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12세용이라는군요^^
대학생이 된 이후, 난 나를 고교생 쯤으로 보는 게 너무도 싫었다. 시위 현장에서 전경이 나에게 신경도 안쓰는 게 서운해서, 전경 주위를 세바퀴나 돈 적도 있다. <마타하리>라는, 실비아 크리스탈이 주연한 미성년자 불가 영화를 처음으로 볼 때는 내 친구 둘은 들여보내고 나만 따로 검사를 했던 적도 있다. 술집에 가서 심심치 않게 학생증을 제시받을 때는 짜증이 나기까지 했다. 요컨대 난, 어려 보이는 게 싫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나이가 든 뒤로는 젊어 보인다는 말이 그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다. 사실 난 동안은 아니다. 하지만 워낙 귀하게 자라서 그런지 나이보다 어리게 보는 사람이 꽤 있다. 2000년인가, <해피엔드>를 보러 갔을 때, 당시 나이가 서른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자는 아니시죠?”라는 질문을 표 판매원에게서 받았는데, 그게 그리도 좋았는지 수십, 수백 명에게 그 사실을 자랑했다 (그 판매원의 시력이 아주 나빴던 것 같지만, 당시 내가 날씬하고 운동으로 단련된 몸을 가졌다는 걸 생각하면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내가 어려보이는 걸 좋아하는만큼 남도 그럴 것이라 판단되어 다른 사람, 특히 여자 분을 만날 때 립 서비스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발달한 화장술 덕분인지 요즘 여자들은 정말로 나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는 43세고 18살 먹은 아들이 있다고 해 날 놀라게 했고, 테니스장에서 가끔 만나는 20대 비스무리한 여인은 자신이 32세의 미시라고 얘기해 날 슬프게 했다. 요컨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요즘 여인들은 대개가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
이런 민감한 시대에 실수를 했다. 엊그제 남자 한분과 여자 한분을 모시고 술을 마시다가 여자분께 이렇게 말했다.
“젊어 보이세요! 20대로 보여요!”
여자는 피식 웃고, 남자는 더 크게 웃는다. 나이보다 낮추는 건 예의지만, 너무 지나치게 낮추는 건 결례다. 40대한테 10대 같다고 하는 건 욕이지 않는가. 난 잽싸게 내 말을 수정했다.
“30대 초반으로 보여요!”
여자분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실제 나이는 26세였으니까. 20대에게 20대로 보인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며, 사태를 수습하려 했던 30대 발언은 해서는 안될 말이었다. 화장을 하나도 안하고 청순하게 보이는 그녀를 내가 나이들게 본 원인은, 내 상상력의 결핍에 있었다. 내 나이에서 20대 여인과 술자리를 같이 한다는 걸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 다행히도 성격 좋은 그 여자분은 그런 일로 삐지거나 그러지 않았기에 남은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오미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