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역에 갈 때 난 5714나 7612번 버스를 탄다. 오늘 아침에는 7612번을 탔다. 그것도 세번이나.

어제 비교적 이른 시각에 드물게 멀쩡한 시각으로 집에 올 때, 난 주차장 길을 가로지르지 않았다. 그 대신 골목길로 빠져 우리집에 왔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건 주차장 위에 고양이의 시체가 그대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난 어제 고양이를 위해서 술 석잔을 마셨고, 그걸로 의무를 다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었다. 다시금 시체를 본다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막막하기도 하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 고양이 시체가 그대로 놓인 걸 보자 마음이 무거웠다. 기차 시간 때문에 애써 외면하고 버스를 탔다.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고, 아마도 하루종일 찜찜한 기분일 것 같았다. 아는 미녀에게 전화를 했다.
“어떻게 하죠?”
“뭘 어떡해요. 묻어 줘야죠.”
“저희 집 마당이 없어서 말이죠.”
"근처에 산 같은 것도 없어요?"
처음에는 퇴근을 좀 일찍 한 뒤 묻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침 나절에 하는 게 훨씬 나아 보였다. 난 버스에서 내렸고, 반대편 정류장에서 다시 7612번을 타고 집으로 왔다.

츄리닝에 목장갑을 끼고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눈이 덮힌 채 죽어서도 외면받고 있는 가련한 생물체를 난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비닐을 큰 걸 준비했는데도 고양이는 반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집에 들어가 생수 박스를 가져왔다. 트렁크에 박스를 싣고 차를 몰았다. 박스를 손에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몇 년 전만 해도 벤지와 가끔씩 올라가던 바로 그 산. 다른 사람이 볼까봐 일부러 인적이 없는 곳으로 갔다. 호미와 갈고리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어붙은 땅은 쉽사리 파지지 않았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십분이 지났지만 겨우 고양이 머리가 들어갈 정도밖에 파지 못했다.
“미안해, 더 이상은 못파겠어.”
난 고양이의 상반신을 거기다 묻고, 낙엽으로 나머지 부분을 덮었다. 워낙 감쪽같아서 뭐가 묻혔는지 아무도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전래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좋은 곳으로 간 고양이가 오늘밤 꿈에서 내게 인사할 것만 같다.

8시 20분, 다시금 7612번 버스가 왔다. 어제에 이어 이틀 연속 지각이지만, 오늘은 그래도 마음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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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6-01-10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마태우스님은 착한 남자입니다,,

야클 2006-01-10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까지 거리에 죽어 있는 고양이 3마리, 까치 2마리 묻어줬어요. 고양이 한 마리는 바빠서 그냥 쓰레기 봉투에 담아서 그냥 놔두고요....우리집 개들은 물론 뒷산과 집 정원에 묻어주구요.

결론은....






우린 너무 닮았어요. ^^



라주미힌 2006-01-10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냥 지나갔습니다... ㅡ..ㅡ;
길 한가운데서 산산조각이 난 개...
트럭에 깔렸는지 납작하게 죽어있는 고양이..
죽은 쥐... 떨어져 죽은 참새...

하기 힘든 일인데..

비로그인 2006-01-10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과 천생연분이시네요 *^^*...

물만두 2006-01-10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과 마태님 쌍둥이~

Mephistopheles 2006-01-10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까운 곳에 계셨다면 냅다 달려가서 삽질해드리고 싶은 맘이 드는군요...

paviana 2006-01-10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역시 야클님의 상대가 안 되는군요.ㅠㅠ
님을 조용히 보내드리겠어요.
두분 행복하세요.

moonnight 2006-01-10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절대 못할 일을 하셨어요. 어쩜 그렇게 맘이 고우신가요. ㅠㅠ

마늘빵 2006-01-10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두 분 다 너무 착하시군요. 마태님, 야클님. 저도 그냥 지나가는데...

모1 2006-01-10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일 하셨습니다. 고양이가 고마워할꺼예요.

kleinsusun 2006-01-1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태님, 지각을 하시면서까지 고양이를 묻어주시다니...
정말 아무나 하기 힘든 일이예요.
미녀가 시켜서 하신 일은 아니죠?ㅎㅎ
마태님은 천사!

야클 2006-01-10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은 고양이 때문에 지각한 사연.

http://www.aladdin.co.kr/blog/mypaper/752655


마태우스 2006-01-10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님에 비하면 전 너무도 부족한 점이 많은 놈입니다. 님은 정말 천사예요 천사!
수선님/진짜 천사가 바로 곁에 있습니다. 찾아보십시오. 참고로 고양이 머리를 한...
모1님/조금의 위안이라도 되었길 빌어야죠..
아프락사스님/우리 셋이서 고양이 특공대 같은 거 조직해 볼까요. 거리의 고양이를 돌보는...
달밤님/마음이 곱다기보다, 사실은 제가 편하자고 한 것일지도 모르지요. 미녀의 권유도 있구요..
파비님/어째 저를 야클님한테 떠넘기려는 듯...^^
메피님/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만두님/야클님이 훨씬 잘생겼는걸요
고양이님/앗 절세미녀 고양이님이다
라주미힌님/저도 계속 지나가면서 살았어요. 요번에 처음 그런 거구요, 야클님이 정말 훌륭한 분이세요
야클님/아아 마음맞는 분을 드디어 만났군요!
울보님/가끔 착한일을 하지만 착한 놈은 아니어요...

하늘바람 2006-01-10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과 야클님 정말 천사시군요. 전 무서워서 도망만 치는데
존경스럽네요

날개 2006-01-10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집 어항에 있는 죽은 물고기도 차마 못꺼내고 옆지기 시킨다는...^^;;;;;;;
마태님.. 훌륭하십니다.! (야클님이랑 부디 행복하시길~ ㅠ.ㅠ)

줄리 2006-01-11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밤 겨드랑이 좀 만져보세요. 날개가 돋기 시작하셨을거예요. 근데 저는 왜 천사를 만나면 마음이 짠해지지요?

조선인 2006-01-11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을 정말 존경해요. 고맙습니다.

마태우스 2006-01-12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착한 일을 가물에 콩나듯 하고 그때마다 쪼르르 여기다 고해바치니 착해 보이는 거지, 전 그런 놈이 아닙니다.
줄리님/날개는 조금 돋았습니다^^ 하지만 몸이 무거워서 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날개님/어맛 제 타입이신 날개님을 두고 제가 어찌 야클님을....
하늘바람님/한번 해보니까 생각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더군요. 앞으로는 저도 야클님을 본받아 열시미 해보려구요

2006-01-22 0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