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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 ㅣ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네덜란드 소설은 처음 읽는다.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이라 마약도 어느정도 허용을 하고 가장 키가 큰 국민이고 축구에 관련되 여러 이야기가 있는 정도의 선입견내지 상식을 갖고 있는데 그냥 나도 모르는 끌림에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밤을 지새우게 한다는 광고문구만큼의 책은 아니다. 솔직하게 그런 책들은 흥미로운 추리 스릴러 소설에 해당되지 이 소설과 같은 진지한 소설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본다.
실제로도 이 소설의 템포는 느리고 4명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 전부다. 우리들이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인가 진지하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자는 의미로 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저녁식사는 본격적인 이야기전에 하는 가벼운 배 채움의 의미가 있고 이후에 펼쳐지는 술자리가 바로 그에 해당한다.
가 본적이 없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보면 서양에서는 레스토랑에서 오랜 시간동안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동서양에서 저녁식사는 정신없이 먹는 아침과 약간은 쫓기듯이 먹는 점심과는 달리 편안하고 느긋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다.
디너는 4명이 모인다. 이들은 형제지간이고 서로 부부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수상으로 당선이 확실한 형과 정신병으로 쉬고 있는 동생이 모여 가볍게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인 듯 싶었지만 저녁식사라는 의미처럼 결코 가벼운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의례 그렇듯이 가볍게 영화와 같은 말랑말랑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서서히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끊임없이 플래시백이 되어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서 동생의 관점으로 1인칭 시점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게다가 우습지도 않게 중요한 지명이나 이름은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알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 소설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지만 가장 중심에 되는 이야기는 바로 자식을 둔 부모가 자녀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어떤 판단과 결정을 내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여기서 말하는 잘못된 행동은 우리가 어쩌다 겪기는 해도 웃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살인에 해당하는 행동이다.
소설에서 자녀들의 행동은 우발적이고 약간 술에 취한 즉흥적이였다. 다만,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단순한 행동이 결코 아니다.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부모가 된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에 대해 책에는 당연히 두가지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객관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써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니, 이미 답은 뻔하다. 하지만, 바로 내 자녀가 그랬다면 그때는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가 핵심이다. 정말로 교과서에 나오는 정답을 내릴 것인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부모라는 이름은 순간적으로 모든 선과 악을 완전히 잊어 버리고 오로지 내리사랑이라는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특수한 존재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잘한 부정행위에 우리는 얼마든지 쉽게 잊고 살 수 있다. 하지만, 엄청나게 큰 부정행위는 두고 두고 가슴에 남는다. 이 부분은 직접 경험한 적이 없어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지 못하다. 다만, 여러 작품이나 기사를 통해 유추를 할 뿐이다.
개인적으로도 찜찜하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빨리 해결하고 편안하게 사는 걸 추구하기에 아마도 내 자식이지만 떳떳하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배우자와 자녀들을 설득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런 행동이 결코 이타심이 아니라 내 이기심에 의한 발로이다. 내가 평생 찜찜하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냥 알리자는 것이다. 결코, 배우자와 자녀들의 마음상태와 심적고통을 헤아린 것이 아니다.
이처럼 각자 자신에게 더 편한 방법으로 결과를 도출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책에서는 각자 자신이 정한 결론으로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그 이후에 그들이 어떤 마음상태로 세상을 살아가는지에 대한 에필로그는 없다. 그냥 보이기에는 헤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부모로써 자녀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저렇게 하라고 이야기하면서 자신들은 어김없이 어기는 일들을 많이 한다. 이를테면, 건널목에서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고 자녀들과 함께 건너는 행동과 같은 사소한 일부터 자신들은 TV를 보면서 아이들에게는 공부하라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에 이르기까지.
부모의 내리 사랑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동일하게 갖는 원초적인 본능에 해당하겠지만 과연 어떤 행동이 자녀들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고 올바른 사람으로 키울 것인지에 대해서는 각자 판단에 따라 다르고 알고 있는 정도에 따라 행하는 방법이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자녀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하면 그것이 그나마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