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본 듯한.


영화를 보는 내내 익숙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대규모 재난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혼란에 빠지고, 몇몇은 희생되면서 남은 사람들은 가까스로 고생을 하며 결국 구조된다. 뭐 재난영화라는 게 대체로 이런 패턴을 따르긴 하지만...


주인공 차정원(이선균)은 청와대에서 일하는 비서관으로, 딸의 유학을 위해 인천공항으로 가던 중 갑자기 발생한 사고로 다리 위에서 고립되어 버린다. 여느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꽤나 높은 공직자가 여기 고립된 사람들 중 하나라는 게 이 영화의 차별점인데,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안보실장의 직속인지라, 그냥 다 쓸어버리는 식의 해결책을 위에서 내리지 못하도록 막는 주요한 장치.


하지만 단지 그것 말고는 크게 다른 점이 없다. 주인공이 딸과 함께 위기에 빠지는 그림은 “부산행”에서도 봤던 장면이고, 좁은 열차 안에서 좀비떼의 습격을 받는 것이나 앞뒤가 막힌 다리 위에서 유전자 조작 군견들의 습격을 받는 것이나 거기서 거기. 물론 사실상 거의 소망이 없이 끝났던 부산행과는 달리, 결국 생존자들이 구조가 되고 사태가 어느 정도 진압되는 게 차이이긴 하지만, 사실 이런 결말도 익히 봐 왔던 것이긴 하다.





재난 영화의 성공 공식은 뭘까.


역시나 이런 재난 영화의 포인트는 화려한 볼거리에 있지 않나 싶다. 뭔가 펑펑 터져나가고, 무너지고, 사방에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가 어려운 위기 속에 주인공을 몰아넣고, 어떻게 빠져나오는지를 보자 하는 식이다.


이런 판에 다리 위라는 공간이 적절했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그 다리를 어떻게든 폭발시키려고 유조차가 뒤집어지고 터지는 장면을 넣기도 했고, 유전자 조작 군견들을 대거 쏟아 붓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다중 교통사고 정도로 그런 큰 그림이 그려질까 싶기도 하고,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기 위해 삽입한 “유전자 조작 군견”의 부작용이라는 것도 그리 와 닿지는 않는다.


여기에 또 흔하디흔한, 권력 최상층부의 은폐 공작이라는 소재가 끝내 등장하고야 말았다. 처음에는 자기 라인에서 충성을 다하는 주인공을 구해줄 것처럼 하던 안보실장(김태우)은 자신이 승인한 프로젝트가 실패해 사람들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결국 자신의 수하인 차정원을 버리고자 한다.


하지만 애초에 안보실장이라는 캐릭터가 빌런으로서 충분히 묘사가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막판에 갑자기 모든 책임을 몰아넣는 게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영화의 초점이 주인공 일행의 생존을 위한 투쟁인지(그러기엔 액션이 약하다), 위험한 실험을 비밀리에 추진한 정부와 권력자에 대한 규탄인지(전화 몇 통으로 묘사하는 게 전부다), 그것도 아니면 인간을 위협하게 된 과학주의에 대한 비판적 견해인지(애초에 노트북만 두들길 뿐이다) 모호하다.





매력적인 캐릭터의 부재.


사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을 쓰게 되는 부분은 등장하는 캐릭터들 중 누구도 (심지어 주인공을 포함해서) 감정 이입을 할 만큼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우선 당장 주인공 격인 차정원은 자기가 모시는 안보실장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지극히 편파적인 정책 결정을 내리도록 궤변을 늘어놓는 인물이다. 물론 사고를 겪으면서 생각이 좀 달라지기는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무슨 공익을 위한 각성이나 윤리적 개선이 아니라, 자기가 믿고 모시던 상사가 자기를 버렸다는 배신감에 대한 반발이었다.


주인공의 딸 역시, 대책 없이 여기저기를 산책하면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캐릭터이다. 예의가 없어서 짜증이 난다고는 할 수 없으나, 지금 다리가 끊기고 눈앞에서 수십 중 추돌 사고가 일어났는데, 거기가 어디라도 저리 태연하게 돌아다니나 싶은 캐릭터.


실험의 책임자이면서 결국 개들을 통제하는 데 실패하고 일을 크게 벌린 양박사(김희원) 캐릭터부터는 짜증 유발자에 가깝다. 외골수의 연구자라는 캐릭터를 잡았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시종일관 책임감은 하나도 없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은 또 엄청 낸다.


그리고 꽤나 비중 있는 역으로 영화 내내 잔뜩 등장하는 견인차 기사 조박(주지훈)은 왜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전체 스토리로부터 붕 떠 있는 캐릭터다. 쉴 새 없이 농담과 가벼운 말들을 쏟아내는 모습은 귀가 아프게 만들 뿐, 별다른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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