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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국내 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1. 줄거리 。。。。。。。
체코의 외과의사인 토마시는 어느 날 밤 전에 우연히 만난 한 시골마을의 젊은 여성(테레자)의 갑작스러운 방문을 받는다. 사랑과 섹스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여기며 수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하던 그가 이 방문을 거절할 리 없었다. 여느 때처럼 관계를 마친 후 여자를 돌려보내려 했지만, 갑자기 열이 오른 그녀를 내보낼 수 없어 자신의 집에 하룻밤을 머물게 한다. 그녀와의 만남에서 무거운 책임감, 운명적인 힘을 느끼게 된 토마시.
한편 지루한 시골마을에서 편집증적인 어머니 아래 억눌려왔던 테레자는 토마시와의 만남을 운명으로 여긴다. 그의 곁에 머물기 위해 애쓰던 테레자는 마침내 이혼을 하고 온 토마시와 살림을 차린다. 그렇게 행복한 생활이 시작되나 싶었지만, 웬걸 두 사람의 관계는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고가며 양쪽 모두를 지치게 만들었다.
2. 감상평 。。。。。。。
성 중독자(토마시)와 애착중독자(테레자)의 만남은 얼마나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드는가. 어느 한 쪽만이 원인제공자가 아니었고, 한 쪽만이 피해자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괴롭혔는데, 한 사람은 관계 안에 머물면서 동시에 관계를 떠나고 싶어서, 또 한 사람은 관계 안에 머물고 있으면서 더욱 단단히 그 자리에 머물기 위해서 그랬다.
두 사람은 사랑에 대한 제멋대로의 정의를 가지고 자신의 정의에 상대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건 마치 양쪽에서 서로 쏘는 총알이 한 지점에서 만나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었으니.. (결혼이라는 위대한 일을 결심한 이 땅의 모든 커플들에게 축복을..)
소설은 하나의 시간축을 따라 흐르지 않고, 조금씩 차이가 나는 다양한 시간대 위를 달리는 각자의 시선에 따라 이야기를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때로 같은 시간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설명되기도 하고, 하나의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이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몇 번씩이나 서술의 시간을 뒤로 돌리기까지 하고. 여기에 테레자의 꿈 속 광경마저 하나의 장(章)을 형성하며 삽입되어 있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어 나가야 한다.
사실 문장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아서 책장은 수월히 넘어가지만, 주인공들의 생각에 좀처럼 몰입이 되지 않는 부분이 읽기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자기 생각에 갇혀서 꽉막혀버린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런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뭔가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의 사고가 어떻게 좁아질 수밖에 없는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
책을 좀 더 흥미롭게 만드는 건, 주인공들의 사랑놀음만이 아니라 그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건이 적절하게 녹아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소련군의 진주 후 세워진 친소정권은 사람들을 감시하고, 억압하고, 추방했다. 마치 일제가 우리나라에게 했던 것처럼. 작품 속 토마시는 괴뢰정권의 감시자들에 교묘하게 추적과 심문을 받으며 원래 갖고 있던 직업과는 전혀 다른 일을 전전하며 살아가야 했다. 실제로도 공산정부 치하에서 여러 핍박을 받다가 프랑스로 망명했던 작가의 경험이 실감나게 녹여져 있는 부분.
뭔가 지독한 이야기에 들어갔다가 나온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