정적이고 주관적이다. 누가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이다. 

 

그렇다면, 내가 삶을 만족하고 있느냐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할 때 고개를 끄덕이지는 못한다. 아이러니한 대답이다.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즐기고 있다고 하면서 만족하느냐는 스스로의 질문에는 고개를 갸웃하니 말이다. 사정은 이렇다.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다. 여유롭기는 커녕 그 반대로 많은 부분에 있어 쪼달리고 있다. 단, 그 부분이외에는 아무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삶을 현재 살고 있다.

 

금전적으로 어렵다는 것이지 밥도 먹지 못할 정도로 돈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현재 매월마다 금전적으로 겨우 겨우 메꾸는 과정이 고통이라고 하면 고통이지만 그 부분이 진정으로 고통일까라는 생각에는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 만족스럽다는 표현을 했다. 누구도 완벽하게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없다. 

 

자신의 금전적인 면, 직업이나 직장에서의 성취도면, 부부간의 화목면, 자식들이 내 성에 차지 못하는 면, 인간 관계에서 내 맘대로 되지 못하는 면등등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주관적인 면이다. 남들은 다들 나에게 참으로 여유있는 삶을 즐긴다는 자신들의 주관적인 표현을 하지만 내 자신에게 질문을 했을 때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으나 대체적으로 만족하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해서 좋다. 

 

불만족스럽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스스로 만족한다는 자위를 하는 것이 차라리 정신건강에 더 좋을 수 있다. 만족이라는 것은 현재에 안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스스로 발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라도 스스로 위안하지 않으면 더 힘드니깐. 쓰고 보니 이건 어떻게 살 것인가에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질문과 대답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제보다는 오늘에 대해 질문하는 물음이고 오늘은 그렇다쳐도 내일은 도대체 어떤 삶을 꿈꾸고 있느냐에 대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과거에 했던 내 모든 행동과 사고의 결합체라면 내일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오늘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면, 현재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 하루를 돌아보면 아주 단순하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인터넷으로 가입되어 있는 투자 관련 카페를 전부 돌아 다니며 새로운 글을 읽는다. 그런 후에 네이버 블로그에 이웃들이 올린 새로운 글을 읽는다. 이로써, 하루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 후 쓸거리가 있다면 쓴다. 틈틈히 TV를 보기도 하고 점심을 먹는다. 책을 읽는다.

 

하루 종일 이 작업을 반복한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평일에 하는 일과의 반복이다. 주말에는 강의가 있으면 강의를 하고 게임도 하고 또 다시 TV를 본다. 이렇게 보자면 한량이라 해도 무방한 삶을 살고 있다.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고 있자니 역시나 예상한대로 나는 먹물인가 보다. 어떤 일이 있으면 무조건 부딪쳐보기보다는 나도 일단 책과 같은 글을 통해 무엇인가를 먼저 알고자 노력한다. 먹물의 한계라고 한다. 경험보다는 책에서 먼저 찾으려고 하는 것. 불행히도 책을 읽고 TV를 보는 것으로 돈을 벌 수는 없다. 추가적으로 글을 쓰는 것으로는 돈을 벌 가능성이 조금 올라가지만 아직까지 그 단계는 이르지 못했다. 

 

현재, 내가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책을 펴 내고 강의를 하는 것. 투자를 했고 그에 대한 경험을 쌓았고 -  투자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도 아니고 내 자신도 아니라고 단호하게 인정한다 - 이를 바탕으로 글을 썼고 첫번째 책이 딱히 큰 노력없이 운 좋게 나왔고 두번째 책이 현재 진행되어 조만간 나올 예정이고 열심히 읽었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글로 써서 책으로 낼 생각을 하고 있다. 그 후에 관련된 강의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고.

 

이렇게 보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은 나에게 정해져 있는 듯 하다. 그 삶이 행복하고 성공한다는 것과는 상관없이 내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결론을 내린 것이다. 가장 재미있고 즐겁고 부담없이 하고 있는 현재의 생활이고 지향하는 방향이다. 의도하고 목표로 삼았던 삶은 아니다. 책을 읽고 투자라는 것을 하다보니 저절로 합쳐져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다. 이 정도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은 찾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글을 읽고 글을 쓰고 글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련의 과정이 현재 내가 집중하고 있는 삶이다. 아직은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혼자서 노력하고 있다. 어느 정도까지 내 써클이 확장될련지는 모른다. 분명히 써클이 확장될수록 내 금전적인 문제가 조금 더 해결될 것이고 그만큼 나는 좀 더 바뻐질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고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정도만 예측하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주제는 무척이나 어렵고 혼돈스러운 질문이다. 그 질문을 받으면 예?????????????????????하고 대답을 먼저 하는 게 사실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나온 책도 그다지 많지 않다. 질문 자체가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 책으로 물어보기도 힘들기 때문이라 보인다. 책을 쓴 사람자체가 과연 저 질문을 할 수 자격이 되느냐의 여부가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작년 초에에 읽었던 사라 베이크웰의 어떻게 살 것인가는 몽테뉴의 삶을 통해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 후에 나는 현재 집중하고 가려는 방향에 대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고민하고 번민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붙들고 부여잡은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1년 동안 그 생각이 머리속에 맴돌면서 자연스럽게 현재의 생활과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여전히, 감히 내가 이런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에 대한 계면쩍은 생각은 있지만 내가 노력할 것은 노력하고 - 노력이라고 할 만큼 노력을 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많은 부분에서 창피하지만 - 나머지는 내 능력을 벗어나는 부분이라 여기고 하는 것이 정답이라 본다.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는 초반에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중반에는 자신이 살아온 과정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여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그동안 못 했던 이야기를 한다. 후반에는 자신이 이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는데 에필로그에 가서는 유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말을 전해주는데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고 동의가 되었다. 

 

자신이 진짜로 살고 싶은 인생을 살고 싶어 정치를 내려놓고 이제는 먹물로써 책을 읽고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지신전달자로써 삶을 살고 싶다고 한다. 뭐, 사람마다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나로써는 멋있게 보인다. 내가 추구하는 삶과도 맞닿아 있어 그럴 것이다. 그 전에 내가 도태되고 벼락으로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나도 갈 때까지는 가게 되지 않을까싶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까? 어떤 삶으로 보여질까? 어떻게 흔들리지 않을까? 어떻게??

 

책을 읽으면서 좀 차분해지고 어딘지 모르게 센치해지면서 우울해지기도 했다. 단순히 책을 읽어 그런 것은 아니고 현재의 상황과 결부되어 다양한 사고가 떠올라 그렇게 된 듯하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어느정도 끝이 났고 -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있지만 - 현재 내 모토대로 느린듯하지만 천천히 꾸준히 한 발 한 발 전진하고 있다. 최소한 내가 잘 못 되어도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나한테 남아있고 읽은 책과 읽을 책이 있고 글을 쓸 수 있는 몸과 머리가 존재하는한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이야기는 유시민의 어떻게 살것인가와 큰 상관없는 이재범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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