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형이래요...
A형 중에는 소심한 사람이 많던데, 나 역시 그 중 하나다. 질문이라도 한번 할라치면 가슴이 마구 두근거려서 정작 기회가 오면 할말도 못한다. 더 문제되는 건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거. 그래서 내 아래 애들은 다 나에게 맞짱을 뜬다. 평소에는 그게 편한데, 가끔은 서운할 때가 있다.
하나.
동아리에 예의가 없는 후배가 들어온 적이 있다. 나랑 7년 차이가 나는 후배였는데, MT를 갔을 때 내 동기 하나가 걔한테 장난으로 불침을 놓자 녀석은 자다 깨더니 열이 받아서 신발을 들고 내 친구를 쫓아왔다. 화난 건 이해해도 7년 정도 선배면 억울해도 참는 게 우리네 정서, 하지만 녀석은 끝까지 쫓아가더니 내 친구에게 결국 신발을 던졌다. 친구가 워낙 성격이 좋아 넘어갔지만, 난 몹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진료봉사를 할 때-우리 동아리는 진료봉사 동아리다-진료를 보던 내가 그에게 뭔가를 시켰을 때, 그는 “선배님이 하세요.”라면서 확 가버렸다. 한동안 벙 쪘다고 할까. 몇 번 그런 일이 있자 안되겠다 싶어 그에게 한마디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막상 천진하게 놀고 있는 그를 보면 말할 용기가 없어서 몇 번을 지나갔는데, 그러다 결국 소주를 여섯잔 쯤 마신 뒤에 그를 불러 얘기를 했다. 벼르고 벼른 것과는 달리 무척이나 온화하게 “그, 그건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수준으로. 그 후배 또한 “알았어요!” 한마디를 남기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겨우 이러려고 그렇게 오래 마음고생을 했다니, 하면서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 후배는 내 기대와 달리 동아리의 기둥으로 성장했고, 선, 후배 모두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둘.
난 식물을 기르는 데 별 관심이 없다. 우리집 옥상에 채소를 기를 때, 거기다 물주는 게 ‘가장 하기싫은 세가지’ 중 하나였다. 지금 내 연구실에 있는 난초를 볼 때마다 “물주기 싫어 죽겠는데 넌 왜 이리 건강하냐?”고 묻곤 한다. 겨우 일주에 한번 물을 주면서, 그게 그리도 귀찮았던 것. 학장이 취임할 때 받은 거니까 벌써 일년 반을 살렸다. 그러다 지난주, 매우 기특한 생각을 했다. 이 난초에 물을 주지 말고 죽여버리자!
물을 줘야 할 월요일. 이날은 외부강사를 모시는 날이라 방에 들를 새도 없었다.
화요일. 난초를 잠깐 바라봤다. 안색이 창백한 것 같았지만 “엄살부리지 마!”라고 한마디 해줬다.
수요일. 갈증이 난듯한 난초를 보면서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
목요일. 수업 준비를 마치고 기지개를 켜다가 난초를 보니까 무척이나 애처로운 표정으로 서 있다. 외면하려 했는데 자꾸만 난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결국 난, 난초에 물을 듬뿍 줬다. 난초는 다시금 웃음을 되찾았다. 역시 난 마음이 약하다. 겨우 4일을 버텼을 뿐. A형이 난초를 가장 잘 키우는 건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다. 다른 혈액형은 어떨지 내 생각을 써본다.
O형: 난초를 결국 말려죽인다. 독한 놈...
AB형: 자신이 없다고 다른 이에게 떠넘긴다. 무책임한 놈...
B형: 섬세하지가 못해 물 주는 간격이 일정치 않고, 한번 줄 때마다 왕창왕창 준다. 결국 삶에 염증을 느낀 난초는 자살하고 만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