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청년 바보의사
안수현 지음, 이기섭 엮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고백하건대 내가 믿고 있는 종교를 남들에게 굳이 전파하려 할 생각은 한 적이 없다. 그저, 내가 믿는 종교를 나로 인하여 욕을 먹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남들이 묻지 않는데 굳이 먼저 이야기를 하지도 않지만 내가 믿는 종교를 베드로처럼 부인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만약, 그 물음이 내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제일 최선은 나로 인하여 욕을 먹는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 사람들이 나를 본 후에 '저 사람이 믿는 종교를 나도 믿어봐야 겠다'정도이지만 밝히지 않는다면 분명히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 해도 이 책을 읽으면 그저 부끄러워지고 한없이 작아짐을 느낀다.





종교의 지도자나 나서서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영적인 존재만이 사람들에게 필요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더 깊은 공감과 유대감을 형성하여 많은 영향을 받는 것처럼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가깝게 다가 설 수 없는 분들이 하는 이야기의 이론적인 설교나 접근하기 힘든 그 분들의 알 수 없는 행동보다는 한 번 더 생각하면서 내 행동을 돌아보게 만들어 준다.





'낮은 곳에서 임하소서'라는 말이 있다. 말이 쉽지 이 말을 실천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너무 힘든 욕망이다. 나서려 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지만 인간은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기 원하고 떠 받쳐 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존재이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이 되고 충분히 사람들에게 그런 칭찬과 존경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무시하고 한결같이 낮은 곳에 임한다는 것은 보통 어련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남들이 세운 원칙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는 절망과도 같은 일이다. 스스로 세운 원칙을 지키기 위해 남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는 차라리 그 원칙을 안 지키는 것만 못하다. 책의 주인공인 안수현씨는 자신의 원칙으로 인해 남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자신이 편안하고 쉽게 갈 수 있는 것을 포기하며 실천하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의사들에게 갖는 이미지는 돈 많이 버는 직업, 개인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존재자로서의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자연스럽게 받는 사람이면서 환자로써 의사들을 만날 때 충분하게 눈을 맞쳐주며 이야기해 주지 않는 위에 군림한 사람이나 알 수 없는 용어를 자연스럽게 써 가며 우리에게 위압감을 주는 존재로도 보인다. 히포크라테스 선언을 통해 직업인으로써 갖는 이미지보다는 인간의 생명을 위하는 사람으로 보여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나고 느끼는 많은 의사들이 그렇다.





분명히 그렇지 않은 의사들이 더 많을 것이고 그들이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처리해야 하는 일의 속성상 그럴 수 있지만 일반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한다. 환자의 눈높이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들의 이야기가 회자되는 것은 그만큼 드물기 때문으로 보인다.





안수현이라는 의사는 그런 부분에서 진정으로 낮은 곳에서 환자의 눈 높이 정도가 아니라 환자가 어려워하고 힘들어 하는 점을 미리 먼저 긁어 줄 정도의 의사라는 점에서 뛰어난 의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내가 의료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확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놀란 점은 단순히 환자를 돌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환자의 집까지 방문하고 환자들의 대소사까지 챙겨줬다는 것이다.





솔직히 내가 의사라도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절대로 하지 못했을 듯 하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 정도까지는 직업적인 사명감이나 소명감을 갖고 했겠지만 그 이상으로 환자들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의사들 입장에서도 호불호가 있었겠지만 진정으로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행동이라 생각한다.





책은 의사 안수현이라는 사람이 자신에게 벌어진 여러가지 상황과 내면을 일기 형식으로 인터넷에 올린 글들과 안수현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사람들의 추모형식의 글로 엮여져 있다. 의사로써 분만 아니라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길잡이 역할도 했고, 한 교회의 성경모임 리더자로서 겪은 리더로써의 어려움과 사명감에 대해서도 언듯 언급되면서 이 시대의 리대가 진정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서까지 제시하고 있다.





시대가 가면 갈수록 각 개인들의 자존심과 자아는 강해지고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고 남들로부터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자의식은 강해지고 있다. 최소한 속으로 어떤 새각을 갖고 있던지 간에 겉으로 들어나는 모습에서는 남들을 존중하고 무릎을 꿇을 정도의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이제 구성원 다수는 결코 리더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안수현이라는 사람은 단순히 의사로써 자신의 의술을 펼친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써 다른 인간을 동등하고 대하고 진심으로 - 측은지심이 아니라 - 한 인격체로 마음을 교환하고 자신에게 주워진 것들을 불만 불평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 실천했다. 책을 통해 의사로써의 기술이 뛰어난지는 전혀 알 방법이 없지만 그가 훌륭한 의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의 거의 말미가 되도록 안수현이라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나오고 있지 않아 궁금했다. 암같은 불치의 병에 걸려 돌아가신 것으로 오독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자신의 일기가 나오리라고 생각했으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병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부분에서는 진정으로 인간은 신의 깊은 뜻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한 사람의 인생 성공(????)여부는 그의 사후에 알 수 있다고 한다. 이제 겨우 33살에 불과한 안수현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장례식장에 몇 천명이나 되는 사람이 왔다는 것은 그가 전파한 것들이 헛되지 않고 그로 인해 변화된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나와 동년배로 보인 한 사람과 비교하여 지금 당장 내가 사망한다면 장례식장에 오는 사람이 몇 천명은 커녕 몇 십명밖에 되지 않을까 한다.





예수님이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셨다면 지금과 같은 종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안수현이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 의술과 인술을 펼치며 옆의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동거동락하며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갖게 되면서 변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안수현이 보여준 사랑에 감화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후에 커밍아웃을 하며 안수현씨와 같은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책의 이야기는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죽음으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면 혹시 그에 대한 결례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 생존하지 않다는 점에서 - 그로 인해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 곳곳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안수현씨가 지키려 했던 가치관과 삶의 자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현재에도 아직 그가 이 땅에서 살고 있다고 보인다.





책을 읽으며 몹시도 부끄럽고 몹시도 창피하고 몹시도 부러웠다. 누군가에게 이렇게도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부러웠지만 그 이외에 그가 했던 그 모든 것에 대해 지금의 내 자신이 하는 행동과 생각에 부끄럽고 창피하면서 무엇인가 울컥하며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어떤 행동으로 구체화되어 움직일 지는 아직 모르겠다. 오랫동안 여러 생각을 하고 있고 해야지라며 미루고 있던 것들이 바로 지금이라는 속삭임을 해 주고 있는 듯 하기도 하다. 분명히 책을 읽은 지금과는 달리 오래되지 않아 잊고 살 수 있지만 결코 잊지 않고 구체화되지 않은 이 울컥을 실천할 것이라고 이렇게 글로써 남기며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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