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학 수업 - 우리가 다시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에리카 하야사키 지음, 이은주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죽음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어딘지 모르게 손에 잡히지 않는 뿌연 느낌이 아닌 죽음이라는 사실 앞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죽음은 늘 우리곁에 언제나 함께 있지만 우리는 인정하지 않고 살아간다. 살아있다는 이야기는 반드시 죽는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죽는다. 영혼불멸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든 생물학적으로 죽는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어릴 때 경험하는 죽음은 너무 무섭고 두렵다. 나이를 먹어가며 죽음이 아주 조금은 친숙해진다. 점점 한 명 두 명 주변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인생의 허무함을느끼게 되지만 여전히 죽음은 나와 상관이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나이를 먹어가며 생물학적인 에너지가 점점 떨어질 때 조차도 죽음을 간혹 생각하지만 애써 외면한다. 죽음은 나와는 무관한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죽음을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죽음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위해 철학적으로 접근도 한다. 죽음 이후의 사후 세계가 있는가에 대한 논쟁은 과거에도 앞으로도 계속 펼쳐질 것이다. 죽음 이후의 사후세계를 믿는가의 여부는 종교와도 결부되면서 답이 없다. 그런데, 한 개인과 주변 사람에게 죽음은 철학적으로 고고하게 논쟁할 이유가 없다. 누군가 죽었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 남겨진 사람은 어떻게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볼 때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자연스럽게 죽음을 준비하고 인정하는 시간을 갖고 죽는 사람과 주변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사망하는 사람의 주변 사람의 이야기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에서 사라진다. 그의 흔적은 여전히 내 삶 곳곳에 남아있는데 만날 수가 없다. 단순히 사라졌을 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감정과 죽음으로 인해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감정은 볼 수 없다는 사실은 같아도 감정은 다르다.

 

'죽음학 수업'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죽음 자체에 대해 언급하고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죽음 근처에 맴도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한 사람 주변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끔찍한 고통을 동반한 죽음으로 세상을 떠나보낸 가족과 지인들의 이야기다. 단순히 누군가 죽었다. 그를 추모한다가 아니다. 그의 죽음은 나에게 더할 수 없는 감정과 정신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기고 떠났다.

 

평생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갈 수 없다. 저 멀리 음침한 곳으로 밀어내고 살아가서도 안 된다. 괴물이 되어 나타나 나를 잡아 먹을 수 있다. 누구도 괴물을 물리쳐 주지 않는다. 나 스스로 물리쳐야 한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승화해야 한다. 나 자신이 정신적 충격과 감정의 페혜를 슬기롭게 이겨내지 못하면 나 또한 삶이 피폐해진다. 겉은 멀쩡해도 속은 썩어들어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죽음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몰랐다. 죽음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책들을 읽었고 제목이 수업이라 하여 당연히 철학적인 수업강의를 한 어느 교수가 쓴 책이라 여겼다. 책은 교수가 아닌 한 저널리스트가 죽음학 수업을 참여하여 교수와 그 제자들의 이야기를 소설형식으로 썼다. 분명히 사실을 쓴 내용인데 워낙 현장감과 감정의 묘사를 잘 살려서 소설을 읽고 있는 착각과 흡인력으로 집중해서 읽었다.

죽음학 수업 자체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직접 느껴보고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커리큘럼이다. 타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배우고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보는 여정이다. 대학 수업이라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아무래도 생생한 느낌을 갖기는 힘들 듯 하다. 그에 반해 주변인의 죽음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부분이라 현장감있고 깊은 상처로 각인이 되어 있다. 특히, 책에서 소개되는 학생들은 하나같이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죽음학 수업을 가르치는 교수부터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어났고 엄마가 키우려 하지 않다가 자신을 키웠지만 자신때문에 엄마의 꿈을 잃었다고 구박하며 괴롭혔고 부부가 함께 살았지만 서로 이혼했다 만나기를 반복하며 끔찍한 경험한 선사했고 교수의 딸을 고층 난간에서 위험한 행동을 하는 등의 엄마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아빠, 자신을 실제로 키워준 할머니의 사망등의 상처를 갖고 있다.

제자중에 아버지가 이혼한 어머니를 어느 밤에 갑자기 수십차례 칼로 찔러 죽인다. 과대망상증에 사로집힌 행동인데 이 광경을 목격한다. 불행히도 자신의 동생마저 과대망상증이 유전되어 생각지도 못한 죽음을 맞이한다. 또 한 명은 엄마가 늘 약물 과다복용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이로 인해 부부는 늘 싸우고 둘 사이를 자신의 케어해야하는 상황이다. 어릴 때 갱단의 마약연락책으로 활동한 한 친구는 상대방 조직의 가족을 전부 총으로 위협하고 결국 죽이지는 않는다. 이런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학생들이 책의 주인공이다.

우리나라도 쉽지 않겠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정말로 마약과 무기소지가 엄청난 문제인 듯 하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 가는 것인지 늘 조마조마하고 힘들 것 같다. 책에서는 정신이상으로 대학에 난입하여 교수와 학생을 죽이고 자살한 학생의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죽음후에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이를 치유하고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 소설처럼 묘사하고 있어 소설을 읽는것처럼 푹 빠져 읽게 만들어준다.

과연, 나라면 저런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바로 눈 앞에서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를 본다. 그리고 아버지는 모든 식구들을 차에 태우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살았다. 그 이후에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어른이 되어서 이런 경험을 해도 치유가 쉽지 않은데 청소년 시절에 이런 경험을 한 친구들은 거의 100%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고 인생을 스스로 망가뜨린다. 그가 한 행동의 결과가 아닌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소설이 아니라 책은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니다. 현실과 상황에 상관없이 삶은 계속된다. 기쁜 일과 슬픈 일은 반복되어 나타난다. 인생은 계속된다. 죽음이라는 엄청난 경험은 가장 강렬한 경험이다. 나조차도 죽음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생각은 했어도 내 주변 가족의 죽음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했다. 앞으로도 외면할 것이다. 굳이 상상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토록 죽음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내가 아닌 나와 친한 사람의 죽음은 더더욱. 죽음학 수업은 그런 면에서 필요한 것이라 본다. 그런데, 내가 그 수업을 참여할 것 같지가 않다.

 

 

함께 읽을 책(사진클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