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 간 클래식
김태용 지음 / 페이스메이커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은 영화에는 좋은 음악이 함께 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장면을 가만히 반추해 보면 그 자리에 인상적인 음악도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한 예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일본 영화가 있었다. 그 땐 처음으로 영화관에 가기 시작하던 때라 꽤 큰 감동을 오래도록 느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같은 영화를 리메이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영화관에 갔었다. 소지섭과 손예진이라는 나름 연기력 괜찮은 배우들이 출연했음에도 예전과 같은 감동은 느끼지 못했었는데, 역시 가장 주된 이유는 원작의 해바라기밭에서 나왔던 특유의 BGM 같은 게 리메이크판에서는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음악은 극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다. 아무리 잘 만든 스릴러나 공포영화도 배경음악이 빠지면 밋밋하기 그지없는 영상이 된다. 그런데 그 배경음악 중에는 새롭게 만들어낸 것들도 있지만, 이미 존재하는 클래식 중에서 고른 곡들도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곡이 바로 그 영화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클래식이다.





책은 한 편의 영화 속에 삽입되어 있는 클래식 곡들을 찾아내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의 어떤 장면에서 어떤 곡이 사용되었는지(여기에서 간략한 영화의 줄거리도 소개된다), 그 곡이 만들어진 배경은 무엇인지 하는 것들이 있어서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이런 책에 실린 영화들은 오래된 것들이 많아서 어지간히 영화 쪽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면 모를 만한 고전들이 잔뜩 실려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의 경우는 최신 영화들이 잔뜩 실려 있어서 접근성에서 좀 더 낫다. 스물두 편의 영화가 언급되는데, 세어보니 딱 절반은 열한 편의 영화는 이미 본 것들이었다. 그래서 좀 더 반갑기도 했고.


다만 내가 보지 못했던 영화의 경우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종류의 책이 가지는 한계랄까. 뭐 그래도 어느 정도 영화에 대한 감각이 있다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부분.


사실 개인적으로 좀 더 어려웠던 부분은 클래식 쪽이었다. 역시나 교양 수준의 책 몇 권 가지고는 더듬어 가기도 쉽지 않은 게 클래식인 듯. 이번 책을 읽고 든 생각인데, 앞으로 당분간은 이런 종류의 책을 손에 들지 않을 것 같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은 유대교 랍비의 눈으로 출애굽 사건을 되집어 보는 내용의 책입니다. 
평소에 익숙하게 보던 것과 조금 다른, 신선한 관점을 볼 수 있는 책이었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아타나시우스 지음, 피넬로피 로슨.오현미 옮김 / 죠이북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타나시우스는 초기 기독교 시대의 유명한 교부 중 한 명이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아닌 최초의 피조물로 격하시키려고 했던 아리우스에 대항해 그리스도의 신성을 옹호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인물로, 이 때문에 몇 번이고 추방에 처해지기도 했었다. 흔히들 착각과 달리 2세기 로마제국에서는 아리우스파가 우세했다. 당장 콘스탄티누스가 죽기 직전 세례를 받을 때도 아리우스파인 총대주교가 집례를 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불굴의 의지력을 가지고 있던 아타나시우스는 결국 성경에 기초한 성자의 신성을 정통교리로 관철시키는 데 성공한다. 물론 그 혼자만의 공헌은 아니지만, 아타나시우스의 수고를 빼고 이 논의를 진행시킬 수는 없는 것도 사실. 이 책은 바로 그 아타나시우스가 성육신이라는 교리에 관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오늘날과 같이 여러 책들을 참조할 수도 없는 시절, 아니 성경 자체도 보유하는 게 쉽지 않은 시절 다양한 성경 구절들을 근거로 삼아 자신의 입장을 세워가는 작업이 인상적이다.





책의 전반부는 왜 성육신이 이루어져야만 했는가에 관한 내용이다. 인간의 타락과 그로인한 멸망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야만 했고, 또한 인간이 되신 그분은 사람들을 대신해 죽으실 수 있었다. 그분의 십자가 죽음에서도 아타나시우스는 흥미로운 포인트를 읽어내는데, 두 팔을 벌린 채로 당하신 죽음은 한 팔로는 유대인을, 다른 팔로는 이방인들을 부르시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


성육신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곧 부활로 이어지는데, 아타나시우스는 부활의 타이밍도 너무 일러서 죽지 않은 것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고, 너무 늦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 절묘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음을, 이것이 부활의 중요한 증거라고도 덧붙인다.


책의 후반은 성육신에 대한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의 의심에 대한 변증에 할애되어 있다.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구약의 여러 구절들이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음을 주장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그리스인들에 대해서는 신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관한 논리적 증명과 성육신 이후 그리스의 전통적인 예언이나 신전의 작동이 사실상 멈췄다는 점을 실천적인 근거로 제안한다.

오래된 글이지만 여전히 힘이 있다. 그건 아마도 저자의 생애가 가지고 있는 강인한 의지가 덧붙여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죠이북스에서 좋은 기획을 냈다. 이 시리즈로 후속편이 나오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조금은 아쉬운 일이다.





사실 이 책이 관심이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사실 중요했던 이유는) 이 책의 서문을 C. S. 루이스가 썼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원본이 처음 나왔을 때는 아니고, 이 책의 영문 번역판이 나왔을 때의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즐겁게 읽었던 부분이었는데, 읽으면서 계속 ‘이거 어디서 읽어봤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읽어본 구절들이 잔뜩 있었으니까.


몇 권의 책을 다시 뒤적여 봤는데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서 답답해하던 차에, 결국 『피고석의 하나님』이라는 책에 이 책의 서문이 실려 있었던 걸 발견했다. 서문의 내용은 아타나시우스의 글에 대한 찬사도 일부 담겨 있지만, 실은 고전 읽기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주요 내용이다. 예전 책과 요즘 책을 한 권씩 번갈아 읽어보는 게 가장 좋지만, 여의치 않으면 요즘 책 3권을 읽은 후에는 꼭 고전 한 권은 읽으라는 중요한 조언이 담겨 있는 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양 선비, 우정을 논하다 - 마테오 리치의 《교우론》과 마르티노 마르티니의 《구우편》
마테오 리치.마르티노 마르티니 지음, 정민 옮김 / 김영사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6세기는 대항해시대의 정점이었다. 이 시기 유럽 각국은 아시아로 향했고, 이 바람을 타고 이제 가톨릭교회의 주요 조직으로 성장한 예수회 출신의 선교사들도 중국에 도착했다. 그 스타트를 끊은 인물이 바로 마테오 리치다.


오랫동안 절대군주제가 유지되어 오던 중국에서, 리치는 무엇보다 이 귀족계층과의 친분 없이 선교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들에게 접근하기 위한 방식으로 유학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저술들이 나왔는데, 그 중 초기의 것으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교우론”이라는 책이 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친구를 사귀는 일과 관련된 내용인데, 정확히는 서양의 다양한 격언이나 고전의 일부를 발췌해서 중국어로 소개하는 책이다.


그리고 약 반 세기 정도가 지난 후, 다시 예수회 출신으로 중국에서 비슷한 사역을 했던 인물이 있었으니 마르티노 마르티니다. 그 역시 앞서 리치의 작업과 비슷한 순서로 교우 관계에 관한 서양의 격언과 고전을 소개하는 책을 썼으니, 그 책이 바로 “구우편”이었다. 이 책은 “교우론”과 “구우편”이라는 두 권의 책의 전문을 그것의 원출처와 함께 실어 소개하는 책이다.





교우론이 처음 나왔을 때 당시 명나라 지식인들 사이에 크게 유행을 했다고 한다. 세계가 자기들 중심으로 흘러간다고 믿어왔던 중국인들에게 먼 서양에도 오래된 문명이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여기에 (마테오 리치의 적절한 편집이 들어갔겠지만) 서양의 격언이 유학의 그것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점도 그들에게 더욱 흥미를 자아내는 부분이었을 거고.


반면 마르티니의 책의 경우 리치의 것만큼의 유행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책 후반에 그 이유에 대해 편역자의 생각이 좀 실려 있긴 한데,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미 비슷한 책이 앞서 나와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확대 증보판만으로 눈길을 끄는 데는 무리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과, 그새 중국의 왕조가 명에서 청으로 교체되었다는 점 또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짧게 짧게 인용을 하고 있는 리치의 글과 달리, 마르티니의 책은 좀 더 길게 설명이 붙는다. 애초에 이런 식의 격언들은 짧고 굵은 게 여운이 남는 게 아닐까 싶지만, 마르티니의 생각은 좀 달랐나 보다. 그래도 두 권의 책에 다양한 시대를 지나면서 여러 문인들이 덧붙인 서문들까지 읽다 보면, 동서양의 만남이 꽤 흥미롭다.




친구를 사귐에 관한 다양한 조언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책이다. 살아가면서 중요해 보이는 것들이 여럿 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리고 여기에서 중요한 건,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가 뿐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이기도 하다. 이런 면은 역시 옛 사람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를 들면 환자에게

교회란 완전히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현재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거나

활력을 더하기 위한 곳이라고 속이는 것이다.

교회는 비교적 도덕적인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교제하기 위해 좋은 장소라는 생각을 심어라.

각종 행사와 예배를 위한 헌신으로 환자를 바쁘게 만들어라.

환자가 교회 활동을 아무리 열심히 한들 우리에게 해될 것은 없다.

환자가 영생을 깨우치는 일만 막아라.


- 앤드류 팔리, 『스크루테이프 비밀보고서』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