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아타나시우스 지음, 피넬로피 로슨.오현미 옮김 / 죠이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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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나시우스는 초기 기독교 시대의 유명한 교부 중 한 명이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아닌 최초의 피조물로 격하시키려고 했던 아리우스에 대항해 그리스도의 신성을 옹호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인물로, 이 때문에 몇 번이고 추방에 처해지기도 했었다. 흔히들 착각과 달리 2세기 로마제국에서는 아리우스파가 우세했다. 당장 콘스탄티누스가 죽기 직전 세례를 받을 때도 아리우스파인 총대주교가 집례를 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불굴의 의지력을 가지고 있던 아타나시우스는 결국 성경에 기초한 성자의 신성을 정통교리로 관철시키는 데 성공한다. 물론 그 혼자만의 공헌은 아니지만, 아타나시우스의 수고를 빼고 이 논의를 진행시킬 수는 없는 것도 사실. 이 책은 바로 그 아타나시우스가 성육신이라는 교리에 관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오늘날과 같이 여러 책들을 참조할 수도 없는 시절, 아니 성경 자체도 보유하는 게 쉽지 않은 시절 다양한 성경 구절들을 근거로 삼아 자신의 입장을 세워가는 작업이 인상적이다.





책의 전반부는 왜 성육신이 이루어져야만 했는가에 관한 내용이다. 인간의 타락과 그로인한 멸망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야만 했고, 또한 인간이 되신 그분은 사람들을 대신해 죽으실 수 있었다. 그분의 십자가 죽음에서도 아타나시우스는 흥미로운 포인트를 읽어내는데, 두 팔을 벌린 채로 당하신 죽음은 한 팔로는 유대인을, 다른 팔로는 이방인들을 부르시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


성육신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곧 부활로 이어지는데, 아타나시우스는 부활의 타이밍도 너무 일러서 죽지 않은 것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고, 너무 늦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 절묘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음을, 이것이 부활의 중요한 증거라고도 덧붙인다.


책의 후반은 성육신에 대한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의 의심에 대한 변증에 할애되어 있다.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구약의 여러 구절들이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음을 주장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그리스인들에 대해서는 신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관한 논리적 증명과 성육신 이후 그리스의 전통적인 예언이나 신전의 작동이 사실상 멈췄다는 점을 실천적인 근거로 제안한다.

오래된 글이지만 여전히 힘이 있다. 그건 아마도 저자의 생애가 가지고 있는 강인한 의지가 덧붙여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죠이북스에서 좋은 기획을 냈다. 이 시리즈로 후속편이 나오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조금은 아쉬운 일이다.





사실 이 책이 관심이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사실 중요했던 이유는) 이 책의 서문을 C. S. 루이스가 썼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원본이 처음 나왔을 때는 아니고, 이 책의 영문 번역판이 나왔을 때의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즐겁게 읽었던 부분이었는데, 읽으면서 계속 ‘이거 어디서 읽어봤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읽어본 구절들이 잔뜩 있었으니까.


몇 권의 책을 다시 뒤적여 봤는데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서 답답해하던 차에, 결국 『피고석의 하나님』이라는 책에 이 책의 서문이 실려 있었던 걸 발견했다. 서문의 내용은 아타나시우스의 글에 대한 찬사도 일부 담겨 있지만, 실은 고전 읽기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주요 내용이다. 예전 책과 요즘 책을 한 권씩 번갈아 읽어보는 게 가장 좋지만, 여의치 않으면 요즘 책 3권을 읽은 후에는 꼭 고전 한 권은 읽으라는 중요한 조언이 담겨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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