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역사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다카미야 도시유키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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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책에 관한 다양한 역사적 이야기를 시대 순으로 설명해 놓은 책이다. 고대의, 아직 책이라는 형태로 묶이기 이전, 사람들이 어떻게 문자를 쓰고 소통했는지부터, 두루마리 형태의 권자본에서 오늘날 보는 것과 유사한 책자본으로 전환되는 과정(여기에 초기 기독교인들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필사자들의 작업, 책을 읽는 방식(음독과 묵독), 고전에 대한 애착이 나타나면서 등장한 위작자와 복제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디지털 시대로 접어든 오늘날 책의 다양한 변형 등을 총망라한다.


대략 짐작할 수 있듯이, 어느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들어간 학술서 보다는 책에 관한 다양한 역사적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풀어놓은 교양서에 가깝다. 하지만 중세영문학과 서지학이라는 저자의 전공을 생각해 보면, 이런 주제들이 단순히 흥밋거리 정도로 가볍게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나름 탄탄한, 그리고 종종 관련 주제에 관한 개인적 경험까지 언급되는 설명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되는 일이다.





주제에 대한 저자의 애착이 눈에 띄는 책이다. 예컨대 저자는 AD 100년 경 당시 브리타니아라고 불렸던 잉글랜드의 하드리아누스 방벽에서 근무하던 로마 군인이 쓴 편지 가운데서 베르길리우스의 시 일부가 인용되어 있는 것을 보고 환호성을 지른다.(정확히는, 비가 내리는 영국의 어느 오후 “이루 말할 수 없는 충만감을 만끽하면서”. 지하철 역까지 우산도 안 쓰고 걸어갔다고 써있다.) 사실 이건 오늘날에도 꽤나 특별하게 받아들여질 만한 일이긴 하다.


저자의 서술에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표현들이 자주 보인다. 이런 책을 읽는 건 역시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분야를 대중에게 알 쉽게 소개하는 작업은,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가 아닌가 싶은데, 진짜 전문가라면 이런 의무마저도 즐거움으로 바꿔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 역시 충분히 즐겁게 손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내 경우엔 새벽 광역버스 안 그리 밝지 않은 조명 아래서도 전혀 졸지 않고 책장을 계속 넘길 수 있었다.


책 말미에 이 책이 속한 시리즈(이와나미 시리즈)가 여든다섯 권 소개되어 있는데, 웬걸, 하나하나가 구미를 당기게 하는 흥미로운 주제들이다. 딱 이 정도의 난이도와 내용이라면 쉬어가는 책으로 언제든 골라 들어봄직 하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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