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
김동인 외 지음, 이남호 엮음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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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전집을 시리즈로 1편부터 차례로 읽고 있지만 엄연히 한국 문학도 세계에 들어간다. 한편으로는 굳이 세계문학전집에 한국 문학 소설을 넣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만 시리즈물에 10번째로 당당히 들어가 있으니 차례로 첫 권부터 읽기 시작한 나로써는 건너 뛰지 않고 읽는다만 언제 다 읽을지 평생에 걸쳐 다 읽기는 할련지 궁금하기는 하다.

 

 

한국 단편 문학선에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나오는데 대부분 내가 학창시절에 한 번씩은 언급되었던 작가들이다. 일제 강점기시대부터 해방 직후 시기까지의 소설들이고 주무대도 그 당시 한국 땅에서 벌어진 내용들이다. 읽고 있는 시간은 현재이지만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그 당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하면서 읽어야만 한다.

 

 

나는 책을 청소년 시절에 읽은 편에 속하기는 해도 그렇게 많이 읽지는 않았다고 여겼는데 이 책을 보다보니 내가 꽤 책을 읽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 이유는 비록, 교과서에 각 내용들이 조금씩 언급되고 소개되고 있지만 난 직접 교과서에 나온 소설을 읽었다는 게 이 책에 소개된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기억이 되 살아 났다.

 

 

김동인의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나도향의 물레방아, 김유정의 동백꽃, 이효석의 모밀꽃 필 무렵은 분명히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외에도 책에 소개된 저자들의 다른 책들도 분명하게 단지 책 제목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읽었다. 시험을 잘 치기 위해 책을 읽은 것은 아닌 듯 하다. 그냥, 자연스럽게 당시에는 지금처럼 책이 많지 않은 시절이였고 내가 구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 읽을 수 있었던 책이지 않을까 한다.

 

 

기억이라는 곳은 왜곡이 된다는 말처럼 몇 몇 작품들은 읽으면서 내가 예전에 읽고 기억했던 내용과 아주 약간 달라서 좀 혼동스럽기는 했다. 기억에 이효석의 모밀꽃 필 무렵도 메밀꽃 필 무렵이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미세하지만 약간씩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는 작품이 있었다.

 

 

이상의 날개 같은 작품은 읽어보니 거의 마지막 2~3페이지만 읽었는데 전체적인 작품을 읽지 않고 마지막 2~3페이지만 읽어서는 절대로 여기서 왜 이리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없겠구나라는 판단이 들었다. 이상의 날개같은 작품은 워낙 난해하고 해석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었는데 솔직히 읽으면서 눈에 보이는 글과 내용상으로 해석할 때 직독직해만 했을 때 어려운 것은 없어 보였다. 그 숨은 의미를 찾아가면 어려울 수 있겠으나 말이다.

 

 

사실, 국어 시험은 여타의 과목에 비해서 아주 좋은 성적을 올리기는 했으나 그 당시에도 어렴풋이 느꼈고 지금도 느끼는 것이 왜 작품의 해석을 시험을 통해 획일되게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읽는 사람에 따라 작품의 해석은 달라질 수 있고 작품의 의미는 천차만별이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꼭 의미여야만 정답이 되게 만드는 작품에 대한 시험과 정답은 말도 안된다고 본다. 

 

 

저자 자신이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이런 의미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작가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런 의미이고 이런 해석으로 읽어야 한다고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밝히지는 않을 것이다. 작품은 쓴 사람의 몫이 있고 작품을 읽는 사람의 몫이 엄연히 다르고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읽는 사람에게 다시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이라 본다. 그런 의미에서 어렸을 때 읽었던 것과 지금 읽는 것이 조금 다르기는 하였다.

꽤 많은 작품이 소개되는데 시대적 상황이 그러한 것처럼 작품도 시대상황을 표현할 수 밖에 없어 그런 것인지 소설이라는 것은 현실과는 달리 사람들에게 읽게 만들어야 하는 특정한 상황을 묘사해야만 하는 특수한 상황이라 그런지 몰라도 '한국단편문학선 1'에서는 총 12명의 작가에 19개의 작품을 소개하는데 특징중 하나라고 하면 제대로 된 가족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배제된 것인지 소설의 내용을 쓰다보니 굳이 다룰 필요가 없었는지 까지는 알 수 없고 당시의 시대상황이 평범한 일상적인 일들보다는 무엇인가 통제되고 터질 듯 한 에너지와 체념의 에너지가 공존하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부부만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부가 결혼을 했으나 자식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거나 부부가 있고 자녀가 있었으나 부부중에 한 명이 얼마전에 사별을 했거나 현재 위급상황이거나 작품속에 부부 중에 한 명이 죽는 경우가 있다. 꼭 주인공이 아니라도 주변 인물이라도 언급되는 인물중에 제대로 된 가족이 나올 수도 있으나 그런 언급도 없었다. 물론, 단편소설이라 많은 부분을 언급하기보다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점은 있겠지만 말이다.

 

 

또 하나는 작품에 나오는 글과 말들이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한국말이라도 지역에 따라 다르고 쓰는 사람의 위치와 나이에 따라 약간씩 다른 것처럼 '한국단편문학선1'에 나오는 작품상의 시대에서 썼던 말이 지금과는 다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몇 몇 언어는 한국말이 아니라 외국어를 한국말로 써 놓은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만큼 한국말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었는지 알게 해 준다. 한편으로는 저런 말은 - 대략적으로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단어같은 경우 - 지금 다시 쓰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거의 사라지는 단어가 되어 버린 결과가 되어버렸는데 다시 살려내는 소명의식과 사명감을 갖고 현재의 소설가들이 작품에서 쓰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기는 한데 그럴려면 그 뜻에 대한 소개를 하지 않으면 읽는 독자가 무슨 의미인지 유추를 할 뿐일테니 쉽지는 않으리라 판단이 든다.

 

 

시간상으로 따져보면 20년도 넘어 한국 근대문학이라 할 수 있는 소설들을 다시 읽게 되었는데 조금은 감회가 새롭다고 해야할까? 특히, 다른 문학작품들도 읽는 게 그다지 쉬운 것은 아니였지만 분명히 번역을 통해 읽어야 하는 것과 달리 '한국단편문학선1'에 나온 작품들은 내 나라 작가들의 내 나라 말로 쓰여 있어 그 미묘한 뉘앙스와 깊은 뜻을 읽으면서 음미(까지는 아닐지라도)할 수 있어 최근의 작품들과는 다른 색다른 맛을 볼 수 있는 소설들이였다.

 

 

비록, 오랜 일제 강점기로 인해 몇 몇 소설가들이 변절하여 그 의미가 퇴색되기는 했지만 소개된 작품들은 그와는 별개로 한국 문학을 빛 낸 작품이니 - 그 후에 변절했으니 - 그것으로만 봐야 할 듯 하다. 또한, 이 책에서는 그러한 변절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작가 소개면에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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