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존경하는 블라시보님(가명)이 대기업과 현재 직장 사이에서 고민을 하실 때가 있었다. 범인들의 시각에는 대기업이 좋아 보이지만, 블라시보님은 대기업에 가면 알라딘에 글을 쓰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계셨다. '알라딘 평정'이란 황당한 꿈을 안고 알라딘에 가입한 이래, 난 서재점수 따기에 목을 매고 있었고, 한명이라도 더 제껴 순위를 끌어올리려고 그야말로 발버둥을 치는 중이었다. 그래서 맘 속으로 외쳤다. "대기업 가세요!!"

하지만 블라시보님은 결국 대기업에 가지 않았는데, 그분은 여전히 왕성하게 글을 써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분의 글을 읽으면서 난 내 서재순위를 1등 끌어올리는 것보다는 블라시보님의 수준 높은 글을 읽는 게 훨씬 더 좋은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향후 순위경쟁을 포기할 것을 선언했다 (그 후부터 난 하루에 몇번씩 클릭하던 명예의 전당에 더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난 블라시보님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우쳤던 거다. 블라시보님은 일상 속에서 소재를 발굴하는 데 뛰어난 재능이 있었고, 원숙한 글재주를 통해 웅장한 드라마를 만들어 내곤 했다.

얼마전, 블라시보님의 서재에서 님이 회사를 그만두신다는 글을 봤다. 어려운 결정이었을 테지만 난 기쁘다. 시간이 많아지셨으니 알라딘에 더 많은 글을 쓰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이런 의혹이 든다. 혹시 알라딘에 글을 더 많이 남기려고 회사를 그만두신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블라시보님이야말로 기껏해야 '술에 취해 새벽에도 알라딘에 접속하는' 나와는 비교될 수 없는 진정한 알라딘 폐인이 아닌가?

연분홍빛우주님(가명)도 그에 못지않다. 얼마 전 "공부를 하겠다"며 알라딘을 떠나 많은 사람들을 눈물짓게 했던 연분홍빛우주님은 얼마 전 알라딘에 복귀하면서 자신이 "중독되었"음을 밝혔는데, 돌아오자마자 쓴 두편의 글은 그동안 그분의 빈자리가 얼마나 컸는지를 깨닫게 해줬다. 또 있다. 진우밥님(가명)은 새벽 4시를 넘어서 이런 글을 남기셨다. "이크, 조금 있으면 알라딘 점검 시간인데, 빨리 써야지"

알라딘에 개설된 '마이페이퍼'는 이렇듯 많은 폐인들을 양산하고 있다. 그 맛에 빠져 난 그간 애지중지 가꾸던 홈피를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로 만들어 몇명 안되는 추종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누명을 쓰고 있다 (배신한 게 사실이니 누명은 아니지만). 이런 중독자들에 대해 알라딘 측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지는 않으리라 생각을 하며, 알라딘 중독은 상품권으로 증세의 호전이 가능하다는 견해가 있다는 얘기도 참고로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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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finder 2004-02-26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소설도 내셨고,,
신문에 꽁트 연재를 하시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진/우맘 2004-02-26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라시보도 좋고, 연분홍빛 우주도 좋은데...진우밥이라니!
제가, 진/우의 '밥'이라는 것을 정확히 간파한 작명이군요.ㅋㅋㅋ

마립간 2004-02-2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위와 점수란 것이 참으로 묘하죠. 특히 저의 학과 졸업생은 더욱 예민한 것 같고. 저도 웬만해서 중독되지 않는데, 유일하게 중독이라고 시인한 것이 알라딘 서재이고 특별히 과소비하는 것이 책구입하는 것입니다. (책 구입이 과소비인 이유는 읽어도 이해 못할 책도 사고, 빌려 읽을 수 있는 것을 굳이 구입하려는 욕심때문에 - 그래도 술값보다는 싸다고 생각하며 계속 구입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생각의 고갈 되었다고 생각되며 책을 읽는 시간이 오히려 주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면서도 추천을 받지 못하는 글에 속상하기도 하고. (예를 들면 수수께기님의 마이리뷰를 보면 4분에서 7분까지 추천을 받았고, 마태우스님은 14분의 추전을 받은 리뷰가 있습니다.)
글짓기를 잘 못하는 제가 서재에 열심으로 참가하게 된 이유가 나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습니다.(자연과학과 이공계에 대한 관심) 그리고 알라딘 마을에서 인문계통의 책이 많이 읽히는 것처럼 (그나마 응용, 실용학문이 아닌 것이 다행이지만) 자연과학 책도 많이 읽히어 균형감을 갖기 바라는 마음에서 참여하였습니다.

비로그인 2004-02-2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지 금새 파악할 수 있는 엄청난 가명!! ㅋㅋ 정말 날로 늘어가는 서재 폐인들을 위한 방책이 필요할지도 몰라요. ㅎㅎ 그래도 알라딘 폐인 분들이 늘어갈수록, 즐거움도 늘어가는거 같다는...^^

연우주 2004-02-26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하고 웃었습니다. 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인터넷 설치했습니다. 속도 무지 빠르네요. 흑. 이러면... 공부는 언제하나? ㅠ.ㅠ
올해는 꼭 되야 하는데, 일자리도 없고 공부도 안 하고...
흑흑.

digitalwave 2004-02-26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중독은 상품권으로 증세의 호전이 가능하다는 견해가 있다는 얘기도 참고로 적어둔다." - 압권이군요. ^^:

연우주 2004-02-26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어째 제 서재는 저 스스로 홍보하는 게 아니라, 마태우스님의 서재에서 홍보가 되는 것 같아요. 여기 코멘트 남긴 거보고 누르셨거나, 아님 마태우스님 서재에 제가 방명록 남긴 거 보고 누르셨거나, 대부분 그런 분들인 듯...^^;;;

sooninara 2004-02-26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가명은 무엇이 좋을까요? -허접한 제 생각은: 차태우스,소태우스..
너무 촌스러운가요? 다른분들이 올려주시죠..
저도 중독이라면 중독이라서..그런데 처음 알라딘서재순위는 당연히 순위권에 못드니까 신경도 안쓰다가 마이페이퍼달인에서 10위안에 드니까 엄청 신경쓰이더군요..
그래도 어떻게든 10위안에서 안밀릴려고 애썼는데 ..아파트문제로 바쁘다보니..
어느날인가 마이페이퍼 50위안으로 밀려났어요..
그러니까..맘도 편하고 부담도 없더군요..남들은 신경도 안쓰는 작은거 가지고 매달린 자신이 초라해보이는...무소유가 좋은거죠^^

sooninara 2004-02-26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그러고보니..마태우스님의 서재를 즐겨찾기에 등록을 안했군요..
다른서재에 가면 언제든지 들어올수있으니 별로 생각을 못한듯..
그렇게 순위에 신경을 쓰신다니 당장 한표 올려드리지요
(선물에 약한 아줌마가..ㅎㅎㅎ..그전에도 자주 들어온거 아시죠?)

마태우스 2004-02-27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수니나라님, 지금은 마음 비웠습니다. 평정보다는 님들과 서로의 서재를 오가며 지내는 게 훨씬 더 재미있더라구요. 이젠 순위에 신경 안씁니다.

ceylontea 2004-02-2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위나 즐겨찾기 숫자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여러분들이 서로 즐겁게 대화를 하고 난 한참 후에 와서 뒷북치는 것이랍니다...
알라딘 서재 생활을 위해 야근은 없어져야 합니다~!!!! (히히)

_ 2004-02-27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때는 폐인을 자부하며, 인터넷 시작페이지를 알라딘으로 해놓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었지요. 물론 그 당시에는 나의서재란 기능이 서비스되질 않고 있을시였는데, 그 때는 도통 왜 그랬는지 이유는 아직 연구중에 있습니다.;;

마태우스님의 말씀대로라면 저는 폐인으로서의 보상은 상품권으로 정말 배터지게 풍족하게 받은 놈이지만, 그런 상품권 덕분에 나의 계정에 들어가면, 3개월 동안의 순수구매 총액은 '0'원입니다.가 항시 저의 폐부를 깊숙이 찌릅니다. ㅠ_ㅠ

플라시보 2004-03-0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 여기에 제 그간의 역경 내지는 역정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군요. 첨에는 대기업과 지금 회사를 비교하며 살짝 갈등을 때리는 척 하다가 배짱을 튕기며 우리 회사에 사표를 쓰고 그러면서도 대기업으로 옮기지는 않고 백수로 지내려다가 그럼 뭘 먹고살지 싶어서 다시 회사를 다니게 된 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입니다.(쓰고 나니 그냥 다니던 회사를 계속 다니는 건데 무척 길게 읊었군요) 제가 늘 말했듯 저는 게으르고도 할랑한 인간이라 주로 회사에서 헛짓만을 잔뜩 하다가 퇴근합니다. 그래서 회사에 있어도 얼마든지 책보기 잠자기 알라딘질(과거 챗질이 생각나는군요)을 합니다. 이렇게 있어도 월급 주는 회사. 오래 오래 다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