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설명: 안주발, 오리발, 이런 걸로 검색했더니 안나와서요...
술은 안먹고 안주만 먹는 사람을 '안주발'이라고 하는데, 이런 사람은 대개 환영을 못받는다. 하기사, 나도 그런 사람을 싫어한다. 어제 술을 마시던 도중 막걸리 안주로 나온 '이면수'-물고기 이름이다-를 맹렬한 속도로 작살내는 사람을 보면서, 3년쯤 전에 만난 여자 생각을 했다.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안주발 중 최고였으며, 앞으로도 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때 난 1회만 하고 없어진, <생존퀴즈>라는 TV프로에 나갔다. 15명 중 9명을 뽑고, 다시 세명을 뽑아 우승을 가리는데, 1등에게만 500만원을 줬다. 난 물론 1라운드에서 가뿐하게 탈락하고 말았는데, 그 악몽이 씻길 때 쯤 전화 한통이 왔다. 퀴즈프로 작가로부터였다.
"500만원 받은 xx씨가 한턱 쓴다고 나오래요..."
난 당연히 안나간다고 했다. 거기 가면 탈락의 악몽이 재현될 것 같았으니까. 더군다나 프로의 특성상, 참석자들은 내가 탈락하도록 만든 공범이 아닌가. 그들이 잡은 날은 다른 약속까지 있었다.
선약 때문에 안된다고 했더니 다시금 전화가 왔는데, 나 때문에 금요일로 미뤘고 게다가 그 프로가 1회를 끝으로 없어졌다는 거다. 마지막 모임을 하자나? 그렇게까지 하는데도 내가 안나가면 혹시나 옹졸한 사람으로 비춰질까 겁이 났다(사실 난 좀 옹졸한 놈이다).
"네... 갈께요..."
작가랑 출연진을 다시 만나니 반가왔다. 근데 500만원 받은 사람이 아직 안왔으며 지금 오고 있단다. 먼저 가서 먹고있기로 하고 장소를 정했다. 강경파들은 횟집이니 스테이크집 등을 가자고 했지만 난 이런 식의 벗겨먹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사람은 회사에서 100만원을 뜯겼으며, 세금도 25%나 냈단다. 상금 탔으니 한턱내라는 요구에 얼마나 시달리겠는가. 내 의견이 받아들여져, 우린 호프집에 가서 푸짐하게 먹기로 했다.
계란말이, 족발, 두부김치, 과일... 안주는 정말 푸짐하게 시켰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자리를 잘못 앉았다. 내가 몸이 좀 실한 6번 출연자랑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것이 실수였던 거다. 안주가 나오는 족족 다 먹는 그녀를 나와 옆 사람은 그저 넋을 잃고 보기만 했다. 저절로 이런 말이 나왔다.
"정말 잘 드시네요..."
그랬더니 6번은 배시시 웃으며 답한다. "예, 그런 말을 많이 들어요."
잠시 뒤 안주가 동이 났고, 6번은 젓가락을 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 배불러!"
그렇게 먹고도 배 안부르면 그게 인간이냐.... 안주없이 술만 먹던 나랑 옆사람은 종업원을 불러 두부김치를 하나 시켰다. 그랬더니 6번이 다시 이러는 거다.
"두부김치 말고, 딴거 시키죠!" 6번은 메뉴를 고르더니 과감하게 탕수육을 시켰다.
그러더니...혼자 거의 다 먹었다. 그날 내가 먹은 건 족발에 나오는 부추랑 두부 한점, 이게 전부였다.... 뭐, 많이 먹는 건 좋은 거다. 특히 여자가 많이 먹으면 좋아 보인다. 문제는 2차 갈 시간인데 500만원이 안오는 거다. 다들 불안해했다. 이럴 때 누가 사야 할까. 다들 학생이고 월60만원을 받는 사법연수생, 갓들어간 회사원 등등 20대의 얼라들인데 말이다. 그래서... 1라운드 탈락한 내가 1차를 샀다! 난 허기진 배를 어루만지며 2차를 갔고, 내가 약속이 있어 자리를 뜬 10시22분까지 500만원은 오지 않았다. 그날 난 새벽에 집에 왔는데, 너무 배가 고파 라면을 먹어야 했다.
생존퀴즈는 1회로 끝이 났지만, 아직까지 모임은 계속되고 있다. 물론 500만원을 갖고 튄 사람과 안주를 먹던 6번-2등을 했던-은 모임에 참가하지 않고 있으며, 참석자 전원은 나처럼 1라운드 탈락자들이다. 술을 마시다 가끔 생각을 한다. 6번은 지금쯤 또 어디서 안주를 먹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