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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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궁금했다. 일본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그토록 많은 책과 방송과 언론에서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늘 암울하다.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늘 우울한 것만 알려준다. 일본에서 살고 있은 일본인들은 다들 절망에 가득차서 우리가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힘들고 어렵게 살고 있을까. 전달되는 모든 정보들이 나쁜 것만 있으니 일본은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재미있게도 일본은 무려 1.27억명이 살고 있다. 한국보다 2배가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


왜 그들은 일본에서 여전히 살고 있을까. 그렇게 절망스러운 상황이라면 진작에 일본을 탈출해야 하지 않았을까. 무척이나 궁금했다. 일본에서 행복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텐데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왜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을까. 한국도 어쩌니 저쩌니 해도 행복하게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사회나 국가나 만족하며 사는 사람도 있고 불만족을 표현하며 탓하는 사람도 있고 정말로 더이상 기대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한국도 저물어가는 분야가 있는 반면에 뜨는 분야가 있다. 어느 곳이나 늘 부정과 긍정, 희망과 절망이 공존한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문제고 사회 집단과 국가는 좀 더 희망적인 사회와 국가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 와중에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젋은이들> 책을 보게 되었다. 책 제목처럼 일본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젊은이들 중에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읽었다.


막상 읽으니 단순히 일본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 - 특히 젊은층 - 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그 젊은이 연령대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다른데 책에서는 15세에서 30세까지를 말한다. 이들은 행복하다고 한다. 그것도 몇몇 사람들이 아닌 일본에서 조사한 통계를 근거로 한다. 과거보다 젊은층이 행복하다고 말한 비율이 오히려 올라갔다. 놀랍지 않은가. 일본은 망하기 직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2010년 기준으로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는 비율이 30대는 58.9%, 40대는 58.3%, 50대는 55.3%라고 응답했다. 20대는 무려 70.5%나 되었다. 다른 연령층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율이다. 20대가 만족한다는 비율은 1960년 후반에 60%였고, 1970년대에는 50%까지 떨어졌다. 만족하는 비율이 더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올랐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다소 배치되는 결과에 나도 깜짝놀랐다. 무연사회라니 초식남이라는 표현으로 아주 안 좋게 이야기하는 걸 감안하면 어리둥절할 정도다.

책에서 무조건 일본 젊은이들이 행복하다고 우기는 것은 아니다. 약간 서글플 수 있지만 이들이 행복한 이유는 '이보다 더 행복해 질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리 없다'라고 생각하기에 만족하며 산다는 것이다. 즉 고도성장기나 거품경제때보다는 불황이 찾아 왔을 때 행복해 한다. 미래에 희망을 걸지 않게 되면서 차라리 지금 행복하고 생활에 만족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생각과는 다소 다른 답이 나왔지만 중요한 것은 본인들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현 상황이 음울하고 기댈것도 없고 절망스러운 상황이라 체념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행복하다고 믿는다. 빅터 플랭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같은 책에서 말한다. 인간은 미래에 대해 대책없는 희망을 가질 때 오히려 불행을 느끼며 추운 겨울을 이겨내지 못하고 시름 앓다가 사망하고 희망은 갖되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차분하게 준비할 때 행복하다고. 


전쟁이 난다고 하면 일본 젊은이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비율이 무척 높다. 에도시대부터 그런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며 국가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세뇌를 받았지만 여전히 일본 젊은이들은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2011년에 나온 책이라 그 후에 벌어진 일본 이야기가 포함되지 않았지만 일본 쓰나미는 벌어진 이후다. 책에서는 일본 축구팀 사례를 든다. 모두 모여 일본을 응원한다. 이들은 목놓아 일본을 외치고 응원한다.


이것을 일본에 대한 애국심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이들은 그렇게 단합해서 응원할 뿐 그 이상은 아니다. 개인주의적이지만 어느 집단에 소속되기를 원한다. 실제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는데 이들은 딱히 일본에 대한 극우는 아니었다. 다들 여러가지 이유로 참여했고 다양한 의사표시 방법 중에 하나인데 이들은 이곳을 통해 소속감을 느끼고 여러 사람이 함께 한다는 점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약하고 호기심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특정 이데올로기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까지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시위가 국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의사표현 하나로 한다고 이 책에서는 본다. 더구나 일본 젊은이들은 일본 쓰나미때 현장을 가서 봉사를 하려했다.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오히려 높아진다. 일본도 한국처럼 정작 위험은 젊은이들이 하는데 말로만 떠드는 윗층에서는 쓰나미 현장을 찾지 않는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보수우익이라는 사람들은 선동하지만 정작 정말로 앞장서야 하는 곳에는 가지 않는다. 이건 좌익도 마찬가지라고 책에서 말하는데 어느 국가나 똑같나 보다.


'일본이 끝장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뭐?'라는 생각만 든다고 저자는 말한다. 역사는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다고 말한다. 내 생각과 같다. 현재를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바라보는 것까지는 맞지만 희망을 잃을 필요는 없다. 그래야 행복하다. 행복한 것도 지금이고 불행한 것도 지금이다. 선택은 내 몫이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생각과는 살짝 다른 책이었다.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인간은 그래도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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