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과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식약청이라는데 전화 받아보세요.”

출근한 뒤 느긋하게 댓글을 달던 내 손이 주르르 미끄러졌다.

“안돼요! 저 미국 갔다고 해주세요!”

“네? 미국이요?”

“저 괴롭히려는 전화거든요. 무조건 없다고 해주세요.”


식약청의 전화라는데 이렇듯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다 자라 때문이다. 지금은 흐지부지 잘 끝난 듯하지만, 김치에 관련된 글을 쓰고 난 뒤 보좌관한테서 항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으니까. 내가 그때 세게 나갈 수 있었던 비결은 김치와 국민을 이간질한 게 국회의원의 책임은 아니라고 했기 때문인데, 이간질의 주범으로 식약청을 들어 놨으니 그쪽 전화에 벌벌 떨 수밖에.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왜 이렇게 쫓기며 살아야 하냐, 앞으로는 진실이 어떻든지 남을 해꼬지하는 글은 쓰지 말아야겠다, 근데 얘네들은 그 글 쓴지가 언젠데 이제와서 이러냐, 아니다, 그 동안 변호사랑 소송 준비를 치밀하게 한 것이구나, 그래, 잘못했다고, 사과문 쓴다고 해버리자....


돌려주지 말라고 했는데도 전화는 계속 걸려왔다. 오후 세시쯤, 혹시 다른 전화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를 변조해서 받은 뒤 식약청이면 내가 아니라고 하자.

“(변조 목소리로) 여보세요?”

“네, 식약청인데요 마교수님 계십니까?”(이크, 망했다)

“(역시 변조 목소리로) 왜 그러시는데요?”

“오는 금요일에 이러이러한 과제 심사가 있는데요, 선생님이 심의위원으로 위촉되셔서요”

이런이런. 괜히 쫄았잖는가. 난 내 평소 목소리로 돌아왔다.

“아, 제가 마태우습니다.”

“아, 교수님! 계속 연락을 드려도 연결이 안되고, 제가 아는 번호는 이거밖에 없어서...”

그는 이번주 금요일에 식약청에서 심의 회의가 있다는 말을 전하고 내 휴대폰을 물어봤다.

“영일칠에요...칠육공에....네, 맞습니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진실에 입각한 거라면 최대한 남을 공격하는 글을 쓰자고. 일개 자라를 무서워해 하고 싶은 말을 못한다면 어찌 글쟁이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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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5-24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집니다. 마태우스님

프레이야 2006-05-24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조목소리 ㅎㅎㅎ 식약청 심의위원 위촉, 축하드려요. 축하할 일 맞죠?

비로그인 2006-05-24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멋집니다. 글은 언제나 쓰고 나면 제 스스로의 독자적인 생명을 얻는 묘한 생명체이거든요. 무엇보다도 그렇게 당당한 글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조선인 2006-05-24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높으신 국회의원 보좌관 나리는 그 후 잠잠한가 보죠?

다락방 2006-05-24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글을 읽다 보면 말이죠, 슬며시 웃고있는 제모습을 발견하게 되요.
:)

hnine 2006-05-24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기분학상 다른 내용의 전화일줄 초입에 알았습니다 ^ ^

플라시보 2006-05-24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 놀라셨겠어요. 다행입니다. 식약청 사람들이 그 일을 질기게 물고 늘어지지 않아서요. ^^

해적오리 2006-05-24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자라는 자라고 솥뚜껑은 솥뚜껑이다. - 맞는 말씀입니다...
가슴에 새길께요. ^^
근데 마태님 변조목소리 들어보고 싶어요...

세실 2006-05-24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마태님은 새가슴이래요~~
지조를 지키세요 지조를~~~
엄마한테 혼날까봐 무지하게 걱정하다가 칭찬받는 격인가요?

Mephistopheles 2006-05-2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보좌관이 필요한 건 국회의원이 아니라 마태님입니다...

마늘빵 2006-05-24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마태님은 역시 이라부에요.

해적오리 2006-05-24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다 이라부..ㅋㅋㅋ

클리오 2006-05-24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잇. 소심하시기는... ^^;;

모1 2006-05-24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고민많이 하셨겠어요. 후후....얼마나 놀라셨을지..

2006-05-25 0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瑚璉 2006-05-2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한 모습입니다(-.-;).

마태우스 2006-05-25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비님/인간이란 누구나 다 약한 존재죠. 많이 도와 주세요^^
속삭이신 분/저야 늘 환영이죠. 연락만 주시어요
모1님/공포에 떨던 네시간이었답니다^^
클리오님/그게 또 제 매력이 아니겠어요^^
해적님/전 이라부 싫어요. 그사람 뚱뚱하잖아요!
아프락사스님/그리고 전 주사 페티쉬도 없어요!
메피님/맞습니다. 미녀 보좌관이 몹시 필요해요!
세실님/지조를 지키도록 미녀이신 세실님이 많이 도와주십시오^^
해적님/전화 주시면 언제라도...^^
플라시보님/그러게 말입니다. 아주 대범한 사람들이어요
hnine님/아이 너무 예리하셔!!
다락방님/미녀의 웃음은 사회의 건강성의 지표죠
조선인님/다행히도...^^
주드님/전 주드님이 훨씬 멋지다고 생각해요. 이유는 나중에 말씀드릴께요.
배혜경님/글쎄요 축하할 일인가.... 아무도 안하겠다고 하는 건데...^^ 그래도 감사드립니다.
하늘바람님/제가 멋지단 건 알고 있었지만...제 글에 나타난 제가 멋진가요????

박예진 2006-05-25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마지막 마디에 역시 푸헬헬 !! ㅋㅋ

비로그인 2006-05-26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처럼 집요한 구석이 있는 식약청이군요

sweetmagic 2006-05-26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태우스 2006-05-26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직님/안그래도 어제 님이 꿈에 나왔어요. 제가 부산 가서 님을 찾아뵙는 꿈이었는데요... 이렇게 댓글로 만나네요^^
캐서린님/그러게 말입니다^^
박예진님/오랜만에 뵙네요. 그간 안녕하셨어요???? -이벤트 떨어진 거 아직도 안풀린 소심마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