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사람, 여자에 대해 굉장히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아."

내가 읽던 김훈의 소설집 <강산무진>을 뺏어 읽은 아내는 저자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작가가 여자를 잘 알 수가 있을까? 하지만 책을 읽어보니 아내의 평가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나 <언니의 폐경>이 그러했다. 거기 나오는 묘사들이 너무 세밀해, 원래 한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는 내 독서습관을 약간 수정해야 했다.


꼭 그래서 그런 것만은 아니라 책을 읽는 내내 마음속에선 불편함이 가시지 않았다. 책은 재미있는데 왜 그럴까를 책을 덮고 난 뒤 한참을 생각했다.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 책이 인간들의 비루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이라는 것. 아내가 암으로 죽어가는 동안 남편은 젊디젊은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고, 아버지가 암인데 사업을 한다는 아들은 아파트를 욕심낸다.

"장례 때 언니의 아들들이 상주 노릇을 하느라고 문상객들을 맞는 동안에 시댁 사람들이 와서 부의금 봉투를 모두 걷어갔다고 했다.....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언니의 두 아들이 시댁 조카들을 붙잡고 부의금 절반을 내놓으라며 드잡이를 했지만 (248쪽)."

이런 내용이 불편했던 이유는 우리네 현실이 그러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젊은 시절이었다면 별 생각없이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어느 정도 삶의 경험이 쌓인 지금이니 그런 내용들이 불편한 거다. 홍상수의 영화들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김훈의 문체를 극찬한다.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더라도 김훈의 문체는 참으로 멋지다. 이런 식이다.

"하루 종일 방구석에 앉아 있었다."

"바다는 바다였고, 땅은 땅이었다."

이 책도 이런 장엄한 문장들이 몇 개 보인다. 읽다보면 그의 문체를 따라하고 싶어진다. 인터넷에 글을 쓰면서 그의 스타일을 모방해 보지만, 내 모방은 참으로 어색하다. '모방' 얘기가 났으니 말인데, 요즘 내가 읽는 책은 미미여사의 <모방범>이다. 그 책을 집어든 걸 요즘은 후회한다. 책이 세권짜리고, 각 권마다 500쪽이 넘는다는 건 부차적인 문제다. 해야 할 일이 많아 눈코 뜰 새가 없는데, 그 책이 너무도 재미있다보니 틈만나면 읽고싶어 죽겠다는 거다. 일이 많으신 분들, <모방범> 읽고 싶어도 참으세요.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aviana 2008-08-20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은 별로 없는데 모방범이 없어요.흑흑 저도 읽고 싶어요.

다락방 2008-08-20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방범 정말 재미있죠? 저도 괜히 집어 들었다가 새벽까지 읽곤 했어요. ㅎㅎ

저도 이 『강산무진』에서는 언니의 폐경이 가장 좋았어요.
:)

비로그인 2008-08-20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솔깃, 모방범.

김훈의 문체는 김훈만의 것 같아요. 담백함이 지나쳐 강건해 보인달까요. 그것이 남들이 말하면 맹숭거릴텐데 김훈이 말하면 그 양반의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숨을 훅, 들이쉬게 된단 말이지요. 하지만 전 마태우스님의 문체가 더 좋습니다. 감정의 꾸밈과 가감이 없이 솔직하고 깔끔한 문체여요.

^^ 2008-08-20 17:2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쥬드님 말씀에 이하동문하는 1인^^

웽스북스 2008-08-21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방범 재밌어요 흐흣 ^_^

전 강산무진에서 화장이 제일 인상적이면서도 화장이 제일 불편했어요
그리고 더는 김훈을 읽지 말아야지, 뭐 이런 생각도 했더라는

저도 마태우스님의 문체가 더 좋은걸요

마태우스 2008-08-22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님/제가 모방범 광고를 만든다면; 파비님한테 모방범을 선물한다--> 다락방님이 파비님한테 문자로 범인이 누구인지를 가르쳐 준다--> 파비님은 괴로워한다--> 그때 주드님이 모방범을 빼앗는 거죠!^^
다락방님/아아 님은 제가 읽은 책을 거의다 읽으셨군요!!
주드님/오오 정말 멋진 표현이십니다. 숨을 훅 들이쉬게 된다는... 글구 문체 얘기는...감사하긴 하지만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 밑의 분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열심히 문체를 갈고 닦겠습니다^
웬디양님/님도 모방범 읽으셨군요. 음, 화장은 좀 그렇죠? 인륜에 어긋난 거라 그게 현실이라 해도 많이 불편했어요. 글구...열심히 하겠습니다 꾸벅.
 
이 영화를 보라 - 인문학과 영화, 그 어울림과 맞섬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김 모 선생의 소설을 읽고 있는데, 잠깐 방심한 틈에 아내가 그 책을 집어 읽기 시작했다. 달라고 했다.

"싫어! 내가 먼저 읽을 거야."

할 수 없이 책장 앞으로 간 난 별 생각 없이 책 한권을 집었다. 일이 되려고 그러는지 그 책이 너무나도 재미있었기에, 난 그 책과 더불어 주말을 즐겁게 보냈다 (물론 즐거움의 일등공신은 박태환이지만).


다들 아는 설명을 첨부한다면, 고미숙은 <수유+너머>라는 곳에서 활발한 집필활동을 하고 계시며, 최근 불어닥친 연암 박지원 열풍은 전적으로 그분 덕이다. 사실 난 저자가 '근대성'을 비롯해서 매우 어려운 말만 하는 줄 알고 그의 책을 외면했었다. 그래서 '인문학과 영화, 그 어울림과 맞섬'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도 어려울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근데 웬걸, <괴물>을 '위생권력과 괴물의 공생관계'로 규정한 초반부부터 난 이 책에 빠져들었는데, 내 예상과 달리 저자는 아주 쉽게 영화 각 장면장면의 의미를 분석해 준다. 영화잡지에서 읽었던, 난해한 평론과는 차원이 다르고, 내공이란 건 이렇듯 쉬운 말로 깨달음을 주는 거란 생각을 했다. <괴물>을 그리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지 않았던 난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많은 상징들을 담고 있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비단 <괴물> 뿐만이 아니라 책에 나온 여섯 개의 영화들은 저자의 손을 거치면서 '명화'로 재탄생하는데, 특히 '박중훈이 나온, 좀 웃기는 영화' 쯤으로 치부했던 <황산벌>이 그리도 심오한 영화임을 알게 된 건 큰 수확이다.


영화에 관한 책을 읽을 때 망설여지는 건, 책에서 다루는 영화들 중 내가 본 게 몇편 안될 것 같아서다. 다행히 난 이 책에서 다루는 여섯편 중 <서편제>를 제외하곤 나머지를 다 봤다. 물론 <서편제>에 관한 글도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이 책을 즐기기 위해선 책에 나온 영화를 보는 게 나을 것이다. <밀양>, <라디오스타>, <음란서생>, <괴물>, <황산벌>, <서편제>. 이 영화들이 왜 명화인지 알고 싶다면, 영화의 한 컷이 얼마나 심오하게 배치되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보시라. 난 봤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8-08-12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나는 여섯 편 다 봤으니, 이 책만 읽으면 되겠군요~ 찜합니다!^^

비로그인 2008-08-12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닥 유명하진 않지만 제가 잘 읽은 영화에 관한 책은 '미술 영화 거들떠 보고서' 였습니다. 미술과 영화의 만남, 아주 케케묵은 소개글인데 어쩜 내용이 그리도 좋은지요. 그리고 아주 유명한, 그리고 제가 잘 읽은 영화 관련 책은 이동진 기자의 책들이었어요. 아, 요즘 책 표지는 기억나는데 왜 책 제목은 가물거리는지, 아직 젊은 나이라고 생각했건만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봅니다.
이 책도 저의 보관함에. 혹자는 우리나라에선 영화 관련 책이 안팔린다던데 이젠 좀 팔려 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좋은 책들이 계속, 나오니까요.

비로그인 2008-08-12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하는 것이야말로 고수의 글이라고 생각해요. 어려운 말을 더 어렵게 하는 건, 다시 말해 `나 이거 몰라' 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일례로 서양인들의 동양에 대한 생각이 `신비롭다'='잘 모른다'와 동일한 것이니까요. 댓글 달자마자 `아, 내가 이 이야기도 하려 했는데' 싶어 두번째 댓글을 남깁니다. 흐흐

비로그인 2008-08-12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말 하셨네요.
"쉬운 말로 깨달음을 주는 것"이야말로 글쓰는 사람들이 늘 명심해야 할 말이 아닌가 해요.
어려운 글을 이해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글을 쉽게 써서 이해를 도와주는 것이니까요.
저도 이 책 읽어볼게요.
추천!

최상의발명품 2008-08-12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괴물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환데......
봉준호 감독 살인의 추억 때부터 반했는데, 정말 멋진 감독이에요.
배우들도 최고구요.
괴물에 관해서 무슨 내용이 나오는지 궁금한데,
제일 재밌는 거 한 가지만 말씀해주시면 안돼요?^^

하늘바람 2008-08-13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이거 낚이겠는거룡 님이 소개하시는 책은 전부 궁금해서요. 님의 신혼 깨소금 냄새가 부러워서 제가 자주 못온거 이해하셔요. 지투의 산물이랍니다. ㅎㅎㅎ 언제나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 보내셔요. 이 더운 여름에 냉방병 조심하시고요

마태우스 2008-08-20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호홋 질투는 저의 힘이죠^^ 글구 전기세 아까워 집에선 선풍기로 지냈답니다... 냉방병 안걸리고 여름 넘겼다는....
발명품님/안녕하셨어요. 괴물에 관한 내용으로 재미있는 것은 위에서 쓴 것처럼 위생권력과 괴물의 공생관계지요. 왜 괴물을 송강호가 잡을 수밖에 없는지 논리적 필연성이 느껴지는 글이더군요.
승연님/추천 감사합니다. 님이 아니었다면 리뷰 13개 연속 무추천 기록을 세울 뻔했어요
주드님/답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처럼 어려운 글을 아예 못쓰는 사람이 보기엔 고미숙씨가 진정한 고수지요. 저도 가끔 어렵게 쓰고픈 욕구가 있거든요 호호. 글구 이동진 기자의 글은 정말 좋지요. 전 시네21에서 정성일 기자의 글을 꼬박꼬박 읽는데, 어려운데다 길기까지 해서 많이 힘들답니다. 그런 거 읽으면 내공이 튼튼해지는 걸까요...
순오기님/찜 해서 후회하진 않으실 겁니다. 특히 황산벌!!.
 
빅토리아의 발레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김의석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빅토리아의 발레>를 읽게 된 건 내 정신적 스승께서 추천해 주신 책이어서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쓴 스카르메타의 작품이기에 전작 정도의 재미를 기대했지만, 이건 좀 너무했다. 주인공 앙헬이 출소를 하고, 간수가 그를 죽이라며 다른 죄수를 풀어주는 첫장면부터 "이거 너무 재밌잖아!"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는데, 그 후 난 책을 덮을 때까지 높이 12미터짜리 파도에 버금가는 재미에 몸을 적셔가며 책을 읽었다. 30페이지 정도를 남겼을 땐 마침 운전 중이었는데, 결말이 너무도 궁금한 나머지 차가 밀릴 때마다 두어줄 씩 읽다보니 차가 밀리는 게 오히려 반가웠다.


제목만 보면 <빌리 엘리어트> 비슷한 얘기가 아닐까 싶었지만, 피노체트 이후의 칠레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민주화라는 게 민중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칠레처럼 군부독재를 겪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감히 말해 보자면, 군사정권은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 같다. 이 정권만 무너지면 모든 게 다 잘될 것이라는 허황된 꿈을. 군사정권이 물러가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된 지금, 우리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책에 대해 다시금 말해 보자면, 아무리 생각해도 스카르메타의 글솜씨는 참으로 뛰어나다. 스피디한 전개로 읽는 사람이 숨을 못쉬게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책 곳곳에 보석같은 표현들을 배치해 놓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예컨대 이런 표현.

"너무 뜨겁게 달아오르는 나머지 마린(성에 대해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내)은 손으로 셔츠를 다림질한다는 소문마저 돌았다 (133쪽)."--> 이걸 세명 정도의 지인에게 말해 줬는데, 웃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만 재밌었나봐.

"그는 음식을 구걸하는 대신 말의 이빨 사이에서 빼낸 홍당무 반쪽을 씹어먹는 걸로 자존심을 만족시켰다 (171쪽)"--> 아이들이 말똥에 섞여 나온 곡식을 꼬챙이로 집어먹는 것으로 굶주림을 표현한 <칼의 노래>에 버금가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을 말해 본다. 이따금씩 발견되는 오타는 별로 아쉽지 않았지만, 앙헬과 빅토리아가 질문을 주고받으며 시험공부를 하다 나온 다음 문장은 명백한 오류다.

앙헬: 담즙이 뭐지?

빅토리아: 췌장의 분비물이야.

담즙은 담낭에서 농축되어 담도로 배설되는 소화액이지 췌장의 분비물은 아니다. 이것 역시 책 전체로 보면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전공이 전공인지라 이 대목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8-08-08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하하 전 웃었어요. 얼마나 뜨거웠으면! 저런 비유와 상징은 글 잘 못쓰는 사람이 쓰면 정말 판에 박힌 그런 것들이 되곤 하는데, 제대로 쓸 줄 아는 이에게 가면 저런 글들이 나오는거죠. 말로 시리즈를 제가 그런 이유로 탐독했답니다.

무스탕 2008-08-08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전하시며 책 내지는 신문 그런거 읽으시면 마~아니 위험합니다..(저도 몇 번 그래봤지만요.. ^^;;)

다락방 2008-08-08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뜨겁게 달아오르는 나머지 마린(성에 대해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내)은 손으로 셔츠를 다림질한다는 소문마저 돌았다 (133쪽)."--> 전 웃었어요, 마태우스님. 흐흐


[달콤 쌉싸름한 초콜렛]이 생각나는 문장이기도 했어요.:)

무해한모리군 2008-08-08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저도 이책을 읽고 싶은 욕망에 아주 뜨거워지는데요 흐흐
근데 받는데 오일이나 걸리네요 ㅠ.ㅠ

최상의발명품 2008-08-09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손으로 다림질이라니, 어떻게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는 걸까요 ㅎㅎㅎ
차가 밀릴 때마다 못참고 읽으셨다니 정말 재밌게 읽으셨나봐요.
담즙 얘기 하시니 염상섭 소설이 생각나네요.
청개구리의 내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난다고 했는데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오류라고 하신 게 기억이 나요.

마태우스 2008-08-1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상의발명품님/그렇죠? 이런 대목도 있어요. 그 친구가 워낙 여자에게 잘 해서, 다른 남자들도 다 열심히 하려 했다는...^^ 염상섭 소설은 말로만 들었지 읽진 않았어요. 그게 오류란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요.
휘모리님/기다리느라 두근거리는 마음이 5일, 읽느라 즐거운 마음이 사흘!!^^
다락방님/역시 님과 저는 유머가 통해요!!
무스탕님/그렇죠? 원래는 운전 안하는데, 그땐 좀 사정이 어려워서 할수없이 차를 가지고 천안에 갔지요. 역시 대중교통이 좋아요
주드님/맞아요 판에 박힌 표현 대신 저런 멋진 표현들을 만들수 있는 힘, 그게 좋은 작가의 조건이죠!! 말로 시리즈라, 흠.... 궁금해지는군요!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열장만이라도 한번 보세요. 너무 재밌거든요."

알라딘서 알게 된 '최상의 발명품'님이 <앵무새 죽이기>를 추천하며 하신 말씀이다. 우여곡절 끝에 책을 구해 읽기 시작했는데, 초반부엔 "이거 성장소설이잖아? 난 다 컸는데..."란 생각에 약간의 회의를 갖기도 했지만, 내가 책에 빠져들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이 책을 다 읽은 건 지하철 의자에 앉아 있을 때였다. 주인공 '스카웃'이 그토록 무서워하던 래들리 씨 집의 현관에 서서 마을을 바라보는 대목을 읽을 때부터, 난 연방 손가락으로 눈가를 훔쳐야 했다. 개가 나오는 책을 제외하곤 소설을 읽고 울어본 건 꽤 오랜만이다. 대체 난 왜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을까? 눈물의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내가 책을 읽기 전보다 더 컸다는 생각을 했다.


1박2일의 회의 때 이 책을 들고 다녔더니 누군가가 이런다.

"그 책 이제 읽으시나봐요? 난 아주 어릴 때 읽었는데... 스카웃인가 하는 애 나오죠?"

어릴 적 읽어야 할 책을 어른이 되어 읽는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물론 어릴 적 읽어야 더 좋은 책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호밀밭의 파수꾼>은 지금의 내겐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잖는가? 하지만 이 책, <앵무새 죽이기>는 언제 읽더라도, 심지어 야오밍이 읽더라도 그를 더 자라게 만드는 책이다.


사람들은 때론 실수를 한다. 쥐가 치즈를 훔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그런 이유다. 하지만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책들엔 뭔가가 있다. <앵무새 죽이기>를 아직 읽지 않았다면, 이제라도 그 책을 보면서 뭔가를 느껴 보길 권한다. 당신이 흘리는 눈물의 양만큼, 당신은 자라 있을 테니까.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8-08-02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적 읽어야 할 책을 어른이 되어 읽는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맞아요.
오히려 나이를 먹고 작가의 생각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읽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요즘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너무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책을 읽혀서 머리로만 읽고 마음으로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쓰럽더라구요.

최상의발명품 2008-08-02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몇 달 전 제가 추천해드렸을 때 이렇게 리뷰까지 올라오길 크게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좋게 읽으셨다니 저도 좋아요.
저도 이 책 울면서 읽었답니다. 아마 착한 흑인이 누명을 쓰는 그 쯤인가 부아저씨 얘기를 읽을 때 쯤인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리고 많이 웃으면서도 봤어요.
저는 평생 한 번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어요. ㅎㅎ
성장소설 얘기하시니 생각나는데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도 제가 읽을 때마다 눈물을 줄줄 흘리는 소설이랍니다. 그에 이어지는 책도 두 권인가 더 있어요. 제제가 조금 더 컸을 때의 이야기.

무스탕 2008-08-02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서 보면 절대 성장소설 같지 않은데 제가 잘못 생각했나봐요.
최상의 발명품님이랑 마태님덕분에 흥미가 생겼어요 ^^

다락방 2008-08-02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광고때문에 꺼려했더랬어요. 성서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어서 말이죠. 물론 읽고 났을때는 아 진작 읽을걸, 편견 갖지 말걸, 하는 생각을 했지만 말입니다.

이 책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아주 기가 막힌 문장이 많이 나오죠. 이를테면,


언젠가 아빠는 나에게 형용사를 몽땅 빼버리고 나면 사실만 남게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p.116)


아빠는 잠을 푹 자지 않고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기 때문에 그 날은 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pp.140~141)


이런 문장들이요.
:)

마노아 2008-08-02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정독 도서관에 금요일마다 가서 하루 3시간씩 총 9시간에 걸쳐 이 책을 읽었어요. 정말 최고였죠. 영화도 있던데 보지는 못했어요^^

마태우스 2008-08-02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오아님/최고란 말에 동의해요. 갑자기 영화도 보고 싶네요. 책만큼은 아닐 것 같긴 해두요. 그나저나 님같은 분들은 다 중학교 때 읽으셨군요ㅠㅠ 전 그때 야구장만 다녔는데..
다락방님/와 님은 안읽은 책이 없군요! 그 아빠, 정말 멋지죠. 그런 아빠라면 다시 태어나고 싶단 생각도 듭니다^^
무스탕님/오오 님 아직 안읽으셨군요 겁나 반갑습니다 꾸벅.
최상의발명품님/님께 감사하단 얘길 리뷰에 안썼군요! 님은 제 은인입니다 꾸벅. 글구...라임오렌지 나무 그 후편, 둘 중 하나 읽었는데요 1편의 모방 같아서 별 느낌이 없었는데 제가 너무 무뎌서 그런 걸까요?
승연님/맞습니다. 나이들어 읽는 게 더 좋은 경우가 많더라구요 요즘 읽는 명작들, 어릴 때 읽었음 잘 몰랐을지도 몰라요.

최상의발명품 2008-08-02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고 그렇게 말씀해주시다니요! 저야말로 감사하죠.
라임오렌지 바로 뒤편 마음속의 두꺼비는 (제목이 생각 안나네요)
그래도 저에겐 감동적이었어요.
물론 라임오렌지와는 비교되지 않지만......
그 후편은 재미없어서 읽다 말았구요^^
(수줍어서 망설였지만 무스탕님 저 때문에 앵무새 죽이기 관심 생겼다고 해주셔서 감사해요^^)


비로그인 2008-08-03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무리 다시 읽어도 호밀밭의 파수꾼이 왜 그리 위대한 작품인지 모르겠어요. 제가 아는 모든 미국인들은 좋아 미칠 지경이라는데 전 아무리 봐도 지루하고 이해 안가는 작품이었으니. 대신 저도 앵무새 죽이기는 좋았습니다. 아직도 작품 속 아버지가 좋아요. 읽을 때도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멋있는 사람.

마태우스 2008-08-04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상의 발명품님/앵무새로 인해 님의 신뢰도는 거의 최상이 되었지요. 앞으론 말 잘들을께요^^
주드님/오오 저랑 의견이 같으시군요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해서는 제가 나이들어 읽은 탓이라고 생각할래요 기냥. 질풍노도의 시기엔 그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 있잖아요...! 주드님도 멋진 어머니가 될 것 같은데요?^^

무해한모리군 2008-08-05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덕에 줄거리가 어렴풋이 생각나네요~ 다시 읽고 싶어서 생투남기고 갑니다.

마태우스 2008-08-07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모리님/어어멋 이게 얼마만의 생스투인지요 제 인기가 예전같지 않아서 님의 생투가 더 감사하네요^^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요즘 책을 읽는 사람은 희귀종이다. TV는 더 재미있어졌고, 인터넷은 한번 들어가면 두세시간 날리는 건 기본이다. 출퇴근시간에는 다들 휴대폰만 들여다보는지라 책은커녕 신문도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이런 게 아니라해도 학생들은 입시와 취직공부에 목을 매야 한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친해지는 게 우리네 세상이지만, 책을 읽고 나서 같이 얘기라도 나눌 사람이 주위엔 없다. 그런 와중에 나온 <침대와 책>은 책 이야기에 목마른 독서가들을 열광시켰다. "나 어릴 적 이런 책 읽었는데, 그 책은 이 대목이 좋아."라고 할 때 그들은 반가움을 느꼈고, "비가 오면 파전에 막걸리를 먹으며 이런 구절을 떠올리곤 해."라고 하면 그들은 자신의 기억을 대입해가며 깊이 공감했다.


그 책의 저자인 정혜윤 피디가 두 번째 책 <그들은 한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문난 책벌레들을 찾아다니며 일합을 겨루는데, 이런 식이다.

고수: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이 내 청춘을 장식한 책이다...내가 행복하지 못하니까 세상과 싸우는 거더라.

저자: 그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자신들의 동질성의 실현,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한바탕 꿈이다.

대부분의 무공 대결이 상대를 해치는 것이지만, 책을 매개로 한 대결은 서로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보는 이를 더 높은 경지로 이끈다. 책의 장면 장면들은 오비완-아나킨의 대결보다 아름답고, <와호장룡>의 대나무숲 결투보다 우아하다.


"진중권이 독서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추천도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맥락 속에서 자기만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30쪽)."는 저자의 말은 저자 자신에게도 오롯이 돌아간다. <침대와 책>에서 그간 읽었던 수많은 책들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맥락과 의미를 만들어낸 저자는 이번 책에서 한층 더 세련된 배치를 통해 읽는 이를 몰입시킨다. "몰락하는 일만 남았"기에 딱 한권의 책만 세상에 남긴 하퍼 리같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저자는 책이 거듭될수록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 독서광들에겐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나처럼 문학소년의 시기를 겪지 않은 사람에겐 책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 주는 이 책이 '서재가 사랑한 책' 1위에 올라간 건 당연한 소치다. 저자의 화려한 무공을 보고 있노라면 젊은 시절 야구만 봤던 내 삶을 되돌리고 싶어지지만, 그게 불가능하니 저자의 세 번째 책을 기다리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련다.


한마디 더. 내용으로 보나, '이진경' '박노자' '공지영' 등의 이름으로 보나 이 책은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더해 저자는 자신의 모습을 표지에 싣는 '미녀마케팅'을 펼쳐, 미녀에 약한 독자들마저 끌어들인다. 판매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표지는커녕 책 날개에도 저자 사진을 싣지 못하는 나와 대조되는 점이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8-07-27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증이 생기게 하는 리뷰네요.

이매지 2008-07-27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평이 극과 극이더군요.
별 다섯 아니면 별 하나.
그래서 되려 더 궁금해지는 책 ㅎㅎ

Kitty 2008-07-27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매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표지는커녕 책 날개에도 저자 사진을 싣지 못하는 나와 대조되는 점이다. <- 너무나 마태님다운 마무리 ㅎㅎ 잘 지내시죠?

BRINY 2008-07-28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궁금증이 생기는데요. 책을 몰아서 사는 월초가 다가오고 있는데.

2008-07-28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8-07-29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어 아닌데, 제가 힌트 안줬어요. 글구 전 페더러가 몰락한 이후부터 테니스가 덜 좋아졌어요...
브리니님/어....이건 순전히 제 견해일 뿐인데, 슬슬 걱정되는데요^^
키티님/호호 제가 저다워야죠 부리스러우면 되겠습니까^^
이매지님/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다 다른 거 아니겠어요
승연님/부끄럽습니다. 그간 잘 계셨는지요..^^

무해한모리군 2008-07-29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대한 책, 서평을 다룬 책은 참 추천하기 어렵고 사람마다 감흥의 정도가 천차만별인듯 합니다. 어떤 형식일지 궁금하네요.. 서점가서 한번 쓱 봐야겠습니다 ^^

세실 2008-07-29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침대와 책은 읽으면서 심드렁했는데 님의 리뷰 읽으니 끌립니다. 찹쌀떡 드신거 아니죠? ㅎㅎ

캐서린 2008-07-30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책을 읽어왔다]라는 책에선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을 선별해나가는 과정이 상세히 나와있습니다..
그래도 요즘엔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조금은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같아
행복하답니다..얼마전만해도 전철에서 책들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다들 잠자기바쁜
세상이었는데..그나마 신문이라도 광고지라도 읽을거리를 찾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태우스 2008-07-31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캐터린 남님/다치바나 씨의 책을 언급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더이다. 읽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그 사람은 정말 대단한 다독가지만 책을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고 그러는데, 그게 저랑은 안맞더라구요. 앗 별반 중요한 얘긴 아니었구요 근데 요즘에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많아졌나요? 흠, 요즘 전철에선 핸펀만 보던데.... 글구 참 초면인데 안녕하셨어요. 꾸벅. 잘부탁합니다.
세실님/아니어요 침대와 책이 재미없으셨다면 이것도 안읽으시는 게 좋습니다. 이게 더 낫긴 하지만 그 연장선에 있는 거잖아요.
휘모리님/사실 전 장정일의 독서일기보다 더 재밌게 봤어요. 하여간 미리 좀 읽어보시고 취향이 맞는지를 확인하시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숲노래 2008-08-01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똑같은 '유명인사'만 우려먹는 책은 꽤 신물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