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차피 수업이 일주에 한번이니
방학이나 개학이나 뭐 크게 다르겠냐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개강을 하고나니
왜 이렇게 바쁜 걸까.
난 지금 의예과장이다
의예과를 총괄하라고 하는 자리다
그런다고 내가 총괄 같은 걸 하겠냐만은
하여간
내 전임자가 2학년 과목에 글쓰기라는 걸 만들어 놓고 떠났다
도대체 어떻게 강의를 해야 할지 몰라서
친구가 전에 선물한 영어책-<On writing wel>l-을
방학 동안 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듯이
초반부 읽다가 말았다.
읽다보면 졸렸고
다 읽어도 글을 잘쓸 수 없을 것같은 생각이 마구 들었다
그러다 다른 일이 생겼고
거기에 매달리면서 그 책은 물 건너갔다(다시 외국 갔단 소린가?)
자, 그럼 강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두번을 맡았고
도망간 전임자에게 세 번을 맡겼다
그리고 책을 낸 적 있는 교수에게 한번을 맡기고 나니
더이상 내부에서 강의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소설가인 친구 동생을 섭외했다
전에 싸인회도 했던 심윤경님이다
아주 흔쾌히, 천안에 와준다고 했다
그다음 변정수님을 섭외했다
모델 변정수 말고
책도 여러권 낸 분인데
내가 페미니즘을 배운 건 그분한테서다
다양성에 대한 관용도 사실 그분한테 배웠다
작년에 CBS 나갈 때 안면을 텄다
담당 PD: 변정수 씨도 오늘 모임에 오셔
나: 와! 정말요? 꼭 뵙고 싶었어요
PD: 모델 변정수 아닌데?
나; 알아요, <만장일치 무효다> 쓴 그분.
메일로 연락을 드렸더니 아주 흔쾌히 해준다고 하신다
그다음 김규항님.
시네21에 글을 써서 유명해진 분으로
연세대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 1위에 오른 적도 있다
온몸으로 글을 쓰고, 그래서 글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B급 좌파>를 읽으면서 어찌나 감동했는지.
유명세로 보건대 그분과 내가 안다니 뿌듯하다
물론 난 그를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어찌어찌하다 메일을 주고받게 되었다
하여간
강의 한번 해달라고 부탁했다
"형 부탁이니 들어줘야죠"라고 답장이 왔다
나이는 내가 많지만
그런 유명한 사람이 형이라고 하니 이상했다
한번이 더 남았다
지승호님께 메일을 보냈다
인터뷰 책을 여러권 내신 분인데
성실성 면에서는 따라갈 자가 그리 많지 않다
알라딘에 쓴 리뷰 때문에 그분과 알게 되었고
책날개에 내 닉네임을 써주기도 했으며
지난번엔 저서에 싸인을 해서 보내주셨다
이쯤되면 잘 아는 사이 아닌가?
인터뷰만 잘하는 게 아니라 글도 잘 쓰는 분이라
강의 부탁을 드렸다
근데 아직 답을 안주신다
어쨌든 한과목 배정이 이렇게 끝났다(아직 끝난 건 아니지만)
시험은 마지막 날, 두시간 동안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쓰라고 한 뒤 내가 채점을 할거다
배정을 하고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예과 때 이런 강의를 받아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 배운 것들 중 지금까지 도움되는 게 별로 없고
순 술먹고 논 기억밖에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