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수요일, 강남에서 약속이 있었는지라 강남역으로 가는 퇴근버스에 올라탔다. 천안에 사는 고교 선배가 그 버스를 타고있다.
“웬일이세요?”
“응, 서울서 약속이 있어.”
선배는 다음날 6시 40분 강남역에서 출발하는 출근버스를 탈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버스는 결국 천안에 오지 못했다.
발단은 1차선에서 느려터진 속도로 달리고 있던 승용차였다. 비틀거리듯 달리는 그 차가 짜증난다는 듯 뒤따르던 승용차가 갑자기 2차선으로 끼어들었다. 2차선에 있던 버스는 급히 속도를 줄여 충돌을 피했지만, 그 뒤에서 오던 버스는 그러지 못했다. 그 버스가 우리 학교 출근버스였다. 운전사는 급히 우측으로 핸들을 틀었지만, 앞서가던 버스 후미를 들이받았고, 계속해서 두 대의 차를 들이받은 후 도로 밖 도랑에 뒤집힌 채 처박혔다.
그 시각에 깨어있던 사람들은 의자 등받이를 손으로 잡는 등 나름의 대비를 했지만, 잠을 자던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은 의자 등받이에 얼굴이나 몸을 부딪혀 타박상을 입었다. 가장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은 운전사 아저씨였고, 대부분이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였던 승객들 중에는 코뼈가 부러진 L선생이 가장 심한 상처를 입은 사람이었다. 병원에 입원했던 사람은 여섯명이지만, 입원 안한 사람들도 이마를 열두바늘 꿰맨 생화학 선생을 비롯해서 적잖은 부상에 신음해야 했다. 하필 그 전날 약속을 잡는 바람에 타박상을 심하게 입은 선배처럼, 이 사고에서도 운은 엇갈린다. Y선생은 천안에서 술약속이 있는 바람에 서울에 가지 않아 화를 면했고, 전날 마신 술이 덜 깨는 바람에 출근버스를 놓친 성형외과 K선생은 뒤늦게 도착해 부상자들의 수술을 담당했다.
사건 이후 버스는 수리에 들어갔고, 다른 버스가 그날 오후부터 사람들의 출퇴근을 담당한다. 하지만 버스에 탄 사람들의 얼굴과 손에 붙어있는 붕대는 그날 일이 바로 며칠 전임을 말해주는데, 부상당한 선생님들 그리고 가장 많이 다쳤다는 운전사 아저씨가 하루속히 회복되길 빈다.
에피소드: 코뼈가 부러진 L선생에게 K 선생이 물었다.
“이왕 수술하는 거, 평소 하고 싶었던 거 없어요?”
결국 L 선생은 약간 튀어나와 보이던 광대뼈를 손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