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의 맛 온우주 단편선 5
이서영 지음 / 온우주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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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총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이 작품들이 흥미롭다. 인간의 마음을 읽는 고양이(‘밥줄을 지켜라’), 좀비(‘종의 기원’), 거대한 악어를 사랑한 두 꼽추 자매의 이야기(‘악어의 맛’), 오로지 아이를 낳는 것이 목표가 된 가상의 시설(‘히스테리아 선언’), 시간 이동을 하는 남자와 여자(‘사형집행일’), 그리고 초능력을 가진 노인들(‘노병들’) 등 일명 장르소설로 분류되는 소재들이 잔뜩 등장한다.

 

     좀 더 평범한사람들이 등장하는 작품들(‘로보를 위하여’, ‘성문 너머 코끼리’, ‘너의 낡은 캐주얼화’)도 있는데, 그 중 한 편인 성문 너머 코끼리의 경우는 역시 살짝 환상문학의 느낌이 난다.

 

     ​각각의 작품들 뒤에는 작가 자신이 직접 쓴, 작품에 대한 코멘트가 달려 있다. 이 작품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어 쓴 것이고,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등.


    

2. 감상평 。。。。。。。

     스스로를 소설 쓰는 사회주의자로 부르는 여류 작가가 쓴 소설이다. 1987년에 태어났다니 이제 우리나이로 서른인데, 이 책이 2013년에 나왔음을 생각해 보면, 작품들은 20대 초중반 즈음에 썼던 것으로 보인다. 젊은 나이였고, 젊은 감각이 톡톡 튀는 단편들이다. 지나치게 빙빙 돌리는 것도 없고, 주제가 무엇인지는 대개 분명하게 드러난다.(뭐 작가 자신이 이건 뭐다 라고 쓰기까지 했으니까) 이 부분은 작품을 좀 더 넓게 이해하는 걸 막는 작가의 오버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뭐 자신이 쓴 이야기가 다른 식으로 읽히는 게 싫었을 수도 있지. 젊으니까 그 정도의 직진성은 이해해 두자.

 

 

     그런데 작품들이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준다. 좀비를 주인공으로 한 종의 기원도 그렇고 거대한 악어와 꼽추 자매가 등장하는 악어의 맛이나, 대규모의 출산 수용소(라지만 꽤나 대접이 좋은 곳이다)를 다룬 히스테리아 선언등도 비슷한 분위기다. 뭘 말하려는 건지는 알겠는데 지나치게 어둡고 괴기스러운 면도 보여서, 침대에 누워 편하게 읽으려고 했던 애초의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야기가 아주 읽을 맛이 안 났던 건 아니다. 요새는 좀 게을러졌는지, 읽다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싶으면 주저 없이 덮어버린다. 하지만 이 책은 그래도 끝까지 읽도록 만들 정도로 재미가 있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는 마지막에 실려 있는 노병들이었다.

 

 

     책은 전체적으로 소수자들, 억압받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에서 소설 쓰는 사회주의자의 진가가 드러난다. 작가는 노동자들을 좀비로 표현하고, 쫓겨나는 노점상들을 고양이의 눈으로 관찰한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다 보니 한 번에 통째로 설명하기가 좀 어렵긴 하지만,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흥미롭게 풀어내는데 재능이 있어 보인다.

 

     좀 더 호흡이 긴, 장편을 써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단편과 장편 사이에는 분량 이상의 큰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정도의 글쓰기라면 읽어볼 만한 작품이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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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이혼
왕하이링 지음, 이지영 옮김 / 비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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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젊은 시절 열렬한 사랑을 해 결혼한 젠핑과 샤오펑. 젠핑은 국립병원에서 외과전문의로 일하고 있었고, 아내인 샤오펑은 지역의 학교에서 주임교사를 맡고 있었다. 둘 사이에는 아들인 당당이 있는, 겉으로 보면 전형적인 중국의 중산층 3인 가정이다.

 

     하지만 샤오펑은 늘 남편이 좀 더 도전적인 자리(이를 테면 외국계 병원 같은)로 진출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도 현실에 만족하는 것이 불만스러웠고, 젠핑은 도무지 만족할 줄 모르는 샤오펑의 태도에 점점 질려가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부부의 갈등은 젠핑이 샤오펑의 말대로 외국계 병원으로 이직을 하고, 살림살이가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는데도 그 형태와 주제를 바꾸어 계속해서 이어진다. 어쩌면 문제의 원인은 돈이나 사회적 평판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젠핑의 고향 후배인 둥베이, 쥐안쯔 커플, 그리고 젠핑의 이웃이자 전 직장 동료인 이혼녀 샤오리 등의 인물들이 주인공 부부와 함께 얽혀가면서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긴 호흡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2. 감상평 。。。。。。。

     책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결국 이 이야기는 이혼으로 끝나는 한 중국 부부의 이야기다. 자연히 누구에게 소위 귀책사유가 있는 건지 찾아가면서 읽게 되는데, 이혼이라는 게 어느 한쪽의 잘못이라고 몰아가기 어려운 면이 있기 마련인지라,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판단을 내리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초반부 샌님 같은 이이지였던 젠핑은 대형병원으로 옮기면서 확실히 전체적으로 세련되어져 가지만, 가정에 보다 집중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둔 샤오펑은 점점 남편에게만 집착하는 캐릭터로 변해간다. 어떻게 보면 문제는 이 샤오펑의 집착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사소한 문제도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금세 엄청난 스캔들이 되어버리는 식이기 때문.

 

     때문에 이 작품을 처음으로 검토했던 한 남성 편집자는 이 책이 남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책이라고 평을 내렸단다. 남성들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늘 불만에 가득 찬 아내의 모습을 너무나 생동감 넘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라나. (물론 그에 반해 여성 독자들은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작가 자신은 이 소설을 통해 여성들이 가정을 위해 전폭적인 희생을 감행하는 것은 허망한 일임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한다. 분명 소설 속 샤오펑의 행동에는 문제가 있지만, 그녀가 그렇게 변한 것은 자신을 포기하고 가정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인 것. 물론 이건 단순히 누구의 책임을 물으려는 것 보다는 결혼 후에도 당사자 간의 독립적인 (영혼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결혼 관계의 양상에 관한 좀 더 깊은 사고를 담은 주장이다. 다만 그것의 현실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짧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글을 지어내는 솜씨가 느껴진다. 작은 오해가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어떻게 엄청난 의심으로 변해 가는지, 뭔가를 숨기려고 하는 의도가 어떤 식으로 예치기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하는 과정을 흡입력 있게 그려낸다. 그리고 단지 인물들만의 갈등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자본주의화 이후 급격히 변해가고 있는 중국인들의 생각과 생활방식에 관한 묘사도 담겨 있어 또 다른 면으로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들이 겪는 문제는 급격히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서로 다른 전통과 가치관을 갖게 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것이기도 하니까.

    

      약간 작위적인 설정이나 행동들도 눈에 띄지만.. 뭐든지 일어날 수 있는 중국 이야기니까. 다만 후반부로 가면서 살짝 느슨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최근 결혼 예정인 지인에게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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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게 말을 걸다 - 외롭고 서툴고 고단한
신현림.신동환 지음 / MY(흐름출판)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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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요약 。。。。。。。

 

     시인인 작가가 아버지라는 주제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써 내려 간다. 주요 소재는 작가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전 국회의원 신하철씨다)이지만, 주변의 선후배, 혹은 어디선가 전해들은 이야기 속 아버지에 관한 내용도 일부 담겨 있다. 여기에 작가의 남동생인 정신과 의사 신동환의 칼럼이 각 챕터 말미에 네 편 실려 있다.

 

 

2. 감상평 。。。。。。。

 

     크게 네 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크게 의식하면서 읽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작가가 아버지와 함께 하며 겪은 일화가 담긴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야기 등 비슷한 콘셉트라, 챕터가 나뉘어 있긴 하지만 크게 다르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역시 자연스럽게 부모님에 관한 생각이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장 후회가 되었던 건, 내가 아버지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말 그대로 아버지에 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는 거의 알지 못했다.

 

     집에서 그다지 말씀을 많이 하시는 분도 아니셨다. 어린 시절에는 공장을 운영하시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가계셨고, 사업이 망한 뒤로 몇 년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셨다. 돌아오신 뒤에는 말수가 더욱 줄어드셨고(아마도 깊은 좌절감이 더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짐작될 뿐), 이런저런 일에 손을 대셨지만 제대로 된 소득이 없으셨고, 마지막 몇 년은 병원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셨다.

 

     우리 아버지는 많이 배우신 분도 아니었고, 책을 읽으시는 분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그래도 아버지는 다 아시는 것처럼 생각했었지만, 좀 더 자라면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점점 묻는 횟수나 빈도도 줄어갔다. 그런데 그게 참 후회가 된다. 무슨 새로운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도,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물을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꿈, 아버지가 살아오셨던 이야기에 대해 나는 거의 아는 게 없었다.

 

     책 속에 소파가 가장 편하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집에 들어와도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고, 그저 의례적인 대화들만 오고갈 뿐. 집 안 어디에도 아버지의 자리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냉장고 속 주전부리를 챙겨 소파에 비스듬히 눕는 아버지. 그는 소파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가족들은 정말로 소파가 편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어디 다른 곳에 몸을 누일 자리가 없어서 그런 건지 묻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난 이 이야기를 읽으며 굉장히 슬펐다. 어쩌면 내 아버지도 집 안 어디에도 누울 자리가 없으셨던 건 아닐까.

 

 

     ​책의 마지막 칼럼은 우리가 좋은 아버지가 되자는 내용이다. 어쩌면 나처럼 아버지와 더 이상 좋은 추억이나 기억을 만들 수 없어 좌절하는 사람들을 위한 내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또 다른 아들에겐 이런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아버지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일단 누군가의 남편이 되어야 아버지도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가끔은 이런 책도 한 번씩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지나치게 호들갑스럽지도 않고 편안하게 읽히는 글이 보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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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 컴퍼니 스토리콜렉터 3
하라 코이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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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은퇴 후 하루하루 하릴 없이 동네 도서관을 다니며 소일하고 있던 스고우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자신처럼 은퇴한 기리미네를 만나면서 극락 컴퍼니가 시작된다. 말하자면 일종의 회사놀이. 오직 회사밖에 모르며 살았던 그들로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을 보낸다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었기에, 일종의 가상의 회사를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양식미를 즐기는 놀이를 시작한 것이다. 실사판 다중접속 역할수행게임(MMORPG)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 어설픈 계획이 놀랍게도 인근의 수많은 퇴직자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게 된다. 곧 놀이는 하나 둘 지사까지 내며 확장되기 시작했고, 전국적인 신드롬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조금씩 이 놀이에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며 접근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 중 한 명은 스고우치의 아들 신페이였다.

 

 

2. 감상평 。。。。。。。

 

     일단 재미있다. 이런 종류의 가벼운 소설을 손에 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를 제대로 충족시켰으니, 뭐 그것만 해도 충분하다. 장난처럼 시작한 은퇴자들의 놀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확대되어 전국적인 유행으로 발전해 가는 장면은, 마치 내가 그 놀이에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신이 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몇 가지 더 흥미를 끌만한 코드를 집어넣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 ‘회사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아가 회사’, 혹은 사업이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제법 무게감 있는 질문이 이야기 속에 적절히 섞여있다.

 

 

     ​이 질문들에 대한 탁월한 통찰이 담긴 대답까지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지만, 그래도 문득문득 인생의 지혜가 담긴 몇몇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야기 초반 스고우치와 기리미네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회사의 이념을 정하는 부분에서 등장한다. 스고우치는 현역 때와는 달리 우리는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회의를 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건설적인 시간보내고 있음을 깨닫고는 기뻐한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 어떻게 하면 줄을 잘 타서 승진을 할까, 어떻게 하면 경쟁자들을 누르고 더 많은 성공을 거둘까 하는 회의에 매몰되어 버리면, 어느 순간 우리는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를 묻는 것이 사치가 되어버린다. 회사가 감옥이 되고, 내 책상과 동료의 책상을 나누는 파티션이 창살이 되어버리는 건 이즈음일 것이다.

 

     하지만 스고우치와 기리미네는 회사생활에서 승진’, ‘성공을 버리고, 회사 자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두고 고민할 수 있었고, 덕분에 오랜만에 순수한 기쁨을 느끼게 될 수 있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던가. 회사란 밖에 있을 때는 들어가고 있고, 정작 들어온 후에는 나가고 싶은 그런 곳이라고. 여기에는 이런 조금은 이상적인 가치에 대한 추구가 사라지는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앞서 말한 것처럼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지만, 전개가 살짝 헐거운 부분도 보인다. 기리미네가 왜 그렇게 갑자기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된 것 같지는 않다. 또 사기사건이 발생한 후 회사놀이에 가해지는 언론의 비난은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장돼 보인다. 작가가 좀 얼버무린 듯한 느낌.

 

     ​회사생활도 회사생활이지만, 그보다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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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시학 - 스물네 개의 시적 풍경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3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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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이십사시품”(줄여서 시품’)이라는 이름의 시학(詩學)을 다룬 저작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오랫동안 당나라의 사공도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그 또한 분명한 건 아니다.(저자는 좀 더 후기인 남송 시절로 본다) 그런데 이 작품이 대박을 친 거다. 중국의 여러 문인들은 물론 조선에서도 끊임없이 인용되고, 2차 창작물(그림이나, 비슷한 형식의 시학 책 등)들까지 만들어지기에 이른다.

 

     이 책은 바로 그 이십사시품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내용이다. 스물네 개의 장은 우선 원전의 내용을 풀어 놓고, 그것을 그림으로 옮긴 세 사람(우리나라의 겸재 정선과 중국 청나라 건륭제에게 바치기 위해 그린 반시직, 제네방)의 그림을 실사도판으로 옮기고 설명한다. 그리고 각 장의 주요 시풍을 잘 표현해 낸 또 다른 시들을 소개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2. 감상평 。。。。。。。

 

     ​휴가를 떠나면서 책 한 권을 들고 나가려고 책장을 살피던 중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장에 들어온 지 제법 됐는데, 우선 그 두툼한 두께와 한시라는 주제의 어려움 때문에 좀처럼 손이 가지 않던 책이었다. 하지만 여름휴가와 한시라.. 뭔가 좀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이 아니던가. 큰 맘 먹고 가방에 넣었는데, 결과적으로 썩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한시(漢詩)라는 영역은 즐기기가 쉽지 않다. 우선 한자의 압박 때문에 읽는 것 자체가 어려우니까. 얼치기로 비슷하게 따라할 수는 있지만, 정말로 그 좋은 맛을 느끼려면 과정과 재료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 법이다. 게임의 조작법을 모른 채 아무 거나 눌러서 잠깐은 화면을 움직일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충실한 번역과 좋은 설명은 이런 어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꼭 고대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를 다 알지 못하더라도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거니까.) 원전에서 말하는 시풍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그와 관련된 그림과 또 다른 시인과 그들의 시들을 함께 접하니, 각 장마다 잘 구성되어 지루할 틈이 없는 교양강좌를 듣는 느낌이었다.

 

     특히 저자는 무조건적 찬사만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스물네 개의 시풍들 중 서로 비슷해서 잘 구별되지 않는 내용들도 있으며, 각각의 시풍의 배열에 긴밀한 논리적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등, 어느 정도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분석해 더욱 신뢰감이 간다. 여기에 저자의 풍성한 지식이 더해지니 말 그대로 하나의 백과사전을 보는 듯했다.

 

     다만 책 후반으로 갈수록 약간 긴장감이 떨어지는 경향이 보인다. 각장의 초반마다 이광사가 쓴 이십사품의 각 풍격이 사진으로 실려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 양반은 각 풍격에 어울리는 서체로 이를 표현해냈다. ‘웅혼같은 풍경은 흘려쓰는 서체인 초서로, ‘충담행서로 쓰는 식. 그런데 저자는 이때마다 그가 사용한 서체를 설명하는 문구를 곁들여왔는데, 후반부 몇 개의 장에서는 이것이 빠져있다. 그리고 후반으로 넘어갈수록 설명의 내용도 조금씩 줄어드는 경향도 보인다. 아무래도 긴 시간 연재를 하면서 조금 집중력이 떨어졌던 것은 아닌가 싶은.

 

 

     ​더운 여름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아니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차분하게 읽다보면 마음에 와닿는 문구가 몇 개는 반드시 나올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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