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 하나님의 권위 아래서 누리는 보호와 자유
존 비비어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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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요약 。。。。。。。     

 

     성경에서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하고 있는 ‘순종’이라는 주제에 관해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는 책. 저자는 성경이 말하는 순종이란 무엇인지에서부터 순종의 유익, 불순종의 위험성, 그리고 상황에 따른 구체적인 적용법에까지 폭넓은 방식으로 주제에 접근하고 있다.

 

 

2. 감상평 。。。。。。。   

 

     오늘날 교회 안에서 가장 인기 없는 주제 중 하나는 아마도 ‘순종’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를 원하고, 또 그것을 앞에 선 사람들, 리더들의 생각과 동일선상에 두고 저울질하려 한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와 자기의 생각을 재빨리 광고하고 전달할 수 있는 SNS 도구들의 발달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이런 시대에 그저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의 순종을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폭압적인 일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좋다. 뭐 그런 면도 없지 않다. 오랜 군사독재 정부 시대를 거쳐 온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지도자들의 부도덕성과 무능력함은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저항조차 어느 정도 이해되게 만들었으니까. 다만 그래서 좀 더 투명하고 정직한 사회가 되었는가는 곰곰이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정상적인 수업이 불가능할 정도로 교권이 추락한 교실, 의사소통이 사라져버린 거실, 그리고 모든 권위가 사라져 버린 현장에서 도리어 건전한 비판능력이 사라져버리고 충동적으로 휩쓸려 다니는 모습 등은 극단적인 자유주의적 사고가 책임져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러한 태도가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건 결국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조심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곱씹어 봐야 할 부분이다. 악한 지도자들에 대한 경계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대한 순종과 나아가 순종적 태도까지 의미하는 복종을 잊지 않는 것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그분에 대한 경건한 믿음의 표현이기도 하니까.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들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들을 자주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읽기에는 편하다. 와 닿는 면도 좀 더 생생할 수 있고. 다만 책을 읽는 사람들이 그의 경험에서 더 많은 은혜를 받으려고 할지도 모르겠다는 염려도 살짝 된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최종적인 기준은 경험이 아니라 성경이 되어야 할 테니까. 저자 역시 몇몇 부분에서는 이런 우려를 의식한 듯 건전한 선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긴 하다.

 

     읽어볼 만한 책이다. 개인적으로도 도전을 받은 대목이 자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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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자주 먹는 농심 너구리 라면 스프에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라는 물질이 나왔다고 떠들석.

 

 

가만히 생각해봤다.

 

신문기사를 보니 몇몇 라면 스프에서 ㎏당 2.0~4.7㎍의 벤조피렌이 검출됐다고 하는데,

 

어지간히 적은 양이다.

 

우리나라 훈제건조어육 기준이 10ppb 이하라고 하니 안전기준 이하이기도 하고.

 

사건 초기 농심에서 말한 것처럼 평생 그 라면을 먹어도(물론 그럴 사람은 없겠지만) 무방할 정도.

 

아마 암에 걸릴 확률이 자연상태보다 1% 정도나 높아지려나?

 

뭐 좋다 이거야, 굳이 알면서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을테니까.

 

찜찜하니까...

 

 

 

근데,

 

라면 스프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농도도 높고, 그 위험도 직접적인 담배는?

 

길거리 지나다니면서 담배연기 날리고 다니는 사람들은 회수 안하는 거야? ㅡㅡ;;;

 

뭐 본인들이 좋아서 피는 거야 뭐라 할 수 없겠지만,

 

남들한테 피해까지 주는 건 좀....

 

 

 

 

참고로 저 정도면, 고기 굽다가 조금 탄 몇 점만 집어 먹어도 능가할껄?

 

아.. 갑자기 고기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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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각도에서 문제를 살피고 해결해야 옳다.

갈등이라는 특종거리에 중독된 언론은

실질적 해답을 찾기 위한 공적 토론을 이끌어 내지는 않고

양극화된 관점들 사이의 싸움만 부추긴다.

 

이런 현실에 대한 해법은 가치를 정치 담론의 중심에 놓고

모든 공적 논쟁 속에서 국민과 국가가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는 것이다.

그러면 좌파와 우파라는 낡은 경계를 넘어

가치를 중심으로 새로운 합의와 공통 기반이 형성된다.

 

이렇게 광범위하게 합의된 해법은

어느 진영의 이익 단체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이데올로기들은 우리를 실망시켰다.

가치야말로 민주주의적 비전 아래 우리를 단결시킬 수 있다.

 

- 짐 월리스, 『하나님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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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10-25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고 읽으려고 하는데 아직도 못읽고 지난 책입니다.

노란가방 2012-10-25 20:55   좋아요 0 | URL
굉장히 좋은 책이에요. 추천도서~
 
니트로
알랭 데스로셰르 감독, 귀욤 르메이-티비에르지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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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일반 차량을 개조해 벌이는 사설 레이싱에서 한때 ‘매드 맥스’라고 불릴 정도로 전설적인 능력을 보여줬던 맥스. 어느 날 자동차 사고로 입원한 병원에서 심장병 환자였던 앨리스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둘은 결혼에 골인한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던 어느 날 앨리스는 심장에 문제가 생겨 입원을 하게 되고, 이식 수술을 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좀처럼 장기 기증자가 나타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던 맥스에게 5만 달러면 심장을 구할 수도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고, 그는 다시 길거리 레이싱에 나선다. 겨우 돈을 마련해 찾아간 조직에서는 10만 달러를 요구했고,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었던 맥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이후 경찰과 조직으로부터 쫓기기 시작한다.

 

↑ 맥스가 사랑하는 여인 앨리스

 

 

2. 감상평 。。。。。。。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 걸까? 영화의 주인공 맥스는 처음엔 내키는 대로 살던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레이싱으로 벌 수 있는 돈을 포기하고 공사장에서 일을 하며 적은 돈으로 살아간다. 앨리스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테오를 친아들처럼 키우고,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가진 걸 다 팔더니 종래에는 살인까지.. 어느 순간을 지나면서 ‘사랑’은 맥스에게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요구하는 폭군으로 변해버렸고, 맥스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내어준다. 언뜻 사랑처럼 보이지만, 정확히는 사랑이라는 우상에 대한 숭배일 뿐.

 

     인터넷 뉴스를 보니까 일산의 호수공원에서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는 낯 뜨거운 애정행각을 벌이는 커플 이야기가 나오던데, 아마 자기들은 사랑해서 그러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반응하지 않았을까. 언제부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충동)이면 뭐든지 되는 세상이 된 걸까. 그렇게 사랑이 넘치는 세상인데 꼴은 딱히 좋아져가는 것 같지도 않고 말이지.

 

↑ 맥스와 전 애인(약간 뜬금 없는 진행)

 

     아내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위험한 고배당의 사설 레이스에 참여하는 주인공이라는 평범한 소재의 진행인가 싶더니, 중반 이후에는 영화가 좀 엽기적으로 변해간다. 이 와중에 전 애인과 달리는 레이스는 또 뭔지.. 별 감동도 없고, 긴박감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너저분하다는 인상이 강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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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은 응답하라 - 정치에 속고 자본에 털린 당신
톰 하트만 지음, 한상연 옮김 / 부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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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요약 。。。。。。。     

 

     저자는 건국 당시부터 모든 시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를 규정해 온 미국이라는 나라가 보수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기업귀족들의 사기로 인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나 레이건 정부 이후의 공화당 정책의 초점은 한결같이 안정된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정치적인 의사집단으로 대두되어 온 중산층의 삶을 파괴하는 방향에 맞춰져 있으며, 그 이유는 소수의 거대재벌들이 정부의 의사결정에 좀 더 지배적인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라는 것. 책은 민주주의란 안정적인 중산층이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경제와 정치의 상관관계를 강조한다.

 

 

 

2. 감상평 。。。。。。。   

 

     자주 가는 도서관 신착도서 코너에 있기에 눈에 띄어 집어 온 책.

 

 

     책 속에 등장하는 미국 공화당과 이를 뒤쫓는 일부 민주당 인사들의 행태는 한국의 그것과 딱히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소수의 재벌기업 오너(사실 이 말도 웃기는 게 정작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 인사들의 주식 소유 지분은 한 줌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에게 편중된 온갖 특권과 변칙적 법 제정과 집행은 대놓고 부정하기 어려운 지경이니까.(대기업 회장들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휠체어 타고 검찰 몇 번 다녀오고 교도소 특실에서 조금 쉬다보면 금방 나올뿐더러, 심지어 얼마 후에는 사면까지 받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되어 버린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이런 행태들이 결국 민주주의의 실제적인 부정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자칭 보수주의자들(이게 모든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을 비난하는 표현은 아니다)은 국민들의 눈을 속이며 차근차근 정부의 부와 권력(모두 국민들로부터 나온)을 민간 기업들에게 넘겨주고 있다는 것.

 

     책 속에 등장하는 한 연구 결과가 흥미롭다.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1972~2001년 사이 30년 동안 미국의 소득 수준 상위 10%의 실질소득은 34% 증가했다. 그런데 이 구간을 좀 더 세분화 해보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같은 기간 상위 1%의 소득은 87%가 증가했고, 0.1%는 181% 증가했으며, 0.01%의 소득은 497%가 증가했다. 전체적인 부의 양이 증가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대부분은 아주 소수의 손에 들어가고 있다는 지적. 매년 경제지표를 발표하면서 대한민국이 발전하고 부유해져왔다고 홍보하는 정부 당국자들의 발표와는 달리 갈수록 먹고 살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대다수의 중산층들의 하소연이 이해가 되는 부분.

 

 

     책은 이런 상황들을 열거하면서 좀 더 옳은 방향으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왜’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답이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 상황이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가장 저자의 의도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명분으로 싸우기로 일어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진 않다. 좀 더 와 닿는 이야기로는 이대로는 점점 가난해져갈 뿐이니 일어나서 너희 것을 찾으라고 말하거나, 헌법에 어긋나는 일이니 바꿔야 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도 역시 임의성이 강하니 모든 것을 걸고 일어나 나서야 할 충분한 명분이 될지, 그리고 기층까지 미치는 실제적인 반향을 일으킬 수 있지는 모르겠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어떤 비전을 그려낼 수 있을까.

 

     아, 그리고 저자가 미국인이라는 걸 감안해도 미국 건국 ‘신화’를 너무 낭만적으로 (그것도 꽤나 많은 지면을 사용해서) 그리는 건 아닌지 싶은 생각도 들고.(이건 뭐 괜한 트집일 수도 있고)

 

 

     언제나 진실을 알아내는 것보다 감추는 게 더 쉬운 게 안타깝다. 뭐, 감추려는 사람은 분명한 이익이 눈에 보이니까 돈도 들이고 시간도 들이면서 즐겁게 해내겠지만, 이미 감춰진 걸 드러내기 위해선 당장 이익이 보이지 않아도 찾아서 읽고, 듣고, 배워야 하는 거니까. 얼마 안 남은 대선만이 아니라 몇 년마다 반복되는 각종 선거는 진실을 감추려는 사람들을 제지하고 심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좀처럼 세상이 변하지 않는 건 누군가의 부지런함 때문일까,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의 게으름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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