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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ㅣ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평점 :
아무 이유없이 끌리는 책은 없다. 단 하나라도 끌리는 이유가 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점 말고도 우연히 누군가 소개하는 글을 지나가며 살짝 읽었는데 재미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100세인 남자라는 점이 더욱 흥미를 끌었다. 책 제목에서부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라고 하니 어떤 내용일지에 대한 궁금증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소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작품의 창조자인 소설가는 피하려 해도 당시대에 읽고 보고 듣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상상을 통해 현재와는 상관없는 가상의 공간을 만든다고 해도 그가 작품을 쓸 당시를 살아가는 한 명의 사람이라는 점은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모든 소설은 은연중에 작가의 가치관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현실에서 하지 못한 것을 소설로 풀어버린다고 해도 말이다.
유쾌한 소설은 의외로 드물다.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규정내릴 수는 없어도 유익하거나 재미를 얻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인데 이상하게도 유쾌한 소설에서는 이런 두 종류를 얻는 것이 쉽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인지 유쾌하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상대적으로 드문편인데 이 책은 유쾌하게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책을 읽으면서 떠 오른 것은 '포레스트 검프'였다. 포레스트 검프를 보면 그가 성장하면서 자신의 의도와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국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때마다 참여하는 장면에 예전 화면을 합성해서 보여주는데 이 책의 주인공인 '알란'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비범하다고 할 수 없지만 멍청하지도 않은 알런은 정치와 종교이야기라면 질색이지만 그 외에는 무난하게 들어주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잘 들어주는 스타일이 아니라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가장 큰 장점은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 놓여도 절대로 긍정적인 마음을 버리지 않고 - 실제로는 생각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 내일은 고민하기보다는 지금 당장의 상황을 즐기고 편안하게 부담없이 즐기려 한다는 것이다. 잔 머리를 굴리기보다는 진솔하게 할 말은 한다. 약간, 주책없고 눈치 없는 것도 있어 할 말 못 할말을 가리지 않는다고 볼 수 도 있지만 남이야 어떻하든 본인이 마음 편하고 느긋하니 본인으로써는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
알란의 인생관을 보면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인물이다. 쾌세라세라하는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은 아닌 듯 하지만 도저히 내일이라는 것은 머리에 없는 듯 하다. 내일을 생각한다면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포자기는 분명히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우선 지금은 무엇을 하고 싶다고 말하며 모든 것을 정지시키기도 한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지는 것이다.
책은 알란이 양로원에서 100세 생일을 맞아 창문 넘어 탈출(??)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어느 할아버지가 양로원에서 나와 벌이는 일대 소동의 소설이라 생각했다. 뜻하지 않게 큰 사건에 휘말려 벌어지는. 초반에는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갑자기 과거와 현재가 교차로 보여주는데 과거가 알란의 80년 전부터 시작해서 연대기순으로 하나씩 하나씩 알란이 만나게 된 사람들과 사건들이다.
원래, 폭탄을 조작하던 알란이 우연히 미국으로 넘어거 원자폭탄의 힌트를 과학자들에게 알려주고 중국으로 넘어가 마오쩌둥의 부인을 도와주고 조국인 스웨덴으로 가기위해 히말라야를 넘어 이란으로 가게되어 거기서 처칠을 우연히 돕고 그 나라의 사건을 해결하고 스웨덴에서 다시 소련으로 넘어가 이번에도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도와주고 블라디보스톡에서 북한으로 간 후에 인도네시아의 발리에서 있는 등등. 한 개인이 경험할 수 없는 엄청난 인물들과 지역을 돌아다닌다.
현재 100세가 된 알란도 마찬가지로 가는 곳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한 명씩 한 명씩 친해지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게 되는데 읽으면서 이런 대단한 인물이 도대체 왜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은 조그만한 시골 양로원에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작가는 친절하게도 그 이유를 마지막에 가서 알려주고 또 다시 과거와 현재가 겹쳐진 후에 모든 인물들은 - 이상한 놈, 괴상한 놈, 욕많은 ㄴ ㅕ ㄴ, 나쁜 놈등 - 모두 친구가 되어 발리로 가는 이야기다.
시종일관 유쾌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분명히 알란이 가는 곳마다 그곳의 환경이나 분위기는 장난이 아니다. 엄청 살벌하고 죽음이 바로 눈 앞에 벌어지는 현장인데 - 실제로 알란이 가는 곳마다 본인 말고는 다 죽는다 -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자약하게 태평하다. 그가 100세까지 살아남은 이유다. 엄청난 인물이 아니라 엄청나게 운이 좋은 인물이 바로 알란인 것이다. 운빨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인물!
분명히 책의 내용 자체는 가볍고 유쾌할 수 없다. 추리, 스릴러 장르라도 해도 될 정도로 참 많은 인물이 죽어나간다. 그럼에도 그들의 죽음은 끔찍하거나 무섭고 두렵지 않고 코믹(??)하고 의당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알란이라는 인물이 갖는 매력이 넘치는데 그가 과거에 만난 인물들이 하나같이 세계사에서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지만 현재 만나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이 더욱 사랑스럽고 친근하고 호감간다.
그들과 행복한 결말을 맞는 것이 책을 읽는 더 큰 재미다. 책에서 성경책에 딱 하나의 문구를 마지막에 넣었다. 그 구절은 바로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 글을 읽고 순간적으로 뿜었다. 맞다. 성경을 읽고 동화책처럼 해피엔딩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지도 못한 위트가 넘쳤다. 그 성경책들은 그런 이유로 팔리지 못하고 재고가 되었다고 하는데 성경 내용 마지막이 그렇게 끝나면 행복할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더워지는데 더운 여름에 어쩔 수 없이 흐르는 땀을 거부하지 말고 흘리면서 이 책을 펼쳐들고 시원한 야자수 나무 밑에서 살랑 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야자수 그물침대에 누워 읽으면 더할 수 없이 행복하지 않을까 한다. 모든 것이 정지된 곳에서 모든 것을 읽고 유쾌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마저 편안해 질 것 같다. 역시, 소설은 글을 잘 쓰고, 미묘한 묘사가 훌륭한 것보다는 줄거리가 재미있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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