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지옥’을 읽고난 이후 권지예가 낸 책은 되도록이면 사려고 했다. 괜찮은 여성작가가 나왔구나 싶었으니까. 자전적인 이야기로 도배한 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자기 얘기를 그렇게 재미나게 풀어나갈 수 있다면 소설가로서 자질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 버렸다. 그 다음에 산 ‘폭소’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고, 차기작인 ‘꽃게무덤’은 사놓고 오랫동안 못읽고 있었다.


나는 가끔 그저 내가 신기할 뿐이다. 못났건 잘났건 내가 낳아놓은 소설들을 보면 말이다. 내 속에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었나 싶다. 아이의 탄생이 어미의 존재이유가 되듯이 태어난 작품은 나를 또 소설가로 존재하게 한다.”

권지예가 쓴 작가의 말 중 일부다. 표절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서 들춰본 ‘꽃게무덤’, 그 책날개에 써 있는 작가의 말은 나를 무척이나 씁쓸하게 했다. 작가의 말대로 소재를 차용한 것이라 해도 그건 ‘내 속에..숨어 있’던 이야기는 분명 아니니 말이다. 작가의 말을 내 식대로 바꿔본다.

나는 그저 권지예가 신기할 뿐이다. 못났건 잘났건 자기가 창조한 이야기를 소설로 써야지, 다른 사람의 경험담을 자기 얘기처럼 쓰다니 말이다. 작가가 존경받는 이유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데 있다면, 남의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각색하는 작가를 작가라고 부를 수는 없다.”


소설은 표절이었다. 책 내용 중 일부와 문장을 아예 통째로 베껴왔고, 환자가 죽고나서 어머니가 자살하는 결말까지 어쩜 그리도 똑같은지 모르겠다. 미리 출처를 밝혔으면 모르겠지만, 이 정도가 표절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표절이라는 걸까? 하지만 정과리를 비롯한 동인문학상 심사위원들은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소설 하나를 토씨 하나 안틀리고 베껴야 표절이라는 걸까? 심사위원 중 하나인 이문열은 이렇게 말한다.

작가에게 치명상이 될 ‘표절’ 의혹을 너무 쉽게 제기하는 것 같아 참 난감하다.”

아니다. 그의 정신이 아무리 썩어빠졌더라도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그가 작가라면, 그리고 아직도 작가로서의 양식을 가지고 있다면 “작가에게 치명상이 될 표절을 작가가 된 지 몇 년도 안된 이가 너무 쉽게 하는 것 같아 절망했다.”라고 말했어야 했다. 이문열을 국민작가라고 부르는 분들, 제발 좀 생각 좀 하시라.


박경철 씨는 환자 가족 분들에게 허락을 받고, 수정을 해서 글을 썼다. 권지예가 환자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지는 못할지라도 원저자인 박경철한테는 사전에 알렸어야 했다.

[권지예 씨는 “박경철 씨가 책을 출간하기 전 인터넷에서 본 글을 소설의 소재로 가져왔다가 이후 그 글이 수필집으로 출간된 것을 알고 박씨에게 e-메일을 보냈으나 답신이 없었다”고 해명한 뒤 "다음 판을 낼 때 소재의 출처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메일 한번 보냈으니 자기도 할만큼 했다는 투로 들린다. ‘시골의사’를 낸 출판사에 전화만 해도 박씨의 휴대폰 번호 정도는 알 수 있을텐데. 그리고 소설가는 그게 책으로 나오지만 않는다면 인터넷의 사례들을 허락도 없이 베껴도 되는 것일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인터넷 매체가 많잖아요. 작가들도 인터넷에서 힌트를 얻어 쓰기도 하고 그래서 저도 그렇게 했는데 선생(박경철)의 글을 받아서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을 그 다음 책 찍을 때는 명시하겠다고 얘기했어요.”

“다음 책 찍을 때 명시하겠다”, 이걸 무슨 큰 선심 쓰는 것처럼 말하다니 우리 권지예 씨도 기득권층이 다 된 것 같다. 안걸리면 마는 거고, 걸리면 “담부터 니 이름 넣어줄게.”라니. 인터넷에서 베끼는 게 관행이라는 그녀의 말도 어이가 없다. 그딴 식으로 글을 쓰면 개나 소나 다 작가겠네?


소재가 딸리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그 작가를 믿고 책을 산 독자들에 대한, 그리고 박경철 씨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연쇄살인을 한 것도 아닌데 그쯤 하면 봐주지 않겠는가. 하지만 권지예는 지금 휴대폰도 끄고 잠적한 모양이다. 잠잠해질 때까지 숨어있기, 민초들의 항의는 무시하기, 이것 역시 우리의 기득권층이 보이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등단한 지 8년만에 그녀는 기득권층이 사는 법을 완전히 터득했나보다.


다시 말하지만 작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존재고, 창조는 본디 신의 영역에 속한다. 그래서 난 표절을 작가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놈의 나라는 왜 그렇게 표절에 관대한지, 표절을 저지른 사람이 사과 한마디 없어도 별탈없이 작가 생활을 한다. 이인화는 페스티쉬라고 우기지, 신경숙은 걸리고 나니까 “실수”라고 우기면서 표절의혹을 제기한 박철화를 맹렬히 공격하지, 권지예는 “이메일 보냈는데 답장이 없다.”면서 그 책임을 박경철에게 뒤집어 씌우지... 문단이 이런 희한한 작태들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라.”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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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5-11-06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실을 제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심증은 가네요. 요새 참 씁쓸합니다.

이매지 2005-11-06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말 한마디에 작가로써 매장당할 수도 있겠지만, 잘못은 인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아직 두 작품 다 읽어보지 못해서 표절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이문열은 국민 작가라는 칭호가 너무 큰 감투 아닐까요? -_ -; 작품 같은 작품. 뭘 썼다고 -_ -;

하루(春) 2005-11-06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이런 얘기였군요. 충격.. 솔직히 충격이에요. 동인문학상까지 받은 작품집이... 사보고 싶었는데 일단 보류해야 겠네요.

panda78 2005-11-06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문열이 언제부터 국민작가였대요오- 어우어우-
권지예,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정말 만정 다 떨어졌습니다.
"작가들도 인터넷에서 힌트를 얻어 쓰기도 하고" <- 댁은 힌트를 얻어 쓴 게 아니라 베낀 거잖수? 문학상까지 받은 작품집에 이름 넣어줄 테니 가만히 있으라구? 으이구..

2005-11-06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Joule 2005-11-06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간만에 또 님과 저의 합일점을 찾은 것 같아 기쁩니다. 저는 문체 보다는 정신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족속입니다. 문체만 번드르르한 일련의 한국소설들을 보며 생각합니다. 그들은 왜 소설을 쓰는가.

미완성 2005-11-06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이 죽어가고 있다며 그 책임을 책 안 읽는 '무식한' 사람들에게 뒤집어 씌우려던 사람들이, 숫제 문학을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는 짓을 목도하고 말았습니다. 관련 기사를 읽으며 어찌나 황당하던지, 지구인과 외계인이 처음 통신을 주고 받아도 이것보단 이질적이지 않을 거다..싶더만요. 특히나 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의 탈을 쓰고 감정에 호소하려는 권..의 행태에는 혀를 찰 수 밖에 없네요.
한국문학은 커다란 종양 덩어리를 안고 죽어가고 있슴다. 죽어가고 있는 문제와는 별도로, 그 징글징글한 종양 덩어리가 아직은 신선한 피가 자알- 돌아가고 있는 다른 부위로 전이될까봐 그래서 아예 몸 전체를 덮어버릴까봐 그게 겁납니다.

Joule 2005-11-06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멍든사과님 오랜만이에요. 페이퍼만큼이나 멍든사과님의 댓글도 아주 명품입니다. 멋진 말씀입니다.

미완성 2005-11-06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오바한 거 아냐? 해서 지울까하는 생각으로 왔더니 쥴님의 댓글이...;
제 위에 있는 쥴님의 댓글이 올려진 시간을 보고선 오, 아직 안 주무시는구나- ㅎㅎ 혼자 웃었는데 또 이렇게 뵙네요. 방가방가 쥴님 >ㅇ< 귀, 귀엽나요;

모1 2005-11-06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문열씨가 국민작가로도 불리나요? 몰랐어요.(순수하게요. 그를 잘 알지 못하거든요. 수업시간에 배우게 되는 작가들빼고는 잘 모르는 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선택, 삼국지...이것 3편밖에 읽어보지 못했어요. 모두 억지로 숙제하냐고 읽었던 책들

모1 2005-11-06 0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원체 안봐서....뭔소린지 잘 모르겠어요. 후후...둘다 모르는 책들..??

로드무비 2005-11-06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절 이야기가 있길래 뭔 말인가 했더니 이런 스토리였군요.
음, 많이 얍삽했네요. 권지예 씨!
실수를 했다면 제대로 정리를 잘하고 넘어갈 것이지.
타격이 크겠어요.

사마천 2005-11-06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표절 논란에서 쉽게 빠져나가기 어렵겠군요. 기대를 많이 받던 작가인데.

눈보라콘 2005-11-06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냈다는 이메일 내용도 양해를 구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마태우스 2005-11-06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천님/그러게요. 저 역시 괜찮게 보던 작가였는데 말입니다
로드무비님/참 신기해요. 꼭 상 반납까지 가지 않더라도 정말 죄송하다고 하면 될 것을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모1님/박경철 씨 작품은 경험담에서 나온 수필집이구요, 권지예 건 단편소설 모음인데요 그 중 하나가 수필집에 나온 걸 차용했어요. 글구 이문열을 국민작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그와 정치적 지향이 비슷한, 다시말해 냉전극우반동에 남녀차별주의자들입니다.
사과님/님은 언제나 쥴님만 좋아하세요. 저랑도 놀아요. 글구 저 역시 님의 댓글에 추천하고 싶어요. 님이 페이퍼를 쓰셨다면 훨씬 더 멋진 페이퍼가 나왔지 않았을까요...
쥴님/흐음, 요즘 님과 제가 같은 생각을 하는 지점이 꽤 여러번 있네요. 몸 만들고 있는 것도 그 중 하나겠지요^^ 하여간 반갑습니다
속삭이신 ㅍ님/아아 멋진 댓글입니다. 모르던 정보를 주셨고, 또한 님의 문학적 내공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동인문학상을 타지 않았다면 아마도 문제가 커지지는 않았을 거라는 님의 생각에 동감을 표합니다. 동인문학상이 조선일보 주최라는 것도 이 사건의 배경 중 하나가 되었겠지요?
판다님/그러니까 믿을 건 알라디너밖에 없어요. 판다님, 앞으로도 쭉 친하게 지내요
하루님/아아 님이 내신 숙제를 아직 못했습니다. 7년 후배한테 전화하니까 자긴 모르겠다고... 조만간 숙제할께요.
이매지님/기득권층은 원래 잘못을 인정하는 데 겁나게 인색해요. 일본 애들도 '유감'이란 표현을 쓰던데 우리나라 애들도 별반 차이가 없어요. 문제되면 "왜곡되었다"고 한다든지...
페일레스님/그러게 말이어요. 씁쓸, 착잡, 이런 표현들이 머리 속에서 맴돌더이다.


마태우스 2005-11-06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님/아 그런가요? 제가 파란님 덕분에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그때 그 글, 감사드려요.

로렌초의시종 2005-11-06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의 자식 유괴해다가 키우면서 퍽이나도 뿌듯했던 모양이로군요? 그렇게 애들 안 낳으면 누가 소박이라도 준다고 했나보지요?

2005-11-06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1 2005-11-06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어떻게 표절을 하고도 그리 떳떳하게(?) 행동을 할 수 있는지...그것도 소설가라는 사람이요. 마태우스님 덕분에 좋은 사실 알았습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해요.

manheng 2005-11-06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지예씨의 글들을 참 좋아했었습니다... 특히 ' 내 가슴에 찍힌 새의 발자국' 이란... 소설을... 이 사건을 보고 참 많이 씁씁했었죠. 기대하는 작가였는데 말이죠. 애인한테 배신당한 느낌이랄까... 하여간 그러네요

2005-11-06 1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1-07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즈마리 2005-11-07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씁쓸....

마태우스 2005-11-07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즈마리님/제 맘이 바로 그렇습니다.
스노우드롭님/위의 두 책 안읽었다고 무식한 건 아니죠. 그리고 뒤에 말씀하신 거, 삼류소설로 남을 속이는 데서 쾌감을 얻는 제게 좋은 가르침이 된 듯 싶습니다^^
속삭이신 미녀님/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수정했구요, 답은 우편으로 하겠습니다. 단풍 좀 줍구요^^
만헹님/그러게요. 나름대로 글을 잘쓰는 작가였는데...우리가 좋아하는 다른 작가들 중에도 무슨 일이 닥쳤을 때 실망스런 모습을 보일 사람이 꽤 있겠지요. 그 일이 터지지 않았을 뿐
모1님/아닙니다 저도 파란님과 파란여우님 글 보고 이 사건을 알았는걸요. 다 서로 돕고 사는 겁니다
속삭이신 분께/어머나 세상에.. 님을 이용해서 올라간 그 사람, 지금도 잘 살고 있습니까? 정의는 언제나 이긴다는 말은 다 거짓이던데...
로렌초님/그랬나봅니다^^

moonnight 2005-11-07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덕분에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네요. 권지예씨. 그래도 괜찮은 작가라고 생각했더니만 이런 일이 있었군요. 서글픕니다.

2005-11-07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yonara 2005-11-07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우리나라 땅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군대, 정치, 교육, 먹거리... 예술까지... 참.. -,.-#

울보 2005-11-07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도 권지예작가 좋아라햇는데 뱀장어 스튜보고 그녀의 책을 읽엇는데,,,,
정말로 이런일이,,,에이 씁쓸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