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에 했던 얘기가 반복되고, 또 바른 생활 교과서에 나오는 듯한, 심하게 말하면 추천을 노리고 쓰여진  글 같네요. 뭐, 그렇게 보셔도 할 수 없지요^^ 오늘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서 이 글이 쓰고 싶어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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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할머니-내게 할머니는 외할머니 뿐이다-는 부자였다. 비싼 서초동 빌라에 사셨고, 우리가 갈 때마다 만원, 이만원씩 용돈을 주셨다. 그때 내가 할머니 댁에 자주 갔던 것은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라기보다, 갈 때마다 내 손에 쥐어주시는 시퍼런 돈 때문이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할머니는 전혀 부자가 아니다. 있는 돈, 없는 돈을 모두 우리에게 주시고 조그만 아파트에 사신다. 혼자 사시니 심심하지만, 놀아드릴 사람도 없다. 엄마는 너무 바쁘고, 삼촌은 무능하다. 엄마를 낳고 더 이상 애를 못낳아 입양을 한 사람이 바로 삼촌인데, 그 삼촌은 오십을 몇 년 안남긴 지금까지 몇십년째 놀고 있다. 삼촌은 가끔 용돈을 타러 할머니댁에 가는 걸 제외하면 할머니를 잘 찾아뵙지 않는다. 아, 삼촌이 몇 번 사업에 실패하느라 말아먹은 돈도 꽤 된다. 이제 수입원이 없는 할머니는 어머님이 드리는 용돈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사신다. 할머니가 부자일 때는 자주 그집에 놀러가던 우리 형제들은 이미 오래 전에 할머니를 잊었다. 딱 한명, 여동생은 지금도 할머니에게 뻔질나게 전화를 한다. 애를 봐달라고 부탁을 하기 위해서다. 할머니는 애를 봐주시러 버스를 타고 이촌동에 가고,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오신다. 한달이면 열흘 이상 애를 봐주지만, 여동생은 할머니에게 교통비조차 준 적이 없다. 여동생의 말이다.

“할머니가 안받으려 하셔서...내가 파출부냐며 펄쩍 뛰잖아”


할머니는 우리집에도 가끔 오신다. 역시 일을 해주시러 오는 거다. 일이 있으면 엄마는 할머니께 전화를 하신다. “옷 다릴 거 있어요” 엄마는 할머니가 오갈 때마다 차로 모신다. 가끔 내가 모셔다 드릴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 시간을 뺐는구나. 미안하다”

심심해서 그런지 할머니는 일을 맡기는 걸 좋아하시고, 엄마도 할머니께 일을 드린다는 걸 뿌듯해하시는 듯하다. 언젠가 술을 먹고 늦게 집에 갔더니, 할머니가 열심히 배추를 씻고 있다. 엄마는 뭐하시나 봤더니 전화를 하고 계신다. “엄마, 너무하세요!”라고 했더니 황급히 나오신 우리 어머니, 이렇게 말한다. “아이 어머니도, 내일 하자니깐 왜이러세요!”

어머니가 말로 할머니를 서운하게 할 때도 있다. 삐진 할머니의 속을 풀어드리는 건 내 몫, 나를 이뻐하시는 할머니는 이내 삐진 걸 푼다. 할머니를 보면서 난 엄마한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할머니께 난 가끔 용돈을 드린다. 그 옛날에 받은 것에 비하면, 그리고 지금 내가 술쳐먹는 데 쓰는 돈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돈이지만, 드릴 때는 겁나게 생색을 낸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돈을 하나도 안쓰고 모아 두셨다가, 내 생일 때 고스란히 주신다. 언젠가는 엄마가 용돈을 좀 넉넉히 드렸더니, 당신이 안쓰고 글쎄 내 옷을 사오신 거다. 색깔 하며, 패션 하며, 정말 촌스럽기 그지 없는 옷들, 난 할머니가 속상할까봐 “감사합니다. 잘 입겠습니다”라고 해놓고선 한번도 입지 않았는데, 엄마는 나중에 하나는 환불하고 하나는 삼촌에게 줬다고 한다.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하나도 안쓰는 분, 할머니는 그런 분이다.


할머니 댁에서 드실 때, 할머니는 김치 하나에 드신다. 당신 혼자 드시니 잘 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듯하다. 우리 집에 오셔서 같이 식사를 하실 때, 할머니는 김치 하나에 밥을 드신다. 같이 먹는 내가 맛있는 반찬을 많이 먹기를 바라셔서이다. 내가 생선을 조금 잘라서 할머니 밥그릇 위에 놔 드리면, 할머니는 화를 내면서 다시 내게 주시고, 밥그릇을 손으로 커버해 내가 반찬을 못놓게 하신다. 난 할머니가 맛있게 잘 드시면 좋은데, 할머니는 그런 내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나보다.


할머니는 오래 일본에서 사셨다. 그래서 일본말을 아주 잘하시고, 일본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재작년 말인가, 할머니가 일본판 <주부의 벗>을 교보에 주문했는데, 왜 안오느냐고 알아봐 달라고 한 적이 있다. 어찌어찌 해서 받아보게 해드렸는데, 그 책을 굉장히 좋아하시는거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갖고 다니고,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단다. 그래서 그 다음달, 그 잡지가 나오기를 기다려 할머니께 드렸다. 할머니는 무진장 기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 돈 드니까 앞으로는 사지 마”

그 다음달에도 휴대폰에 입력을 해놓고 또 사드렸다. 할머니의 말씀,

“매달 사면 돈 드니까, 3-4개월마다 한번씩 사줘라”

그 책의 가격은 6800원, 할머니는 내가 그 돈을 쓰는 걸 아까워하신다.


몇 달 전, 할머니와 함께 선유도 공원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할머니 댁에서 가까운 곳이건만, 들떠서 꽃단장까지 하신 할머니, 푸른 잔디와 너울대는 한강을 보면서 많이 즐거워하신다. “할머니, 집도 가까우니 우리 여기 자주 옵시다!”

그 말을 해놓고 한번도 안갔는데, 벌써 12월이 코앞이다. 지금은 추워서 못가려나...


엊그제, 12월호가 나와서 할머니께 갖다 드렸다.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는 할머니, 그날 밤을 거의 새다시피 하면서 다 읽었단다. 갑자기 다른 책도 사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일본 책 다른 것도 좀 사드릴까요?”

“괜히 돈쓰지 마. 난 괜찮아”

“그래도...한권만 살께요. 일본 소설 같은 걸로”

“그러면 한권만 사줄래?”

원래 토요일날 가려다, 오늘 갑자기 짬이 나서 교보에 갔다. 직원 하나를 불러서 할머니가 좋아할 만한 책을 물었고, 그가 골라주는대로 다 샀다. 7만 5천원이 나왔다. 종이 가방에 넣고 버스를 탔다. 책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이 책들을 보고 좋아하실 할머니 생각을 하니 미소가 절로 나왔다.


할머니의 가장 큰 소원은 내 아기를 보시는 거란다. 지금껏 할머니께 잘한 게 없으니 그 소원이라도 들어드려야 할텐데, 유감스럽게도 난 ‘무자식 상팔자’가 신조다. 그나저나 할머니는 왜 남을 통해야 하는 소원을 갖고 있는 걸까. “일본을 한번 가고 싶다”던가 “원없이 돈을 써보고 싶다”는 게 아니라, 겨우 내 아기라니. 어쩌면 그건 할머니의 인생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행복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희생을 감수하신 그런 삶. 십원 하나에도 벌벌 떠시면서 자식들에게는 원없이 퍼주려고 하셨던 삶. 물론 그것도 존경할 만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난 퍼주기만 하다 초라해져버린 할머니가 안되어 보인다. 우리에게, 그리고 삼촌에게 그렇게 퍼주지만 않았다면, 좋은 아파트에 돈도 굴리면서 살 수 있었을텐데. 그랬다면 할머니 댁에 사람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지 않았을까. 그래서 난 할머니보다 뒤늦게나마 인생을 즐기시는 듯한 우리 어머님이 훨씬 더 멋지다.  그래서 결심했다. 할머니께 좀 더 잘해드리기로.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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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11-18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님 보실 책 사 들고 나오시는 마태님의 모습이 그 어느 때 보다 멋지게 느껴지네요. 마태님, 최고로 멋져요! ^ㅂ^) b

당연히 추천!

superfrog 2004-11-18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마태님 같은 손자분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할머님이 조금 당신의 즐거움도 챙기셨으면 좋겠어요..

하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자식한테 뭔가를 해주면서 가장 행복해하시겠지만요..

할머님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sweetrain 2004-11-18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제가 주인보기로 단 댓글 읽으셨나요? 긁적.

다연엉가 2004-11-18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할머니 소원풀어 드리세요.

야클 2004-11-18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뭉클하고 슬프게 또 한편으로는 훈훈하게 잘 읽었습니다. 감동적이네요.

깍두기 2004-11-18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잘해 드리세요!!!(빨리 26세 미녀와 결혼하셔서 떡두꺼비같은 아들을 낳으시라고...^^)

비로그인 2004-11-18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이 다 나네요. 마태님의 이런글이 참 좋아요 훈훈하고...

저도 어릴적에 중학교때까지 외할머니가 키워주셔서인지 길을 가다가도

할머니들이 구걸을 하시면 그냥 지나치질 못한답니다. ㅜ_ㅜ

플라시보 2004-11-18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해 드리세요. 그 책은 정말이지 꼬박꼬박 사 드리시구요. 진짜로 님이 술드시는데 쓰시는 돈에 비하면 새발의 피 잖아요. 우리가 새발의 피라도 할 수 있을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돌아가셔서 해 드리고 싶어도 못해주는 날이 올테니까요.

하얀마녀 2004-11-1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할머니 소원이 저 장가가는거 보고 죽는게 소원이라 했는데... 재작년에 돌아가셨지요. ㅜㅜ

조선인 2004-11-18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 소원을 얼른 이루어주시길 바라며 추천!!!

어항에사는고래 2004-11-19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읽다 용돈 모아 실로 돌돌 말아, 누가 볼까 얼른 주머니에 쏙 넣어주시던 외할머니 생각이 나 잠시 코끗이 찡~ 그래서 쓰지 못하고 서랍 속에 넣어둔 명주실에 감겨있는 그 돈을 한참 봅니다.

니르바나 2004-11-19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가서 누가 묻거들랑 마태우스님은 외할머니 닮았다고 하세요.

그게 정답 입니다.

외할머니의 외모를 설명을 안 하셔도 닮은 구석이 많으실 것 같아요.

마태우스님 좋아하시는 추천 한 방.

무탄트 2004-11-19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님 얘기를 읽다 보니, 저의 큰이모님 생각이 나네요. 정말 잘해드리세요. 일본책도 많이 사다드리고, 할머님 모시고 일본 구경도 함 가시면 좋겠고, 할머님이 그토록 원하시는 손주도 안겨드리면 정말 좋겠네요. (저도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생각하지만... ^^) 아침부터 마태우스님의 가슴 찡한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오늘은 저도 큰이모님께 전화 한 통 드려야겠어요. ^^

BRINY 2004-11-19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절 수술 받으신 고모 할머니 생각이 나네요. 제가 아쉬울 땐 일본책 많이 읽어 달라고 했는데, 이번엔 저도 [주부의 벗] 사들고 문안 가서 할머니 회화연습 상대가 되드려야 겠어요.

sweetmagic 2004-11-19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 마태님 할머닌가 봐요 ` 아가가 보고 싶어요 !!

눈이 작을까요 클 까요 ? 님 아가는 응애 하고 우는 소리도 엄청 부끄러워 할것 같다는 ~ =3=3=3= ~ !

oldhand 2004-11-19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은 생색 내서 하신다지만, 사실 할머니에게 잘 해드리는게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지요. 할머님도 오래 오래 건강하시길 바라구요, 마태님은 정말 멋진 분이세요. >_<

마태우스 2004-11-19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 이렇게 엄청난 반응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글 머리에서 추천 운운한 게 효과를 본 게 아닌가 하는.... 하여간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올드핸드님/아유, 아네요. 저 어쩌다 효도 한번 한 거랍니다. 그대신, 앞으론 정말 잘해드릴께요.

스윗매직님/절 닮은 아가라니, 그건 정말이지 상상하기 싫습니다. 제 여친이 아무리 눈이 커도 저랑 평균하면...으음...

브리니님/그렇게 하시면 좋겠네요. 나이 드시면 아무래도 외롭고 하니, 찾아뵈면 좋아하실 겁니다.

무탄트님/어머 전에 제가 인사를 드렸던가요? 하여간 반갑습니다. 님 말씀대로 할머니께 잘할께요. 큰이모님께 꼭 전화 드리세요^^

니르바나님/저희 할머니는요, 저랑 다르십니다. 아주 멋지게 생기셨어요. 저랑 닮았다면 다들 싫어해도, 할머닌 저랑 닮았다 하면 좋아하시겠지요^^ 제가 추천 좋아하는 거 어케 아셨는지요^^

고래님/안녕하세요? 오랜만에요. 고래님 자주 오시라고 찡한 글 가끔 써야겠네요^^ 다들 할머니에 얽힌 추억이 많으시군요...

조선인님/앗 그런 조건부 추천은 부담스러운데....^^

마녀님/마녀님, 이제라도 장가 가시어요^^

시아일합운빈현님/건강하시니 다행이죠. 할머니가 얼마나 고마우신 존재인지 글을 쓰면서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플라시보님/그렇게 하겠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진짜루요...

고양이님/님한테 칭찬 받으니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전 님과 달리 다른 할머니들을 보면 냉정하게 지나가요...

깍두기님/네 그렇게 하지요. 26세 미녀한테 이참에 프로포즈를^^

야클님/말씀 감사합니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가난한 자님/위에서 말했듯이 이참에 멋진 프로포즈라도...

금붕어님/저 말만 그렇지, 사실은 효자 아네요. 이 글을 계기로 효자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

판다님/어머 판다님 추천 감사드려요. 참고로 할머니가 엄마한테 전화를 하셔서 민이가 아니면 누가 이러겠냐면서 울먹이시더래요... 그 애기 들으니 진작 좀 이런 생각을 할 걸 그랬단 후회가...

검은비님/그렇게 많이 받으면서도 저흰 그걸 당연하게만 생각해 왔어요.... 흐흑.


하이드 2004-11-19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곧 잘못되도, 아쉬울 것 없이, 맘대로 이기적으로 살았지만, 그렇게 누가 맘 깊이 알아주지도 않는 희생만 하시고 산 분들의 남은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다는 사실은 참 슬픕니다. 결론은. 맘껏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살자. 입니다. 오늘 점심시간에 아는 언니와 점심 먹으면서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 물론 결론 내리는 저의 진지함에 같이 먹은 언니는 웃고 말았지만요 )

마태우스 2004-11-19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하고픈 거 하면서 살아야 나중에 후회 안할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4-11-20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잘 하세요~~^^알라딘 분들 말고 어머니나 할머니께 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