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녹는 온도
정이현 지음 / 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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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책을 봤을 때 에세이라 생각했다. <우리가 녹는 온도>의 작가인 정이현은 <달콤한 나의 도시>로 유명하다. 드라마로도 제작되었기에 더욱 유명하다. 남성보다는 여성적인 감성이 독보인 걸로 알고 있었다. 가볍고 부담없이 에세이를 읽겠다는 생각을 읽기 시작했는데 무엇인가 이상했다. 에세이는 자신의 이야기나 자신과 관련된 내용을 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할 때 실명까지는 밝히지 않더라도 가명으로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초반에 두 사람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름이 함께 나오는데 별 생각이 없었다. 아마도 에피소드 1~2개를 읽은 후부터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일반 형식과 달리 소설이 나온 후에 작가의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 내용이 4~5장 정도로 짧다. 그 후에 작가의 이야기도 2~3장으로 더 짧다. 단편 소설이라 할 수 있는 내용을 앞에 배치하고 뒤에는 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는 형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구성된 책을 처음 읽어 그런지 적응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작가의 의도는 어떠한지 몰라도 단편 소설의 내용이 시간 순이라 느껴졌다. 내용 자체가 두 명의 연인 이야기는 분명히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 막 20대가 된 순간부터 중년의 나이까지 보여준다. 인생을 살아가며 경험할 수 있는 여러 에피소드를 하나씩 보여준다. 소설가가 좋은 것은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분명히 작가의 경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픽션이라는 공간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작가 이야기인 듯 아니다.

내용 구성은 '그들은'이 나온 후에 '나는'이 이어진다. 그들은에서 소설로 허구다. 나는에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책 표지에 그들은 다음에 나는이 있고 한 칸 띄워놓기 한 후에 '우리는'이 나온다. 책에서 아무리 읽어도 우리는과 관련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책을 읽은 사람들이 우리는 이라는 생각을 해 보라는 뜻이 아닐까싶다. 소설이지만 작가의 이야기가 담겨있기에 에세이라고 해도 좋다. 이런 형식의 글이 새롭게 도전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계획하는 인물과 즉흥적인 여행을 즐기는 인물이 나온다. 둘은 함께 여행하기로 한다. 계획녀는 여행 전에 엄청난 계획을 세워 브리핑할 정도다. 거기에 B안같은 것도 이미 마련되어 있다. 즉흥녀는 좀 질린다. 함께 여행가기로 했으니 군말 하지 않고 간다. 어디를 가든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계획녀지만 여행이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즉흥녀는 별 상관하지 않지만 계획녀는 너무 미안해하고 자신때문에 여행을 망쳤다는 자책까지 한다.

여행을 그다지 다니지 않는 편이지만 나도 즉흥에 좀 더 가깝다. 미리 엄청나게 알아보기 보다는 대략적으로 갈 곳 정하고 숙소 정도만 미리 파악한다. 그 외는 현장에 가서 돌아다니며 놀고 먹는다. 패키지 여행이 아무 생각없이 따라다니면 되느 것처럼 소설 속 인물과 함께 다니면 무척 편할 듯하다. 너무 꼼꼼하게 계획했는데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을 때 반응을 제외하면 함께 다녀도 재미있을 듯하다. 여행이란 그저 가고 먹고 자고 보고 놀면 된다는 입장이다. 국내 여행이라면 더더욱.

한 연인이 있다. 둘은 사귀고 있지만 함께 거주하는 것은 쉽지 않다. 둘 다 일하며 돈을 벌지만 정착할 정도의 벌이는 아니다. 둘은 모텔 등에 가끔 기거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둘은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함께 살기로 하고 집을 구한다.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에 결혼은 아니라고 한다. 동거냐는 눈빛에 그저..라는 표정이었다. 둘은 함께 집을 구하며 현실에 맞닿뜨린다. 그것은 바로 이 사람과 함께 살아도 되는 것일까. 함께 집을 보러 다니는 것이 이상하고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작가는 이에 대해 상대방이 싫어져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게 아니라 그 사람 옆에 있는 내가 싫어서라고 한다. 상대방이 아닌 그 옆에 있는 내 모습이 낯설고 어색해서. 내 생각과 달리 둘의 관계가 변화할 때 자신의 모습이 싫어지는 듯하다. 그렇게 변하는 내 모습이 싫은데 내가 변할 것인가, 상대방을 변화시킬 것인가. 헤어지기 싫으면 상대방을 변화시킬 것이고,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헤어지는 것일까. 내가 나와 이별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물론, 우리 인생은 소설처럼 확실히 딱 부러지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헤어지지 못하고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작가가 던진 '우리는'을 내 나름대로 간단하게 썼다. 단편 소설을 이렇게 짧으면서도 내용 전달을 할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이 더 부러웠다. 길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만 딱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소설을 읽다보니 나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욕망도 생겼다. 최근 유행이 단편소설을 묶어 펴내는 것이기도 하다. 긴 호흡의 이야기보다 짧으면서 무엇인가 남기는 내용. 읽어보니 괜찮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처음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한 편씩 음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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