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자식들
노르베르트 레버르트 외 지음, 이영희 옮김 / 사람과사람 / 2001년 3월
평점 :
품절


독일은 20세기 초중반 유럽 전체에 엄청난 피해를 안겨준 장본인이었다. 물론 이런 식의 민폐를 끼친 것이 독일 하나만은 아니었지만, 특히 제2차세계대전의 전범국으로서, 6백 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거의 전 국민이 직간접적으로 공모했던 인종학살 가해국으로서의 책임은 그 어떤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전쟁이 끝난 후 수괴였던 히틀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 수하에서 히틀러의 망상을 실행하는 데 기여했던 나치의 고위급 전범들은 재판에 넘겨져 심판을 받았다. 이 책은 그 1급 전범들의 자식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40년의 터울을 두고 아버지가 취재했던 내용을 아들이 다시 취재해 교차적으로 함께 엮은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들 전범의 자식들의 처지가 퍽 딱하다. 적어도 그들이 부모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더구나 전쟁 당시 그들의 나이는 어려서 직접적인 관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 그들을 낳아준 아버지에 대한 인간적인 정리 또한 쉽게 지울 수는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정은 딱 여기까지일 뿐이다. 그들은 나치가 유럽을 유린할 당시, 그들의 아비들이 수많은 국가로부터 강탈해 온 부를 누리며 즐거운 날들을 보냈다. 최소한 이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감은 느끼는 것이 인간다운 행동이 아닐까. 하지만 막상 취재를 해 보니 그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치 초기의 친위대장이었던 루돌프 헤스의 아들은, 전범재판으로 종신형을 받고 수감생활 중인 아버지가 석방되지 않는 것에 대해 연합군측의 음모가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나아가 자신의 아버지가 ‘평화의 수호자’였다고 주장하면서 열렬한 히틀러 숭배자로 살았다. 심지어 유대인들이 가는 곳마다 핍박을 받은 걸 보면 애초에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식의 피해자를 공격하는 언사까지.


나치의 도살자 힘러의 딸은 아버지의 이름을 딴 책을 써서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결국 이 책은 쓰이지 않았지만, 대신 그녀는 “조용한 손길”이라는 나치를 돕는 단체에 소속되어 이제는 늙고 병든 전직 나치들의 삶을 보살피는데 참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네오나치주의자들의 정치집회에도 종종 참여하면서 자신의 몸에 흐르는 아버지의 피를 드러낸다.


나치의 2인자였던 괴링의 딸은 여전히 아버지를 경애하는 이들의 호의를 넘치게 받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나치의 만행에 대해 어떤 의견도 내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친절했던 아버지와 대부 히틀러에 관한 기억만을 낭만적으로 묘사한다. 심지어 나치의 찬양자였던 음악가 바그너의 후손들은 오늘날까지도 나치의 자식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준다고 하니 이 동네도 아주 개판이다.


물론 좀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도 있었다. 히틀러의 문고리 권력자였던 마르틴 보어만의 큰아들은 가톨릭에 귀의해 신부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을 묵묵히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예는 소수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서술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아버지는 무엇보다 자신도 그 시절 나치의 열렬한 숭배자였다고 고백한다. 비록 나치가 패망할 때까지도 여전히 나이가 어려서 직접적으로 뭔가를 하지는 못했지만, 아마 몇 살만 더 먹었어도 기꺼이 기여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그는 이들 나치의 자식들에 대해 조금은 연민이 담긴 태도로 묘사한다.


아들 역시 그런 아버지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이상, 이 문제를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쓰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독일이라는 나라가 일종의 국가적 망각을 선택했다고 분석한다. 나치에 관한 기억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도, 말하지도 말자는. 대신 그들은 경제발전을 선택했고, 오늘날 유럽의 손꼽히는 경제선진국이 되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일까? 이런 선택은 독일인들을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 아들의 지적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독일 사람들은 그래도 나치의 만행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배상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는 평과는 사뭇 달라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대표적으로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게토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비석 앞에 무릎을 꿇은 일에 관해서도 저자는 당시 서독은 국제거인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었기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그것이 진정한 사과는 아니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증거로 당시 서독 안에서조차 여전히 옛 나치의 동료들이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집단적인 수치심과 죄책감의 상실, 이건 오늘날 다시 떠오르는 네오나치들의 극우적 행태를 설명하는 중요한 포인트인 듯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우리는 일제의 후예들과 당시 국내에서 호의호식하던 친일파의 후손들, 그 찬양자들이 여전히 이 나라 곳곳에서 떵떵거리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모습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암살당한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는 잘 알려진 제2차세계대전의 일제 측 A급 전범이었다. 전범의 후손이 집권여당의 수장이 될 수 있는 게 일본이라는 나라의 본질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김구와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떠드는 친일 어용학자들이 설치고, 그 중 일부는 정부 내각에도 들어가는 망조를 보이고 있다.


자신들의 만행을 끝없이 부정하는 일제의 자식들은 나치의 자식들이 보이는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과거를 미화하고, 온갖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보이지 않게 만들려고 애쓴다. 여기에 돈 몇 푼 쥐어주면 과거 피해자의 자식으로 가해자를 옹호하는 비렁뱅이들은 넘치고 넘친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가해자들에 대한 냉혹하게 느껴질 정도의 단죄부터다. 이 작업이 선행되지 않으면, 이후 어떤 조치들도 이런 나치의 자식들, 일제의 찬양자들이 탄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역시 나치의 전범이었던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까지 가서 납치해 와 결국 자국의 재판정에 세웠던(그리고 사형에 처했던) 이스라엘의 조치는 가혹해 보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해답이었다.


일제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대한민국의 초기 역사로 인해, 여전히 친일파들이 정재계에 발에 챌 정도로 깔려 있고, 반면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이들은 온갖 모욕과 수치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연히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도 쥐꼬리만 한 포상으로 가난한 삶을 전전하거나, 변절해 친일을 옹호하는 정치세력에 들어가 일신의 영달을 꾀하며 비루한 삶을 살아갈 뿐이다.


가혹할 정도의 패가망신이라는 단죄가 없다면, 우리는 이런 모습을 계속해서 반복해 보아야 할 뿐이다. 그들 당사자뿐 아니라 그들의 자식들도, 무슨 형사적 처벌이나 경제적 제한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공무나 정치 같은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까지는 맡지 못하도록 하는 게 옳다. 연좌제라는 비판은 당시 고문과 죽음으로 내몰린 사람들 앞에 가서나 하라고 하자. 독립유공자의 후손에게 (쥐꼬리만 한) 혜택을 주는 게 문제가 없다면, 전범과 민족의 배반자들의 후손들에게 (고작) 작은 불이익을 주는 게 또 무슨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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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4-09-10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타고난 괴물이거나 의도된 인지부조화 상태가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