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눈에 확 띤다. 유튜브 썸네일이라면 한 번쯤 눌러보고 싶게 만드는 제목이다. 물론 이런 식의 썸네일을 단 영상들은 대개 제목과는 크게 상관없는, 또는 많이 과장된 제목이라는 게 금세 밝혀지긴 하지만, 관심을 끄는 데는 확실히 효과적이긴 하니까. 물론 내용까지 알차다면 이런 통계적인 선입관이 기분 좋게 깨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을 터.
제목에서 비판적으로 언급되는 “직업목사”란 누구를 가리킬까? 소위 “이중직”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 특히 1부의 소제목에도 나오는 이른바 “쿠팡목사”를 가리키는 것일까? 저자는 스스로 “이중직에 대해 비교적 유연한 편”이라고 말하고, “쿠팡 배달을 하면서도 복음의 사명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수만 있다면 무엇이 문제”냐고 되묻는다. 사실 제목에도 나오니 이 직업목사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밝히는 것이 책 초반에 나오는 것이 맞다. 하지만 책의 거의 1/3이 지나간 후에야 이런 정의가 나온다. “직업목사란 복음을 잘못 가르치는 목사를 의미한다.” (이건 구성의 실수다.) 심지어 “쿠팡 목사”에 관한 내용은 위에 인용한 딱 한 문장이 전부다.
사실 이 책의 주제가 이 문장에 담겨 있다. 저자는 복음에 충실한 목회자상을 그리면서,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반복한다. 당연히 옳은 호소이자 요청이다. 다만 이 주제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내용상의 발전이나 진전이 잘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냥 이런저런 예화들을 들며 반복해서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다시 이 정의에서 조금은 불편한 지점이 보인다. 저자는 “직업목사”를 어떤 소명의식이나 자신이 하는 일의 본질을 잘 모르면서 그냥 돈만 받고 일하는 사람들로 여기는 듯하다. 물론 “그냥 직업적으로” 어떤 일을 한다는 표현에 종종 오로지 밥벌이의 수단으로만 하는 일이라는 가 섞여 있는 게 사실이지만, “직업(일)”이 그렇게 평가절하 되어야 할 말일까? (물론 이건 사소한 트집일 수 있다.)
책에는 다양한 예화들이 등장한다. 예화는 저자가 말하려는 주제를 강화시키는 도구가 되어야 하는데, 책을 읽다 보면 오히려 주제를 흐리게 만드는 것 같은, 또는 그 상관관계가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은 이야기들도 자주 보인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한 소년이 친구의 만년필을 보며 부러워하다가, 이제 나이 들어 집에 수십 자루의 만년필을 갖게 되었다. 한 모임에서 어린 시절 부러워했던 친구를 만나 ‘당시 네가 참 부러웠다. 네 만년필이 나에게 큰 상처였다’는 말을(응?) 했더니 그 친구가 ‘나는 상처를 준 적이 없다. 그건 네가 혼자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대답했다는 이야기에서 저자는 “이것이 구원받은 우리의 모습”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애초에 예화란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건데, 이 사례는 도리어 한참을 고민하게 만든다. 이게 무슨 말인지. 그래서 예화 속 누가 문제였던 건지.
또 같은 페이지에는 잘 알려진 설교자 찰스 스윈돌의 예화를 인용하는데, 내용인즉 노예제도가 폐지된 후 노예들이 두 부류로 나누어졌는데, 주인의 집에서 계속 일하겠다고 했던 이들과 나가서 자유를 누리려고 했던 이들이다. 그 중 후자 쪽은 술과 도박에 빠져 방탕한 삶을 보냈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여기에서 “자유가 주어졌어도 책임 있게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데, 결론은 옳지만 그 과정에서 사용한 예화가 오늘날 독자들이 보기에 과연 적절한 걸까? 애초에 선택지를 두 개밖에 주지 않고 그 중 후자를 비판한다면, 노예 해방 이후에도 계속 주인의 집에서 일하는 게 옳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한참 쓰다 보니 너무 책에 대한 평가가 인색했다는 느낌도 든다. 사실 앞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책 자체의 주제의식에는 공감을 한다. 나름 밑줄을 그어둔 문장도 몇 개 있다. 무엇보다 목사가 먼저 복음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자신의 일(직업!)에 소명의식을 갖고 임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견이 있을 리 없다.
다만 이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방식이, 그것을 담는 그릇이 잘 만들어졌는지는 별개다. 제목부터 내용과 충분히 호응되는지 모르겠고, “직업”이라는 단어를 너무 성속이원론적으로 다루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예전에 존 파이퍼의 책 가운데서도 “전문직업인”이라는 표현을 비슷한 느낌으로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 문제를 제기했던 것인지 개정판에서는 제목이 완전히 바뀌었다). 앞서도 말했던 것처럼, 글의 전체적인 구성 면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많다.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기업가들과 창업가들을 만나면서, 오히려 소명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단어는 책상에서 신학책을 펴고 배울 게 아니었다. “직업”은 우리의 신앙을 표현하는 기회이자, 치열한 믿음의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이다. 이 책의 제목을 듣고 조금 어질어질한 기분이 들었던 이유다. 제목이 절반 이상이었지만, 또 그 제목이 감점 요인이기도 하다.
전자책
00 프롤로그 - 이제야 이 책을 시작합니다
01 -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라"
02 - "별볼일 없는 '사람'에 집중하게 하라"
03 - "가정의 일상을 깨뜨려라"
04 - "자기 느낌에만 집중하게 하라"
05 - "죽음을 떠올리지 못하게 하라"
06 - "미래의 불안에 갇혀 살게 하라"
07 - "극단적인 성향을 갖게 만들어라"
08 - "신앙의 기복은 자연스러운 일"
09 - "성적 유혹이 효과적인 때는..."
10 - "허영심 가득한 친구를 소개하라"
11 - "저열한 농담에 익숙해지게 하라"
12 - "매일 작은 타협을 하게 만들어라"
13 - "진짜 기쁨을 만나지 못하게 하라"
14 - "진짜 겸손이 뭔지 감춰야 해"
15 - "오늘에 충실하지 못하게 만들어라"
16 - "한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게 하라"
17 - "까다로운 입맛을 갖게 만들어라"
18 - "사랑하면 뭐든 괜찮다고 속삭여라"
19 - "사랑에 빠지는 건 오히려 기회다"
20 - "지옥의 비너스를 추앙하게 만들어라"
21 - "'자기 결정권'이라는 신화를 믿게 만들어라"
22 - "이런 사람과의 연애를 절대 못하도록 막아라"
23 - "기독교를 수단으로 삼게 만들어라"
24 - "자신과 다르면 배척하게 만들어라"
25 - "새로운 유행에 집착하게 만들어라"
26 - "연애기간은 불화의 씨앗을 뿌리는 시간이다"
27 -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지 못하게 하라"
28 - "인간을 유혹하기에 70년은 너무 짧다"
29 - 위기 상황에서 사탄이 노리는 세 가지 약점
30 - 피로는 유혹의 좋은 기회다
31 - 끝장이다, 완전히 실패했어!
2023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2였다. 여성 한 명이 평상 한 명의 아이도 낳지 않는다는 의미다. 같은 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신생아의 숫자는 23만 명이었다. 2000년 중반만 하더라도 40만 명이 태어났으니 불과 20년 만에 반 토막이 난 수치다. 언론에서도, 정부에서도 이 수치들을 들먹이며 큰일이 났다고 말을 하는데, 정확히 어디서부터 우리에게 문제가 생길까? 이 책은 바로 그 부분에 집중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구는 우리 삶 모든 부분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입시를 보자. 교육부에서는 2028년도 대학 입시부터 현행 9등급 구분을 5등급으로 바꾸기로 했다. 또 탐구 영역의 선택과목도 폐지된다. 이런 저런 말들이 나올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인구다.
현행 9등급 제도는 매년 65만 명 이상 태어나던 8, 90년대 태어난 학생들을 위해 만든 제도다. 이미 그 수가 1/3로 줄어든 상황에서 그대로 제도를 둔다면, 2023년생들의 대입은 상위등급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게 분명하다. 이를 미리미리 조금씩 조정하려는 것이 교육부의 계획이다. 물론 이건 정부 부처만이 아니라, 개인도, 기업도 미리 계획하고 적응해 나가야 할 부분이기도 하고.
인구와 관련해 가장 자주 언급되는 또 하나의 주제는 취업이다.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는 이즈음 청장년들과 달리, 저자는 당장 내년인 2026년부터는 상황이 점차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은퇴자들의 숫자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4년 간 90만 명이고, 그 후 5년 동안에는 80만 명이 더 감소한다고 한다(이건 인구 통계에 기초한 결론이라 별다른 변수가 없다). 즉 9년 동안 180만 명의 노동력이 감소하게 된다는 말인데, 현재 고등학생들이 노동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2030년대 초반에는 지금과는 달리 오히려 기업에서 인재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을 펼칠 수밖에 없을 거라는 말이다.
물론 단순히 숫자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질적인 차원으로 들어가면, 우리나라는 인구감소로 인해 특히 연구개발 인력 부족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이른바 대학원 랩에서 밤낮 연구와 실험을 하며 길러지는 인력인데, 사회에서도 충분히 직장을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연구실에 남아있을 동기가 부족해지기 때문.
책에는 다양한 직업군, 직종들에 이 인구 변화가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언급된다. 특히 변호사와 의사들. 지금은 선망하는 직업이지만 미래에도 그럴까? 다른 기술적 발전들을 차치하고 인구문제만 두고 보면 지금의 모습으로 계속 성장하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고령인구가 늘어나면 아무래도 분쟁의 수(변호사의 밥줄) 자체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고, 고령자가 많아지면 병원의 수요가 늘 것 같지만, 이제 은퇴하는 연령대는 그 이전 세대보다 건강에 더 일찍부터 신경을 쓰던 세대라는 점은 또 변수다.
책 후반에는 미래 세대인 잘파 세대에 관한 언급이 많다. 아무래도 이 책의 저자가 대학에서 연구를 하고 있고, 이 책의 내용도 주로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보통은 인구가 감소하면서 청년 세대가 노령 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강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식의 부정적인 전망만 내놓는 경우가 많지만, 저자는 그런 상황에 매몰되지 않는다.
저자가 보는 우리나라의 잘파세대는 글로벌 문화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그리고 쥐고 있는) 세대다. 곧 다가올 구인구직 상황의 역전을 맞아 오늘날과 같은 초경쟁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고, 출산율도 다시 얼마간은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물론 애초에 출산 가능 인구 자체가 너무 줄어버린 상황에서 출생아가 드라마틱하게 늘어나지는 않을 거라고 덧붙이지만)
또 하나 흥미로운 접근은 Z세대부터는 수도권에 집중해서 거주하더라도 크게 상관이 없지 않겠느냐는 관점이다. 인구가 급속하게 감소되는 상황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오히려 주거는 수도권이나 한두 개의 대광역권에 살지만 그 이외 지역에도 자유롭게 문화와 여가 등을 즐기며 다닐 수 있도록 교통망이 확보되면 지방도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조금은 나이브한 것 같기도 한) 이야기다.
작은 책이지만, 인구 문제와 관련해 다양한 고민들, 그리고 관점과 전망들을 볼 수 있는 책이다. 무슨 복잡한 사회학 연구서들처럼 깨알 같은 각주도 없고, 몇몇 도표나 그래프가 나오지만 딱 보기 쉽게 정리된 정도다. 당연히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로드맵을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개인 차원에서는 한 번 읽으며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우리 아이들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최신의 고성능 전자책과 기술적 혁신을 쥐어주면
오히려 자신이 읽은 것으로 자신만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자신만의 창의적 오프라인 세계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동기화와 시간을 박탈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매리언 울프, 『다시, 책으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