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껄껄, 사내는 자기가 늘어놓는 ‘최봉석의 독방’얘기에 자기가 웃었다. 나도 따라서 웃을 수밖에. 사내는 웃음을 거두고 다시 얘기를 이었다.

“녀석이 형편에 맞지 않은 호사를 춘천에 유학해서도 누리는 것 같다는 얘기를 어느 친구한테서 들은 기억이 있지요. 그 친구도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데 춘천에 있는 교대로 진학했지요. 같은 동창이니까 춘천에서 최봉석이와 가끔 만나서 막걸리라도 한 잔 할 것 같았는데, 그 친구가 내게 하는 말이‘야, 내가 춘천까지 힘들게 유학 가서 잘난 체 떠들기 좋아하는 그 역겨운 놈을 또 본단 말이냐? 그건 아니다.’하더라고요. 최봉석 녀석이 얼마나 잘난 체하던 놈인지, 이제 아시겠죠?”

그쯤해서 나는 소주잔을 사내한테 건넸다. 사내가 긴 얘기를 하느라고 입술이 말라 보였다. 사내도 내 잔에 소주를 따라, 우리는 술잔들을 가볍게 부딪치고 마셨다. 사내가‘나 참!’하면서 얘기를 다시 이었다.

“하숙을 해도, 다른 친구들과 같이 방을 쓰면서 하숙비를 더는 게, 그게 정상이거든요. 어려운 집안 형편을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그럼에도 녀석이 혼자 방을 써야 공부가 잘된다니까, 부모님이 비싼 하숙비 대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습니까? 그러면 녀석이 과외지도 자리라도 찾아서, 조금이라도 보탰어야 하는데 녀석의 그 고매한 성격이, 책 읽기는 즐기지만 돈과는 담을 쌓은 성격이라 그러지도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 바람에 무슨 일이 생긴 줄 아십니까? 아버지 혼자 고물들을 잔뜩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다가, 고개에서 내려오는 길에 리어카의 가속 속도를 못 잡아 그만 어느 집 담벼락에 세게 부딪쳤다는 게 아닙니까? 몸을 몹시 다쳤는데도 병원에 오래 있을 형편이 못되니 그냥 집으로 모셔다가 방에 눕혔더란 말입니다. 녀석한테 하숙비도 제대로 보내주지 못하게 되니까, 하는 수 없이 녀석이 하숙집을 나와 싼 월세 방에서 자취한 거로 압니다. 어려운 일은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전혀 운신을 못하고 누운 와중에 어머니 혼자 리어카를 끌고 다니다가 당신도 쓰러지고 만 거죠. 원래 당뇨가 심해 과로해서는 안 되는데 집안 상황이 그리 돌아가니까 당신이 추운 겨울에 혼자 나서서 그 고생을 하다가, 잘못된 거지요. 그러면서, 아버지가 병 수발이 제대로 안 되어 그런지 먼저 세상을 뜨고, 얼마 안 돼, 상심이 큰 어머니마저 당뇨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잇달아 세상을 뜬 거지요. 추운 겨울에 한두 달 간격으로 부모가 세상을 뜨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거지요. 그 뒤로 이어지는 얘기는 아까 제가 말씀 드렸으니까, 이 정도로 최봉석이 얘기를 마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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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클(snorkel)은‘잠수 중에 물 밖으로 연결하여 숨을 쉬는 데 쓰는 관’을 말한다. 우리말로 숨대롱이라 번역한다. 스노클을 이용한 물놀이를 스노클링이라 하는데 강원도 삼척의 장호항이 그 명소로 소문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우리 육군(軍)의 흑표전차가 남한강을 잠수 도하 훈련을 할 때도 스노클을 썼다는 사실이다. 육중한 군사장비나 장호항의 어린이나, 물에서 움직일 때 ‘스노클’을 쓰는 점에서 공통되다니 얼마나 동화 같은 세상인가.

 

 

동영상 <전차 위로 솟은 부분 = 스노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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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동기라니까 아시겠지만 그 녀석이 대학을 잘 다니다가, 잇달아 부모님이 돌아가시니 하는 수 없이 학교를 그만 두고, 동해안 어디로 가서 노가다를 뛴다나 뭐라나 하면서 살다가…… 힘에 부쳐 그리 죽은 것 같던데? 왜냐면 여하튼 대학을 중퇴했으니 고졸 학력이 아니겠소. 그런 학력으로는 힘든 노가다 일밖에는 달리 할 게 없거든.”

“어떻게 부모님이 잇달아 돌아가실 수 있습니까? 그리고 내가 기억하기에는 최봉석이가 춘천에서 하숙할 때도 혼자 방을 쓸 정도로 가정형편이 좋아 보였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가정형편이 어려워졌다며 자퇴를 해 버리니까 지금도 영 이해가 안 된다는 거지요.”

사내는 자기 소주잔을 단숨에 비워 내게 건네며, 반쯤 눈감은 표정으로 얘기를 이어갔다.

“내가 아는 대로, 기억나는 대로 다 말씀드리지요. 녀석이 원래 원주 놈이 아니었단 말입니다. 평창 어느 산골에서 살다가 중학교 때부터 원주로 진학한 놈이었거든요. 그 과정이 재미나단 말입니다. 걔가 평창의 어느 산골 초등학교에서 꽤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들이 항상 칭찬하니까, 걔 부모님이 흥분했더란 말입니다. 잘하면 집안에서 처음으로 판검사가 나올 것 같았던 거죠. 그래서 말입니다, 걔가 졸업하는 시기에 맞추어 농사짓던 것을 다 정리하고 원주 시내로 이사를 했다는 게 아닙니까? 집도 중학교 가까운 곳에 전셋집을 얻어 살았다지요. 뭐,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했나 봅니다.”

어쩜, 녀석의 초등학교 시절 얘기는 내 경우와 닮았을까.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사내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래서, 녀석이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을 때는 또다시 이사를 해서 고등학교와 담벼락이 붙은 전셋집을 구했다는 게 아닙니까? 그럴 때 내가 녀석과 같은 반의 짝이 되며 친구가 됐지요. 그 집에 자주 놀러가고 그랬는데, 뭐, 학교 담을 넘으면 걔네 집 마당이니까 놀러가기가 쉬웠지요. 그런데 그 집이, 웃기는 겁니다. 마당이고 뒤란이고 담 아래고, 심지어는 방 한 구석까지 폐휴지니 고철이니 하는 것들이 잔뜩 쌓여 있더란 말입니다. 알고 보니까 독채로 쓰는 전셋집에서 고물상을 한 것입니다. 그럴 만했지요. 평창 산골에서 농사짓던 땅을 다 팔아 원주 시내로 나왔다니, 그게 몇 푼 되겠습니까? 산골에 있는 밭뙈기는 값이 별로이거든요. 제가 부동산 하는 사람 아닙니까? 잘 알죠. 녀석의 부모님이 돈이 부족하니까 폐휴지와 고철을 주워 모은 뒤 그것들을 팔아 녀석의 중, 고등학교 공부를 시킨 거지요. 솔직히 가정환경이 그런 애라면 친구사이에서 불쌍한 아이로 여겨져서 안돼 보이고 그래야 할 텐데, 녀석이 워낙 아는 게 많다고 떠들기를 잘하니까, 잘난 체를 잘하니까…… 좋아하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단 말입니다. 말하자면 녀석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왕따 당하면서 사는 셈이었는데, 그나마 옆 짝인 나와 친한 편이었지요. 그러다가 녀석이 법대는 자기 성격에 안 맞는다고 춘천의 사범대학교로 진학했단 말입니다. 사실, 원주 시내바닥을 리어카 끌고 다니면서 모은 고물로 아들 유학을 보낸다는 게 어디 가당한 일입니까? 그럼에도 녀석의 부모님은‘아들 공부를 위해, 춘천에 혼자 방을 쓰는 하숙집도 얻어놓았다’ 하더라고요. 하긴, 녀석은 성질도 이상해서, 원주 집에서도 독방을 썼다니까요! 그 집이 방이 딱 두 개인데 하나는 부모와 동생들이 함께 쓰고 녀석은 혼자 방을 썼더란 말이죠. 뭐, 방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책을 볼 때 집중이 안 된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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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어 새 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입영통지서를 받았다. 휴직원을 내고 우선 고향 춘천으로 가기 위해, 묵호역에서 영동선 기차를 타고 떠나며‘내가 바다 가까운 곳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차창 멀리로 검푸른 수평선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내 청춘의 한 페이지가 무심하게 지나가 버렸다는 허망감. 나는 괜히 눈시울을 붉히면서 멀어져가는 바다풍경을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최봉석 그 녀석을 더는 볼 일 없이 75년 봄에 동해안을 떠난 것이다.

 

“그럼, 최봉석이도 아시겠네?”

어제 사내가 물었을 때 순간 수십 년 전 과거가 두꺼운 먼지를 털고 선명해지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최봉석’이름이었다. 검남색 외투차림, 넓적한 얼굴에 지어내던 미소, 항상 고전에서 인용하는 성현의 말씀들…….

“알고말고요. 같이 사범대학교 영어과를 다녔죠. 그런데 어떻게?”

“최봉석이가 나하고는 고등학교 동창이잖소. 원주에 있는.”

“그 녀석…… 지금 뭐합니까?”

그 말뜻은, 우리 나이가 대개 퇴직한 나이에 속하니 녀석도 집에서 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짐작이었다.

“죽은 지, 벌써 오래 되었죠. 뭐, 날마다 깡 소주를 마시면서 살다가 죽었다고 하던데?”

무겁게 철렁 가라앉던 내 가슴. 사내한테 물었다.

“그 녀석이 왜?”

사내는 기억을 되살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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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방학이 들어가기 직전인, 십이월 중순경의 어느 날이다.

나는 묵호읍에 나와 일을 보았다. 귀가하기 전에 인천 식당이 떠올랐다. 추운 날씨라, 할머니의 따듯한 동태찌개가 먹고 싶었다.

여전히 삐거덕거리며 열리는 식당의 미닫이문. 몇 달 만이지만 할머니는 나를 기억했다. 손님 대부분이 노동자인데 드물게 회사 다니는 청년으로 보였을 내 차림이나 인상 때문일까? 반가워하며 이런 말을 하였다.

“언젠가, 건어물가게 총각하고 왔었죠? 글쎄, 그 총각이 요즈음에 툭하면 깡 소주만 마시고 가게 방에서 자빠져 잔다지 뭐요. 주인이 기가 막히다고 합디다. 뭔 일이 있었는지, 전에는 착실했는데, 갑자기 변해서 말썽을 부리니까 내쫓아야 하나 고민이 많다 하더라고요. 참한 총각이라고 소개받아 그 동안 잘 데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고주망태가 돼 속을 썩이고 있으니 우환덩이가 된 거지요. 나 참, 알다가도 모르는 게 사람 속이라지만 그 총각 대체 왜 그렇게 됐는지…….”

나는‘그 자식이, 지난번에 나한테 허세를 부리다가 호되게 망신당한 일로 그러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잠깐 했던 것 같다. 그뿐이었다.

녀석과 나는 처지가 달라져서, 대학시절처럼 논쟁을 벌이는 맞수 관계도 못 되었다. 삶의 바닥에 떨어진 녀석과, 영어교사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나는 같이 어울릴 일도 없었다. 지난 가을 이 식당에서 술잔을 마주한 게, 애초에 부질없는 짓이었다. 나는 녀석을 뇌리에서 지워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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