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게 우편물이 왔다. 누굴까 싶어서 봤더니 paviana 님이다. 예쁜 입체카드와 더불어 책-내가 관심을 가질 게 너무도 분명한-을 하나 보내 주셨다. ‘지난 한해 동안 님의 글을 읽으며 참 즐거웠답니다’라면서. 예상치 못한 선물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법, 난 한 2분간 고마움에 어쩔줄 몰라해야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떤 분은 내게 김윤아의 씨디를 보내 주셨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취향의 강요 같아서 좀 망설여졌습니다만 많은 분들게 기쁨과 위로를 주시는 데 대한 작은 답례입니다’ 그 씨디의 첫 번째 노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내 애창곡이 되었다.
이 두분만이 아니다. 내게 <미스틱 리버>를 보내주시기로 한 판다님은 “워낙 받은 것이 많아서” 그냥 주신단다. 지금은 잠적하셨지만 스타리스카이님과 냉열사님은 멋진 책을 선물하셨고, 이미 많은 장신구를 주신 너굴님은 크리스마스를 겨냥해 만든 어여쁜 목걸이를 내 여친 이름을 넣어서 ‘크리스마스 다정 목걸이’라고 해 주셨다. 그밖에 수많은 분들이 내게 책을 보내 주셔서, 내 직장에는 그분들이 보내주신 책이 내 키만큼 쌓여 있다. 저걸 언제 다 읽지 하는 마음보다, 보내주신 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볼 때마다 미소짓게 된다. 비단 책뿐이 아니다. 온라인의 천사가 오프라인의 야수로 돌변하기 십상인 험난한 세상에서, 알라딘을 통해 친해진 많은 분들-진우맘님을 비롯해서-은 어쩜 그리 다 좋은 분들인지, “알라딘 사람들은 믿을 수 있다”는 검은비님 말씀이 틀린 게 아니다 (음, 나는 사실 날 못믿는다^^)
지금은 알라딘이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일어난 기간은 겨우 일년이다. 삼십년을 훨씬 넘게 사는 동안 숱한 고비를 겪었음에도 올해가 내 생애 중 가장 다이나믹한 한해로 기억되는 것도 다 알라딘 때문이 아니겠는가.
내가 알라딘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난 그런대로 잘 살았을 것이다. 교봉에다 리뷰를 쓰고, 동창 사이트 같은 데 글을 쓰고, 서점에 가서 읽고픈 책을 고르고, 이따금씩 술을 마시면서. 그것과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전혀 모른 채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문명의 이기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나름의 행복을 누린다는 게 이해가 간다. 하지만 문명의 이기를 맛본 사람이 다시 원시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알라딘의 삶을 체험한 나로서는 알라딘 없이 사는 게 상상도 하지 못할만큼 끔찍하게 느껴진다.
내게 선물을 주신 분들은 내 글을 읽고 즐거웠다고 한다. 하지만 내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이 없었다면 글을 쓰는 재미가 훨씬 덜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인정욕구가 있는지라,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었기에 나도 그야말로 목숨걸고 글을 썼다. 다른 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배우는 것도 많았으며, 플라시보님의 리뷰를 통해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다>를 건지고 갈대님의 추천으로 <거짓의 사람들>을 읽은 것을 비롯해 그분들의 추천으로 건진 좋은 책들이 너무도 많다.
내 지인 하나는 알라딘 마을이 ‘남과 다르다는 우월의식에 차있다. 마치 고급 사교클럽같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난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래도 남보다는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자부심이 있기에 더더욱 애정을 가질 수 있었을 테고, 알라디너들은 수준높은 글과 따뜻한 댓글로 그게 사실임을 입증해 주셨다. 전에도 한번 우려먹은 표현이지만, 욕설과 거짓이 난무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알라딘은 독야청청 아름다움을 뽐내는 ‘village'다.
얼마 전 활동을 재개한 모과 양처럼 지금도 수많은 분들이 알라딘의 문을 두드린다. 그분들 역시 일년쯤 후에는, 내가 지금 하는 것처럼 ‘알라딘이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본인들의 노력이 우선되어야겠지만, 나머지 절반을 채워주는 건 우리 몫이다. 사랑해요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