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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평점 :

서머싯 몸은 영국 작가이지만 파리에서 태어나 의사를 하다 문학을 하게 된 인물이다. 고등학교때 '달과 6펜스'를 읽었는데 사실 당시에는 고갱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걸 보면 문학작품을 아주 안 읽지는 않았던 듯 하다. 전혀 기억에 없었는데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의 작품을 보다보면 읽었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말이다. 문제는 읽었다는 기억만이 존재할 뿐 어떤 내용인지는 기억 저편으로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니, 뒤늦게 읽었다는 기억만이 작품을 보고 떠올랐을 것이다.
'인간의 굴레에서'는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한다. 스스로 서문을 통해 이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아마도, 여러 추측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밝힌 듯 한데 작품의 초기부터 밝힌 것은 아니고 작품이 출판된지 꽤 시간이 지난 후 작품이 빛을 발하며 갈수록 인기를 끌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때 새로운 판본을 내면서 밝힌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굴레라는 표현은 속박이라고 할 수 도 있는데 원제는 'of human bondage'이다. 번역서같은 경우에는 우리나라 말로 표현된 제목이 아니라 원제를 찾아보고 그 뜻을 파악하기도 하는데 이 책의 원제인 bondage는 덕분에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해 준다. 단어를 검색하니 19세용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여 찾아보니 인간의 몸을 묶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단순히 포박의 개념이 아니라 성적인 결박을 의미한다.
'인간의 굴레에서'라는 책 제목에서는 절대로 그러한 점을 전혀 의식하지도 뉘앙스도 알 수 없다. 그저, 인간이라는 존재가 유한하지 않고 특정한 상황이나 장소에 묶일 수 밖에 없는 걸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한편으로 1,2권으로 나눠진 책 중에 1권만 읽기는 했지만 bondage라는 의미중에 성적인 개념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을 듯 하다는 판단도 든다.
인간의 굴레에서 1권은 유년기 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의 성장기를 그리고 있는데 지금보다 더 성숙하고 조숙했던 시대 - 책의 배경은 19세기 말이다 - 를 생각하면 젊은 남성에게 성적인 문제는 가볍게 다룰 수 있는 부분도 아닐 뿐더러 실제로 책에서도 자세하게 묘사된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한 남성으로써 이성인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추파를 던지고 연예를 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인간이라는 몸은 한계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에 비해 영혼은 자유롭다고 하지만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까에 대한 부분은 의문을 갖게 된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자신이 보고 듣고 읽은 것을 결코 뛰어넘을 수는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신적인 존재(인간)는 없다고 볼 때 어떤 것이든 무조건 인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보인다.

1권만 해도 무려 500페이지에 빽빽하게 글들로 가득하다. 예전 작가들의 글은 페이지 마다 글로 가득하고 행간의 틈도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내용이 채워져 있다. 과거의 사람들이 현재의 사람들보다 더 한가하고 여유가 있어 더욱 많은 시간을 글쓰는데 집중할 수 있고 책 읽는데 집중할 수 있어 그렇고 현대인들은 워낙 바뻐 글의 행이 넓고 간단명료하게 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는데 불과 20년 전만해도 소설이라고 하면 의례 글들로 가득했다. '태백산맥'같은 경우도 몇 페이지에 이어서 새로운 문단도 나오지 않고 글이 이어질 정도이니 말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책을 통해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의 많은 부분을 보낸 것이 아닐까싶기도 하다.
책의 주인공인 필립은 어릴 때 부모를 여위고 숙부를 통해 기숙사로 가 한쪽 다리를 불편하여 제대로 학교생활을 평범(??)하게 보내지 못했지만 나름 비상한 머리를 통해 성적을 유지했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조기에 때려치우고 평소에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듣던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파리를 가 2년 동안 노력하지만 자신은 이류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영국으로 와서 의사가 되기로 하는게 1권의 내용이다.
학교 기숙사에서 비록 따를 당했지만 인기있는 친구에게 관심을 받아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새로운 친구를 찾아 간 인기남에게 -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방편으로 상대적 약자들을 가깝게 했는지도 - 절망하고 성직자가 되기를 바라는 숙부와 달리 오히려 종교에 대한 반감을 통해 옥스포드를 포기하고 파리에서 화가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실력이 향상되지만 출품에서 떨어진 후 냉정한 비판을 받고 예술에서 이류가 되는 것은 비참하다면서 아버지의 직업이였던 의사가 되기로 하고 의사 수련을 받지만 중간 시험에서는 2번이나 낙방을 한다.
파리로 가기전 자신의 이모뻘인 여성과 남성으로써의 호기심을 충족하고 파리에 가서는 남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여성에게 약간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오해를 사게 만들어 상처를 준 후에 영국으로 건너와 자신에게 관심을 전혀 갖지 않고 반항(??)하는 여성에게 마음이 끌려 공부는 뒷전이고 오로지 한 여자에게 모든 시간을 받쳐 얼마정도의 관심과 시간을 공유하지만 냉정한 여자는 사랑도 딱히 하지 않았지만 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한 남성과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다.
간략하게 '인간의 굴레에서' 주인공 필립의 삶을 요약한 것이다. 여러 번 자신의 직업을 찾기 위한 과정을 겪고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몰라 조금이라도 재능이 있는 부분에 뛰어든다. 아니라고 판단을 내리고는 진로를 변경한다. 그리고 보니 중간에 회계사가 되기 위해 1년 동안 도제 시스템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지금과 달리 평균 수명도 짧고 한 직업을 택하면 계속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사회였을텐데 - 아마도 - 과감히 거부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걸 찾아 헤매는 것은 젊음의 특권이라 생각한다. 20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특권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해 보고 싶고 조금이라도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 해 보는 것이 인간이 갖고 있는 굴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길이라 본다.
막상 해 보면 스스로 깨닫게 된다. 막연히 동경하고 상상을 했던 것과 직접 해 볼 때 그 간격과 실재의 차이에 대해서 말이다. 책의 주인공처럼 2류가 될 바에는 하지 않겠다는 것도 좋고 2류여도 상관없다는 생각도 좋다고 본다.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는 방법은 죽음이외에는 없다고 본다. 그럴바에는 해 볼 수 있는 것을 해 보는 것이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것이 아닐까싶다.
소설 막판에는 한 여자에게 꽂혀 쫓아다니는 내용인데 좀 짜증은 났다. 난, 아무리 그래도 좋다고 쫓아다닌 후에 사귀게 되었는데도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한다면 포기할 것 같은데 말이다. 좀, 굴욕적인 구애는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서로간의 관계도 유지되기 힘들다고 본다. 어느 한 쪽이 좀 더 좋아할 수는 있어도 말이다. 결국에는 여자가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되고 2권부터 본격적으로 새로운 이성과의 만남과 재능을 찾아가는 과정이 나올련지 확인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