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나의 선택 1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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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세 번째 시리즈를 손에 든다이번 시리즈의 제목은 포르투나의 선택인데, ‘포르투나란 고대 로마인들이 가장 열렬하게 숭배하던 운명의 여신의 이름이다운명의 여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로마 정계의 최고 권력자가 될 터그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단연 술라가 돋보인다.


     이전 시리즈에서 마리우스와의 충돌을 빚으며 로마에 피바람을 몰고 왔던 술라가 이번 책의 중심인물이다전편에서 폰투스 왕국의 미트리다테스를 처리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동방으로 향했던 술라가 마침내 다시 로마로 돌아오는 과정이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번 책에서 유독 술라의 달라진 외모가 반복적으로 서술된다이전까지 그의 외모는 로마 사회에서도 특별할 정도의 미남으로 서술되곤 했는데동방으로 원정을 다녀오는 과정에서 질병을 앓으며 심한 피부질환을 앓았다는 설정으로 작가는 이를 설명한다그 결과 그의 외모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는데이 책의 제목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보면이건 포르투나의 선택이 술라에게서 떠났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전 이야기에서 술라는 소시오패스 같은 모습에목적을 위해서라면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간단히 제거해버리는 인물이었다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긴 했지만자신이 포르투나의 선택을 받았다는 확신 아래 거침이 없었다그런데 이번 이야기로 넘어오면서 그 빛나는 외모가 사라짐과 동시에 그를 둘러싼 광채마저 꺼져버린 듯했다병이 주는 스트레스도 있었겠지만그보다는 끊임없는 권력투쟁에 대한 피곤함도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싶고,


     무엇보다 그리고 그렇게 최종적인 권력을 얻은 후 술라의 모습이 썩 유쾌해 보이지 않는다도리어 깊은 권태감에 빠져서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 있는 로마라는 짐을 서둘러 내려놓고 싶은 마음도 언뜻 느껴진다물론 여전히 독재관으로 무소불위의 공포정치를 하고 있지만.

 


     권력이라는 게 참 흥미로운 것 같다그것을 얻기 위해 달릴 때는 평소엔 보이지 않는 모습까지 보일 정도로 열정적으로 달려들지만막상 권력을 손에 넣은 후에는 곧 만족감은 줄고 불안감과 온갖 부담감으로 점점 눌려가게 된다그러면 굳이 권력을 얻으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세상엔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


     대통령 선거가 몇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유력정당들마다 후보를 뽑기 위한 경선이 진행 중이다겨우 한 표를 행사할 뿐이지만경선 과정을 보면서 영 인상이 찌푸려질 때가 많다그 전에는 그렇게 점잖아 보이던 사람이 인신공격에 여념이 없고대통령이 되어서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비전은 보여주지 못하면서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만 반복하기도 한다.


     선거라는 게또 권력이라는 게 승자와 패자로 갈라지기에 어느 정도의 치열함은 어쩔 수 없겠지만선거가 끝나고 나서도그리고 혹 패배하고 나서도 삶이라는 건 계속될 텐데아치 오늘만 사는 것처럼 달려들면서 너무 많은 걸 놓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절대적인 권력을 쥐는 게 과연 행복한 일일까유명세와 권력이 주는 편리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오히려 그런 사람이야 말로 그런 자리에 오르면 안 되겠지만), 오히려 그 자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의 자리일 텐데오직 에게만 집중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술라와 권력에 관한 조금 무거운 주제를 넘어서면이제 젊은 카이사르와 젊은 폼페이우스의 얼굴을 보게 된다물론 이전 이야기에서도 얼굴을 비치긴 했지만이제 주연으로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모습이 드러나니또 다른 재미를 준다. “포르투나의 선택이 이쪽으로 옮겨져 가고 있다는 느낌역시나 다음 이야기가 얼른 읽고 싶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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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3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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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책의 주인공은 단연 술라다소시오패스끼가 다분한 술라라는 인물은마침내 로마의 집정관이라는 자리에 올랐고이탈리아 동맹시들과의 전쟁이 마무리되어 가던 무렵소아시아 지역에서 군사적 활동을 벌이기 시작한 폰토스 왕국의 미트리다테스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몰고 나서기 직전이었다그러나 술피키우스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자신을 지지하는 군대를 몰고 로마로 진격해 반대파들을 학살하고 권력을 장악한다.


     사실 이 당시 로마는 군대가 없는 도시였다고대의 여러 도시들이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또는 최고 권력자의 안위를 위해 성벽을 높이 쌓고 무장병력을 가까이에 두었던 것과는 달랐다그건 역설적으로 로마라는 도시가 가진 힘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군대가 없어도 누구도 쳐들어올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이런 상황을 깨뜨린 것이 바로 술라다그는 최초로 군대를 몰고 수도로 진격한일종의 쿠데타를 일으킨 인물이었고로마는 외적이 아닌 동족의 칼날에 의해 피로 물들었다사실 사람들은 술라가 오랜 금기를 깨고(관례에 따르면 로마의 신성경계선 밖에서 무장을 해제하고 난 후에야 로마 시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그런 짓을 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고이는 그의 친위쿠데타(그는 현직 집정관 신분이었다)가 쉽게 성공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 벽이 무너지고 깨져버리면이후에는 같은 일을 하는 데 문턱이 훨씬 낮아져 버린다술라의 쿠데타는 곧 밀려났던 마리우스의 역쿠데타를 불러왔고조금 뒤에는 그 유명한 카이사르의 쿠데타로 이어진다힘과 공포로 세워진 질서는 그만큼 허약해서 깨지기도 쉬었던 탓이다술라는 아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 같지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이 부분에서 귀족파인 술라와 민중파인 마리우스의 대립구조를 명확히 그린다그러나 이 책의 작가인 콜린 매컬로는 두 세력의 성격을 그렇게 분명하게 나누지 않는다오히려 술라를 도발하는 계기가 된 술피키우스라는 인물은 극렬 보수주의자였고그가 술라를 견제하려 했던 이유는 직전에 벌어진 동맹시 전쟁의 참상으로 인한 충격 때문이었다고 묘사한다.


     책에는 술피키우스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이런 구절이 있다. “술피키우스가 자신이 맡은 일을 충실하게 했기 때문에 수많은 이탈리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그가 현재의 체제가 갖는 정당성을 의심하게 되는 계기인데이런 점에서 꽤나 휴머니스트에 가깝다목적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중요하지 않은 목숨들을 희생시켜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게 고대의 사고방식이었으니까.


     결국 작가는 이 사건을 목적지향의 술라와 인간의 중요성을 자각한 술피키우스 사이의 가치관의 충돌로 묘사했던 것 같다흥미로운 해석인데덕분에 술라의 반대편의 중심인물 중 하나였던 마리우스의 자리가 애매해져버렸다결국 이번 권에서 그는 일곱 번째 집정관에 대한 예언에 집착하는 노망난 늙은이로 그려진다.

 


     책은 그렇게 폭도들과 함께 권력을 잡은 마리우스가 며칠 만에 세상을 뜨는 데서 끝난다역사라는 이름의 스포일러는 이제 돌아온 술라에 의한 또 한 번의 피의 숙청을 예고하는데이 이야기가 또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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킵차크 칸국 - 중세 러시아를 강타한 몽골의 충격
찰스 핼퍼린 지음, 권용철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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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나라는 대영제국이다그리고 거의 그와 비슷한 크기의 영토를 확보했던 것이 몽골제국이었다.(둘 다 세계 면적의 22%를 넘는 영토였다대영제국은 범선과 화포 등의 근대식 화약무기를 동원해 이룬 업적이었던 데 반해몽골제국은 오직 말과 활로 얻어낸 영토였으니 대단하다.


     하지만 교통과 통신이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 넓은 영토를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했고결국 칭기즈칸이 사망한 후 그의 아들과 후손들에 의해 제국은 분리되었다물론 여전히 큰집과 작은집 정도의 관계는 유지하고 있었지만서울대전만 떨어져 살아도 1년에 몇 번 얼굴 보기 어려운 요즘이다하물며 대륙의 이편과 저편으로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면 어떨까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독립적인 왕국(몽골에서는 칸국이라고 불렀다)으로 변해간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책의 제목인 킵차크 칸국은 그 중에서도 가장 서쪽에 영토를 만들었던 나라다칭기즈칸의 맏아들인 주치의 후손들이 다스렸고카스피해와 아랄해 북쪽의 킵차크 초원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했다자연스럽게 그 서쪽의 러시아인들과도 밀접한 접촉을 했다(물론 당시에는 아직 러시아라는 나라가 만들어지기 이전이긴 했다). 이 책은 킵차크 칸국과 러시아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관해 연구한 결과를 모아놓은 책이다.

 





     사실 애초에는 책의 제목만 보고킵차크 칸국의 형성과정그리고 그 역사적 전개 같은 내용을 볼 줄 알았는데책의 내용은 조금 다른 방향이었다킵차크 칸국 자체보다는 러시아와 주고받은 영향력 쪽에 집중하고 있으니까.


     킵차크 칸국은 몽골제국의 다른 칸국들이 정복한 지역과 달리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민족들과 조금은 독특한 관계를 유지했다예컨대 중국 내륙으로 들어간 원나라나페르시아 지역을 정복한 일 칸국 등은 피정복민들 사이에 거주하면서 그들의 문화를 수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그러나 킵차크 칸국은 러시아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지 않았다그 중요한 원인인 몽골적의 힘인 기마병을 유지할 수 있는 초원이 주로 영토의 동부에 있었기 때문서부의 러시아인들과는 제한적으로만 만났다(주로 세금이나 약탈을 위해). 덕분에 러시아인들은 정복당한 상태이면서도 그것을 애써 무시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러시아인들과 몽골인들의 관계는 일방적으로 한쪽이 다른 쪽을 정복하고 약탈하는 식으로만 맺어지지 않았는데당시 러시아인들은 하나의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지역에 따라 여러 공국들이 성립되어 있었고이 공국들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킵차크 칸국과 동맹을 맺기도 하는 식으로 다른 공국들을 제압하려 하기도 했으니까이 과정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은 것이 모스크바 공국이었고이는 후에 러시아(루스대공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또한 러시아인들은 정복자인 몽골인들로부터 여러 영향을 받기도 했다특히 아직 지역 단위의 작은 규모의 세력들만 유지하고 있었던 그들은 몽골로부터 제국경영에 소요되는 행정적 기법들을 배웠고이는 러시아어에 남아 있는 몽골어 행정용어들의 흔적들로 입증된다칭기즈칸의 후손이라는 황금씨족에 관한 신화는 무려 18세기에까지 러시아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사실 책의 내용은 킵차크 칸국 지배 시기 러시아에 대한 기존의 러시아 학자들의 주류해석에 대한 반론으로 채워져 있다러시아인들이 지배자들에게 대항해 오랜 투쟁을 통해 마침내 독립을 획득했고그 과정에서 중앙집권적인 체제가 완성되었다는그러나 저자는 이 서사가 사실과는 다르며양측은 좀 더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설명한다이쪽이 일리가 더 있어 보인다.


     다만 이 주장에 몇 번에 걸쳐서 거의 같은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는 건책의 완성도를 두고 보면 조금 아쉬운 부분그리고 저자가 말하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좀 더 체계적으로 항목들을 나누고 구체적인 증거들이 더 제시될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예컨대 저자가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러시아 문인들이 남긴 기록을 직접 인용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전반적으로 짜임새가 좀 부족하달까이건 목차만 봐도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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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는 무엇인가 - 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제국, 천황제의 형성
미타니 타이치로 지음, 송병권 외 옮김 / 평사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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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의 섬나라인 일본의 역사는특히 그 중에서도 근대 역사는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사실 우리에게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주로 제국주의적 침략자의 이미지로만 알려져 있을 뿐왜 일본이 그런 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둬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일본의 근대역사를 (복수)정당제자본주의로의 전환식민지주의천황제라는 네 개의 키워드로 분석해 낸다. ‘대중역사서라는 출판사의 소개와는 달리다분히 학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책이라언급되는 정보의 양과 폭이 꽤 넓고 깊다간단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면 고전하기 쉬울 듯하다.

 


     일본의 탈아시아사상은 잘 알려져 있다동아시아의 귀퉁이에 위치한 섬나라임에도(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자신들이 아시아의 제 국가들과는 차별되는 존재라는 것이다이 책의 저자는 막부 시대 말기 일본의 지식인들이 미국을 어떻게 자신들의 모범으로 삼았는지를 언급한다.

 

그렇지만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 봐도미국은 유럽 여러 나라와 동일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구별되는 후진국에 속했고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본과 동등한 위치였습니다그러나 미국은 일본보다 먼저 유럽 모국인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을 뿐 아니라유럽 여러 나라와 대등하게 일본에 대해 불평등조약이 초래한 권익을 향유했습니다당시 막부 말기 세계 정세에 정통했던 일부 일본 지식인에게 미국은 양이의 성공적 사례로까지 인식되었고비유럽국가로서 유럽적 근대화를 이룬 선구적 사례를 제공했습니다.

 

     일본의 근대화는 처음부터 이렇게 서양의 그것을 복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책에서 제안되고 있는 세 가지 요소(정당정치자본주의식민지주의)는 서양의 제국들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물론 그 구체적인 적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일본적인 현실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예컨대 정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는 유럽의 사례에서는 왕권을 견제하기 위한 방식으로 도입된 것에 반해일본에서는 오히려 특정한 세력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을 막기 위한 상호견제 시스템으로 도입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이는 막스 베버가 말한전문가들의 경쟁을 통해 지배자의 통제를 강화하는 경우와도 비슷하다(51). 이런 차원에서 저자는 권력분립제가 오히려 왕정복고 이념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도입되었다고도 말한다.

 

즉 메이지 헌법이 상정한 권력 분립제는 막부적 존재의 출현을 방지할 목적으로 만든 제도적 장치로왕정복고 이념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권력 분립제 하에서는 어떠한 국가기관도 단독으로는 천황을 대행할 수 없습니다.

 

     외세에 의한 강제적 개항과 그들에게 다양한 특례를 보장해 주어야 했던 일본은초기에는 외국 자본을 들여와 경제를 발전시키는 계획을 완강히 거부했다책에는 여기에 남북전쟁 당시 북군 사령관이자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었던 그랜트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했던 조언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일종의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발전을 꾀했던 것인데다양한 제도를 만들어 실천했음에도 불구하고결국에는 대만과 한반도 등지를 식민지로 만들어 수직적 국제분업’ 체제를 구축하는 데에 이른다식민지를 자원창고이자 상품판매지로 삼는 행태는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하지만 일본의 그것은 조금 다른 면이 있었는데유럽 제국의 식민지가 직접 영토를 맞대고 있지 않은 곳이었다면일본은 바로 인접한 지역에 식민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174). 그 결과 이는 단순한 경제적 식민지를 넘어 안보선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일제의 우리나라 식민지배에 관해서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조선 총독 자리를 두고 문관을 임명하려는 중추원과 무관을 임명하려는 군부 사이에 제법 오랫동안 대립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의 나라를 멋대로 쳐들어와 식민지로 만들어버린 죄가는 사라지지 않겠지만처음에도 이야기 했던서로 간의 견제가 지나칠 정도로 강해서 좀처럼 협업이나 정보의 원활한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예처럼 느껴졌다.

 


     천황제에 관해서 일본인들의 사고는 조금 독특한 면이 있는 것 같다요새 젊은이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정권을 틀어잡고 있는 세력이나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의 발언을 보면그들에게 천황은 단지 입헌군주국의 상징적 존재를 넘어서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저자에 따르면 애초부터 이런 미묘한 문제가 있었다서양의 근대로의 발전을 따라잡기 위해 애썼던 일본은서양에는 있고 자신들에게는 없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바로 기독교였다기독교는 오랫동안 유럽의 정신적 통합을 이루는 핵심이었지만일본의 은 단지 소원을 들어주는 문화적 기념물 수준이었다이에 기독교와 같은 기능을 하는 존재를 만들고자 했고그것이 천황에 대한 신격화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도 일본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타의에 의해 정리된 측면이 있다. ‘천황은 더 이상 도덕적 중심으로서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지 못하다물론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어떤 인사들은 이 부분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지만그것이 애초에 도입될 당시부터 있었던 일종의 모순(‘천황과 헌법 사이의 관계)을 해결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일본도 한국도각각의 근대사를 일국사로서 쓸 수는 없(231)”두 나라그리고 중국까지 포함한 세 나라의 역사가 밀접하게 엮여있기 때문이다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역사특히 근대사에 관해서 제대로 된 지식이나 공부가 없었다는 걸 느끼는 독서 시간이었다식민지배 시절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감 때문이었을까.


     저자는 한일 삼국이 대등한 행위자로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에 바탕을 둔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전망하는데여기에 이 삼국의 젊은이들 사이의 공통되는 몇 곡의 노래가 생기는 것(아마도 K팝을 말하는 듯)을 꼽는다언제까지 서로를 적대하고 공격하기만 해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을 테니새로운 관계를 모색해 가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북한의 김정은이 할아버지가 일으킨 전쟁에 대해 사과하지 않더라도 관계개선의 노력을 할 수 있는 것처럼일본의 집권 세력이 과거 그들의 조상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인정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관계를 탐색해 나갈 수 있을까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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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크인 이야기 - 흉노.돌궐.위구르.셀주크.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타산지석 21
이희철 지음 / 리수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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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목민족들의 역사는 추적하기가 어렵다가장 큰 원인은 기록의 부재다자체적인 역사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어쩔 수 없이 그들과 접촉했던 사람들의 입과 글을 통해 전해질 수밖에 없다문제는 그 접촉이 대개 적대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곤 했다는 점이다당연히 유목민족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가 없고사실을 과장하거나 악평을 쏟아내는 것이 일반적이다.(물론 이런 경향은 후대로 가면서 조금 나아진다제국을 이룬 나라들은 자체적인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다 똑같은 유목 민족들로만 보이지만근래에 봤던 또 다른 책과 이 책을 비교하며 보면크게 두 갈래의 유목민족들이 존재했던 것 같다하나는 이 책에서 다루는 튀르크족 계열이고다른 하나는 몽골족 계열이다.(물론 이 두 민족은 다양한 부족들과 동맹과 결혼을 통해 결합되곤 했다)


     이 책은 튀르크 계열의 주요 제국들의 행적을 따라가며 기술한다시간 순서대로 보면흉노돌궐위구르셀주크오스만 제국의 순서다유라시아 초원지역을 근거지로 삼아 주변의 작은 부족들을 흡수하며 세력을 키운 이들은초기(흉노돌궐위그르)에는 주로 동북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제 왕조들과 세력을 다투었고후기(셀주크오스만)에는 서쪽으로 이동해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후 나중에는 칼리프 자리까지(오스만 제국 시대차지하는 업적을 남긴다.

 


     사실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은 새로운 내용이라기 보다는 이미 있던 자료들을 정리해 놓은 수준이다저자의 독창적인 해석이 들어갈 여지 자체가 부족하기도 하고오늘날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는 자료들이고.


     하지만 책이라는 게 꼭 새롭고독창적인 내용일 필요는 없다이 책처럼 다양한 자료들을 잘 정리해서굳이 일부러 찾는 수고를 줄여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좋은 책이라고 불릴 수 있다더구나 터키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외교관 출신의 저자이기에이 지역(아나톨리아)을 중심으로 한 역사의 경우 꽤 상세하고 풍성한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다만 흉노와 훈족을 직접 연결시키는 게 학계에서 얼마나 인정받는 내용인지는 모르겠고또 유목민족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유목민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은 좀 아쉽다예건대 유목민들은 생산력이 낮아 약탈에 의존하는 경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식(127)인데최근에 나온 농경의 배신이라는 책을 보면고대 농경사회는 그 주민들을 억압하며 농지에 묶어두는 구조였던 데 반해유목채집 사회는 저습지의 풍성한 소출과 자유로운 삶을 영위했다는 내용이 보인다좀 더 검토해봐야 할 부분.

 


     튀르크 민족에 관한 한 권의 통사로서 가지고 있을 만한 책후에 관련된 내용을 검토할 때 역사적 사건들을 잘 정리해 둔 책으로 다시 들춰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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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20-12-29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먼저 리뷰를 작성하셨네요. 예전에 읽었는데 귀찮아서 안쓰고 지나가다보니..아직도...요즘 밀린 숙제 하나씩 다시 하고 있습니다. ˝한 권의 통사˝라는 말에 격하게 동의합니다.

노란가방 2020-12-29 22:05   좋아요 0 | URL
이 책 구입하셨나 보군요.
저도 최근에는 책 조금만 사고 사둔 책들 읽으려고 계획 중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