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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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제일 유명하다. 농담도 기억속에 남아 있어 선택하게 되었다. 현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모두 읽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듯 하여 유명한 작품 위주로 선택해서 읽고 있어 농담을 읽을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농담도 분명히 내 기억속에 있는 것으로 보아 유명하다는 판단이 들어 읽기로 했다. 아니면, 농담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친숙함에 선택했거나.

 

농담을 즐겨하는 편인데 농담 자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고 인간중에서도 언어사용이 풍부하고 관찰을 잘 하는 사람이 하는 한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이면서 웃기도 한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 우스운 상황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농담을 빙자한 상대방의 자아를 괴롭히는 농담도 있다.

 

예전에 농담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농담으로 타인이 실망감과 상처를 입는다면 농담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일견 맞는 말이다. 우리는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농담의 당사자는 기분이 나쁠 수 있다. 될 수 있는 타인을 상대로 한 농담은 조심해야 하지만 농담은 사람들 사이를 더욱 친근하게 만들고 부드럽게 하는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데 있어 농담만큼 좋은 것도 없다.

 

책에서 농담은 그다지 농담이라 생각할 수 없게 시작된다. 또한, 책에서는 농담이라는 단어가 제법 많이 나오는데 - 책 제목 때문에 더욱 유심해서 본 측면도 있을 것이다 - 그때마다 농담이 별 의미없어 보이기도 하고 상황에서 중요한 요소로 보이기도 한다. 농담으로 인해 인생이 꼬여버린 루드빅을 생각하면 농담은 더이상 하지 말아야 할 지도 모르지만 농담을 한다는 것은 세상을 즐겁게 살아가는 의미로도 보볼 수 있다. 마음에 즐거움이나 긍정이 없다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좋아하는 여자에게 보낸 엽서에 쓴 농담때문에 공산주의 국가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사람으로 지목받아 학교에서 축출을 당한다. 경직된 사회에서는 사소한 농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농담이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받아들인다. 웃어 넘길 수 있는 상황에서 경직된 표정으로 기분나뻐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가 박탈되어 있다는 뜻이 된다.

 

개인과 개인끼리의 농담은 어느 정도 자유롭게 가능하지만 개인을 넘는 농담에 충분히 웃어 넘길 수 있느냐의 여부가 그 단체나 집단이나 국가가 포용력과 함께 스스로 자신에게 떳떳하느냐와 결부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같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 후에 농담이라고 치부하는 변명은 말고 말이다.

루드빅은 그렇게 한 여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했던 농담으로 인해 인생이 완전히 변모한다.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좋은 인생이 눈 앞에 있었을텐데 학교에서 나와 군대를 가게 된다. 군대에서 중요한 것은 상사이다. 어떤 상사가 오느냐에 따라 군대생활이 달라지는데 밑의 부하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하라는대로 할 수 밖에 없다. 군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내가 속해 있는 단체에서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인간으로써 그저 지위가 높다는 것일 뿐이지 더 많은 경험과 인격과 지식이 있다는 뜻이 아닌데 지위가 깡패라는 말까지 있다.

 

군대에서 만난 루치에에게 다시 온갖 정성을 들이지만 서로 사랑은 했지만 그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 실패한다. 루드빅 입장에서. 모든 것이 차단된 공간에서 지낸 루드빅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였고 루치에는 그 이상을 생각했던 것이 다시 한 번 사랑에 실패하게 된다. 뜻하지 않은 삶의 추락은 여러가지로 생각지도 못한 인생의 항로를 떠나게 만든다.

 

루드빅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데 책은 그다지 단순하지가 않다. 내용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시점이 단순하지 않다. 매 챕터마다 나라고 하는 화자가 다르다. 루드빅, 헬레나, 야로슬라브라는 세 명이 대표적인 화지인데 매 챕터에서 이름이 나온 후에 '나는'이라고 시작하면 그 화자가 챕터의 주인공이 된다. 가뜩이나 우리나라 이름도 아니고 친근한 영어식 이름도 아닌데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

 

더구나, 마지막 장은 '나는'이라고 시작하지만 도대체 그 나가 누구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그저 나라고 시작한다. 한참을 읽고 있어야 나가 누군이지 알게 된다. 읽고 있으면서 도대체 누가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읽다보면 그제서야 '누구'라고 알게된다.

 

대체적으로 1인칭 시점으로 쓰는 소설들은 나라는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서술하는데 반해 여러 사람이 자신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하다보니 한 명에 적응되면 다른 인물이 나온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딱히 여러 사람의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보는게 재미있거나 다른 관점으로 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계속 루드빅의 관점으로 책이 구성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끊임없이 한 남자가 사랑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도 보인다. 단 한명에게도 진실한 사랑을 받지 못했던 루드빅은 자신의 인생을 꼬이게 만든 제마넥에 대한 복수로 거짓 사랑을 보여 함께 하게 된 부인인 헬레나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루드빅에게 매달리고 떨어지지 못해 안달이 난다.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철저하게 계산해서 사랑하지 않지만 보여준 거짓된 사랑은 진정으로 나를 원하는 상황이라니.

 

책 말미에 '너는 그 여자에게 똥을 싸게 했어'라는 표현이 나온다. 루드빅을 사랑하는 헬레나의 현재 모습을 은유가 아닌 실제 모습을 이야기한 것인데 얼마나 상황이 우스운지 나도 모르게 뿜으면서 웃었다. 이런 작품에서 말이다. 전체적인 상황을 알게 되어 웃을 수 있는 장면인데 이것은 농담이라 할만큼 우스운 말이지만 결코 농담이 아니라는 것이 더 웃낀다. 정말로, 개그 콘서트에서나 나올법한 상황이였다.

 

폐쇄되고 경직된 공산주의 국가인 체코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생각보다는 경직되지 않고 자유롭게 이뤄진다는 사실이 오히려 내가 알고 있는 공산주의 국가보다 더 자유롭다는 점이 학생시절의 잘못된 교육의 폐허로 보였다. 물론, 많이 경직되어 있고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같은 시대에 우리나라가 공산주의였던 체코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아 보였다. 이미, 공산주의는 역사의 뒷안길로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경직되고 농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는 공산주의가 문제는 아니라 보인다.

 

아직도 윗 사람에 대한 가벼운 농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먼저 눈치를 보며 정신적인 검열을 하기도 하고 자신에 대한 농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직된 사고를 갖고 있는 윗선의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여전히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는 건전하지 못한 사회라고 생각된다. 아무리, 창의력을 외치고 자유로운 사고를 요구한다고 해도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부터도 사고가 경직되어 있는데 어떻게 자유로운 생각이 표출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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