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교 : 디텐션
존쉬 감독, 왕정 외 출연 / 인조인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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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계엄령.


종종 영화를 통해 우리는 잘 알지 못했던 역사에 대해 새롭게 눈에 열리게 된다. 이 영화가 그런 영화 중 하나다. 호러게임을 원작으로 두고 만든 영화라고는 하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 대만의 슬픈 역사가 깔려있어서 이를 모르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을 정도다.


1945년, 아시아를 지옥으로 만들었던 일제가 패망한 후 중국 대륙에서는 본격적으로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내전이 시작된다. 초반의 막강한 우세와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공산당에 밀리던 국민당은 1948년 즈음이 되면 진지하게 대륙에서 쫓겨날 가능성에 대해 고민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1949년 결국 타이완섬으로 철수를 하게 된다. 이른바 국부전대다.


그런데 사실 타이완섬은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여기에 대륙에서 밀려난 국민당 계열의 사람들이 대거 이주해 지배층을 형성한 것이다. 당연히 이에 대한 반발이 있었고, 안 그래도 쫓겨 온 터라 정치적 위기에 몰릴 것을 우려한 국민당은 계엄령을 발령해 일체의 반정부활동을 폭력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한다.


결국 계엄령이란 시민들의 자유를 합법적으로 제한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이 기간 단순히 정치적 활동 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되는데, 이때 대륙에서 온 문화를 강제하면서 토착 원주민 언어나 대만어 등을 사용하는 사람은 목에 팻말을 걸고 조리돌림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렇게 시작된 계엄령은 무려 38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고 하니, 대만인들의 사고에 아주 깊은 자국을 남긴 조치였다.





금서.


영화에서는 소위 ‘금서’를 읽는 비밀 동아리와 관련된 내용이 주가 된다. 그런데 그 금서라는 것이 무슨 정치서적이나 사회학서적이 아니라 문학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군을 동원해 시민들의 정신과 사고를 통제하려는 정부는 학생들의 문학적 상상력마저도 탄압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디 사람들의 상상력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의 몸은 가두고 묶어둘 수 있어도, 그의 영혼이 갖는 호기심마저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인간에게 자유가 본질적으로 추구하게 되는 무엇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의 정신의 자유로운 사유, 그리고 자신의 탐구의 결과물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함께 꿈을 꾸는 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일이다. 그걸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어떤 정부도, 어떤 권력기관과 조직도, 어떤 법도 가지지 못한다.


이런 면에서 책은 권력자들에게 대단히 무서운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정신을 강하게 무장시키기도 하고, 권력자가 휘두르는 몽둥이를 비웃고, 그 권력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비루한 부역자들을 조롱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 반대로 말하면 책을 보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언제든 독재자가 나타나 그들을 통제할 수 있다.





시대의 어둠.


영화의 스토리 자체는 단순한 편이다. 계엄령이 아직 서슬이 퍼렇게 살아있던 당시, 펑루이신이라는 한 여학생이 장선생을 마음에 품게 된다. 하지만 장선생의 옆에는 역시 비밀독서회에 속한 인선생이 있었다. 펑루이신이 연적으로 여기는 인선생을 제거하기 위해, 독서회에 속한 후배 웨이중팅에게 받은 금서를 당국에 신고하면서 학교는 풍비박산이 난다.


영화는 펑루이신의 죄책감이 형상화된 현재의 음침하고 폐허로 변한 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어느 날 펑루이신은 학교에서 잠들었다가 후배인 웨이중팅과 함께 깨어나고, 이미 기괴하게 변해버린 학교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녀의 죄책감이 만든 원령과 귀신들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한다는 것.


사실 그 나이 또래 선생님에게 짝사랑의 감정을 품고(영화 속 장선생의 마음은 없었을까?) 하는 것들은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다. 문제는 그런 어린 학생의 마음을 이용해 사회를 통제하는 기회로 삼은 독재자와 그 부역자들이 아니겠는가. 학생들마저 감시의 도구로 만든 사회는 건강할리 없다. 그건 영화 속 펑루이신의 깊은 죄책감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어둠의 시대는 무엇보다 이런 평범한 시민들의 마음 속에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다.


우리에게도 이런 어두운 시절이 있었다. 꼭 계엄령이 지속된 것은 아니었지만, 군부의 독재가 수십 년이었고, 그 기간 수많은 시민들이 자유를 제한받았다. 그래서 영화 속 이야기가 남일 같지만은 않은 느낌이다. 이제 우리도 대만도 민주화를 이루긴 했지만, 최근 돌아가는 상황이 우려스럽다. 권력자에 마음에 들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한 사람들은 연이어 고발을 당하고, 이제 국가기관이 시민들의 시력과 청력을, 그리고 사고마저 통제하려는 분위기가 이미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다시 어둠이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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