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엑스맨’에는 초능력이 강한 돌연변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네 능력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워야 해.”
가끔, 아니 그보다는 훨씬 더 자주, 난 교수라는 직책이 내게 너무 과분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강의도 못하고 연구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그렇지만, 학생들에게 뭔가를 가르쳐 사회에 내보낸다는 건 분명 무서운 일이다. 내 자신도 그다지 인생을 잘 살지 못하면서, 다양한 경험과 가치관을 지닌 그들에게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1. 딜레마
작년 12월, 난 유전학 선생을 괴롭히고 있었다. 의예과 2학년 학생 한명에게 F를 준 걸 재고해 달라면서. 그 과목의 F로 인해 그 학생은 2학기를 다시 다녀야 했는데, 본과 때의 휴학이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안그래도 허송세월에 가까운 예과 때의 휴학은 말 그대로 버리는 시간이기 십상이었다. 난 원칙주의자인 그 선생에게 전화를 걸었고, 찾아뵙고 읍소를 했으며, 말도 안되는 내용의 편지를 한통 썼다.
“때로는 관용이 더 큰 처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 학생은 다른 경로를 통해 구제가 되어 지금 본과 1학년에 다니고 있고, 그 사실에 나는 뿌듯함을 느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한 학생에게 F를 줌으로써 본과 진입을 막으려 하고 있다.
생각해 보자. 내 F와 그 선생님이 주려던 F는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 F만 정당하고 그 F는 부당하기라도 한 걸까. 남의 것을 베꼈으니까, 그리고 그걸 방어하려고 거짓말을 했으니까 F를 주는 게 맞다면, 매주 내라고 한 리포트를 한번도 안내고 중간고사에서마저 거의 백지를 내고, 출석도 별로 하지 않은 학생에게 F를 준 유전학선생 역시 자신의 의무를 한 게 아닐까. 그런데 왜 나는 그 선생님한테 찾아가 F를 재고해 달라는 월권을 저질렀을까. 그때뿐이 아니다. 학과장이 되고 난 후 내가 해야 했던 일들 중 많은 부분은 점수를 올려달라고 다른 과 선생들을 찾아다닌 게 아니었던가.
오늘 아침, 유기화학을 가르친 선생님이 수업태도와 성적이 불량했던 예과 2학년 학생들 다섯명을 불렀다고 한다. F를 주는 게 마땅하지만 그것 때문에 유급을 하는 게 안타까워, 불러서 꾸지람만 하고 성적을 주려나보다. 혹시 그 선생님이 내게 의견을 묻는다면, 난 이렇게 말하리라. “그거야 선생님 권한이지요.”
예과 성적이 인생에 전혀 반영이 안되기에, 그리고 F를 받아도 구제될 길이 있기에 애들은 개판을 친다. 그러니 F를 물러 달라고 부탁을 하고다닌 나 역시 예과 애들이 개판을 치는 데 일조한 거다. 그 사슬은 이제 끊겨야 한다.
2. 환멸
1) 리포트
리포트만 가지고 성적을 매긴다고 한 어느 과목, 성적을 낼 시점에서 난 일곱명이 리포트를 안낸 걸 보고 황당했다. 일일이 문자를 보냈고, 답을 안한 학생에겐 전화를 했다.
나: 리포트 혹시 냈나요?
학생: 아니요.
나: 왜 안냈어요?
학생: 내려는 날 늦잠자서 학교를 못갔구요, 그 다음에는 까먹어서 계속 못냈어요. 오늘 내죠 뭐. 몇 시까지 계시나요?
이런 학생들을 달래가면서 리포트를 다 받았다. 학생들은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개판을 치고, 문제가 생긴 후에야 비로소 태도를 바꾼다. 무릎을 꿇고 빌고, 부모님을 동원해 회유를 한다. 거기에 마음이 움직여 봐주고 나면 다음 학기 때 다시 개판을 치고, 후배들한테도 이렇게 말한다. “그거 열심히 할 필요 하나도 없어. 날 봐!”
2) 성의
그렇게 받은 리포트를 보면서 마음이 더 참담해졌다. 잘 쓴 학생도 있지만, 일말의 성의도 찾아보기 힘든 게 더 많았으니까. 예를 들어보자. 절반은 다른 데 올라온 줄거리를 표절해 놓고, 나머지 절반은 자기 느낌을 쓴 리포트가 있는데, 원초적 본능2를 가지고 쓴 이 글에서 두 구절만 예로 들어보자.
“나는 제목에 이끌려 보긴 하였지만 여자와 보기 민망한 부분이 많아 처음엔 후회되었지만 영화가 끝날 때에는 재미난 반전 등 재밌게 본 것 같았다.”
“이러한 매우 매력적인 영화를 본지가 오래 되었었는데 좋았다.”
글을 못 써서 이러면 모르겠지만, 그냥 대충 써갈기자는 생각이 강해서 이딴 글이 나온 건 아닐까. 블랙호크 다운을 보고 쓴 글이다.
“처음 전쟁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어긋난다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 영화가 가장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전쟁의 잔인함이 잘 묘사되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잭이다. 이 영화는 한편의 일기 형식으로 진행된다. 징병을 당하여 훈훈한 정을 느끼며 한치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만든다. 어떠한 일도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듯 전쟁은 잔인하다. 하지만 전쟁은 멋있다. 그렇지만 전쟁은 이루어져선 안된다. 주인공은 동료를 엄청 생각한다. 주인공의 동료애는 네이팜이 떨어지는 필드에서도 주인공은 부상당한 동료를 생각해주는 등 많은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헬리콥터 적군의 기지를 초토화시키는 것은 정말 멋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전쟁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생겨서는 안된다. 전쟁은 잔인하고 있어서는 안되지만 생긴다. 인간의 욕구가 안없어지기 때문이다. 어떠한 일도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블랙호크 다운)
읽다가 정신이 분열될 뻔했다. 이 학생은 대체 어떤 생각으로 이런 글을 썼을까.
3. 라면
어제 학교 앞에서 사발에 든 진라면과 김치, 그리고 햇반을 샀다. 햇반은 조금 뜯어서 렌지에 돌리기까지 했다. 배가 무척 고팠던 터라 11시 반쯤 그것들을 해치우려 했다. 하지만 아는 분이 천안에 왔다고 전화를 했고, 난 라면 대신 그분과 짜장면을 먹었다. 오늘 난 다시금 같은 메뉴에 도전한다. 렌지에 한번 돌린 햇반이 조금 찝찝하긴 하지만, 그거야 뭐, 다시 돌리면 그만이지. 자격은 안되더라도 내가 여기 근무하는 한 이리로 출근은 해야 하고, 출근한 이상 밥은 먹어야 한다. 그게 바로 인생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