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동물원
츠츠이 야스다카 지음, 양억관 옮김 / 북스토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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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러나 현 상황에서 텔레비전의 인기는 유명한 동물 탤런트가 점령해 버렸습니다.

 이런 때, 국회에 고릴라, 물개, 말이 등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회제 민주주의, 의회민주정치가 아니겠습니까?"

 

 

  줄거리 。。。。。。。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각 장마다 각각의 인물과 상황이 등장하는 ‘모음집’이다. 무려 열 네 개의 이야기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어주는 요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저자 특유의 풍자와 비꼼이 아닐까 싶다.


        ‘원시 공산제’와 ‘의회제 민주주의’에서는 현대에서 더 이상 다른 대안을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각인된 두 개의 주요한 정체(政體)인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강변하고 있으며(특히 모든 내각의 장관과 국회의원이 연예인 출신이라는 설정으로, 하는 일 없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게 일이 된 국회의원들과 고급 각료들을 비꼬는 장면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근대도시’와 ‘미래도시’에서는 시민들의 어려움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자기들의 규칙과 방식에 따라 느릿느릿 일하는 공무원들의 관료의식과 복지부동의 자세를 비판한다. ‘조건반사’에서는 현대의학기술의 급격한 발달과 이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내용들이 전혀 무겁지 않게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매우 유머스럽게, 때로는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한 상황 설정으로, 그리고 실제로는 거의 일어날 것 같지 않을 정도의 확대와 과장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이 책의 진정한 가치라고 할 수 있을 듯.


  

  감상평 。。。。。。。                                                      

 

         줄거리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풍자, 아니 약간 선을 넘어서는 비꼼이다.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비꼼을 좋아한다. 물론 이 비꼼의 대상이 약자나 자기가 속한 부류의 사람들일 때는 예외겠지만, 때로는 자신의 특정한 모습이 거기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 약간의 놀람과 부끄러움,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즐거워하는 경우도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도구를 잘 사용하는 저자는 매우 효과적인 무기를 갖고 있다고 해도 좋으리라.


        저자가 일본인이어서 그런지, 책에는 일본 사회가 앓고 있는 각종 정신적 병폐들이 자주 등장한다. 지나치게 가벼움, 일본 특유의 호들갑스러움, 경박함, 허황됨, 성적 질서의 해체, 정치인과 공무원들에 대한 실망과 비웃음, 그리고 너무나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위기감 등이 이야기들의 주요 배경이다.

 

        저자는 이런 소재들을 사용해, 현재와 같은 모습이 과연 정상적인가 하는 질문을 역설적으로 던지는 듯 하다. 성의 방종, 언론의 경박스러움, 이기주의가 극단화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이 나타나는지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정상적이고 평범한 것으로 인정되는 세계가 얼마나 끔찍한 모습인가를 풍자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생각해보면 비단 일본만의 일이겠는가? 짧은 기간에 근대화가 되고, 서둘러 세계화에까지 나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다.


        다만 성적인 부분이 자주, 노골적으로 등장하는 부분은, 이 책을 청소년들이나 주변의 사람들에게 쉽게 추천해주기를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 역시 이런 부분에 지나치게 관대하고 일상화 된 일본의 상황을 반영한 것인 듯.


        웃음은 가장 효과적인 무기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풍자는 좀 더 날카로운 무기쯤 될 것이다. 재미있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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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쾌락 - 부엌과 식탁을 둘러싼 맛있는 역사
하이드룬 메르클레 지음, 신혜원 옮김 / 열대림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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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학적으로 식사시간의 특별함이란
사람들이 식사 전과 마찬가지로 식사 후에도 여유시간을 가지는 것,
식사가 일종의 아름다운 박자와 기분 좋은 여운을 포함하는 것에 있다.


 

 

   

 . 요약 。。。。。。。                                                  


        제목과 목차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의 음식문화를 시대순으로 설명해 놓은 책이다. 저자는 호메로스 등의 신화작가들의 글과 그리스 로마 시대의 각종 문헌들, 그리고 중세, 르네상스 시기의 책들에 등장하는 음식에 관한 설명들을 종합해 하나의 주제에 관한 좋은 역사서를 써 냈다.


        자칫 딱딱한 설명조의 글이 되기 쉬운 내용이지만, 저자는 이런 위험을 잘 피해나가면서 서술을 이어간다. 아마도 저자의 경험 등이 뒷받침 되어 있기에, 음식의 조리나 완성된 모양에 대한 저자의 서술은 제법 생생하다.


        책은 오늘날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고대와 중세의 요리들의 그 진짜 모습을 제법 흥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과는 달리 모두 손으로 음식을 먹어야 했던 상황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을 지를 마치 눈앞에 보고 있는 듯 그려내고 있다. 또, 흔히 알고 있는 과거의 음식 문화에 대한 몇 가지 오류들을 교정해 주는 것도 이 책의 유익이라고 할 수 있다.

 

 


 . 감상평 。。。。。。。                                               

 

        우선 흔히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고대의 문헌들의 ‘요리에 관한 부분’을 이런 식으로 되살려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런 책들을 보면서 식사 장면이나 요리에 관한 부분들이 나오면 그냥 읽고 넘어가버릴 텐데, 저자는 용케도 그런 부분들의 특징을 잡아내 멋진 ‘역사책’을 썼다. 절로 박수가 나온다.


        책을 다 읽고 저자 소개를 찾아보면서 다시 한 번 감탄을 했다. 저자의 전공은 요리와 호텔경영, 그리고 다른 대학에서 교육학과 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분야들에 대한 저자의 폭넓은 관심에 한 번 놀라고, 또, 자신이 전공한 분야에 대해 이런 수준의 학문적 책을 써 낼 수 있었다는 데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장인 정신이 느껴지지 않는가?


        유럽에는 취미로 즐겨 하던 낚시의 역사에 관한 책을 쓰는 평범한 직장인들이 있다던데, 참 멋진 일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자랑스러워하고, 그것을 진지한 자세로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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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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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만 기분 나쁜 게 아냐.

더 싫은 건 아름다움을 규격화하려는 그 권위적인 자세라고.

아름다운이란 게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이지 않는다면 무슨 가치가 있겠어.

 

 

  줄거리 。。。。。。。                                                 


        누구도 가까이 가고 싶어 하지 않을 정도로 못생긴 주인공 에피판. 그런 그의 앞에 어느 날 천사 같은 그녀 에텔이 나타났다. 예술영화에 출연할 추남 배우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 간 영화제작소에서 대번에 거절을 당한 에피판은(너무 못생겨서란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다가 도리어 관계자들로부터 봉변까지 당하고 만다. 비참한 마음에 피까지 흘리고 있는 그에게 다가와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이 에텔이었다. 너무나 사람 좋은 성격에, 자신의 외모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에텔에게, 에피판은 단숨에 빠져버린다.


 

        미녀와 그를 사랑하는 추남. 어디서 많이 본 설정이다. ‘노트르담의 꼽추’. 이야기 속의 에피판의 별명 중 하나도 바로 콰지모도다. 하지만 에피판은 스스로를 콰지모도의 운명과 동일시하기를 거부한다. 자신과 에텔은 동화 속 미녀와 야수와는 다른 관계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뇐다. 어린 시절부터 성적인 억눌림 속에서 자라왔던 그는 무의식적으로 일반적인 이야기 속의 성적인 결합으로 끝나는 해피엔딩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에피판은 놀라운 사기극을 꾸민다. 추남 모델이 되기로 한 것. 아름다운 것들로만 온통 도배가 된 무대에 식상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남이 등장함으로써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고, 또 그로 인해 모델들이 더욱 돋보일 수 있다는 명목이다. 용케 이 제안이 받아들여졌고 그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게 된다. 심지어 미인대회의 심사위원이 될 정도로.


 

        자, 이제 엄청난 성공과 명예를 얻게 된 에피판. 그와 에텔의 관계는 이제 어떤 식으로 발전이 될 수 있을까? 어느 날 에텔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야기는 미궁으로 빠져든다.

 


  감상평 。。。。。。。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그것만으로도 뭔가 기대감을 가지고 끝까지 읽어나가도록 하는 힘이 있다.

 

 

        이 소설에서 저자는 추남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그리고 이 추남의 생각과 말을 통해 이 시대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 물신숭배사상, 각종 위선과 자기기만을 있는 그대로 폭로한다. 굳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말 그대로 일그러진 사내여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이 시대의 속물근성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천대와 무시를 받았지만, 한 번 그의 명성이 높아지자 모든 사람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고 찬사를 바친다. 이보다 더 확실한 고발이 또 있을까?

 

       하지만 더 큰 고발은 마지막에 있다. 그토록 세상을 경멸하며, 자기의 ‘숭고한’ 이상을 위해 살 것처럼 보였던 에피판 자신도, 결국 그런 세상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는 인간이었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에텔의 말처럼 에피판 역시 그저 예쁘게 생겼기 때문에 에텔을 사랑하는 인물에 불과했다. 저자는 마지막에 주인공을 던져버림으로써 애초에 목적했던 바를 너무나 분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오늘날 시대사조의 위선과 자기기만에 대한 저자의 고발은 매우 통쾌하지만, 그러기에 책을 덮고 세상을 바라보면서는 왠지 모를 씁쓸함이 더 묻어나온다. 같은 저자의 이전작, ‘적의 화장법’과 비교될만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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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의 자서전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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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 나는 이것을 존재 전체의 끔찍한 결핍, 옥죄는 공허함이라 생각한다.


 

 요약 。。。。。。。                                                  

 

        유명한 아멜리 노통브의 자전적 소설의 완결판인 듯 하다. 이전에 읽었던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이 그의 세살 이전의 유아기를 다루고 있고, ‘사랑의 파괴’에서는 유년기의 이야기를 그렸다면(그리고 아직 읽지 않은 ‘두려움과 떨림’이 나머지 기간을 그렸다고 한다), 이 책 ‘배고픔의 자서전’은 작가 자신의 이전 모든 책들을 종합한 유소년 시기에 대한 종합적 그림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벨기에 외교관의 딸로, 일본에서 태어나 세 살까지 지내다가 중국으로 이주, 다시 뉴욕과 방글라데시,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을 거치면서 자아를 형성했던 저자의 독특한 이력이 이 책을 통해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단순히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전작인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에서는 어린아이 특유의 자기중심적 사고를 키워드로 해 사물을 분석해냈고, ‘사랑의 파괴’에서는 이데올로기라는 문제를 유년기 아이의 눈으로 그려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배고픔’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저자가 생각하는 ‘배고픔’은 단순히 위장이 비었음을 알려주는 신호가 아니다. 저자는 존재 자체가 보여주는 근원적인 ‘결핍’을 배고픔이라는 말로 그려낸다. 이 작품에서 어린 아멜리는 사랑에 배고파하고, 점차 뒤로 사라져가는 어린시절을 안타까워한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책을 읽고, 더 많은 사고를 하며 생각의 깊이를 키워나가는 주인공. 이제는 저자의 글쓰기 스타일에 빠지게 되어버렸다.


 

 

 감상평 。。。。。。。                                             

 

        언제부턴가 그 이름만으로 책을 펼치게 만드는 몇 명의 작가들이 생겼다. 이 책의 저자 아멜리 노통브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어린 시절 경험했던 많은 여행들은 역시 사람의 생각의 지평을 많이 넓혀주는 듯 하다. 외교관 아버지를 둔 것이 작가로서의 저자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데는 매우 큰 영향을  준 부분인 듯.(내 경우는 아쉽게도 그다지 많은 경험이 없는 부분이다.)

 


        책에 등장하는 여러 나라들의 모습을 인상적인 단상의 형태로 그려내는 능력은 어린 시절 형성된 것일까? 나도 배우고 싶은 능력이다. 깊은 사색이 담긴 한 문장. 나도 당장 여행이라도 떠나야 하는 건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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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심술이라는 초능력이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을 말하는데,

염력, 텔레파시 등과 함께 초능력의 주요 범주 안에 들어가는 능력이다.

여기서 초능력이 실제로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라는 데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좋을까?

만약 그런 능력이 있다면, 다른 사람과의 불필요한 충돌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에게서 보여지는 다툼의 대부분은,

상대방의 기분이나 감정을 생각하지 않고,(혹은 모르고)

무심코 내뱉은 말 때문에 일어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상대방의 의사에 대한 오해도 없어질 것이므로,

이 역시 인간들의 다툼을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됨으로 인해 생기는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란 족속들이 워낙 나쁜 생각을 많이 하니까..

그런 생각들을 다 알고 사람을 대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닐 터..





혹자는 이런 능력이 보통 사람에게 불가능 한 일이니

굳이 이런식으로 사고력의 낭비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초능력과 같은 비정상적인 능력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치밀한 관찰력과, 충분한 추리력을 바탕으로 한 능력이다.

상대방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올바로 추측할 수 있다면,

그것이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것이라고 할 수있지 않은가?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기 원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부러 하느냐, 무의식적으로 하느냐 혹은, 드러내는 정도의 강약의 차이만 있을 뿐,

대개의 경우 자신을 나타내려는 여러가지 동작, 모습을 겉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바로 이 점에 집중한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자~ 그럼 내 글을 여기까지 진지하게 읽고 있는 당신을 위해서,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지침을 알려주겠다. 기억해 두시라.. ^^;;


일단 상대방의 목소리 톤으로 그 사람의 심리를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밝고 대체로 높은 톤의 목소리는 그 사람의 심리상태가 긍정적인 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의미하고,

무겁고 낮은 톤의 목소리는 그 반대라는 것 쯤은 다들 알 것이다.

특히 아주 낮은 목소리로 톤의 변화가 없이 말하고 있을 때는 좀 위험한데,

이는 대개의 경우 큰 분노나 슬픔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기에, 내가 굳이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두 번째는 말할 때의 그 사람의 행동, 동작을 관찰하라는 것이다.

무릎이나 다리를 떠는 동작은 긴장을 풀기 위한 것이다.

이는 그 사람이 지금 뭔가가 마음에 걸리거나 초초한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를 자주 치는 사람은 상대방과 친해지고 싶다는 의미이다.

입술을 빠는 스타일은 상대방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심리가 드러나는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뭔가 숨기고 있다는 뜻이다.

미간을 찌뿌리는 행동은, 상대방에게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 밖에도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지켜보는 것도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주요 코드이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마음이 가는 곳에 눈을 두게 되어 있다.





세 번째는, 대화시가 아닌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을 관찰하기이다.

이것은 그 사람의 성격 유형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며,

그렇게 알게된 성격은, 그 사람의 여러 행동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 사람이 어떤 형식의 시계를 차고 있느냐에서부터,

지하철을 탈 때 표를 어떻게 지니고 있는가, 즐겨입는 옷차림은 어떤 스타일인가 등등,

대단히 여러가지 요소가 고려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면, 로마 문자가 쓰여진 시계, 화려한 장식이 달린 시계, 특이한 디자인의 시계, 숫자가 없는 시계 등은 각기 그것을 선호하는 사람의 성격을 나타낸다.

로마 문자는, 대체적으로 성실하고, 꼼꼼하며, 화려한 장식은 폼잡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이다.

특이한 디자인의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린아이 같은 경향이 보일 수 있으며,

숫자가 없는 스타일은 대개 형식을 거부하는 자유주의자들이다.

이 방식에서 주의할 점은, 어느 한 가지로 그 사람의 성격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실패하기 가장 좋은 경우는, 그 사람의 부모님이 사다주신 시계를 차고 있을 때다. ㅡㅡ;;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위의 세가지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각각은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네 번째 요소가 가장 중요한데,

그것은 바로 감(感)이다.

혹자는 '감'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느냐고 질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감은, 단순한 '찍기'가 아니라 좀 더 고도의 추리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감'은 다른 말로 '느낌'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것은 상대가 겉으로 보여주는 모든 징후들을 종합해 내리는 최종적인 판단이다.

상대가 말할 때 쓰는 어휘, 눈빛, 시선, 자세, 말의 빠르기, 말의 고저, 주기적으로 하는 행동,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의 반응, 대답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등등

좀 더 많은 것을 고려하면 고려할수록, '감'의 정확도는 향상된다.





이런 것들은 단지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할 때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로 채팅을 할 때도 그 사람이 자주 사용하는 어휘, 반응의 속도(타자수를 고려해서)와 같은 요소들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여기 제시된 한 두가지 뿐만 아니라 좀 더 많은 요소들이 작용한다)





감을 키워주는데 좋은 것들로는, 많은 양의 독서를 들 수 있다.

특히 인간 대중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이 좋다.

여러 소설류도 괜찮고, 뉴스나 신문(이것들은 지난 번 글에서 말했듯이 왜곡이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잡지 등도 유용하다.

특히 그 자체가 인간 대중을 다루고 있는 역사 서적은 대단히 유용하다.





독서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다른 사람의 겉으로 나타나는 징후들을 충분히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졌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 만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주의점.

상대방의 마음을 읽기 위해서는 내가 객관적일 필요가 있다.

객관적이라는 말은, 상대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망원경으로 산을 관찰하듯, 상대방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정말로 망원경으로 관찰하라는 말은 아니다. 시도하지 말자.)

돋보기로는 산을 볼 수 없다.

그것은 작은 부분을 너무 크게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에게 일정거리 이상으로 가까이 갈 경우,

위의 여러 방법들은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치밀한 관찰력과 주의력은 상대방의 의미없는 행동을 확대 해석해, 지나치게 큰 결과를 도출해 낼 위험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 여기에 있다.





객관성을 잃은 채,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으려 한다면,

읽히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그 사람의 생각이 될 뿐이다.

때문에 늘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한 채,

편견(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없이 상대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말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읽을 수 없는 것이냐고?

걱정하지 마시라..

정말 가까워진다면, 굳이 읽으려고 하지 않아도 서로 느낄수 있지 않을까?

성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둘은 한 몸을 이룰'것이기 때문이다.

비단 남녀사이 뿐만 아니라, 진정한 친구, 선후배, 선생님과 제자 사이에도 이런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생각, 느낌까지도 내게 전달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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