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가 있는 잠깐 동안을 제외한다면 인생에서 난 살이 빠져 본 적이 없다.
172센티에 52킬로이던 대학 1학년 때 이후부터 키는 겨우 4센티가 자란 반면
체중은... 거의 30킬로 가량 증가했다.
러닝머신을 사서 열심히 달리기도 하고, 테니스도 정말 열심히 쳤으며
심지어 이뇨제를 먹기도 했지만 내 살은 요지부동이었다.
오죽했으면 강의 때마다 잠바 같은 걸로 배를 가리고 수업을 하겠는가?
6년 전에 찍었던 이 사진은 내가 얼마나 심각한 몸매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옷 속에 뭐가 들어가서 그런 거지, 내 배가 저렇진 않다고 우겼지만
들어가긴 뭐가 들어가겠는가.
저 정도면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는다 해도 임산부인 줄 알겠다.
욕심 안부릴테니 5킬로만 딱 빼면 좋겠다,는 내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러다간 100킬로까지 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 뿐이었다.
남은 평생을 그 몸매로 살아야겠구나 싶었지만,
작년 9월, 그 일이 일어났다.
위내시경에서 뭔가가 발견되어 내시경 수술을 하게 된 것.
일이 잘못되어 병원에 두 차례 입원했고,
입원할 때마다 닷새씩 금식을 하고 나온 뒤에 체중을 달아 보니
체중계 바늘은 꿈에서나 바라던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5킬로가 빠져버린 것.
병에 걸린 내 처지를 원망하던 마음은 눈녹듯 없어졌고
누운 채로 평평해진 내 배를 손으로 쓸다보면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내는 이 모든 원인이 내 과식에 있다고 판단, 소식을 권...아니 강제했고,
내가 환장해 마지않던 고기를 식단에서 제외했다.
퇴원 후에 다시 살이 찌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기우가 됐고,
그러던 어느날 달아본 체중계는 퇴원 직후보다 2킬로가 더 빠진 숫자를 가리켰다.
오늘 찍은 사진을 보면 6년 전에 달라붙어 있던 뱃살이 어디론가 간 걸 확인할 수 있을 거다.

아프기 전까지 난 먹는 건 최대한도로 먹고
운동으로 살을 빼려고 했었다.
하지만 한번에 삼겹살 두근을 혼자 구워먹는 내 식탐은
아무리 강도높은 운동도 이겨낼 수 없었던 거였다.
지금은 위가 줄어들어 빵 한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가 됐는데,
어머니는 부쩍 수척해진 날 보면서 '아내가 잘 못먹이는 게 아니냐'며 걱정하시지만
난 지금의 내 몸매가 뿌듯하기만 하다.
다이어트의 왕도는 없다.
안먹는 것 뿐.
* 사진을 옆에서 찍었어야 하는데 홀쪽해진 배가 잘 안보이는 느낌.