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인간 한스 올라브 랄룸 범죄 스릴러 시리즈 2
한스 올라브 랄룸 지음, 손화수 옮김 / 책에이름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한 인간은 얼마나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모두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주인공으로 산다고 믿고 있겠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내 의지로 살 수는 없다. 의지만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돈을 벌고 돈을 쓰는 것도 자신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사고 싶은 것을 꼭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살고 싶은 곳에 꼭 살게 되는 것도 아니다.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하기 싫어도 누군가의 지시로 해야만 한다.

 

많은 것들이 돈을 얻어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해도 이 역시도 완벽하지 않다. 돈과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부탁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되기도 하고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어떤 일을 하거나 구입하기도 한다. 이렇듯이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고 있다는 착각과 달리 다양한 상황과 정황과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평소에도 이럴찐대 내 주변에 있는 사람중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 있다면 그로부터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내 아버지가 그렇다면 더더욱. 아니면, 그로부터 어떤 금전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면 말이다. 우리가 사장을 어려워하는 것이 나에게 봉급을 주는 결정자라 그렇다. 신경을 쓰기 싫어도 써야 하고 그가 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따를 수 밖에 없고 무언의 동의를 해야 할 때가 너무 많다. 자신이 평생토록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주는 대상자에게 과연 할 말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미치지 않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길들이면 된다. 나를 떠나서는 살 수 없게 만들면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떠나지 못한다. 이미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책에서는 '위성인간'이라 부른다. 이들은 증오의 감정을 갖고 있지만 그가 주는 달콤함에 이미 길들여져 다른 선택의 대안이 전혀 없다. 위성이 지구에서 떨어지면 본연의 가치가 사라지고 쓸모없는 쓰레기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전부 그 자리가 부담스럽고 싫지만 억지로 참여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의 존재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기업주는 교묘히 이용하며 계속 사람들을 머물게 하고 도저히 떠날 엄두를 못하게 길들였다. 첫째, 둘째, 셋째 부인과 자녀들과 떠나지 못하는 인간들로 구성된 파티에서 절대권력자가 죽는다. 그것도 예고한 대로.

 

'위성인간'은 최근에 소개되는 추리소설과 다른 점이 바로 정통 추리소설이라는 것이다. 더 자극적이고 추리보다 스릴러에 가까운 추리 소설의 장르지만 그래도 추리 소설의 본류인 유럽에서는 여전히 스릴러보다는 추리쪽에 좀 더 비중을 둔다고 보는데 그중에서도 한스 올리브 랄룸은 정통 추리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정통 추리 소설이라고 하면 코난 도일이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책의 초반에 아가사 크리스티에게 이 작품을 받친다고 한다. 책 초반부에 떠 오른 장면은 그 유명한 만화 '소년 탐정 김전일'에서 항상 외치는 밀실 살인 사건이다. 외부와는 철저히 분리된 공간에서 모든 사람들이 한정된 공간에 갖혀 있는데 살인사건이 난다. 빠져 나갈 곳도 없고 들어올 곳도 없는데 살인이 벌어진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추리가 시작되고 어떻게 살인이 되었는지 미궁에 빠지면서 해결하는 과정이 그려진 소년탐정 김전일의 도입부와 같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에서 많은 부분을 빚졌다고 하는데 작가가 '소년탐정 김전일'도 아는지 모르겠다.

 

오로지, 추리로만 사건을 해결하는 것과 같은 공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때부터 모든 사람이 범인이 될 수 있다. 다들 각자의 사연으로 살인자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다. 한 명씩 한 명씩 살해된 사람과의 공통점과 과거에 얽혀 있던 내용들이 벗겨지며 서로의 민낯이 드러나며 이야기는 점점 더 미궁에 빠진다. 추가 살인사건이 나면서.

 

추리 소설은 그런 면에서 작가와 독자가 함께 벌이는 지적게임이다. 환경을 만들어 놓고 독자가 내용을 읽으면서 누가 범인인지 추리를 하며 미리 짐작을 하고 작가는 다시 허를 찌르며 아니라고 한다. 마지막에 가서 모든 퍼즐이 하나로 연결되며 완결된다. 눈치 빠른 독자는 중반 이후부터 어림짐작으로 알아채지만 이 역시도 어떤 반전이 있을 지 모르게 된다. 늘 패턴은 가장 가깝고 그렇지 않을 인물인 경우가 대다수지만.

 

뜻하지 우연이 결합되어 사건의 해결은 더욱 늪으로 빠진다. '위성인간'의 내용도 그렇다. 이 사람인가 저 사람인가 하면서 추리를 함께 하는 재미가 있다. 유럽 추리 소설은 - 최근 작품 - 의외로 나치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직접적으로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해결의 실마리를 주는 소재로 쓰이는데 그만큼 유럽인들이 이를 통해 과거의 잘못을 끊임없이 되살려 잊지 않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보인다. 그런 면에서 동아시아의 작품들에서 아쉬움이 있다.

 

책에서는 엄청 잔인하다는 표현을 하는데 절대로 그런 장면이 현재의 기준으로 볼 때는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책의 배경이 60년대라 그렇지 않을까 한다. 특이하게도 최근에 저술한 책임에도 시대배경이 과거이다. 추리소설이라 그럴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저자 자신이 직접 홈즈와 왓슨을 차용했다는 표현을 한 것처럼 모든 조건을 만져 추리하는 매력적인 인물도 나온다.

 

여러모로, 추리 스릴러 장르에서 스릴러를 제외한 정통 추리 분야의 맛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책이다. 대신에 긴장감넘치는 장면이나 스릴 넘치는 장면은 없다. 차분하게 하나씩 하나씩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추리 소설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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