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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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설가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떤 소설가는 소설의 첫 문장에 상당히 공을 들인다고 들었다. 현재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은 <안나카레리나>가 아닐까 한다. 어느 덧 안나 카레리나의 법칙이라는 통용구가 생길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만큼 첫 문장은 소설을 지배하는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소설 첫 문장만 읽고 흥미가 생겨 소설을 읽었다는 고백도 심심치 않게 들었다. 내 경우는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딴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데 말이다.


심혈을 공들여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며 탄생한 첫 문장이 사람들의 선택을 받고 사랑한다면 글을 쓴 작가는 너무 행복할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노력을 누군가 알아줬다는 쾌감까지 갖게 되지 않을까. 이 책인 <스파링>의 초반이 나에겐 그렇다. 첫 문장과 문단은 이렇다.


'나는 이물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남과 달랐다. 어렸을 땐 남과 다른 게 문저 잘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나는 시작부터 남과 달랐었다. 나는 화장실에서 태어났다. 멍청한 나의 엄마는 화장실에서 똥을 누다가 나를 낳았다. 똥을 누다가 낳았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화장실엔 왜 들어갔겠는가. 애초부터 나를 낳은 생각이었다면 화장실보다 더 나은 공간이 이 세계에 없을 리 없었다. 엄마는 공중화장실 변기에 기대어 똥 대신 나를 낳았고 나는 피로 범벅된 타일 위에 누워 이 황당한 현실을 개탄하며 울었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이 첫문장과 첫 문단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아기를 화장실에서 낳았다니 호기심과 궁금증이 상당히 동했다. 고백하자면 최근에 소설을 읽고 재미있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다. 상대적으로 재미있다 정도였다. 엄청난 집중력을 갖고 흡인력으로 나를 빨아들이는 책을 읽은 기억이 없다. 초반에 적응하기가 살짝 힘들었지만 <스파링>은 중간 부분에서 그렇게 읽었다. 상당히 긴 글이고 묘사를 쩔도록 썼는데 한 자 한 자 놓치지 않고 읽었다.


아마도 중간 정도까지는 느낌이 천명관의 <고래>나 박민규의 느낌이 좀 있었다. 아마도 남자 작가라 그런 것이 아닐까. 김영하나 김연수 같은 류와는 다소 결은 달랐고 말이다. 뒤를 보니 신기하게 이 책은 문학동네 소설상은 받았는데 천명관의 <고래>도 같은 상을 받아 다소 나혼자 신기했다. 이상하게 재미라는 걸 추구하다보니 문학소설보다는 장르소설을 읽게 되었다. 막상 흡인력있게 읽는 책은 장르 소설보단 문학소설인 경우가 더 많긴 하다.

문제는 문학소설이 워낙 많다보니 어떤 책을 읽어야 흡인력있게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인지 애매하다는 점이다. 너무나 아쉽게도 한국에서 소설은 그다지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 이러니 참고할 것이 그다지 없다. 그나마 사람들이 선호하고 환호하는 작가들은 있는데 그 책이 나와 맞다고 할 수도 없고 흔히 말하는 베스트셀러는 오히려 재미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다른 분야와 달리 문학소설의 베스트셀러가 재미있는 편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읽지 않기에.


<스파링>은 솔직히 아마도 거의 어지간해서 읽지 않았을 듯하다. 순전히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점 때문에 호기심을 갖고 읽었다. 아주 재미있었다. 초등학교 때 주인공이 왕띠를 당하며 괴롭히는 아이와 하는 장면은 좀 짜증이 났다. 그 장면의 묘사때문에 짜증난 것이 아닌 학년에 어울리지 않은 둘의 대화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초등학교 5학년이 나누는 대화에 세금이 나오고 어쩌구 하는데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알겠으나 좀 과하다 여겼다.


그 부분은 좀 더 쉽게 초등학생의 언어로 썼다면 훨씬 더 이 책은 재미있었을 것이라 난 판단한다. 내 입장에서 그 부분은 현실성이 떨어졌다. 그 이후부터 소설은 마구 달렸다.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은 가장 큰 이유는 전형적인 성장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드래곤 볼>이후에는 완전히 하나의 패턴으로 정립된 성장하며 더 거대한 상대방을 무찌르는 스토리말이다. 어떤 이야기를 할 지 몰랐는데 - 제목에 이미 다 나왔지만 - 소설은 권투가 소재가 된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아이의 성장스토리로 담아내고 있긴 하다. 이런 스타일을 또 어찌보면 아주 자주 나오는 반복적인 패턴이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이를 새롭게 재미있게 보여주느냐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흥미롭고 내용을 쫓아가게 만들어준다. 뒤에 가서는 살짝 이도저도 아닌 마무리가 된 느낌이 강하긴 했다. 뭐, 이 책은 사회부조리에 대한 책이 아니라 어느 인물의 권투를 하게 된 이유와 희노애락인 소설이라 봐도 무방하다.


분명히 작가는 책 겉면에 타이슨이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은 걸 소재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런 작품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너무 작품을 따지고 그 이면을 알아내려 노력하고 숨겨진 내용을 알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 책을 집중하며 읽게 만들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한 것이 아닐까. 나에겐 간만에 정말로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는 그 점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역시나 재미있는 소설은 분량이 길고 글이 깨알같아도 잘 읽힌다. 그런 소설이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마무리는 좀 그렇다.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재미있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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