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 공화국 - 욕망이 들끓는 한국 사회의 민낯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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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인 바벨탑 공화국이란 무엇일까. 이런 상황을 초래한 정신에 관해 저자는 이렇게 정의한다.

 

바벨탑 멘털리티는 고성장 시대에 더 높은 곳을 향하여경쟁하면서 갖게 된 서열주의 이데올로기로, 낙오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심성이다.(p. 15)

 

      저자는 우리 사회가 이런 바벨탑 멘털리티, 바벨탑 정신으로 살아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 중심에는 수도권 집중과 부동산이라는 문제가 놓여 있다. 아파트 가격에 따라 서열이 결정되고, 이 과정에서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과 지방에 사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수탈을 당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갑질은 자연스러운 부작용이다. 이 저주받을 바벨탑에서는 조금이라도 윗층에 거주하는 이들은 아래층에 있는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모두가 문제를 인식하지만 누구도 현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는 배경에는, 주택소유자의 70%가 가격상승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현실에 기인한다. 누가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상황을 굳이 나서서 바꾸려 하겠는가. 심지어 지방민들 역시 여유가 있으면 수도권에 집과 땅을 사두는 상황이니 속으로는 이런 현실에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방민들이 지방의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 것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것.

 

     물론 이건 단지 정의의 문제만은 아니다. 국토의 특정한 지역에 집중된 삶의 패턴은 필연적으로 나머지 지역의 황폐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엔 지방 소멸이 그 대표적인 결과물. 마치 사하라 사막이 점점 경계지역들을 삼키며 면적을 키우듯, 지방의 소멸은 최종적으로 수도권, 서울의 소멸에까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수많은 인용문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해 구성된 본문을 읽다보면 점점 암담한 느낌이 든다. 전 국민이 이 섬뜩한 줄 세우기 놀이의 어딘가에 서 있는데다가, 윗층에 있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은 바꾸려 하지 않고, 그 중간 어디에 있는 이들은 그냥 현실에 눈을 감아 버리고 있다. 저 아래층에 있는 이들조차도, 시선이 위쪽으로만 고정되어 있어서 현실을 바꿀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그럼? 그냥 사는 수밖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이 책의 바벨탑을 옆으로 누여놓은 형태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꼬리칸에 살던 이들은 엔진실로 향하는 모험을 결행했지만, 현실 속 바벨탑의 아래층 사람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끝내기에는 영 꺼림직했는지, 저자는 나름의 해결책을 제안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도권 이외의 지방들을 살리는 정책인데, 앞서도 지적했듯 지방민들도 지방을 살리기를 원하지 않는 상황에선 지방분권도 그다지 좋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저자는 중앙대 교수인 마강래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지방을 큰 권역으로 재편하고, 그 거점이 되는 도시를 중심으로 집중하는, 압축도시의 형태가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는 가능하면 모여 살아야 편의시설이 충원되어 살만한 상태가 될 수 있다는 논리. 물론 여기에도 꽤나 많은 난점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을 돌파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부정적인 전망도 있다.

 

 

     성경 속 바벨탑처럼, 언젠가 현실 속 바벨탑 역시 붕괴될 것이다. 경제의 영역에서 쌓기 시작했지만, 점차 정치, 사회 전반을 잠식하며 높이 올라가기 시작한 이 저주받을 경쟁은 어떻게 끝이 날까. 분명한 건 탑에 가까이에 서 있을수록 그것이 붕괴될 때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겨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갭 투자라는 이름의 투기가 유행했다. 전세가가 매매가에 거의 근접한 기형적인 상황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바로 전세로 내놓았다가 가격이 올라가면 팔아서 차익을 챙기는 방식이었다. 물론 이건 엄청난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투기였고, 주택가격이 오르지 않을 경우 고스란히 빚더미에 앉게 된다. 이런 엉터리 투기가 무슨 대단한 투자전략인양 온갖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유튜브 강의가 나도는 게 바벨탑 공화국의 현실이다

 

     지금은 그렇게 확장할 때가 아니라 밀착할 때라는 저자의 주장을 곱씹어 볼만 하다. 조금은 다르지만 우석훈의 책들에서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해결책이다. 성장률은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고, 성장에 기초한 확장정책은 실패할 것이다. 국가만이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물론 아무리 이런 이야기를 해도,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예나 오늘이나 그대로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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