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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도둑놀이
퍼 페터슨 지음, 손화수 옮김 / 가쎄(GASSE) / 2009년 9월
평점 :

60을 먹은 남자가 혼자 산다고 생각하면 아름다운 그림보다는 좀 궁상맞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한다. 현대의 방송시스템이 만들어 낸 잘못된 선입견인지 몰라도 여성이 그렇게 살아도 궁상맞다고 생각되지 않는데 남성이 혼자 산다면 처량해 보이는 것은 꼭 선입견은 아닌 듯 하다. 60을 넘은 남성들 중에 능력있는 남성은 그렇게나 꼭 재혼 - 젊은 여성이든 비슷한 연배이든 - 이 많은 것을 보면 말이다. 상대적으로 여성들은 같은 조건에 눈에 들 띄이는 것이 숨겨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의 인생을 살다보면 어느 특정시기나 사건을 계기로 그 전과 그 이후로 나눌 수 있게 되는데 - 모든 사람이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결혼을 기준으로 할 수 있다. 본인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 이 책의 제목인 말도둑 놀이를 전후로 주인공의 인생은 아이에서 청년으로 변화를 맛보게 된다.
좋게 표현하면 자연과 벗삼아 호연지기를 기르며 - 나이가 69세지만 - 살고 있고 안 좋은 쪽으로는 독거노인처럼 살고 있는 주인공이 중간 중간 과거를 회상하게 된 사람들과 사건을 만나며 현재와 과거각 되풀이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책에 나온 주인공은 남자 혼자 살고 있지만 결코 외롭거나 궁상맞지도 않고 스스로 독립적인 삶을 선택해서 외부의 모든 소음을 차단한체 살아가고 있다.
소년시절에는 누구나 좋은 것보다는 안 좋은 것에 더 관심이 끌리고 멋있어 보인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게 된 말도둑 놀이는 소년에게 다시는 소년으로 돌아 갈 수 없는 사건을 알게 해 준다. 책은 무척 담담하게 과거를 회사하고 느릿느릿 이야기가 전개된다. 급박한 사건도 없고 긴장 넘치는 줄거리도 없다.
누구나 다 갖고 있는 어릴 쩍 회상을 통해 과거를 그리고 있지만 결코 평범하지는 않은 삶을 보여준다. 특히, 소년들에게는 그 누구보다 자신들의 아버지가 바로 영웅이자 모든 것이다. 어릴 때 보이는 아버지의 모든 행동과 말투와 선택은 절대적이고 카리스마를 품어 도저히 따라갈수 없는 저 높은 존재이다.
특히, 아버지와의 추억이 정확하게 아버지가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라면 더더욱 아버지에게 갖고 있는 감정과 기억은 강력한 모습만이 뇌리속에 남아있지 않을까 한다. 책의 주인공에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다. 그가 한 모든 행동과 생각은 나이를 먹게 된 지금의 나보다 어리지만 아버지를 더욱 추억하게 만들고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발자취를 쫓게 만든다.
주인공의 삶 자체는 그다지 특별한 건 없이 평범하다. 아버지 부재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힌트도 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에 가서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고 - 정확하게 버렸다고 생각을 하지는 않는 듯 하다 - 떠났을지라도 그에게 아버지는 평생을 쫓아가야할 멘토가 되어버렸다.
우연히 맞주치게 된 옆 집 이웃에게 더 많은 비밀과 고통과 감정이 숨어 있지만 인생의 후반기를 시작한 두 인물들에게는 그런 비밀이나 고통을 갖고 가기에는 그들의 인생에선 보잘 것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미 과거는 추억의 대상일뿐 현재를 지배하는 뿌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총 3파트로 나눠져 있는 줄거리에서 한 파트마다 주인공은 조금씩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간다. 아니,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어른의 입장이 된 지금의 내가 볼 때 아버지가 어떤 감정으로 나를 지켜보았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 철저하게 내 입장에서 과거를 회상하기 때문에 - 그 당시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아들로써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써 아버지 앞에 서려고 노력을 한 게 아닐까 한다.
'아버지 제가 여기 있어요. 아버지의 아들로써 아니라, 한 남자로써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한 개인으로써 말이죠.'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소설에서는 결코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더구나, 그런 이야기를 직접 하는 것처럼 촌스런 소설도 없을 것이다. 불행히도 그런 책들이 제법 많은 것이 현실이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그 책을 읽는 독자가 느끼는 감정과 사고로써 그 안에 살아가는 것이지 작가가 이러쿵 저러쿵 요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고 난 본다.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소재는 꽤 많은 곳에서 쓰인다. 당연히 이 책의 주인공이 노르웨이 사람이니 더더욱 작품의 배경으로 쓰이는 것은 당연하다. 얼마나 우거지고 울창한지 숲 속에서 해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지 않을까 막연히 유추해 보게 된다. 그런거 보면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얼마나 대단하지 노르웨이의 숲을 가보고 싶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 노르웨이를 다녀 온 분의 말에 의하면 소득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고 풍요롭다고 한다.
시끄러운 공간에서 시끄러운 환경에 물들어 소음과 더불어 이책을 읽게 되었지만 수목원과 같은 고요한 곳에서 한적하게 내리째는 햇살을 맞으며 새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적막한 곳에서 한장 한장 읽다보면 소년의 성장과 더불어 풍요로워진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