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튀르크인 이야기 - 흉노.돌궐.위구르.셀주크.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ㅣ 타산지석 21
이희철 지음 / 리수 / 2017년 6월
평점 :
유목민족들의 역사는 추적하기가 어렵다. 가장 큰 원인은 기록의 부재다. 자체적인 역사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그들과 접촉했던 사람들의 입과 글을 통해 전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접촉’이 대개 적대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곤 했다는 점이다. 당연히 유목민족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가 없고, 사실을 과장하거나 악평을 쏟아내는 것이 일반적이다.(물론 이런 경향은 후대로 가면서 조금 나아진다. 제국을 이룬 나라들은 자체적인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다 똑같은 ‘유목 민족’들로만 보이지만, 근래에 봤던 또 다른 책과 이 책을 비교하며 보면, 크게 두 갈래의 유목민족들이 존재했던 것 같다. 하나는 이 책에서 다루는 튀르크족 계열이고, 다른 하나는 몽골족 계열이다.(물론 이 두 민족은 다양한 부족들과 동맹과 결혼을 통해 결합되곤 했다)
이 책은 튀르크 계열의 주요 제국들의 행적을 따라가며 기술한다. 시간 순서대로 보면, 흉노, 돌궐, 위구르, 셀주크, 오스만 제국의 순서다. 유라시아 초원지역을 근거지로 삼아 주변의 작은 부족들을 흡수하며 세력을 키운 이들은, 초기(흉노, 돌궐, 위그르)에는 주로 동북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제 왕조들과 세력을 다투었고, 후기(셀주크, 오스만)에는 서쪽으로 이동해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후 나중에는 칼리프 자리까지(오스만 제국 시대) 차지하는 업적을 남긴다.
사실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은 새로운 내용이라기 보다는 이미 있던 자료들을 정리해 놓은 수준이다. 저자의 독창적인 해석이 들어갈 여지 자체가 부족하기도 하고. 오늘날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는 자료들이고.
하지만 책이라는 게 꼭 새롭고, 독창적인 내용일 필요는 없다. 이 책처럼 다양한 자료들을 잘 정리해서, 굳이 일부러 찾는 수고를 줄여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좋은 책이라고 불릴 수 있다. 더구나 터키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외교관 출신의 저자이기에, 이 지역(아나톨리아)을 중심으로 한 역사의 경우 꽤 상세하고 풍성한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다만 흉노와 훈족을 직접 연결시키는 게 학계에서 얼마나 인정받는 내용인지는 모르겠고, 또 유목민족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유목민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은 좀 아쉽다. 예건대 유목민들은 생산력이 낮아 약탈에 의존하는 경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식(127)인데, 최근에 나온 『농경의 배신』이라는 책을 보면, 고대 농경사회는 그 주민들을 억압하며 농지에 묶어두는 구조였던 데 반해, 유목, 채집 사회는 저습지의 풍성한 소출과 자유로운 삶을 영위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좀 더 검토해봐야 할 부분.
튀르크 민족에 관한 한 권의 통사로서 가지고 있을 만한 책. 후에 관련된 내용을 검토할 때 역사적 사건들을 잘 정리해 둔 책으로 다시 들춰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