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제목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 클럽'이다. 여기서 나는 마지막 팬 클럽보다는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특정 구단의 이름에 더 유혹되었고 야구라는 게임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작품이 나온지 얼마되지 않아 실제로 삼미 슈퍼스타즈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개봉되었다. 아무런 정보도 갖지 못한 상태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오해다.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지레짐작으로 내리는 판단만큼 무섭고 잘못된 경우도 없을 것이다.





난 당연히 이 책이 바로 그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고 그 영화의 내용은 이 책을 근거로 만들어 졌다고 생각을 했다. 이미 영화를 본 상태에서 이 책은 나에게 당연히 영화의 연관성을 찾는데 더 노력하게 되었다. 한 번 갖게되 선입견을 벗어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는데 이 책을 열심히 읽는 순간에 주인공이 성인이 되었을 때 허무하게도 삼미슈퍼스타는 해체가 되었으니 영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에서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이미 잊혀졌지만 이 시대를 살아 온 - 어느 정도 스포츠 경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 사람들에게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특정 팀의 이름이지만 실제로 책에서 중요한 것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실제로는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팀 이름보다 크게 써져 있는 '마지막 팬 클럽'의 이야기다.





내 추억에서 삼미 슈퍼스타즈는 꼴찌라는 기억보다는 '장명부'라는 희대의 불세출 투수가 남아있다. 막연히 꼴찌라는 기억만 있는데 이 책을 통해 다시 환기해 보니 삼미 슈퍼스타즈는 절대로 깨질 수 없는 다양한 기록을 갖고 있었는데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기록들이 대부분인데 아마도 이 책의 주인공이 가장 싫어했던 OB베어즈의 팬이라 내가 응원하지 않은 팀의 기록을 잊고 있던 탓이 아닐까 한다.





10대와 20대의 기억에 대해 그다지 많지는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아니,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을 되 살리는 나이가 아직은 되지 않아 그런지 분명히 지나온 시절은 똑똑하고 분명하나 기억하지 못한다. 과거를 기억할 때 자아가 형성될 시기부터 기억한다고 하니 나는 아직도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그런가 보다.





비슷한 연배의 작가가 책을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내가 살아왔던 바로 그 과거에 대해 소설로 기록을 남기고 그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잊고 있었던 추억이 되 살아나고 '그때 그랬지'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맞다 그랬었지'하며 감탄을 하며 읽게 되는 것이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감정과 시대를 경험한 동질감이 책을 통해 공감하기 때문에 박민규라는 작가의 이야기가 와 닿는 듯 하다.



'

느리게 살기'라는 주제의 책이나 강연이 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무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 적응해야 하고 잠시라도 긴장을 놓치면 나만 뒤쳐질까봐 긴장을 풀 세도 없이 살아가는데 그러지 말고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 반대로 살아가면 오히려 자신을 찾게 된다는 일종의 캠페인인데 어떻게 보면 가진자의 논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살고 있다.





강박 관념과도 같이 뒤쳐질 수 없다는 신념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나도 할 수 있다는 각오 아래에서 부자가 되기 위한 일념으로 하루 하루의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다. 이 길이 맞는지 틀린지 생각할 겨를도 없고 오로지 앞 만 보면서 달려 갈 때 내 주변 사람들도 나를 이해할 것이라 여기며 모든 것을 무시하며 가다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 실제로 그렇게 될 때까지 과연 행동을 하며 성취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의 의문이 남지만.





삼미 슈퍼스타즈는 이런 현대사회에서 유일하게 느리게 사는 것을 실천한 팀으로 탈바꿈한다. 우리들은 사회에 있는 회사에 취직하여 돈을 받으며 일을 하기 때문에 프로라는 타이틀을 따게 되지만 개개인의 능력이나 성향을 볼 때 아직 프로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을 때 프로라는 이름으로 일을 하고 돈을 받지만 실제로 아직 프로가 아니라 도태되는 사람들이 많다.





눈을 뜨고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다시 일을 하고 퇴근 시간이 되고 다시 일을 하고 진짜 퇴근을 하고 잠시 TV를 본 후에 잠을 자고 다시 눈을 뜨고 출근을 한다. 이런 챗바퀴와 같은 일상이 반복되지만 어느 누구도 놓으려고 하기보다는 벗어나려고 더 빨리 눈을 뜨고 열심히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다시 더 열심히 읽을 하고 퇴근 시간을 되어도 더 열심히 일을 하고 집에 와서 다시 자기 계발을 위해 일을 하고 잠을 자고 억지로 다시 눈을 뜬다.





글을 이렇게 쓰니 그런 삶을 살지 말라고 하는 것 같지만 현실은 소설과 다르다. 극빈층이 되어 완전히 바닥이 된 적이 없어 배부른 소리일지 몰라도 아둥바둥하지 않으며 살아도 신기하게 삶은 계속되고 더 신기하게 먹고 산다. 불편함이 있지만 신비롭게도 먹고 산다. 풍족하게 살지 못하지만 아주 신기하게도 먹고 산다. 하지만, 우리가 그럼에도 아둥바둥하는 이유는 특정할 수 없는 미래라는 괴물에게 삼켜 먹히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래가 왔을 때 신기하게도 우리는 살아간다. 과거와는 큰 차이가 없는데도.





박민규라는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늘 8,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점이 좋다. 벌써, 과거를 회상하며 흐믓하게 추억을 떠올리며 여유를 갖고 살아 갈 시기나 나이는 아니지만 잊고 있었던 정서를 불러내서 좋다. 심지어 나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소설로 써 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능력이 안된다는 것이 문제다.





책의 마지막에 지금으로 치면 동호회 2팀이 시합을 하는 내용이 나온다. 한 팀은 아마추어지만 프로를 지향한다는 정신을 갖고 있고 한 팀은 순수하게 야구를 빌미로 모여 논다는 정신을 실천하는 팀의 시합인데 초반에는 부담도 없고 지든 말든 시합에 임하는 팀이 이기다 결국 열심히 야구를 하는 팀에게 말도 안되게 깨지는 이야기를 묘사하는 데 읽으면서 계속 웃음이 나고 미소가 생기고 나도 모르게 전철에서 '크,크,크,크,크'를 했다.





책을 읽으며 많은 동질감과 '그래 나도 이렇게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살아야 해'라고 하지만 - 실제로 내 주변 사람들은 날 그렇게 바라보기는 하는 듯 하다만 - 아직도 난 비겁하고 졸렬하고 겁이 많고 용기가 없고 책임감이 있고 두려움이 많아 내려 놓지 못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열심히 일 하려하고 더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찾으려 하고 있다. 그래야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벗어 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벗어나는 것보다 내려 놓는 것이 더 빠른 방법이라 알고 있지만 내려 놓는 순간 다시는 벗어날 수 없다는 압박감에 오히려 내려 놓으려 하기보다 벗어나려 한다. 무엇이 올바른 선택이고 현명한 판단인지 모르겠다. 그리 대단한 사람이 못되는 나는 아마도 평생 내려 놓지 못하고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 본다. 빠른 길을 나 두고 늘 새로운 길을 가려는 내 도전정신이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 클럽'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어딘지 철학적이며 개인적이 이야기를 잔뜩 늘어났는데 그게 바로 책을 읽는 이유이고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글을 통해 평소에 생각했던 문제들이 뜻하지 않게 풀리는 것과 같다.





무슨 말이냐고?

재미있게 책 읽었다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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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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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성장 소설은 그 어떤 소설을 보더라도 아픔이 있고 사랑이 있고 시대의 단면이 등장한다. 한 개인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한 개인이 성장을 하고 싶지 않아도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인물이라는 것이 그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주인공이 여자든, 남자든 사람이 있으면 그를 둘러싼 가족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고 주변 지인들이 있고 알게 모르게 만나는 여러 사람들이 있고 그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사회상이 있고 그 시대만의 사건들이 그에게 영향을 끼친다. 이건 당사자가 거부할래야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거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도 없는 곳에 가 혼자 사는 것 이외에는 없다.

 

성장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꼭 주인공이 살고 있는 시대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그걸 모르면 주인공의 행동이나 생각등에 대해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본인은 그 시대의 흐름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다고 주장 할 수 있어도 그 주변 인물들 중 누군가는 직접이나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어 있고 그 주변 인물과 다시 만나는 성장 소설속의 주인공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관계를 맺게 되어있다.

 

성장 소설을 쓴 작가가 스스로 이 소설의 주인공은 100%는 아니라도 내 성장 일기라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아무리 소설이라고 하여도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투영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성장 소설의 작가들이 대부분 40대 이상인 이유도 이와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한다. 남들이 하기 어려운 경험을 10대에서 20대 초반에 했다 하여도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에 30대는 젊다는 느낌이 든다.

 

성장 소설의 주인공들이 10대에서 20대 초반이 대부분이라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이나 주변인물들의 이야기와 내용을 읽으면 어딘지 모르게 풋풋하고 추억에 잠기게 된다. 보통 과거를 회상하는 소설이 대부분 오래 되면 70년대인 소설이 많은데 반해 이 소설은 그 전이다. 대략적으로 4.19에서 5.16시기 전후로 볼 수 있다 보니 워낙 오래된 시절이다 보니 순간순간 지금까지 읽은 성장 소설의 시대와 혼돈하여 가끔 그 이전 시대라는 생각을 잊고 읽다가 '응?'할 때가 있었다.

 

그만큼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의 이야기라 공감을 못할 때도 있었지만 내가 살아온 역사가 얼마 되지 않기에 내가 경험하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공감을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고 유추하고 추측하기에 너무 오래된 세월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좀  힘들어 한 것이 아닐까 한다.

 

생각해보면 방송이나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시대가 대부분 80년대 후반이거나 60년대 전의 이야기가 많이 있고 이상하게 70년대 이야기는 드물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 나온 시대배경은 무척 낯설게 느껴진다. 막연히 그 당시는 먹고 살기 위해 모두 한결같이 노력하는 시대로 생각하는데 책에 나온 사람들을 보면 그렇지는 않다.

 

'개밥바리기별'은 성장 소설이 그러하듯이 성장통을 겪는 한 소년(청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내가 워낙 반듯하게 자라 그런지 이해를 할 수는 있지만 이해가 안된다. 어머니만 살아계시고 누나들도 있지만 집의 가장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것에 대한 의식이나 책임감은 그다지 찾아 볼 수 없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주변 인물들이나 사건들은 나열되지만 그들은 잠시 스쳐갈 뿐이다.

 

베트남 전쟁에 가기 직전에 자신의 어린 시절 -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데 젊은 시절이라고 하기에는 좀... -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엮여 있는데 일상적이지 않은 사춘기와 고교시절을 보내고 모든 것을 이제는 추억으로 남기고 미래로 나아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살아 오지 못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성장 소설이 작가의 개인경험에서 우러난 자신의 이야기라 볼 수 있다면 베트남에서 살아 와서 훌륭한 작가로 성장하는 큰 바탕이 된다.

 

과연, 지금의 고등학생들은 '개밥바리기별'에서 나온 것과 같은 행동이나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어차피 집에서 가출하는 것은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지만 여행을  하려고 할 때 사회의 구성원들이 책에 나온 시대와 같은 반응을 가출소년에게 보여 줄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결국에는 지금의 청소년들이 과거와 다르고 나약하고 정신 못 차린다고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과거와는 다른 관점과 시선으로 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시선이 문제가 아닐까 한다. 학생들에게 학교 공부라는 것은 꼭 해야 할 요소이기는 해도 삶에 있어 절대 요소는 아니다. 그들이 자신들만의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것이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개밥 바리기별'의 주인공이 공부를 등한시하고 자신의 삶을 깨닫기 위해 여정을 떠나고 자아를 찾으려고 했던 것처럼 꼭 공부를 등한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이든지 학교공부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변해버린 시대상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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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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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계속 언론에 소개되고 있는 고령화를 통한 우리나라 사회구조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책의 제목과는 달리 그림을 본다면 '고령화 가족'이라는 제목과는 어딘지 핀트가 어긋난 느낌이 든다. 그렇다 하여도 책의 이야기는 노인과 관련된 이야기로 진행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다.

 

한국 순수문학 소설 - 추리, 판타지와 같은 소설이 아니라 - 중에 의식하지 않았지만 2000년 후에 출판된 책 중에 읽었던 책들이 대부분 여성 작가의 소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이지만 그만큼 우리나라 여류 소설가들이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뜻이 되고, 남자보다 여성이 소설의 소비계층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드는데, 남자 작가들의 순수문학 소설은 아마도 이문열의 소설들로 더이상 읽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한다. 대하 장편 소설을 제외한다면.

 

박민규의 소설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책의 후기에는 박민규의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게 따져보니 여성 작가들의 소설에는 그들만의 비슷한 정서적 공감이 있었는데 - 비록, 나이차는 각기 있을 지라도 - 비슷한 세대의 두 남성 작가의 소설을 읽으니 비슷한 느낌이 다 읽은 후에 생겼다.

 

한 편으로는 굳이 이렇게 내용을 전개할 필요는 있을까하는 의문도 들지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그 시대를 살아가며 주고 받는 것이 있기에 현재 시대를 살아가는 남성들에게 다가오는 것들이 소설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이 아닐까 한다.

 

고령화 가족이라는 이야기는 간단한다. 어찌 하다보니 출가했던 3남매가 모두 모이게 되었는데 이들의 평균 나이가 50대가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고령화 가족이라고 하지만 책의 내용은 고령화와는 전혀 상관없이 작가의 표현대로 막장 가족에 가깝다. 서로가 서로를 어색하게 여기고,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보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보다는 전적으로 내 관점에서 상대방을 편의적으로 판단하고 내 잣대를 들이댄다.

 

가족이라면 당연히 상대방이 아니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은 어느새 우리들이 살아가는 가족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버리고 가족이라는 끈만 연결되어 있는 상태에서 타인과 같이 가족들을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한다. 과연, 우리는 매일같이 만나는 직장 동료들보다 자주 만나지 않는 내 형제, 자매를 더 많이 알고 언제든지 이해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령화 가족'에 나오는 식구들은 상대방에 대해 식구라는 이름으로 엮어 진 것 이외에는 성인이 된 후에 각자 자신의 삶을 살면서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살다 뜻하지 않게 서로 모이게 되지만 상대방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어 자신의 엄마에 대해서도 말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집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하는 주인공만 그런 것이고 가장 어리숙하고 인간 말종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식구가 가장 가족 구성원의 일상 생활과 생각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대처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설에 나오는 내용들은 꽤 날 것 그대로의 감정과 생활을 묘사하고 있다. 굳이 그렇게 까지 묘사해야 하나하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우리의 일상은 - 아니, 내 일상은 - 그렇게 재미있지도 스펙타클하지도 않다. 소설이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의 일상을 표현하려면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는 흥미진지한 요소들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보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특별한 이벤트없이 진행되는 소설은 끝을 향해 달라가면서 뜻하지 않게 하드 코어 액션 장르가 삽입된다. 순수하게 이야기라는 관점에서는 지루할 수 있었던 이야기가 마지막 단락에 가서 탄력이 붙고 흥미롭게 진행된다. 액션, 사기, 모험과 같은 내용이 나오면 좀 더 책을 읽는데 몰입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재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근본 감정이 아닐까 한다.

 

도저히 출구가 없어 보이던 소설은 마지막에 가서 헤피엔딩으로 대 단원을 맺는다. 사전에 각자의 캐릭터가 갖고 있는 과거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갑작스럽다고 할 수는 없어도 조금은 뜬끔없이 이야기가 전개되어 '그들은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동화식으로 마무리가 된다.

 

작가가 책 중반에 소개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단 한 문장으로 끝이 나지 않고 그 후의 이야기도 길게 이어진다. '고령화 가족'에 나온 가족들도 행복하게 끝을 맺을지 중간 중간 나온 불안요소들이 등장하여 인생사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로 될지 모르지만 소소한 문제들이 발생하더라도 큰 문제없이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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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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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하지 않았지만 박민규라는 작가의 글을 시간순대로 읽고 있다. 그의 소설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읽고 나와 동시대의 청춘을 보낸 남자의 동질감을 느껴 재미있다는 느낌을 갖고 그의 다른 책도 읽기로 하고 읽는다. 내가 원하는 대로 박민규 작가의 책을 시대순으로 읽을 수는 없다. 내가 읽는 방법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굳이 그를 쫓는 것은 아니다.

 

그의 글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한 번 끝까지 읽어보자는 생각을 갖고 시작한 것도 아니다. 도서관에 책이 있고 아직 읽지 않았으니 책을 집었을 뿐이다. '핑퐁'이라는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도저히 내 머리로는 그 책이 말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방법을 내가 쫓지 못한다.

 

단지, 그 뿐이다. 그는 그의 길이 있고 나는 나의 길이 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세상이치에 대해 깨달은 것도 아니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데 굳이 알려고 노력하지 않을 뿐이다. 아는 것만 머리에 들어오고 남아도 상관이 없다. 들어오는 것이 개미 똥구멍만큼 조금씩 늘어나는 것도 내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의미있는 일이다.

 

생각해 보니 이상의 '날개'라는 시를 볼 때 그런 느낌이 아니였을까? 시라고 하는 표현 방법으로 활자로 된 글자를 읽었으나 무슨 귀신 씨나라 까먹는 이야기인지 눈만 깜박 깜박하고 있는 모습말이다. '날개'라는 시의 의미가 어쩌구 저쩌구 이야기를 한다. 그건 내가 받아들인 의미가 아니다. 누군가 나에게 주입하는 의미이다. 맞겠지~! 나보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이상'이라는 사람의 삶과 생각을 토대로 말한 의미이니.

 

나에게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의미가 아니라 남이 나에게 주입한 의미로. 그 의미가 누군가 나에게 투입하고 싶은 사상을 첨부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두번째 책 '카스테라'이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세번째로 읽는 책이다. '핑퐁'을 읽을 때 '뭥밍'을 외쳤지만 다행히 '카스테라'는 책에 나온 글자들은 눈에 들어온다. 머리에 안착을 하고 내 뇌에서 흡수를 한다. 이번 작품도 단편들을 엮은 책이다. 모든 작품들이 하나로 묶을 수도 있지만 그건 내가 자의로 '카더라'라는 범주로 몰아넣으려는 인간의 못된 습관이다.

 

'카스테라'에 나온 모든 이야기는 말도 되지 않는 엉터리다. 인간 사회에서 도대체 그런 내용은 가당치도 않다. 공상 과학 소설이라고 이야기를 했으면 되었는데 이건 그런 소설이 아니다. 순수 문학소설이다. 각 카테고리 속에 있는 소설의 주인공이나 이야기들은 평범하지만 황당하다.

 

전 세계를 냉장고에 넣는단다. 오리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 다닌단다. 외계선이 날아와서 납치하고 습격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헤드락을 해더니 내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경찰들은 폭력으로 보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들은 줄곧 나온다. 그나마, 유일하게 고시원 이야기에는 황당하다면 황당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맞다. 이건 국어 시간에 배운 은유가 아닐까 한다. 뭘 은유하는 것인지 굳이 찾고 싶지 않다. 그냥 은유같다. 뭘 은유하는지 모르겠다. 일부러 이렇게 쓴 것이라면 그것도 꽤 힘든 작업이였을 것 같다. 개그 프로에 나온 것처럼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차마 이야기할 수 없어 돌려 이야기하니 가슴이 답답할 수 있다.

 

정작, 이 소설을 읽은 내가 받아 들이지 못하면 그것도 답답하다. 어쩌라.. 내가 이해 능력이 딸리는 것을. 그래도, 나름대로 읽는 것이 재미있다. 다행이도 두 다리는 땅에 딛고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런가 보다. 하늘에 올라가서 이야기하면 무슨 이야기인지 도저히 알아 들을 수 없지만 두 다리라도 나와 같이 땅에 있으니 그걸 근거로 아는 만큼 재미있나 보다.

 

문체가 특이다. 글이 툭툭 끊어지는 것 같고 마음대로 단락이 나눠지는 고유의 기법(??)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박민규 작가만의 고유한 형식인가 보다. 흔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읽는데 불편함은 크게 없다. 그것으로 족하다. 읽을 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

 

설마..

작가의 말에서는 익숙한 형식으로 글이 인쇄되어 있으리라 판단했지만 아니다. 아하.. 의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타고나길 그런가 보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본인이 쓰고 싶은대로 썼는데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면 축하해야지. 나도 거기에 따라 갈 수 밖에.

 

장편 소설을 읽고 박민규의 소설을 찾았는데 연속적으로 단편 묶음 소설만 읽었다. 다음에 장편 소설을 읽으며 조금은 더 나와 같은 땅에서 이야기하려나? 모르겠다. 결국에는 글을 쓴 작가의 마음이고 그 소설을 읽을지 말지도 내 마음이니.

 

나름대로 박민규라는 사람의 소설 형식으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의외로 재미있다. 이래서 그런 형식으로 썼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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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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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그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빈뉴'에 대한 호감과 그의 소설에서 읽은 나와의 동질감내지 연대감으로 인해 그의 다른 책들도 보기로 했다. '카스테라'에 대해 보려고 하다 책의 제목에 끌려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책을 읽으니 박민규 작가 특유의 문단 나눔을 볼 수 있었다.

 

주세 사라마구의 작품을 읽은 적은 없지만 그의 영화를 본 후 관심이 있어 한 번 그의 작품을 볼까하다 그의 책을 집어 드니 그의 책은 무자비하게 글의 단락 없이 글이 띄어쓰기도 없는 것처럼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대화도 없는지 글만 빽백히 종이에 채워져 있었는데 박민규의 책도 그런 식으로 나름 빼곰히 진행되다 단락이 나눠지고 다시 대화라고 특별히 인식하지 않게 글이 배치되어 있다.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기억이 가물하지만 이상의 날개라는 작품은 시험을 치기 위해 작품을 해체해서 공부할 때 솔직히 의식의 흐름에 따른 글의 흐름을 전혀 쫓아 가지 못해서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 '핑퐁'도 나는 도대체 이야기의 흐름을 도저히 쫓아 가기 힘들었다.

 

박민규라는 작가의 의식 흐름을 내가 제대로 쫓아 가지 못한 것인지 그의 위대한 이야기를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도저히 책의 내용을 충실하게 읽지 못했다. 오히려 책을 읽으며 다른 생각을 하거나 TV에서 나오는 소리가 책의 글보다 더 강하게 들어왔다. 당연히 성인이 된 사람이 쓴 글이기는 하지만 책의 주인공이 중학생인데 아무리 읽어도 도저히 중학생의 생각과 행동이라고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학생이라는 시기에 사람마다 다른 지식과 지혜와 세상에 대한 시선을 갖게 되고 성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로 나보다 더욱 뛰어난 사람들이 드글거리고 내 지식과 머리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인물들이 많지만 중학생인데도 나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야기와 상상을 해대니 도대체 책의 흐름을 도저히 쫓아 갈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쫓아가는 것은 치수라는 인물이 나와 주인공을 때리거나 아주 단순한 이야기를 할 때만 비로소 편안하게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고 어떤 이야기인지 알 수 있었다. 고로, 책에 나오는 중학생보다도 내 이해력이 떨어지고 그의 상상을 도저히 따라 갈 수 없었다. 뭐, 중학생의 상상력을 따라가기 힘든 것은 당연한 사실이라도 말이다.

 

머리속에 휘발유가 들어있는지 읽자마자 무슨 내용인지 까먹는 경우가 다반사이긴 하지만 이 책의 마무리가 어떤 식으로 끝났는지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 가물하다. 핑퐁이라는 제목처럼 탁구를 쳤다는 거, 헬리혜성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는 모임이 있다는 거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출간 된지 꽤 된 작품이고 작가도 유명한 사람이라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 을것 같은데 남들은 어떻게 이 책을 읽고 받아 들였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좀 꽝이였다. 그건, 내 이해력이 딸려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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