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에서 동물의 머리에 해당되는 부분이 뿌리다. 뿌리를 다치면 그 식물은 생존이 어렵다.

 

지난 해 겨울이 닥치기 전, 춘심산촌 농장의 칸나 구근들을 캐내서 집에 가져온 건 그 때문이다. 구근이 얼면 칸나가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근들을 상자에 담아 선선한 창고 한 편에 놓았는데눈에 뜨일 때마다 왠지 섬뜩하다. 마치 인간의 영생을 도모해 따로 보관하는 뇌수들을 보는 것 같아서다.

이제 완연한 봄 날씨가 됐으니 불원간 춘심산촌으로 옮겨다 심을 것이다. 그러면 섬뜩한 구근들은커녕 화려한 아름다운 붉은 꽃들이 춘심산촌 어귀를 찬란히 장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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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짜기이지만 넓이가 800평 되는 밭이다 보니 잡초 김매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밭두둑에는 비닐 멀칭을, 밭고랑에는 잡초방지매트를 깔아서 기본적인 대처를 했지만 문제는 밭 가장자리와 농로와 농막 주변이다. 비닐 멀칭이나 방지매트를 깔 수 없어 잡초들이 기승이다.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이내 무성하게 자라서 뱀이 스며들까 두려울 정도다. 그렇기도 하고 깔끔 떠는 아내가 성격상 견디지 못한다. 밭에 가기만 하면 그것들을 김매는 일부터 매달린다.

나는 나대로 예초기까지 동원해 최소한 나흘에 한 번은 쳐낸다. 우리 밭의 김매기는 이를테면 국지전과 전면전을 병행하는 격이다. 아내는 하나하나 김매는 국지전이고 나는 전반적으로 김매는 전면전인 거다.

웃기는 일화가 있다. 내가 작물에 물 주느라 바빠서 나흘이 됐는데도 예초기를 못 돌리고 그냥 귀가하던 차 안에서 아내가 이렇게 물었다.

, 벌써 나흘이 된 것 같은데 당신 언제 털을 깎을 거야?”

로 잘못 말하는 바람에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허허허 웃고 만 거다. 그러고 보면 내가 면도하는 주기도 나흘이었다. 나흘을 그냥 지나가면 금세 수염이 덥수룩한 게으른 사내 인상이 되고 만다. 몸의이나 밭의이나 나흘째 방치하면 무성해진다. 이 이상한 동류감(同類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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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우리 아들이 어릴 때 강릉 안목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sns에 올렸는데그 까닭이 있다. 귀여운 그 사진을 사진첩에 두고 지내기가 아까워서 거실 책상 위, 유리판 밑에 놓고 지냈더니 알게 모르게 빛 바래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는 어느 시점에서 사진 속 모습이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 게 분명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나 생각 끝에 가상의 공간인 sns에 올려놓는다면 영원히 보관될 거란 판단 아래 그리 조치한 것이다.

 

몇 장 안 되는 내 대학 시절 사진 중 한 장을 이번에 sns에 올리는 건 그 때문이다. 1973년에 강대 중앙 게시판 앞 벤치에서 찍은 사진으로 나는 기억한다. 사진첩 속에서 반세기나 보관돼 있었기에 사진은 낡고 금도 가 있다. 하지만 고뇌 많던 20대 중반의 내 모습이 생생하다. 반세기 전의 내게 이제 나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너는 지금 잘 사는 편이야. 아암 그렇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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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심산촌 주위 숲에 갖가지 나무가 자생한다. 그 중 개옻나무가 있다. 막내 동생이 어릴 적에 봉의산에 놀러갔다가 옻이 올라 한 달 가까이 병원 다니며 고생한 적이 있어, 나는 그 나무를 항상 조심해서 피한다. 그런데 개옻나무 줄기에 특이한 무늬들이 있다는 사실.

바로 하트 무늬의 엽흔(葉痕)이다. 독성이 서려 있는 개옻나무에 사랑무늬들이 있다니참 얄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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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접시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산산조각 나버렸다.

K는 이상하게도그 소리가 편하게 들리던 것이다물론 멀쩡한 접시 하나를 잃었다는 손실감과산산조각 난 것들을 어서 방비로 쓸어 담아서 쓰레기통에 넣어야 한다는 수고로움은 일단 배제하고서 하는 말이다.

사기접시가 산산조각 날 때 소리가 마냥 편하게 들리던 이상한 심적 상황을 K는 곰곰이 헤아려보았다.

아아 그건 사기접시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인 것 같다사기접시의 원래상태― 찰흙 한 줌으로 환원되는 그 편안함!

인간은 삶을 다할 때태어나서 이뤘던 그 동안의 모든 것(가족재산친구사이증오와 사랑등등)을 손놓아버리질 않던가바로 그런 편한 운명(殞命)의 모습을 사기그릇이 깨지는 소리들로 전해주었다.

사기접시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 버렸다자신을 빚어준 자연으로 편히 돌아갔다. K는 아내가 놀라서 여보뭘 깨뜨렸나?’외치는 소리도 귓전으로 넘긴 채 깊은 상념에 잠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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