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지위에 관해 흥미로운 비유가 하나 책에 등장한다. 어린 아이가 부모를 전능한 존재로 믿고, 그 결정을 보지 못하거나 무시한다면 그건 아이가 아직 미숙하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부모의 결점을 이유로 부모를 존중하지 않고 존경심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사춘기에 머물러 있다는 증표다.
부모와 성숙한 관계를 맺는 사람은 부모가 전능하다는 믿음과 부모의 연약함에 대한 경멸을 넘어, 상속인이자 자유인이라는 지위를 누린다. 자신에게 영향을 준 부모의 역할을 이해하면서 감사하지만, 나아가 거기에 완전히 맹종하거나 종속되지만은 않는다. 전통이 우리에게 부모와 같다는 말이다. 전통을 회복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것을 추종할 필요도 없지만, 마찬가지로 전통을 혐오하며 반(反)전통으로 나가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는 말이다. 좋은 지적이다.
마지막 장은 저자의 탁월한 통찰이 담긴 문장으로 시작한다. “전통은 죽은 이들의 살아 있는 신앙이고, 전통주의는 살아있는 이들의 죽은 신앙”이다. 우리는 전통을 단지 옛날 사람들의 뭔가 부족하고 모자란 인습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그렇다고 오로지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기만 해서도 안 된다.
C. S. 루이스는 “연대기적 속물주의”라는 태도를 매우 싫어했다. 오직 새로 나온 것, 그 자체가 어떤 권위를 지니고라도 있는 양, 옛것에서 눈을 돌려 최신의 유행만 좇는 행태를 가리킨다. 그러면서 루이스는 권한다. 요즘 나온 책을 한 권 읽었다면 다음엔 고전을 한 권 꺼내 펼치라고. 그게 안 되면 최소한 요즘 나온 책 세 권을 본 후에는 반드시 고전을 한 권 보라고. 그건 우리가 동시대 사람들의 편견에 빠지지 않기 위한 중요한 조언이다. 어떤 면에서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전통의 회복과 옹호와도 연결되는 듯하다.
이미 우리 안 깊이 배어 있는, 그리고 우리가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하는 전통의 존재와 위치, 그 의의에 대한 탁월한 통찰이 인상적이었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