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얼룩진 교과서 1
모모세 시노부 지음, 한성례 옮김, 사카모토 유지 극본 / 느낌이있는책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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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를 책으로 다시 재 구성한 작품이다. 책의 저자가 2명으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와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을 비롯한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들의 시니라오와 각색 작업에 참여했던 인물들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책의 내용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내용이다.

 

예전에는 고등학생이 가장 무서웠다고 하지만 이제는 중학생이 가장 무섭다는 이야기를 한다. 고등학생들은 입시문제로 인해 더이상 감정을 폭발할 여지가 많이 사라졌지만 중학생들은 고등학교를 가는 문제이외에는 상대적으로 없고 갈수록 조숙해재는 사회여건상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들은 많아지고 가슴으로 이해하기 힘든 것들과의 괴리로 인해 더욱 감정이 폭발할 가능성이 큰 것이 아닐까 싶다.

 

그건, 아마도 우리 뿐만 아니라 일본도 특별한 차이가 없을 듯 하다. 일본말로 '이지메'라고 불리고 우리나라 말로 '왕따'라고 하는 사회 현상은 모든 나라에서 동일하게 이뤄지는 현상이기는 해도 유독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그 중에서도 동아시아에서 심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외향적인 성향이 강한 서양인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밝히고 활발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반면에 우리같은 경우에 대부분 나서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말 없이 있으려고 하고 끼리 끼리 문화에 좀 더 익숙한 환경이 이러한 사회 문제를 발생시킨 하나가 아닐까 싶다.

 

물론, 중학교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학기 초에 그룹이 만들어 진다고 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 그룹, 착한 아이들 그룹, 흔히 말하는 노는 아이들 그룹. 보통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공부를 주로 하기에 서로 건드리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착한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놀기도 하고 착해서 건드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노는 아이들에 들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생기면서 이들에게 서열이 생기고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왕따를 시키는 등의 일들이 일어난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아이가 대부분 가정 형편이 그다지 좋지 못한 아이들이라는 거다. 워낙 자존감이 없고 누군가와 어울리고 싶다보니 눈에 띄는 노는 아이들 틈에 들어가려고 하고 이 아이들은 자신과는 좀 다른 아이라 놀다보면 좀 심하게 대하고 그러다보면 어느순간 분위기가 형성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꼭 대부분의 왕따가 그런 것은 또한 아니라고 알고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수시로 책의 출간 국가를 되돌아 보게 된다.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분명히 일본 소설인데 도저히 일본 소설이라고 읽혀지지 않는거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일본명이라는 것과 일본명칭들이 나와 그렇지 그 부분만 우리나라 명칭과 이름으로 변경하면 절대로 이 작품이 일본 중학교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며 읽어도 아무런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을 듯 하다.

 

단순하게 아이들의 행동이나 그들이 겪고 있는 일들뿐만 아니라 선생인들의 활동이나 이야기하는 것을 읽고 있자면 어떻게 이토록 우리나라와 똑같은 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한편으로는 꼭 일본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은 어디나 다 똑같다는 판단을 갖게 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우리와 일본은 많은 부분에서 닮아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듯 하다.

 

단지,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을 읽으면서 점점 안타깝기도 하고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일본을 쫓아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 말이 정말로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이제, 2편으로 가서 어떤 이야기가 마저 펼쳐지며 이지메에 설명하는지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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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그림자 2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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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을 약간 어영부영인 상태로 읽었다. 제대로 집중하지 않고 추리소설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읽다 그건 아니라는 자각을 한 후 2권은 집중을 하며 읽었다. 대체로 잘 만들어진 소설이다. 특히, 두 사람이 묘한 대칭을 이루면서 서로 살아온 발자취를 따라가며 또한 그 발자취가 반복되며 벌어지는 일들이 보여지면서 작가가 상당히 심혈을 기울여 썼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 열심히 읽고 있는데 중간에 정말 나도 모르게 '내가 지금까지 막장드라마를 보고 있었던 거야?'라고 외친 순간이 있었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출생의 비밀 말이다. 소설은 전체적인 내용은 아주 치밀하고 탄탄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볼 때 특히 드라마를 평소에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자주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로 시작되는 대하 근현대 50부작 드라마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 듯 하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있고 이 둘을 질투하는 악역이 나오고 그 둘을 반대하는 부모들이 나오고 주인공을 도와주는 친한 친구가 나오는 이야기는 사실 우리나라 드라마의 전형이다. 게다가 여자나 남자 둘 중에 한 명은 가난하고 한 명은 부자집이고 서로 운명처럼 만나게 되고 운명처럼 헤어져 평생을 그리워하고 이 두사람을 질투한 인물은 아무런 부연설명도 필요없이 오로지 말도 안되는 질투와 복수에 불타 모든 것을 제거하는 형사로 나오는 것은 뻔하디 뻔한 내용이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지만 사폰은 -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럴지 몰라도 유럽에는 상당히 참신하고 획기적인 내용 전개일지도 모른다 - 고급스럽게도 표현을 한다. 이야기한 내용은 이 책의 화자가 우연히 발견한 책 소설속 인물들의 이야기이면서 과거의 이야기였다. 하나씩 하나씩 호기심에 못 이겨 밝혀내면서 점점 자신의 인생에 침범을 하고 자신의 인생과 오버랩이 되면서 자신 또한 소설 작가와 비슷한 인생을 다시 살게 된다.

 

또한, 그저 소설속 이야기이고 과거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재를 살고 있는 나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관계된 인물들과 한 명씩 만나며 복잡하게 돌아가는 내용은 정말로 치밀하게 잘 구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내용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이렇게 할 것이라고 대략적인 구도를 만든 후에 쓴 것인지 아웃라인만 정하고 하다보니 이런 내용으로 전개되었는지 궁금할 정도이다.

 

책과 연관된 내용이 많이 포함된다. 이야기 시작이 세상에서 유일한 자신만의 책을 헌책방에서 고르고 그 책을 통해 여러가지 관련된 이야기가 쏟아지고 책방을 운영하고 있고 책과 관련된 사람들이 나와 책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를 해 주면서 적당하게 지식의 향연도 펼치는 모습에서 저자의 내공이 엄청나다고 느꼈다.

 

책 마지막에 소설 전체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우리들은 책 속에서 이미 우리안에 지니고 있는 것만을 발견한다'는 내용은 평소에 생각하던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많이 와 닿았다. 우리도 그렇겠지만 유럽이라고 크게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점점, 책이 예전과 같은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이 내용은 주인공이 성장하여 아버지가 하던 서점을 이어받으면서 점점 쇠락하는 서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온 내용이다. 그만큼 책은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가면 갈수록 우리가 환호하고 대단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들의 모티브가 거의 예외없이 소설과 책에서 나온 내용을 토대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책 말미에는 다시 처음 책을 발견할 때와 같이 은밀한 서점으로 가서 자신 만의 책을 선택하러 가면서 책은 마무리된다. 책을 다 읽으면서 책의 내용이 애잔하게 가슴에 남는다는 것이 느껴졌다. 추리소설이라고 하기도, 연애소설이라고 하기도, 성장소설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여러가지 장르가 뒤섞여 있어 잘 버무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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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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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신문을 읽고 있는데 유럽에서 유명한 작가에 대해 설명을 하는 기사를 읽게되었다. 거기서 두 명의 작가를 소개하는데 한 명은 요네스 뵈로 이미 두 편의 작품을 읽은 작가였지만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처음 듣는 작가였다. 한 명은 이미 작품을 읽어 알고 있어 그런지 몰라도 기사의 내용을 볼 때 요네스 뵈보다는 사폰이라는 작가가 더 유명하고 많은 판매고를 했다는 것을 보였다.

 

당연히 재미있는 작품에 대해서 늘 목말라 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머리에 키핑을 했다가 작가에 대해 알아보니 꽤 유명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어느정도의 인지도를 갖고 있는 작가였다. 장르는 당연히 추리, 스릴러 작품으로 생각했고 사폰의 첫 작품인 '바람의 그림자'부터 무려 4편의 작품이 우리나라에 이미 다 출판되어 있어 첫 작품인 '바람의 그림자'부터 읽기로 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찾는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보니 이번에 내가 읽은 문학과 지성사가 아니라 문학동네에서 출판을 다시 했다.

 

요네스 뵈와 함께 소개된 작품이니 추리, 스릴러 작품이라고 생각했고 의례 그렇듯이 미국류의 추리 소설로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정통 유럽소설이였다.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처럼 최근에 국내에 소개된 유럽 추리소설과는 또 다른게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스토리가 중시되는 작품이 아니라 일반 문학작품과 같이 소소한 내용들과 묘사가 추리 소설과는 달리 문학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아니, 이 소설은 추리 소설로 생각하고 읽는것보다는 한 소년의 성장소설로 생각하고 읽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다. 마이클 코넬리의 추리, 스릴러 장르를 생각하고 읽게 되면 그 느림에 답답함을 느끼게 될테고, 최근 우리나라에서 한참 유행하고 있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의 넬리 노이하우스를 생각하면 범인은 커녕 도저히 추리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처음에 추리 소설을 읽는다는 심정으로 읽었고 어딘지 음밀한 서점에서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책을 선택한다는 묘사에서는 제대로 된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읽게 될 것이라는 묘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서서히 양파 껍질을 까듯이 작품속에 나오는 추리가 나온다.

 

우연히 발견하여 갖게된 작품이 내 인생에 스며들고 그와는 상관없는 듯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점점 주인공은 성장한다. 이 책을 어린 시절에 발견하고 성장하여 청년의 시절이 될 때까지 사소하지만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사람들을 한명씩 만나고 혼자 돌아다녀도 될 나이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 작품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바람의 그림자'와 관련된 본격적인 탐험이 시작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여전히 주변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진행되고 그 인물들이 주인공이 찾고자 하는 '바람의 그림자'의 저자와 알게 모르게 조금씩 다 연관되어 있다는 걸 하나씩 알게 된다.

 

1부에서는 그 어떤 해결도 보여주지 않는다. '바람의 그림자'라는 작품을 남긴 저자와 관련된 주변인물과 저자의 과거에 대해 조사를 하며 점점 그 실체로 들어간다. 여전히 알고자 하는 궁금증에 꼬리정도만 알게된다. 주인공은 1부에서 점점 사춘기의 성장통을 겪고 청년이 되어 새로운 사랑도 하고 주변 사람들이 모여 들지만 그들도 알 수 없는 의문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다.

 

솔직히, 읽으면서 좀 지루했다. 순전한 추리소설을 생각했는데 그런 작품이 아니라 그에 대한 선입견을 벗어나기가 꽤 힘들었다. 작품에 대한 칭송이 워낙 훌륭해서 더더욱 '밀레니엄'을 생각하고 읽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한다. 차라리 아무 고정관념없이 소설 한 편을 읽는다는 생각으로 읽었다면 좀 진득하게 읽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다 보니 좀 조바심을 갖고 책을 읽게 되었고 책 후반에 가서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본격적으로 읽게 되었다. 그나마, 책이 1,2부로 나눠져 있어 2부부터는 보다 차분한 마음으로 추리 소설을 읽는다는 생각이 아니라 일반 소설을 읽는다는 개념으로 읽어야 할 듯 하다.

 

그나저나, '바람의 그림자'의 저자와 주인공은 분명히 어떤 연관성과 연결고리가 있을 듯 한데 그에 대한 이야기가 언제 나올지 궁금하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치밀하게 작가가 구성한 인물로 보이는데 이 들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바람의 그림자'에서 생각지도 못한 놀랄일을 하게 될지 2부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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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의 고뇌
에밀 아자르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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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보면 이스라엘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솔로몬왕 시대의 이야기라고 착각을 할 수도 있지만 당연히 그와는 전혀 상관없을 수도 약간 상관있을 수도 있는 내용이다. 다만, 신기한 것은 이 책의 제목이 '솔로몬왕의 고뇌'라는 점에서 볼 때 최소한 현명한 사람을 솔로몬이라고 이야기할 듯 한데 책표지에 나온 사람이 바로 그 '솔로몬'이라는 착각이 든다는 것이다. 사진은 바로 작가인데.

 

대부분 소설이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구술을 한다. 그런 이유는 일단 내용전개하기가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이니 모든 것은 작가의 마음이고 묘사되는 시대나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작가 마음대로 얼만든지 변화시킬 수 있기에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구술하는 것이 가장 편안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나라는 화자가 등장하여 소설을 이끌어간다.

 

택시기사와 수리공인 주인공이 우연히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우리나라로 치면 '사랑의 전화'와 같은 단체를 운영하는 솔로몬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는 엄청난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고 온갖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들어주는 전화를 개설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하게 도와주기도 한다.

 

나이는 80대 중반이니 세상에 대해 지혜도 있을 것이고 경험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정확하지 않지만 세계인구를 40억이라고 하는 걸 보면 30년 전 정도되지 않을까 싶다. 작가가 1979년에 사망을 했다고 하니 알아서 판단하면 된다.

 

소설의 제목은 솔로몬이지만 소설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지만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오로지 독학으로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섭렵하고 궁금한 단어는 늘 백과사전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다. 한마디로 겉으로 볼때는 무식할 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 어느 누구와도 지식으로 떨어지지는 않는 인물이다.

 

우연히 솔로몬과 인연이 되어 그의 부탁으로 단체를 도와주면서 솔로몬과 관계있는 여인을 도와주게 된다. 한물간 샹송가수로 솔로몬의 도움을 받고 있는 인물에게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 하룻밤을 지내기도 하지만 따로 애인이 있다.

 

이런 점을 애인에게 설명하고도 애인이 받아들인다는 것에 우리와는 엄청나게 다른 문화를 보게된다. 분명히 지금보다 덜 개방된 예전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구나, 실제로 솔로몬과 샹송가수는 서로 30년전부터 사랑해온 관계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지만 여러가지 얽힌 문제를 풀 생각없이 그렇게 세월만 보내왔다.

 

아이가 자라 다시 아이인 노인으로 된다고 하지만 다른 점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한다. 노인이 되더라도 자신의 고집과 아집은 버리지 않는다는 것. 아이들은 싸우고 다시 금방 화해하고 언제 그랬냐는듯이 놀지만 다시 아이가 된 노인은 결코 그렇지 않다. 감정의 실타래를 쉽게 풀지 못한다.

 

심지어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의 감정을 알고 있고 상대방도 그럴것이라 어느정도 눈치를 채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남은 인생이 엄청나게 많은 것처럼 행동한다. 내일 당장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젊은이도 사랑을 하고 노인도 사랑을 한다. 육체가 늙는다는 것이 감정이 없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보다 반응속도가 조금 느리고 조금 더 여유있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지 희노애락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잊게 될 때가 많다.

 

이 책에서 말한 솔로몬왕의 고뇌는 결국 사랑이다. 사랑은 자신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자기 혼자 누구를 짝사랑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있는 것이고 짝사랑은 얼마든지 진짜 사랑으로 변할 수 있다. 외사랑은 힘들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마음은 최소한 인간의 감정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죽어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느낌을 준다. 고통이 따른다고 해도.

 

우리는 살면서 사랑할 때 가장 행복을 느낀다. 사랑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사랑뿐만 아니라 다양한 대상에 대한 사랑도 우리를 살만하게 만들어준다. 타인에 대한 증오도 살아갈 동력은 되지만 사랑만큼 우리에게 큰 동력이 되지 못한다.

 

살아가며 사랑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면 불행은 우리도 모르게 저멀리 도망간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그렇게 믿고 살아갈 때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공간이 된다. 사랑도 고민과 번뇌를 가져다 준다. 그래도 사랑을 위한 고통만큼 좋은 고통도 없을 듯 하다. 책에 나온 솔로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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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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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네덜란드 소설은 처음 읽는다.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이라 마약도 어느정도 허용을 하고 가장 키가 큰 국민이고 축구에 관련되 여러 이야기가 있는 정도의 선입견내지 상식을 갖고 있는데 그냥 나도 모르는 끌림에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밤을 지새우게 한다는 광고문구만큼의 책은 아니다. 솔직하게 그런 책들은 흥미로운 추리 스릴러 소설에 해당되지 이 소설과 같은 진지한 소설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본다.

 

실제로도 이 소설의 템포는 느리고 4명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 전부다. 우리들이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인가 진지하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자는 의미로 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저녁식사는 본격적인 이야기전에 하는 가벼운 배 채움의 의미가 있고 이후에 펼쳐지는 술자리가 바로 그에 해당한다.

 

가 본적이 없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보면 서양에서는 레스토랑에서 오랜 시간동안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동서양에서 저녁식사는 정신없이 먹는 아침과 약간은 쫓기듯이 먹는 점심과는 달리 편안하고 느긋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다.

 

디너는 4명이 모인다. 이들은 형제지간이고 서로 부부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수상으로 당선이 확실한 형과 정신병으로 쉬고 있는 동생이 모여 가볍게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인 듯 싶었지만 저녁식사라는 의미처럼 결코 가벼운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의례 그렇듯이 가볍게 영화와 같은 말랑말랑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서서히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끊임없이 플래시백이 되어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서 동생의 관점으로 1인칭 시점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게다가 우습지도 않게 중요한 지명이나 이름은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알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 소설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지만 가장 중심에 되는 이야기는 바로 자식을 둔 부모가 자녀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어떤 판단과 결정을 내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여기서 말하는 잘못된 행동은 우리가 어쩌다 겪기는 해도 웃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살인에 해당하는 행동이다.

 

소설에서 자녀들의 행동은 우발적이고 약간 술에 취한 즉흥적이였다. 다만,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단순한 행동이 결코 아니다.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부모가 된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에 대해 책에는 당연히 두가지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객관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써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니, 이미 답은 뻔하다. 하지만, 바로 내 자녀가 그랬다면 그때는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가 핵심이다. 정말로 교과서에 나오는 정답을 내릴 것인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부모라는 이름은 순간적으로 모든 선과 악을 완전히 잊어 버리고 오로지 내리사랑이라는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특수한 존재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잘한 부정행위에 우리는 얼마든지 쉽게 잊고 살 수 있다. 하지만, 엄청나게 큰 부정행위는 두고 두고 가슴에 남는다. 이 부분은 직접 경험한 적이 없어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지 못하다. 다만, 여러 작품이나 기사를 통해 유추를 할 뿐이다.

 

개인적으로도 찜찜하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빨리 해결하고 편안하게 사는 걸 추구하기에 아마도 내 자식이지만 떳떳하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배우자와 자녀들을 설득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런 행동이 결코 이타심이 아니라 내 이기심에 의한 발로이다. 내가 평생 찜찜하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냥 알리자는 것이다. 결코, 배우자와 자녀들의 마음상태와 심적고통을 헤아린 것이 아니다.

 

이처럼 각자 자신에게 더 편한 방법으로 결과를 도출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책에서는 각자 자신이 정한 결론으로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그 이후에 그들이 어떤 마음상태로 세상을 살아가는지에 대한 에필로그는 없다. 그냥 보이기에는 헤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부모로써 자녀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저렇게 하라고 이야기하면서 자신들은 어김없이 어기는 일들을 많이 한다. 이를테면, 건널목에서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고 자녀들과 함께 건너는 행동과 같은 사소한 일부터 자신들은 TV를 보면서 아이들에게는 공부하라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에 이르기까지.

 

부모의 내리 사랑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동일하게 갖는 원초적인 본능에 해당하겠지만 과연 어떤 행동이 자녀들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고 올바른 사람으로 키울 것인지에 대해서는 각자 판단에 따라 다르고 알고 있는 정도에 따라 행하는 방법이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자녀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하면 그것이 그나마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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