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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늦가을, 밭에 있는 수도의 물을 빼 놓았다. 동파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 때 함지박 가득히 물을 채워뒀다. 

오늘, 봄 농사를 준비하려고 오랜만에 밭에 갔다 . 밭의 수돗가에 있는, 함지박의 물이 얼어 큰 얼음덩이가 됐다. 이 봄에 남은  "지난겨울 한 덩이" .   사진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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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17-02-2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얼음 한 덩이. 그것을 ‘지난 겨울 한 덩이‘로 환치하니, 느낌이 완전히 새로운데요... 무심 선생님은 무심치 않은 것 같습니다. ^ ^

ilovehills 2017-02-28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중요한 일은 무심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유심하다 하여 저를 잘 아는 지인이 붙여준 호가 ‘무심‘입니다. 평생 호를 붙여본 일이 없었는데 ‘무심‘이란 호를 받는 순간 딱 마음에 들더라고요. ㅋㅋㅋㅋ
 

 

그 해 여름, 미국 나사에서 쏘아올린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잘 사는 이웃집의 안방에는 그 장면을 지켜보려고 모여든 동네 사람들로 가득했다. 흑백 tv로 중계되는,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 발을 디디는 장면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다음 날 저녁 신문은인간 달에 서다라고 대문짝만한 활자로 발간되었다. 아폴로 우주선은 이런저런 것들을 실험하고 채집하느라 며칠 간 달 표면에 남아 있는다 했다. 학교는 여름방학 중이었다.

 

대학입학을 위한 예비고사가 몇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라 시험공부에 매진해야 하는데 무심은 전혀 공부가 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달에 우리 인간이 쏘아올린 우주선이 착륙해 있다는데, 편안히 시험문제집을 펴 놓고 방안에 앉아 있다니 스스로 납득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결국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갔다. 학교는 멀었다. 삼십 분은 걸려, 걸어서 도착한 학교.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여름방학에 들어갔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만, 그 또한 무심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천여 명의 학생들이 북적거리던 공간이 마술이라도 부려진 듯, 단 한 명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니 말이다.

 

혼자 텅 빈 교내를 방황하다가 가까이에 있는 공설운동장으로 갔다. 다행히도 그곳에 몇 명의 동기애들이 모여 있었다. 걔네들마저 없었더라면 무심은 그 날 어떡할 뻔했을까?

 

걔네들은 어떤 애가 떠드는 얘기를 아주 재미있어 하며 둥글게 모여 있었다. 무심이 다가갔는데도 특별히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 애의 얘기에 푹 빠져 있었다.

 

그 애는 우리와 동기이긴 하지만 학교를 안 다녔다. 깡패 비슷하게 거리에서 지내는 아이인데 웬 일로 공설운동장 한 구석에 나타나, 동기애들한테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음담이었다. 우리 또래 여학생을 하룻밤에 어쨌다는 음담을 아주 실감나게 늘어놓고 있었다. (사실, 이 묘한 아이에 대해 무심은 얼마 전 작품 하나를 썼다. 때가 되면 발표할 것이다.)

 

공설운동장의 서쪽으로는 미군부대가 있었다. 미군부대에서 성조기 하강식을 하느라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때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이 선연했다.

 

달에 아폴로 우주선이 착륙해 있다는데 학교 다니지 않는 애가 열심히 음담을 늘어놓고, 진위 여부가 분명치 않은 그 음담을 학교 다니는 동기애들이 킬킬거리며 재미나게 듣고 있고, 미군부대에서는 늘 그랬듯 성조기 하강식이 치러지고, 천여 명의 학생이 북적거렸던 학교는 갑자기 텅 빈 건물로 있고, 하는 뭐라 간단히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무심을 못 견디게 했다.

 

무심은 다시 먼 집으로, 삼십여 분 걸어서 돌아왔다. 집이라고는 하나, 사실 독채 전세로 얻은 집이었다. 무심은 부엌 위, 지붕 아래 다락방에 올라갔다. 미리 갖다놓은 작은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스탠드 등을 켠 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예비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그 하루 이틀 사이에 벌어지는 상황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소설을 완성한 뒤황사라 제목을 붙이고 모 대학교에서 공모하는 전국고등학생 대상 현상문예에 응모했다. 두 달 뒤 당선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무심의 문학수련은 그렇게 시작됐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무심은 그 여름날을 잊지 못했다. 그냥 두어서는 안 되는 여름날이란 생각에 미쳤다. 다 늙어서, 이제는 편히 서재에 앉아 그 여름날을 눈앞에 떠올리며 며칠 걸려 작품을 썼다. ‘달나라라는 소설은 그렇게 창작되었다.

 

 

< 무심 이병욱의 단편소설 '달나라' 창작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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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끼는 멸건 놈이었다.

시골 중학교 출신인데 분명 그 학교에선 1,2등을 다툰 수재였을 테다. 하지만 이 도시의 우리 명문고에서는 그저 멸건 놈일 뿐이다. 왜냐면, 이 도시에 있는 여러 중학교들에서 배출된 공부깨나 한다는 애들모두가 우리 명문고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새끼 같은 시골 중학교 출신은 수재는커녕, 잘못되면 바보소리 듣기 딱 좋으니 그만 기죽어서 멸겋게 지낼 수밖에.

그런데 일이 묘하게 되었다.

2학기 들어서 새끼와 내가 창가 분단에 같이 앉게 된 것이다. 담임선생이 자리 배치를 다시 한 결과였다. 그것도 하필, 내 자리 바로 뒤로 새끼가 앉게 되었으니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창가 분단은 1,2교시 수업 때 칠판 글씨가 푸르딩딩하게 보이는 어려움이 있는데 유리창을 통해 밀려드는 현란한 아침 햇살 탓이다. 쉬는 시간에 뒤돌아 앉아 얘기 나누다보면 그 햇살은 새끼의 빡빡 깎은 머리통부터 시작해서 한쪽 뺨, 한쪽 어깨, 오른손 손등으로 발광페인트처럼 흘렀다.

그런데 하필 새끼의 눈동자 색이 멸건 잿빛이었다.

현란한 햇살 속에서 이상스레 빛나는 잿빛 눈동자는, 골목어귀나 쓰레기장에서 맞닥뜨리곤 하던 허연 눈깔의 잡종 개를 연상케 했다. 얘기를 나누다 말고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나의 괴상스레 변형된 얼굴이 새끼의 그 기분 나쁜 잿빛 눈동자 속에 빠져 있어서…… 나는 , 이 새끼야 네 눈깔 빛깔이 뭐 그러냐?’칵 내뱉고 싶은 충동이 일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새끼와 친해진 거다.

 

 

< 무심 이병욱의 단편소설 '승냥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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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어느 겨울에 생맥주 잔을 비우면서 늘어놓던 결혼얘기가 선하게 살아나더군. 그 얘기의 골목 풍경이 눈앞에 생생한 거야. 여자가 내가 골목을 가다가도 느낌이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면 이이가 멀찍이 거리를 두고 멈춰서 바라보는 거 있죠?’ 할 때의 골목이지.

 

  

내가 예전에 시골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었기에 그런 골목 풍경은 아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거든. 봄이 되면 개나리, 진달래들이 화사하게 피어서 꽃길을 이루는 골목이지. 좁아도 햇살들이 넘쳐나고 벌 나비들이 가득한 그 골목길을 천진난만한 여학생이 걷다가 문득 뒤돌아보네. 그러자 멀리 골목 끝에 숫기 없는 남학생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거야. 여학생이 혼잣말로 그러지. ‘왜 날 따라오지? 정말 이상하네. 나는 하나도 안 이쁜데……

그렇게 둘이 꽃길 골목의 양끝에 서 있네.

 

 

 

< 무심 이병욱의 단편소설 '꽃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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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후배가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형님 요즘 모하슈?”

정서법을 지킨다면 무엇하고 지냅니까인데 그냥 모하슈라고 간단히 줄여 표현한 것에 나는 감탄했다. 정서법을 모를 후배가 아니다. 하지만 모하슈라고 발음 나는 대로 적음으로써 기막힌 말맛을 맛보게 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 친구가 내게 보낸 문자메시지에도 기막힌 표현들이 있었다. ‘진하게 그림자하네’ ’인생의 편린이 곳곳에 뿌리하니란 문장들이 그것이다. ’진하게 그림자하네라는 표현은 문맥으로 봐 진한 그림자처럼 언제나 영향을 주고 있네란 뜻일 테며 인생의 편린이 곳곳에 뿌리하니란 표현은 인생의 편린이 곳곳에 뿌리처럼 박혀 있으니란 뜻일 듯싶다.

정서법을 따르지 않았음에도 그 말맛이 기가 막혔다. 하긴 어감(語感)이란 한자어보다 말맛이란 순수한 우리말 표현은 또 어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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