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변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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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세우스의 배”라는 이름의 형이상학적 질문이 있다. 그리스 신화 속 영웅인 테세우스가 크레타섬에 있었다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수 미노타우르스를 처치하고 아테네로 돌아올 때 타고 온 배가 그 주인공인데, 아테네 사람들은 그 배를 오랫동안 보존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무로 만든 배였던 지라, 시간이 지나면서 썩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이 부분을 새로운 판자로 갈아 끼우면서 보존을 했다.


물론 처음 한두 개 판자를 갈아 끼운 것으로는 큰 차이가 없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계속 썩은 부분을 새것으로 교체하다보면, 어느 순간 처음 배의 조각은 하나도 남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 과언 이 배는 ‘테세우스의 배’일까?


이 질문의 핵심은 부분이 변했을 때 전체가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가에 있다. 그리고 금세 느꼈겠지만, 이 질문의 답은 결코 쉽지 않다. 어느 정도의 ‘부분’을 교체하는 것까지 전체가 남아 있는 거라고 용납할 수 있을까?



이 재미있는 생각에는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하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소설에 나오는 것 같은 인체의 예시다. 어떤 사람이 사고나 질병으로 신체의 일부분, 예를 들어 장기가 손상되었다고 하자. 그래서 그 부위를 이식받았다면 그 사람은 원래의 그 사람과 동일한 사람일까? 물론 여기에 다양한 감상적인 대답이 나올 수도 있지만, 만약 그 이식받은 부위가 뇌라면 어떨까?


뇌를 단순히 유기적 기계 정도로 여기는 현대 뇌과학계에서 이 질문은 그리 어렵지 않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소설 속 수술을 집도한 도겐 박사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인공을 설득하려 한다. 그는 우연히 찾아간 부동산 사무소에서 일어난 총기사고로 뇌의 일부분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지만, 기증자의 뇌 부위를 이식함으로써 간신히 살아난 인물이었다.


그러나 주인공 준이치는 조금씩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자신에게서 수술 전과 다른 모습들이 하나둘 발견되기 시작했고, 그런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체의 일부를 이식받은 후에도 원래의 나와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도 의식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의식이 달라진다면, 그래도 나는 나일까?


사실 이 부분은 소설적 재미를 부여하기 위한 요소로, 뇌의 일부를 이식받았더니, 그 뇌를 제공한 사람의 성격과 감정이 그대로 옮겨진다는 조금은 통속적인 스토리로 이어진다. 개인적으로는 이 때문에 애초의 형이상학적 질문이 조금은 단순하게 변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이런 노골적 장치가 없었다면, 평소에 그런 철학적 질문을 그토록 오래 붙잡고 있지는 않았을 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결국 작품은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의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인가 하는 다분히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실 ‘영혼’이라는 고전적인 대답이 있다면 간단하겠지만, 오히려 그걸 부정하는 유물론적 과학에서는 대답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소설의 결말은 매우 파괴적이다.(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주인공이 받았던 뇌 이식 수술의 배경에 관한 설명도 좀 뻔했고, 뭔가 반전이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가 깨진 것도 아쉽다. 다만 급속도로 발전해 가고 있는 의학기술은 어쩌면 곧 이런 뇌 이식을 실제로 가능하게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우리는 여기서 묻는 질문을 좀 더 진지하게 해야 할 것이다.(물론 그 전에 기후위기가 심해져서 모두 끝날 지도...)


확실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금방, 재미있게 읽힌다. 이 책도 단숨에 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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