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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
마르크스.엥겔스 지음, 김기연 옮김 / 새날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한마디로, 공산주의자는 어디서나
현존 사회 및 정치 질서에 반대하는 모든 혁명운동을 지지한다.
1. 줄거리 。。。。。。。
가진 것이라고는 몸밖에 없는 ‘프롤레타리아’라는 계층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그들이 가진 태생적 한계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불공평한 상황을 프롤레타리아의 입장에서 해결할 수 있는지에 관한 선언이다.
저자들은 산업혁명 이후에 나타난 대자본의 축적이 프롤레타리아라는 계층을 탄생시켰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노동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자본가들에 대한 절대적 약자의 위치로 전락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폭력을 동반한 혁명을 제시하며, 전 세계적인 노동자들의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2. 감상평 。。。。。。。
공산주의의 캐터키즘(Catechism)이라고 부를 만 한 내용이다. 아직 실제로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던 청중과 독자들을 향해, 공산주의는 이런 것이다 라고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논리상 ‘공산당 선언’의 이론적 근거는 공산주의적 역사관에 있다. 저자는 그 위에 현재 프롤레타리아들이 처해 있는 위기는 후천적인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올려 놓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논리를 쌓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역사해석은 매우 단순한데, 그는 경제구조(혹은 생산구조나 생산관계)를 중심으로 역사를 해석하려고 했다. 바로 이 점이 그의 탁월한 면 중 하나이다. 우선 이 간단한 해석은 그다지 많은 공부를 하지 못한 사람들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선명하다. 상대적으로 덜 배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이 점은 어쩌면 필수적인 것이었으리라. 또, 스스로를 ‘과학적 해석’으로 자처하는 이 방법은 당시의 산업혁명과 친척뻘인 ‘과학주의’에 젖어 있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충분히 ‘먹어주는’ 방식의 논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이 역사해석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누군가가 마르크스처럼 한 가지 주제만으로 역사를 해석하고자 한다면 그 사람의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을 얻지 못할 것이다. 물론 역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끄는 동력과 같은 것들을 말할 수도 있지만, 모든 역사적 사건이나 흐름은 복합적인 측면을 충분히 고려해야만 한다. 또, 역사를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는 생각의 극단인 실증주의적 역사탐구방식은 이미 한물 간 이론이다. E. H. Carr 식의 ‘대화’ 혹은 역사가 개인의 ‘관점’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과연 누가 ‘엄밀하게 객관적인 관점’으로 역사를 서술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식의 역사 해석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로부터 직접적으로 ‘폭력을 통한 노동자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왜 하필 그런 방법이어야 하는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가? 또, 전적으로 새로운 제도와 규칙들의 당위근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현존 질서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가 과연 해답인가 하는 질문들이 그런 맥락이다.
혁명가적 기질이 묻어나오는 문장에는 힘이 있다. 하지만 그 문장들이 가리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구호는 강하지만, 비전은 불투명하다. ‘인간’과 ‘인간성’에 대한 이해가 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들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믿고 있지만...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