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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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상코비치의 <혼자 책 읽는 시간>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블로그에 리뷰올린다는 걸 주변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 주변 지인이 책을 선물했다. 받자마자 리뷰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책을 선물 한 며칠 후부터 계속 관심을 보이며 언제 쓸 것인지 물어봐서 곤란하다는 리뷰가 올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분명히 읽게 되겠지만 책이 시중에 나오자마자 선물을 받았다.


어느덧 나도 몰랐는데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있다. 급한 책부터 - 도서관에서 대여한 - 독서하다보니 계속 우선순위에 밀려 있었는데 선물받은지 꽤 되었다는 걸 깨닫고 읽게되었다. 어떤 인물의 작품 세계를 알려면 그가 쓴 작품을 읽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지만 부족할 때가 많다. 이럴 때 작품을 쓰거나 만든 사람의 삶을 보면 이해 될 때가 있다. 아무리 작품세계와 작가의 세계는 다르다고 해도 작품을 만든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하루키가 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선 하루키의 작품 세계 중 일부를 이해하게 되었다. <노르웨이의 숲>을 비롯한 몇몇 작품을 넘어 어느 순간 작품 속 세계가 현실인데 판타지적인 요소가 뜬금없이 들어갔다. 상당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떨 때는 그런 내용이 작품 전체와 큰 상관이 없게도 느껴졌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이 판타지라면 당연하지만 그런 분야가 아니라는 편견이 나에게 있었다는 점도 고백한다. 그렇다해도 그런 부분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루키가 어떻게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원래 어릴 때부터 책도 많이 읽고 음악도 많이 들었지만 소설을 쓸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남들처럼 직장생활을 하기 싫어 음식점을 연다. 하루 종일 재즈음악을 틀어놓고 연주자도 불러 음악회도 한다. 금전적으로 큰 도움은 안 된 듯 하다. 어느 날 야구장 외야석에서 맥주를 마시며 야구시합을 보다 문득 '나도 소설을 쓸 수 있겠다.'라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선 소설을 썼다. 


지금도 히루키는 당시의 체험이 생생하게 몸으로 기억한다. 이런 신비로운 체험을 했으니 소설 속에서 뜬금없이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나 내용이 나왔다. 드디어 이해가 되었다. 어떤 인간도 과거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과거에서부터 응축된 모든 것의 총합이다. 직접 경험, 간접 경험, 생각, 상상 등.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내가 된다. 쓸데없는 경험이란 없다고 생각하는 내 이유다. 지금도 열심히 책을 읽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의뢰를 받아 소설을 쓴 적이 없다고 한다. 늘 자신이 쓰고 싶을 때 시작하고 퇴고한 후에 출판사에 보내는 작업 스타일이라 글을 못 쓰는 슬럼프가 온 적이 없다고 한다. 쓰기 싫은 데 억지로 쓴 적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매일같이 시간으로는 대략 5시간, 아마도 A4용지 2장 내외가 될 듯 하다. 절대로 이 분량 이상도 이하도 쓰지 않고 정확하게 그만큼 쓴다. 엄청나게 대단한 작업스타일같지만 대부분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그렇다. 한국 작가들도 그렇다.


이런 표현을 한다. '소설 한두 편을 써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 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 이건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이 얼마나 지극히 평범하게 대단하며 심오한 내용인가. 갈수록 절절히 느끼고 깨다는 것이다. 단순히 소설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삶이 대체로 그렇다. 특히 직업으로 월급을 받지 않으며 하는 일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 벽을 넘느냐 여부가 성공의 핵심이다. 나도 저자로서의 생활이 되어 살아남는것이 목표다.


많은 소설가가 나오고 자신보다 뛰어난 소설이 나오는 걸 환영한다. 오히려 그럴 때 작품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며 더 많이 판매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제로섬 게임이 아닌 플러스섬 게임이라고 말한다. 어차피 누군가 책을 펴 낸다고 해도 한정된 정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 자신의 고유 영역이 있다. 이런 글을 읽으니 괜히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이런 내용이 나온다. '소설가의 정원은 한정이 없지만 서점의 공간은 한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작품이 적어도 연대기적인 '실제 사례'로 남겨질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는 것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이 그렇다. 누구와 비교하고 앞서가는지 뒤떨어졌는지 여부에 따라 자랑하고 실망하며 비교하면서 시기, 질투 할 때도 많지만 끊임없이 남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루키도 운이 좋은 케이스에 속했지만 외국까지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이 들었고 본인이 스스로 직접 번역가를 구할 정도로 노력도 했다. 다만, 나는 전력을 다하진 않는 듯 하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가끔 글쓰기와 책쓰기에 관련된 글을 읽을 때 의아할 때가 있다. 나 자신이 글을 쓰고 책을 펴 낸 레코드가 있어 그럴지 몰라도 책을 읽지 않아도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하루키는 이에 대해 분명히 이야기한다. '아무튼 닥치는대로 읽을 것. (중략) 소설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초체력입니다.' 뛰어나지 않은 문장이라도 읽어야 한다. 문장을 써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위로 보자면 그건 나중에라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부합한다. 갑자기 하루키 책을 다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동일화의 오류가 나올 수 있지만 다음과 같은 말은 참 마음에 들었다. <아인슈타인은 온화하지만 진심으로 깜짝 놀란 표정을 보였습니다. 그러고는 "아, 그럴 필요가 없어요. 착상이 떠오르는 일이 거의 없으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도 '지금 내 손에 노트가 있었다면'하고 아쉬워할 만한 착상은 이때까지 거의 없었습니다. 게다가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한번 머릿속에 들어가면 그리 쉽게는 잊히지 않는 법입니다.> 맞다. 정말로 중요하다면 결국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떠오르게 되어 있다. 오히려 기록과 동시에 연기처럼 사라져서 머리에서 화학작용할 시간을 없애 버린다.


<직어으로서의 소설가>는 중반 이후부터는 다소 지루하다. 그래도 놀란 것은 자신이 속한 일본 문학계에 대해 가감없이 말한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판과 비평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역시나 중요한 것은 자존감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난 내 길을 걸어갈 뿐이야.' 이런 마음이 느껴졌다. 이번 책도 누가 의뢰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 쓰고 싶어 몇 년 동안 조금씩 썼다고 한다. 나도 앞으로 지금보다 더욱더 그렇게 써야겠다. 내가 쓰고 싶은 걸 내 마음대로 쓰자. 인기가 있을지 없을지 몰라도.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책 후반부는 좀 지루하다.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어느 분야나 최고는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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